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

김대섭展 / KIMDAESUB / 金大燮 / painting   2018_1024 ▶︎ 2018_1118

김대섭_호박이 넝쿨째_나무에 유채_125.5×247.3×7.5cm_201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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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섭 개인전 별과 과일, 전통과 탈전통의 사이에서 ● 1. 오랫동안 전통을 답습해온 이미지는 일종의 공통감각처럼 많은 사람들이 겸험하고 공감하며 동의해 온 것들의 총합이다. 창조를 미덕으로 삼는 미술사에서도 전통은 매우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한 사회와 공동체의 공통된 미감을 통해 개인과 집단이 조화를 이루면 결합하고 균형 을 찾아갈 수 있다. 전통이란 미적교육과 전승을 통해 좋은 의미에서의 미적 권위와 질서, 신 념체계를 확립할 수 있다. 반면에 미적 고립과 배타성을 낳거나 소위 창조적 개성을 억압하는 나쁜 의미에서의 인습으로 작동할 수 있다. 미학자 조요한 선생은 전통을 '정당한 해석'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 창작자들에게 당대의 공감을 전제로한 양식적 체계라는 의미에서 전통이란 새로움을 창작하는 예술가들에게는 평생 씨름해야하는 난제이자 딜레마가 되기도 한다. 전통의 전승과 답습이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재현하는 것과 언어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나 실상 제작과 정에 작가의 마음 속에 펼쳐지는 운동이란 면에서는 결코 멀지 않다. 과거의 미덕과 양식을 전승하는 것이 전통이라면 현대미술에서 전통이란 창조와 미적 실험의 과정을 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과거의 창조의 이념과 방법이 현재와 미래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대섭_물아(物我)_나무에 유채_125.3×123.5×76.3cm_2018
김대섭_물아(物我)_나무에 유채_35×80×9.5cm_2018
김대섭_물아(物我)_혼합재료_20.7×80×78cm_2018

그러니 현대미술의 전통에서 동의하는 창조와 전통의 올바른 관계는 창조하는 사람의 열정과 태도와 노력과 실험을 본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나무의 성장과 나이테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용이하다. 나무는 성장하면서 안으로부터 밖으로 나이테를 만든다. 그런데 딱딱해진 껍질과 같은 가장자리 나이테(오래전 양식)도 여전히 예술이라는 나무의 살아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라. 작가가 일반적인 캔버스가 아니라 나이테가 그대로 드러나는 오래된 목제(고재) 위에 정물을 그리는 방식을 생각하면 오래전 형성되어 딱딱해진 양식과 방금 생성된 말랑말랑한 양식이 실상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예술의 삶을 생동하게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현대미술이 첨단 실험으로 거듭 변신하면 진화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 서는 마치 춘향가와 심청가와 같은 전통적인 예술적 양식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맛깔스럽게 해석하며 음미하는 생동하는 미적 활동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 우리에게 김대섭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왕복하면서 다뤄온 한국적 소재와 미감을 재현하는 오랜 전통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실험과 모색을 노정한다. 해수면의 표면의 흐름과는 별개로 그 이면에 흐르는 작가의 새로움에 대한 고투가 이번 전시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전통과 탈전통의 기묘한 동거가 벌어지는 현장으로 이해된다.

김대섭_호박이 넝쿨째_혼합재료_57.3×81.5×74.2cm_2018
김대섭_물아(物我)_나무에 유채_35.7×45×7cm_2018
김대섭_물아(物我)_나무에 유채_41.5×41.5×4.5cm_2018
김대섭_물아(物我)_나무에 유채_63×63×7.5cm_2018

2. 김대섭작가의 작업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하이퍼리얼리즘과 소박한 리얼리즘 사이에 걸쳐있는 정물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주제는 허상과 실상의 경계에 집중한다. 대상과의 객관적 또는 사실적 유사성을 위해 고도로 정교한 묘사가 가능해야 한다. 회화에서 대상의 재현을 위한 묘사의 문제는 작가의 대표적인 표현 방법이다. 정물화는 정물을 통해 정물관 관계 맺는 그 시대의 생활양식과 평균적인 퍼스털리티를 반추할 수 있는 양식이다. 인물화와는 분명 한 차이가 있다. 작가의 과일 연작은 60-70년대 형성된 한국 국상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전형성을 지닌 양식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마치 창작이라는 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운동을 담 아내는 그 사회의 수용력 또는 그릇의 형식이 재현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술사가 곰브리치의 말처럼 재현의 형식은 목적과 분리할 수 없고, 어떤 시각언어도 그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만 통용될 수 있다. 다만 시각의 자폐성과 인습의 고립성을 극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 미술사적으로는 근대 이전의 서구사회는 종교화와 인물화, 역사화 등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였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거치며 근대 이후 등장한 것이 정물화와 풍경화로 이들은 유럽, 특히 북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왕족과 귀족, 고위 성직자들이 주 고객이었던 미술시장이 새롭게 등장한 부유한 상인계급과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이들 신흥 계급의 생활과 밀접한 소재와 주제가 도입된 것이다. 위대한 신과 영웅적 인간 중심의 회화에서 평범한 상인과 시민, 생활공간에서 밀접하게 마주하는 사물 들이 그림의 대상이 독자적인 주제가 되었다. ● 정물화가 회화의 변화된 서구사회의 대표적인 근대적 양식이란 점을 떠올려보면, 서구미술사에서 정물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사적 배경과 역사를 지닌 한국 사회에서 정물화의 위치는 분 명 다르다.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 개인과 개인의 개성이 발현되기 어려운 성리학과 농업사회였기에 가장 개인적인 생활상과 근대적 자아를 반영하는 정물화는 주류가 될 수 없었다. 한국의 현대사를 반영하는 정물화는 서구사회의 정물화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물화란 당대 사회현실과 화해하며 평균적 일상을 유지하는 계층 모두에게 수용된 미학이다. 또한 전통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화초, 서가 등의 전통과도 연결되어 과거와 절연한 근대적 자아라기 보다는 근대 속에 타의로 던져진 세계 속에서 서구화 이전의 자아와 근대 이후의 자아와 취향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는 독특하게도 근대와 중 세, 근대와 현대가 이리저리 뒤섞여 혼합되어 왔다. 서구의 정물화와는 완전히 다른 미학적 전통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정물화란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외부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일상의 균형감을 상실하지 않고 적응하는 양식인 것이다.

