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나라의 음악 Music from a decaying country

최수연展 / CHOESUYEON / 崔修娟 / painting   2018_1018 ▶ 2018_1110 / 일,월,공휴일 휴관

최수연_Pluto is here_리넨에 유채_112×145cm_2018 최수연_Devil is here_리넨에 유채_112×145cm_2018

초대일시 / 2018_1018_목요일

후원 / 경기도_경기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서울 성북구 성북로8길 8-6 Tel. 070.4401.6741 www.onewwall.com

잔뜩 뭉개진 이미지 너머엔 과연 희망인가. ● 예술 특히 회화의 본질을 묻다가 보면 태초에 빛이 있었던 것처럼, '신의 목소리'에 대한 감응으로 회화를 여기던 때를 더듬게 된다. 종교와 밀접했었던 그 시기를 반추해볼 때 오늘날 신의 목소리는 예술의 어디메쯤을 헤매고 있을까. 최수연의 회화는 누군가에게 '종교적인' 그림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허나 이는 기독교의 그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한국의 토속 신앙 등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미지들이다. 최수연은 최근 몇 년간 전통적 소재가 현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소비되어가고 있는지를 제시해 왔다. ● 흡사 전설의 고향 따위를 떠올릴 수 있는 '선녀' 이미지나, 사극 드라마에서 만나는 전통 복식의 어떤 장면들은 굉장히 선명하고 직관적인 감상을 주기 마련이다. ●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전통적인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 인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 속에서 마주하는 왜곡된 이미지 형상들을 반추하게 하는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한다는데에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최수연_염라대왕 자네는_황목에 유채_45×45cm_2018
최수연_월궁_황목에 유채_60.5×72.5cm_2018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때, 그들이 만들었다는 사조직 '팔선녀'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최수연의 작품을 떠올렸다. 그것은 기존의 「선녀」라는 제목을 가진 회화 작품이 아니라, 실존 여부를 알 수 없는 「용궁」이라는 작품이었다. ● 끈적한 어둠이 깔린 공간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을 담고 있는 「용궁」 작품은 인물이나 사건이 묘사되지 않고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장소의 불확실성을 그 자체로 은유하면서 새로운 서사의 개입과 오해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번 『망한 나라의 음악』展의 작품 역시 새로운 서사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 우선 전시제목인 "망한 나라의 음악"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 중 한 표현을 차용한 것이다. "망한 나라의 음악이 슬픈 것은 그 백성의 어려움을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중의적인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 망한 나라의 음악이 과연 슬픈 것이 될지, 천박한 것이 될 것인지에 대한 해석에 따라 이 "음악"의 쓸모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야금의 명장으로 알려진 우륵이 신라에 음악을 가르칠 때 그의 음악이 망국의 음악이라 "천박하고 옳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 배척을 당할 뻔도 하였다. 망국의 음악을 논할 때 예악(禮樂;예술 전체)을 언급했던 것을 소급해본다면, 지금의 회화는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될까. 오늘날 회화는 우리에게 한물 지나간 매체인가, 아직도 아픈 손가락인가. 천박해져버린 시대 정신에 발맞춰 회화 역시 아무런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최수연의 작품은 모든 것이 한갓되어져 버린 오늘날에 우리가 한때 살았던 과거의 이미지가 갖는 강한 인상과 회화의 방식을 동시에 고민한다.

최수연_Four Hearts Get Together_리넨에 유채_89×130cm_2018
최수연_우는 선녀_리넨에 유채_지름 34cm_2018

작가는 작품의 이미지가 갖는 무게와 회화를 그려내는 방식을 비슷한 맥락에 두었다. 전통적 복식을 하고 있는 작품 속 인물들은 정형화된 서사를 떠올릴 법한 구성 안에 서있다. 하지만 그림 곳곳에 보이는 하얀 바탕과, 광택이 나는 미디엄 아래에 올이 그대로 보일 듯 투명하게 처리된 방식은 오히려 전통적인 이미지를 비교적 가볍게 다루는 태도로써 중화된다. 무거울 수 있고 혹은 지나치게 키치적이라고 보일 수 있는 주제를 한 꺼풀 덜어낸 유화의 무게 속에서 희석시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림 속 글자를 '그렸다'. 작가가 그려낸 글자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세련되지 못한 느낌을 주기도 혹은 손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캔버스 위에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호했던 미로 속에 반가운 안내자를 만난 것 같은 착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마치 그 '글자의 의미'라고 여기고 마주하게 되지만, 이 역시 의도된 불확실성과 오해 그 자체이다.

