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바람 - 黙

유병훈 / YOOBYOUNGHOON / 兪炳勛 / painting   2018_1030 ▶︎ 2018_1120

유병훈_숲, 바람-默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강원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강원대학교 미술관 Kangwon National University Art Museum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학길 1 Tel. +82.(0)33.250.8769 www.kangwon.ac.kr

숨쉬는 점묘의 세계 / 「숲-바람, 默」에 담긴 자연주의사상과 소외의 면모1. 점(點)속의 자연주의 ● 유병훈의 회화는 점(點)에서 시작해서 점으로 끝난다. 말하자면 그의 회화는 굳이 현대미술용어로 규정하자면 점으로 덮인 '전면회화(ALL OVER PAINTING)'이다. '전면회화'가 추구한 궁극의 지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로 덮인 평면이라는 회화의 본질규명이었다. 거기에서는 회화의 형식을 벗어난 밖의 세계가 부재한다. 더구나 자연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내용으로 담거나 표상 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현대미술사에 있어 전면회화는 형식주의 비평의 가장 걸 맞는 모델이 되어왔다. 여기에 유병훈의 점에 의한 '전면회화'가 동양이종(同樣異種)임을 밝혀주는 열쇠가 있다. ● 유병훈의 회화는 자연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나아가 경외감에 출발한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대상자체에 머물러 그것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옛 화사(畵師)들이 그랬듯이 자연을 정관(靜觀)하며 마음을 닦고 정신의 해방을 얻어 마침내 공(空)에 이르렀던 동양적 자연주의에 적(籍)을 두고 있다. 그러한 동양적 자연주의는 흔히 지난 모더니즘미술 시대에 구호처럼 주장되어 온 동양적 자연주의나 무위자연사상과는 구별된다. ● 그들의 자연주의론에는 미술에 있어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표방하기 위한 치열한 암중모색과 기치(旗幟)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유병훈의 그것은 도시인이면서도 도시를 떠나 자연속에 자적하고 있는 삶을 반영하며, 오늘의 도시적 삶에서 소외된 자연인의 눈과 마음에서 도달한 것이다. 거기에는 자연의 환희와 자연 예찬이 담겨 있다. 그는 자연의 생명이 변화무쌍하게 생성하고 변모해 가는데서 자연의 신비를 체험하며 그것을 조형의 최소의 단위인 빛과 색채로 번안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그는 감각과 인상에 의존한 재현의 방식이 아닌 이른바 추상회화의 세계를 열어 보인가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는 일찍이 빌헬름 보링거가 진단했던 분류법 - 즉, 행복한 시대와 환경에서는 모방충동에 의한 자연주의가 성립되는 반면 불안과 위기의 시대와 환경에서는 추상충동에 의한 추상미술이 출현한다는 - 에 비추어 보자면, 그의 추상세계에는 도시를 떠나 자연에 몰입하여 느끼는 자연인으로서의 충일감 이면에 현대인으로서 살며 피할 수 없는 불안과 위기감이 암암리에 배태되고 있음을 밝혀주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옛 은자(隱者)들의 자연합일이라는 초세사상(超世思想)에 내재된 소외자로서의 은밀한 항거의식이 엿보인다. ● 이렇듯 자연주의에 천착하여 펼쳐가는 유병훈의 회화는 점의 변모상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유병훈_숲, 바람-默
유병훈_숲, 바람-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
유병훈_숲, 바람-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

