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T PAINT

김은주_노송희_이아현_차현진_황예랑展   2018_1002 ▶︎ 2018_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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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해당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시민큐레이터의 지원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기획 / 박다예

관람시간 / 01:00pm~08:00pm

탈영역 우정국 POST TERRITORY UJEONGGUK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구 창전동 우체국) Tel. +82.(0)2.336.8553 www.ujeongguk.com www.facebook.com/ujeongguk

몇 년 전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을 읽으며, 직업과 내면의 욕구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들은 모두, 유명하든 혹은 작은 지방극장에서 활동하든 상관 없이 자기 평생을 익명의 관중에게 바치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동의 없이 배우가 되지 못한다. 이와 비슷하게 평생 시종일관 인간 육체에 종사할 것에 동의하는 사람이 의사다. 비교적 분명히 그려지는, '신체에 평생을 봉사하는 의사의 수술하는 손'을 생각하며 한편 그 옆에, '그림 그리는 화가의 손'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렇다면 화가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는 무엇일까? 쉽게 형태가 그려지지 않는 추상적인 질문 사이로 좀 더 작은 모양새의 몇 가지 질문들이 같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그림을 직업으로 선택하려는 젊은 화가들, 2018년의 그림들, 그리고 그들이 '왜'- '무엇을'- '어떻게'- 그려내는가에 관한 것들. ● 『WET PAINT』는 '회화'의 시간이라는 긴 축을 펼쳐, 그 끄트머리 2018년에 서 있는 당대 젊은 화가들의 시선으로 '회화'를 조망하려는 망상에서 시작하였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회화는 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이 그림을 그린다. 손바닥만 한 화면이 실제를 가볍게 점프하며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 절경을 고화질로 재현할 수 있는 요즘, 동시대 회화는 무엇을 소환하는가? 끊임없이 종말론을 제기하는 회화의 역사라는 가로축과, 디지털 신체를 가지고 있는 2018년 동시대라는 세로축을 펼쳐, X와 Y 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좌표를 그린다.

김은주_Cut Blue_캔버스에 유채_60.6×60.6cm_2018

김은주 작가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건의 순간적인 인상이나, 풍경의 구석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대상들을 가볍고 빠른 붓질로 그린다. 그려지는 대상이 존재하지만, 재현 적이지 않은 그림은 언뜻 추상화처럼 보인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보다 작가 본인의 인상에 집중한 표현들은 쉽게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빠른 붓질로 그려진 그림 위에는, 대상을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펼쳐진다.

노송희_mont-vue 10.10._캔버스에 유채_18.5×33cm_2018

노송희 작가는 시각의 촉각적 경험을 연구한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시각의 촉각적 경험이란, 체험하는 지각으로써 자신이 두 눈으로 본 순간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이동을 시각 인지 프로그램을 통해 궤적으로 담아낸 후 순서와 경로를 다시 도표화 시켜 캔버스 위 붓과 물감으로 옮긴다. 시선이 오래 머문 곳은 단단하고 부피를 가진 붓질과 물감 덩어리로써 물성을 가지며 빠르게 지나친 곳은 비교적 얇은 붓질로 그려진다.

이아현_꿈틀거리는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8

이아현 작가는 곤충의 시선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린다. 작고 미세한 존재들에게 삶의 장소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곳이다. 작가는 생성과 소멸, 뒤섞이고 흐트러짐이 반복되는 공간을 혼성공간이라 명명하고 각 공간을 풍경 조각이라고 설명한다. 풍경 조각들은 평면 회화 위에서 생성되며 다시 해체되는 무한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작은 존재들에게 들리는 소리 들을 시각화하는 등 청각적/ 직감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차현진_Figure Series (PH-LL-08.06.18.1900)_종이에 연필_38.5×39cm_2018

차현진 작가는 식물의 가상 학술 드로잉을 그린다. 학술 드로잉이란 대상의 중요한 형질들을 사실적이고 세세하게 기록한 그림으로, 작가 본인이 직접 관찰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림 그린다. 식물 자체보다 식물의 새로운 형상을 발견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식물의 조형적인 구조에 집중한다. 완성된 그림은 기존 학술묘사와는 다르게 부풀어지는 등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황예랑_새끼를 위한 연못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_112×165cm_2017

황예랑 작가는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사건에서 시작하여 죽음에 대한 감수성과 심상을 그린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한지 위에 먹이라는 전통적인 재료와 캔버스 천 위에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도상들과 90년대 애니메이션 이미지, 중세시대 종교화 등 다양한 이미지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그림에는, 과거와 현대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다양한 이미지들은 죽음의 감수성이라는 주제로 포섭되어 화면 위에 펼쳐진다. ● 다섯 명의 목소리로 그려진 『WET PAINT』라는 풍경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느슨히 엮여 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2018년의 젊은 화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왜 그리는가? '무엇'과 '어떻게'는 비교적 가깝게 찾아낼 수 있다. 가장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왜'라는 것이다. 화가에게 그것은 한 문장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언어 화되지 않아 입안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꿈틀거리는 것들이 붓질로 그림 안에서 발화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의 알리바이를 찾아내는 것은 단서를 제공하는 화가와 실마리를 찾아내는 관객의 몫이다. 그림 곳곳에는 붓질로 발화된 화가의 자국들이 남아있다. ● 우리에게는 어떤 다음 단계가 남아 있을까? 각각의 그림들을 관찰하고 이해한 풍경이 세대와 매체를 아우르는 커다란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우리가 그려낸 풍경은 애초에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밖이 아닌 안에서 2018년을 들여다보는 지금, 우리는 개인의 사례들을 겪으며 전체를 그려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WET PAINT』가 그려내는 풍경인 셈이다. ■ 박다예

Vol.20181013i | WET PAIN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