최수연_하늘은 넓고도 성글어_리넨에 유채_80×65cm_2018
최수연_泰平(장미)_리넨에 유채_38×45.5cm_2018

최수연의 회화 작품에서 차용하는 이미지와 그 작품 안의 글자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면서 "이것의 이름은∼이다" 라는 지시적인 역할을 해줄 수 없다. 작품에서 차용하는 고전적 이미지가 본래 안착하던 세계관이 권선징악이라면, 『망한 나라의 음악』은 곧 희망을 담지하고 있어야 할테다. "염라대왕 자네는 큰 독 안에 들어가도록 하"라는 텍스트가 정말로 상상적 세계 속의 신(神)에게 거하는 말이라면 우리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오해와 불편함, 불안함 등과 매개할 수 있는 어느 지점 즈음에 거할 뿐이다. 알 수 없는 종교적인 이미지의 흐릿한 환영이 그러하고, 친절한 설명인양 이끄는 글자들의 무의미함이 그러하다. 다른 예로 그림 한 가운데에 "태평(太平)"이라는 글자 역시 서예가 아닌 그려낸 글자인데, 이는 글자 뒤편에 펼쳐지는 이미지의 상태를 과장해서 보여주려는 의도이다. 이렇듯 과장된 의미 전달과 왜곡된 서사의 이해에서 느껴지는 유쾌한 인상은 내가 왜 "이 서사들이 우스꽝스러운지"를 되짚게 한다.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고전적인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감상은 광택이 나고, 심지어는 캔버스의 올이 보일 듯 칠한 회화 작품에서 여과되는 느낌들이 결국 불편함인 것을 인식하고, 내가 전시를 감상하는 현실에 의문을 던지는 촉매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최수연_泰平(다리 밑)_리넨에 유채_27×35cm_2018 최수연_不吉_리넨에 유채_27×35cm_2018
최수연_구름귀신_황목에 유채_145×89cm_2018

덧붙이자면 최수연의 회화는 도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은 채 흩어지고 뭉개져 있다. 작가는 이미지를 확대하고 확대하여 결국은 쪼개지는 픽셀처럼 불분명해지는 세계로까지 가닿는 서사를 담으려했다고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만약 내가 구입한다면 어떤 새로운 맥락이 발생할지를 상상해본다. 작품이 내뿜는 강렬한 인상 덕분에, 우스꽝스러운 오해를 사게 될까. 아니면 공포 영화의 한 세트장이라는 눈초리를 받게 될까. 회화가 신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고 믿었던 그 때, 보장된 감동을 주던 회화 작품이 이제는 불편한 표상으로 남아 참담한 현실에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중일 뿐 이다. 뭉개지고, 누군가는 괴기하다고 할 수 있는 물감 속의 세계가 진정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만큼 불길하냐고 말이다.

최수연_여옥황_광목에 수채_45×45cm_2013 최수연_구름귀신_황목에 유채_145×89cm_2018 최수연_선군공부_벽에 마스킹 플루이드_2018

다시금 작가가 선택한 시경의 한 구절을 매만져 본다. 망한 나라의 음악은 어떠한 음색을 갖고 있었을까. 설령 음악이 천박해져서 그 곳이 망한 것일까 아니면 나라가 망했기에 그 곳의 음악이 슬퍼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발딛고 서있는 오늘에 마주하는 최수연의 회화는 과연 우리 안에서 어떠한 음색으로 진동하게 될까. ■ 김보현

Vol.20181029c | 최수연展 / CHOESUYEON / 崔修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