2. 점(點)의 변모 - 서구적 조형에서 동양적 자연주의로 ● 유병훈의 회화에서 점은 자연생명의 입자이며 우주공간을 이루어내는 요소다. 동시에 자아의 투영체이기도 하다. 봄볕에 빛나는 숲의 오솔길에 담겨 있고, 모퉁이를 돌아 나오다 만난 묵묵한 바위가 실려 있다. 싱그러운 바람이, 시냇물이 흐른 낮은 계곡이 존재한다. 무수한 점들은 이 작가가 늘 만나 느끼며 경의하는 자연의 표상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삼라만상을 담아내고 있다. 화가 유병훈의 삶의 기록이며 자연에 대한 송가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연을 모방하거나 재현의 방법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양식적 접근을 쉽사리 서두르는 사람에게는 그의 작품은 이른바 점묘파의 후예처럼 비추어 보일 수도 있으며 인상파의 발전 양식에서 얻어진 색면 추상으로 바라 볼 수도 있다. ● 또 최근에 수묵(水墨)의 터치로 덮어간 화면은 80년대 한국화단을 풍미한 모노크롬회화와의 근친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케 하는 바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일상과 그의 작업도정에 접근해 보면 그의 점은 서구적 조형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귀향한 작가 자신의 내적 관조의 어법이면서 그야말로 동양적 자연주의의 표상임을 밝혀준다. ● 이러한 점의 드러남은 화가로서의 본격적 활동이 시작된 '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미술에 있어 '80년대 초반 주지하듯이 군사정권의 연장선에 있기는 하였지만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이른바 개방의 물결이 밀려오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시기였다. 기존의 금욕적 모노크롬계열의 집단양상에 대한 다색의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시기이며, 이념상으로는 모더니즘진영 대 민중미술이라는 이분법적 갈등 위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덧붙여지는 시기였다. ● 이러한 전투적 자세를 취하고 있던 격동기의 화단에 자연으로의 회귀를 통한 새로운 출로를 제시라도 하려는 듯 그는 「숲-바람」, 「잎-사이」, 「벽」, 「문」등의 자연을 주제로 한 점묘(點描)의 작품을 발표했다. 종이나 캔버스를 원이나 반원, 또는 불규칙한 사각형으로 변형한 구조 위에 흰색이나 녹색, 검정 등으로 점을 찍기도 하고 손으로 문지르기도 하며 때로는 흘러내리게 하여 약동하는 자연의 빛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끌로드 모네가 말년에 인상주의의 정점에서 마침내 세련된 색채의 변주로 이루어진 추상세계에 도달했던 그 시점에 맥을 잇고 있었다. 다시 말하여 이 시기의 점은 자연의 빛을 표상하기 위해 색점(色點)을 채용했던 점묘파의 그것과 유사성을 보였다. 말하자면 색점들은 그 자체가 자연의 약동하는 생명을 드러내는 빛의 입자였다.

유병훈_숲, 바람-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110cm
유병훈_숲, 바람-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110cm
유병훈_숲, 바람-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180cm

그가 대학과정과 졸업 후 화가로서의 수업기에 당연히 영향을 받았을 당시의 실험적 경향에서 벗어나 이렇듯 자연에 눈 돌려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강원도 강촌에서의 성장배경과 더불어 대학졸업 후 다시 춘천에 머물게 된 그의 생활에 기인한다. ● '87년의 개인전에서는 무수히 누적된 다색의 점 위에 직선의 기하학적 구조를 그려 넣기도 하고, 기호적 형태의 변형 캔버스를 이용하여 자연의 표상이 기호화된 추상으로 드러난다. 치열한 조형의 탐색이 낳은 결실은 동시대의 감각을 앞지르는 일면이 있었다. ● 그러한 그가 89년의 개인전을 계기로 "나의 가슴 깊이를 확인하고자 어두운 시간을 보낸 기억의 표징"으로, 그리고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는 고목나무 끝에 매달려 자신들을 지키고 있는 잎새들에서 나를 확인"하게 된다고 고백하듯 어느덧 자연은 작가의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이 되며 여기에서 자연과의 은밀한 만남이 보다 심화되어 간다. 이러한 국면을 평론가 김복영은 "인상주의"적인 '외광'이 아니라 작가의 심혼의 '투영'으로서의 "빛"이라고 적절하게 진단했던 것이다. 어느덧 자연은 작가의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이 되며, 동시에 자연과의 합일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자연합일은 옛 은자들의 소여적 태도를 엿보기도 한다. 그리고 "비록 분량이 적다하더라도 자연이 내게 가르쳐주는 조형이념을 깊이 새기며 자연의 본성 앞에 머리 숙인다"고 밝힘으로써 현상적 자연이 아닌 "자연 속에 숨어 있는 극치의 영적 상태를 추상의 리(理)로 표현해야 한다."는 동양의 화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점은 조형의 요소가 아닌 자연의 리를 담고 있는 소우주요 무수한 점의 변주는 작가와 자연이 만나 교감한 무수한 지경(地境)을 드러낸다. ● 90년대에 진입하여 「숲-바람」으로 지속되는 그의 화면은 자연에서 찾아낸 추상의 리(理)를 근간으로 단단하고 정제되고 기호화된 구조로 심화해갔다. ● 이전의 빨강, 노랑, 파랑 등 다양한 색의 반점들이 화면에서 들끓으며 화면을 진동시켰던 것과 달리 극도의 절제와 균형 잡힌 화면구조로 남는다. 화면의 색점들은 거의 단색조라 할 정도로 하나의 주조색을 덮어가도 화면은 둘 또는 세 개의 면으로 분할되고 다시 작은 나무토막을 붙이거나 빨강, 초록, 검정의 둥근 점을 문장(紋章)처럼 화면의 귀퉁이에 찍어 말하자면 스스로 양식에 있어 어느덧 전형을 제시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80년대의 점이 스스로의 자연의 생명을 실은 입자로서 하나 하나가 자기주장을 강하게 드러내었다면, 90년대의 정형화된 화면의 전체적 구조를 위해 다소곳이 화면의 이면으로 찾아 들어갔다. ● 화면의 배면에서 얼굴을 내미는 밝은 색 점들을 화면의 구조와 전체적 긴장을 위하여, 그 존재의 드러냄을 통제 받는다. 여기에 이르면 색점의 층 구조로 이루어진 그이 화면 역시 동시대의 모던 회화가 궁극적으로 도달코자 했던 평면으로 환원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자연에서 눈뜬 약동하는 감성은 조형적 성과를 위해 이성을 조율되고 통합되어 형식화 되는 것이다.

