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ING

김명주展 / MYUNGJOOKIM / 金明柱 / sculpture.painting   2018_1017 ▶︎ 2018_1111

김명주_어둠속을뚫고가는마음의빛_혼합재료_194×130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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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01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김명주의 예술, 다시 마음의 길로 따라나서기 ● '예술은 인간의 언어이고, 인간에 대한 언어여야 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사람이다. 시인은 자기 몫의 생의 분량을 넘어서는 세계를 소망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자신의 인생으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다. 나는 예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은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 부터 추대되고,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넘어서는, 해서 자신의 존재의 단위로는 계량할 수도, 품을 수도 없는 것을 따르는 예술은 무엇보다 먼저 작가 자신을 무덤으로 이끌 것이다." ● 오늘날처럼 예술이 사회정의를 입에 달고 다녔던 시대는 이전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날처럼 바로 그 측면에서 무기력했던 적도 이전에 없었다. 수많은 글로벌 비엔날레들,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마치 UN의 원탁을 오르내리는 인류의 의제들을 섭렵하는, 과시적인 이미지들로 시끌벅적하다. 자신을 여의도나 UN의 사무처 직원과 혼동하는, 감당하지 못할 이념의 주역이기를 자처하는 예술가들이 그 같은 무대에서 덧없는 조명을 독차지 한다. 그러면서 실상 그것들이 하는 일이란 예술이라는 신비롭고 유일무한 활동을 문화적 소비에 적절한 교양식단으로 전유하는 것이다.

김명주_어두움 속을 뚫고 가는 마음의 빛_캔버스에 혼합매체_194×130cm_2018 김명주_조용한 빛_세라믹_2015
김명주_Yesterday Kafka_세라믹_2016 김명주_Boxing Plant_캔버스에 혼합매체_2018

'자기 분량만큼의 예술'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예술이다. 생의 순간들을 타고 마음으로 전해 오는 경외감, 환희의 느낌, 피할 수 없는 상실로부터 듣는 예술이다. 김명주의 세계가 그렇다. 이 세계는 삶의 공식이나 그것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추상적인 표지를 제시하는 데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런 것들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들일 뿐이다. 매일 살아있는 감정과 감각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이 옳다는 것을 안다. "우주의 떨림을 느끼지 못하는 그 누구도 행성운성의 수학법칙을 깨우칠 수 없으리라!" 행성 운행의 법칙을 깨우치는 것보다 더 앞서서 일어나며 더 시급한 일은 우주의 떨림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우주의 떨림을 전하는 고도의 임무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의 소관이다!

김명주_식물의 몸_드로잉_2018
김명주_우는 얼굴이 있는 정물_세라믹_2018
김명주_드로잉

"작업을 하는 동안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내 마음의 울림이 중요함을 느낀다"고 김명주는 말한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예술읕 통해 가장 잘 일하기에, 그는 예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뜨거운 열정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내비치고, 또 그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가장 완전하게 이성적으로 풀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김명주의 예술은 '미학(Aesthetic)'의 고대 그리스어 '아이스테시스(Aisthesis)'의 의미, 곧 '감각을 통한 깨달음'에 본능적으로 근접해 있다. 그의 세계의 것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Silent Light」를 보라. 그는 저 먼 관념의 세계로부터 온 인물이 결코 아니다. 나는 이렇듯 생생하게 슬프고 반짝거리는 관념을 알지 못한다. 그는 분명 우리를 유혹해 광장으로 끌어내려 것들, 소란스럽거나 거창한 것들과는 종무관한 출처, 삶의 동기의 저 깊은 곳에 각인되어있는 '창조의 충동'이 살아 호흡하는 곳에서 온 사람일 것이다. 그는 아마도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이며 흐르는 흐름 자체가 표정인 그런 사람이다. 꿈의 연구자들이 강조하는 바를 따르자면, 구분되거나 구획되기를 한사코 거부하면서 흘러내리는 액체는 모성(母性)의 상징이다. 흐름은 그렇게 법칙과 균형과 대칭을 부정하면서, 단절된 사물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구획을 무효로 돌리면서, 폭력을 예고하는 어떤 모나거나 날카로운 것들도 허용하지 않는다.

김명주_FLOWING展_갤러리밈_2018

「Yesterday Kafka」 는 생명력으로 충만했었을 시절을 한참 지난 상태다. 풍성했던 생기의 기억을 머금은 채, 한 때의 푸르름의 지극히 일부만을 지니고 있을 뿐인 그 식물은 생기에서 생기의 소멸로, 삶에서 삶의 마지막으로 흐르는 중이다. 하지만 시들어가는 것은 피어나는 것보다 조금도 덜 생생하거나 덜 신비롭지 않다. 오히려 실체는 움직임 속에서만 그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여주기에, 마음은 고여 있는 웅덩이가 아니라 흐르는 강이기에, 이 세계는 오히려 더 신비롭고 충분히 강하다. 상실해갈 때 더 생생해지고, 박탈당하면서 더 소유하는 힘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 역설은 이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들의 마음이 상심의 눈물이 흥건하고 슬픈 감정으로 가득할 때에도 세상을 알지 못하는 아이의 때 묻지 않은 발걸음이 함께 한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동안에도, 그들의 세라믹 신체는 역설적으로 반짝거린다. 김명주에게 세라믹은 단지 물질이거나 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 특질을 학습하고, 잘 다룰 때까지 기술적으로 숙달해야 하는 질료 이상이다. 그것은 감각적 깨달음의 또 하나의 기관으로, 그로 인해 마음과 물질의 교감의 접촉면이 넓어지고 표현의 영역이 확장된다. ● 우리가 김명주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정치와 정권의 슬로건들이 난무하는 광장이 아니다. 고도의 추상적인 진술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그런 곳도 아니다. 그들에게 어떤 작가로 분류될 것인가가 중요하기에, 비평가들의 글을 숙독해야 하는 곳도 아니다. 김명주는 우리가 한 동안 소홀하게 여겼던 길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곳은 레프 비고츠키([Lev Semenovich Vigotsky)에 의하면, "시와 소설이 만들어지고, 연극과 비극이 무대에 오르며 소네트가 작곡되는" 진정한 장소, 예술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곳,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사회가 무력하고 정지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예술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느낌과 감정,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자신의 진정한 힘을 통해서 일 것이기 때문이다. ■ 심상용

Vol.20181018k | 김명주展 / MYUNGJOOKIM / 金明柱 / sculpture.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