해녀와 바다

이가희展 / LEEGAHEE / 李嘉曦 / painting   2018_1013 ▶︎ 2018_1018

이가희_바다,여기는#1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1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09:30am~06:00pm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LEE JUNGSEOP ART MUSEUM STUDIO GALLERY 제주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33 (서귀동 514번지) 전시실 Tel. +82.(0)64.760.3573 culture.seogwipo.go.kr/jslee

바다로 나가는 전사들 ● 테왁을 들고 거의 맨몸으로, 사납고 거친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제주의 해녀는 제주도의 상징적 존재다. 나는 사실 제주도를 떠올릴 때 마다 부드럽게 융기되어 솟은 오름과 천진한 미감을 두른 동자석, 광막한 바다와 소박한 형태와 붉은 색을 지닌 제주도 옹기 등이 연상된다. 그런가하면 해변의 돌들이 또한 다가온다. 그것들은 한결같이 내 미감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것들이다. 제주도 민화나 목기, 나아가 돌담과 나무 등도 그런 맥락에서 뒤를 잇는다. 그런데 제주 해녀는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 눈에 밟히는 존재다. 먼발치에서 제주도 해녀를 얼핏 본 기억이 있지만 실상 내가 해녀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다. 그런 제주도 해녀를 작품의 소재로 다룬 작업들은 꽤나 접했다. 그래서인지 낯설지는 않다. 물론 지금 그 해녀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사라지고 있기에 그 존재를 추억하고 기념하려는 움직임도 그에 비례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삶이 바뀌고 생활조건이 달라진 상황에서 그 힘든 물질을 하려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간 여러 회화와 사진 작업을 통해 해녀에 관한 이미지를 접했다. 미술사에서 여성의 몸은 매우 오래된 소재다. 해녀 역시 여성이미지에 속한다. 그러나 기존에 여성의 몸이 재현되는 방식과는 좀 다르다. 해녀는 일하는 여성, 거대한 자연과 연동된 몸, 죽음과 대면한 신체이자 오로지 자신의 맨 몸으로 심연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하는 감동적인 서사를 들려주는 몸이다. 따라서 그 몸은 단지 과거 미술사에서 재현되던 다산과 아름다움이란 수사에서 벗어난 몸이다. 또한 제주도란 특정한 공간에서만 접할 수 있는 상당히 이례적이고 독특한 몸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러한 몸을 재현한다는 것은 기존에 미술사에서 흔하게 다루었던 여성의 몸의 재현과는 무척 다른 결을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속의 몸이자 일상의 몸, 노동하는 몸, 그리고 시대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몸에 대한 기억으로서의 의미가 잔뜩 묻어나는 몸의 재현인 셈이다.

이가희_warrior#2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18
이가희_warrior#1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18
이가희_ 바다,여기는#2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8

이가희는 2013년부터 해녀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물론 이는 작가가 제주도란 공간에서 살고, 작업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초기에는 해녀의 얼굴만을 클로즈 업 해서 화면에 가득 담은 작업이었다. 작업복을 입고 물안경은 머리 위에 걸친 늙은 해녀의 주름진 얼굴, 형언하기 어려운 표정만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는, 비교적 정교한 그림이다. 나로서는 그 표정에서 어딘지 공허한 느낌, 생의 끝자락에서 모든 것을 뒤로 한 이의 마지막 표정 같은 것이 얼핏 감지되는 편이었다. 아마도 작가도 그런 얼굴 하나를 기념비처럼 세우고 싶었던 것 같다. 우선 그 스케일 감각과 단색으로 조율된 독특한 화면처리 등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캔버스 표면에 물감 칠을 하고 수 십 번의 사포질을 통해 얻은 매끄러운 표면은 화면을 낯선 감각으로 변질시킨다. 그러니 이 그림은 물감을 입혀서 구축해내는 그림이라기보다는 물감의 층위를 부단히 벗기고 지워나가면서 원하는 효과를 얻어내는 그림인 셈이다. 지우기위해서는 바탕 면에 비교적 일정한 높이의 물감 층이 형성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주제의식의 구현에 효과적인 편이다. 오랜 세월, 고단한 물질을 통해 생을 이어온 이의 연륜과 그로인해 터득한 낙관적 인생관을 묘한 표정으로 대변하고 있는 듯한 이 초상은 해녀의 얼굴에 대한 기록적 측면이 강한 동시에 독자한 회화적 기법을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다소 즉물적인 초상화에 머물고 있다는 아쉬움, 그리고 기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가희_바다,여기는#3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8
이가희_이어도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8