김대섭_서정_캔버스에 유채_112.5×49.5cm_2007
김대섭_서정_캔버스에 유채_50×72.7cm_2018

3. 김대섭 작가가 그리는 과일은 주로 사과, 자두와 같은 시골과 농촌에서 서민이 접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과일들이다. 보리고개를 넘기던 시절 과일은 극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접하기 어려웠다. 과일을 다루는 정물화는 아마도 과일이 고급음식으로 접하기 어려운 시기의 우리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호박 정물화는 20세기 중반 이후 도시화와 경제성장의 과정에 한국 사회의 대다수의 구성원들이었던 농촌 출신의 서민들이 산업 노동자로 적응하는 과정에 형성된 회고적 취향의 미감을 재현한다. 이제는 건강식의 재료로 익숙한 호박이 사실은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끼니를 때워주는 구황식물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대마다 변화하는 인식과 취미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 김대섭 작가는 과일의 껍질에 배어나와 하얗게 분처럼 굳은 당분을 보며 마치 우주의 행성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과일 하나하나는 우주의 수놓는 별들인 것이다. 투박하고 낡은 오래된 목재를 바탕으로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별들이 이리저리 배치되어 하나의 은하계를 이루는 것이다. 소박하고 고졸한 정물 시리즈와 별들이 펼치는 거대한 우주적 상상은 작가의 작품활동을 추진하는 두 개의 수레바퀴인 셈이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듣기 전까지 그의 정물 이 우주의 별과 연결된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너무도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작고 소박한 과일이 우주와 만나다니. 아마도 오랜시간 정물을 바라보고 숙고하는 과정에 작가의 사변적 상상을 자극한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어떤 신비체험 같은 것이다. 마치 그노시즘의 영지신학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작가의 대상에 대한 정신적 의미의 투사(投 射)와 관객이 작가의 정물을 보며 투사하는 정신이 만나는 지점에서 재현의 형식과 내용이 결정된다. ● 한편 작가의 정물시리즈는 회고적 취향, 일종의 사적 문화와 역사를 반복하는 키치(Kitsch)로 읽혀지기도 한다. 키취의 미학은 주로 산업화 이후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며 우리의 내면 깊숙이 침투한 대중문화와 산업생산물, 상품과 소비문화를 비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된 미학이다. 미술시장에서 전형적인 정물화 양식은 일종의 키취의 미학으로 수용되며 대상의 존재론적 역사와 그 대상의 재현과 소비의 방식이 결합 된 형식이다. ● 그러나 작가는 전통적 정물과 키취의 미학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 리얼리티(실재)의 문제를 다루는 지점이 점차 부각 되어 왔다. 현대미술의 도전과 실험의 영역에서 볼 수 있는 정물화의 양식을 답습하는 전형적인 시각 이미지와 그 이미지 밖에 슬며시 걸쳐있는 가상의 실재성이다. 이러한 주제와 미적 방법론은 현대 미술사에서 주로 사진과 영상, 오브제 등의 작업에서 사용되었는데 김대섭 작가는 독특하게도 한국의 전통적인 구상과 정물의 영역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다. 어떤 정물은 키취적 반복이라면 어떤 정물은 관습적 실체 없이 유령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포도를 그린 정물화에는 금속으로 만든 잎사귀가 결합되고 프레임 안의 구상에 프레임 밖으로 뻗어 나가는 가지와 잎사귀가 그림과 사물, 이미지와 실재의 문제를 넌 지시 음미하게 한다. 2차원과 3차원의 이미지가 결합하고 충돌하고, 미술작품과 그 배경이 서로 삼투하며 기이한 환경을 만든다. 3차원이 되려는 2차원의 욕망이 한편으로는 좌절되고 한편으로는 의도적으로 선용된다. 작가는 점차 적극적으로 구상과 정물의 전형성의 그림자에 가려져있던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이번 전시에서 구체화하려 하고 있다. ● 이런 해석을 통해 김대섭 작가의 정물은 회화에서 오브제로 상호 유기적으로 삼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며 정물화가 더이상 정물화가 아닌 경계를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전통의 무의식적 반복이라는 부정적 키취 답습과 그러한 전통적 양식을 내부로부터 해체하며 긍정적 재현의 미학을 선취하고 그를 통한 전통의 새로운 해석과 전복이라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 김노암

Vol.20181021h | 김대섭展 / KIMDAESUB / 金大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