이후 작가는 막막하게 펼쳐진 단색의 배경/풍경을 설정하고 화면 하단에 해녀를 위치시킨 그림으로 이동한다. 이전작과는 해녀를 보는 거리감이 정반대다. 여러 번의 밑칠로 올라온 배경과 함께 표면을 반복해서 긁어내는 기법, 일종의 스크래치를 동반한 재현술이다. 수직으로 그어 내리는 벗겨내기, 상처내기는 드로잉의 효과를 동반하는 동시에 바닥을 드러내고 상당히 예민하고 날카로운 선묘의 맛을 남긴다. 해녀의 모습은 대부분 일하는 모습을 따왔고 따라서 상당히 활력적인 동세가 감지된다. 그것 역시 긁어내는 기법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비가 내리는 제주의 풍광을 보는 듯도 하고 해녀의 고단한 삶의 사연을 암시하는 것도 같다. 작가의 작업은 이전작업도 그렇지만, 항상 화면에서 모종의 질감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매우 민감한 것 같다. 전작이 사포로 갈아내는 것이었다면 근작은 나이프로 표면을 벗겨내는, 긁어내는 기법이다. 무엇보다도 근작은 드로잉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그러한 기법이 다소 과잉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붓질과 물감의 층으로 이루어내는 회화적인 맛도 필요해 보인다는 생각이다.

이가희_바다,여기는#4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18

근작은 해녀 단독의 얼굴을 그렸던 이전 작업에서 벗어나 실제로 일하는 모습과 자연풍경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업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살아가는 것이 전쟁과도 같다고 한다. 특히, 해녀들에게 바다는 수고에 따르는 풍성한 선물도 주지만 목숨을 걸고 들어가야 하는 전쟁터와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들이 모습이 마치 전사와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감히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품 제목이 대부분 「전사」다. 그리고 「이어도」 및 다른 제목도 있다. 작가가 보기에 해녀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와도 같다고 본 것이다. 간단한 도구에 의지해 목숨을 건 물질을 하기에 그럴 것이다. 그 일은 늘 생사의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돌이켜보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하루의 일상이 늘 그런 전쟁터에 다름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생존의 장인 현실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다. 작가는 이를 해녀의 노동과 오버랩하고 있다. 해서 화면 하단에 매우 작게, 해녀의 일하는 장면을 단독으로, 혹은 군상으로 그린 후 나머지는 거대한 바다를 암시하는 단색으로 밀어 올렸다. 그 어딘가에 해녀의 위치를 알려주는 테왁 몇 개가 떠있다. 해녀는 테왁 하나에 의지해 숨을 참으며 물속에 들어가 일을 하고 다시 올라와 테왁에 기대 숨을 고르며 쉰다. 그리고 다시 테왁을 밀고 전진한다. ● 해녀의 모습은 점경인물로 등장하고 간략히 처리되고 있다. 해서 관자들은 모종의 동작을 취하는 해녀의 모습을 먼 곳에서 문득 엿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해녀들은 무리를 지어 '이어도'에 올라와 쉬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모종의 유토피아처럼 자리한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 유일한 안식처, 사방이 바다인 곳에 인간의 몸을 안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해녀들이 모여들었다. 다시 거대하고 숭고한, 가혹하고 풍요로운 이 바다 속으로 연약한 늙은 여자들의 몸이 잠수한다. 생을 이어가기위해 고단한 물질을 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작가는 그 여정, 노동을 일정한 거리 속에서 조망하게 한다. 저 멀리 노동하는 해녀들의 모습이 바글거린다. 그녀들의 음성이 환청으로 들리는 듯 하다. 화면을 가득 채운 색채는 바다와 자연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 거대한 자연의 물리적 크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작게 자리한 해녀의 몸은 위태하고 미약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해녀들은 위대해서 오랜 세월 동안 이 물질을 해왔고 생을 이어왔다. 작가는 그런 정신을 새삼 복기한다. 자신의 생을 겹쳐놓는다. 여기서 그림은 단지 제주도해녀의 모습을 기록하거나 낭만적인 드라마로 각색하는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저 해녀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승화하느냐에 맺혀져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지점이 보다 효과적으로 베어 나오려면 좀더 조형적인 측면에서의 완성도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 박영택

Vol.20181013b | 이가희展 / LEEGAHEE / 李嘉曦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