유병훈_숲, 바람-默
유병훈_숲, 바람-默

금번 전시는 최근의 그의 회화에 일대변화가 일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른 변화를 제시한다. 화면의 분합구조와 점의 존재성이 그것을 드러낸다. 화면을 분할하고 긴장을 자아내던 구성적 요소는 사라지고 다시 점이 점 자체로서의 생명을 회복하고 화면 가득 채워진다. 꾹꾹 찍어 가는 하나 하나의 점은 작가가 화면과 대화하며 만남을 확인하는 장이 된다. 점은 스스로 하나의 공간을 자아내고 무수히 집적되며 화면을 가득 메워갈 점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우주적 공간을 이뤄낸다. ● 400호가 넘은 대형의 빈 캔버스는 작은 한점한점의 공간으로 그것도 셀 수 없는 반복에 의한 중층으로 이루어진 우주가 되는 것이다. 특히 여기에 이르러 주목되는 것은 한시대의 미술이 색을 기피하던 시기에도 유독 현란한 빛을 생생하게 펼쳐왔던 그의 화면이 갑자기 어두움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 색점을 벗어난 흑점(黑點)으로 교체되었다. "대저 화도(畵道)중에 수묵이 가장 으뜸인데 그것은 자연의 성격을 표현하여 조화의 공을 이루는 것"이라는 왕유(王維)의 화도를 터득한 것일까? 현상적 색채가 우주적 리(理)를 밝혀 가는데 저해가 된 것일까? 돌출되는 색의 밝은 점들을 바탕에 찍고 그 위에 낮은 명도의 색점으로 덮어가 화면의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오던 색점들을 바탕으로 잦아들어 심오한 공간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연을 표상하던 빛과 물질로서 점묘의 세계가 아닌 우주의 리(理)에 다가서는 전신의 세계로의 지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변모는 그의 삶의 연륜과 더불어 겪게 된 가까운 혈연의 갑작스런 죽음들을 통해 눈뜰 수밖에 없던 일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생명에 대한 허무감과 자연의 섭리 앞에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사색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의 점은 자신과의 만남이 되기도 하고 이 세상에 없는 그의 혈연들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며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없고, 물질과 정신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있다. ● 그야말로 작은 반점들을 무심히 반복하여 찍어가는 중에 어느덧 그의 화면은 물질의 세계에서 정신의 세계로 승화되어 작가는 현실을 떠나 우주적 공간 속에 유영하게 된다. 그야말로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유병훈_숲, 바람-默_종이에 오일바_75×45cm×4

3. 자연합일의 경지 ● 요컨대, 유병훈의 회화는 하나의 점에서 시작하여 무수한 점이 이루어내는 소우주의 세계이며 마침내 그것은 동양적 명상성과 자연주의에 도달하고 있다. ● 여기에는 그가 태어나 살아온 전원적 삶의 자양이 원천이 되어 있다. 이 원천 위에 교육과정에서 터득한 서양적 표현어법은 자연예찬으로서의 점묘에서 시작하여 한때 자연으로부터 조형이념을 찾아내 순수한 조형에의 지향과 평면으로의 회귀에 이르게 한다. 그러한 그의 회화가 삶의 연륜과 더불어 관조적이고 명상적 공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도시에 살며 스스로 도시에서 은둔자가 되어 스스로를 소외의 지대로 몰아감으로써 얻어낸 옛 은자(隱者)들의 자연합일의 경지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유병훈의 무르익은 점(點)의 공간은 자연합일의 심오함에 도달한 지점에서, 다시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적 원천에 뿌리내린 유니크한 양식의 제시를 새롭게 요구하고 있다. ■ 김영순

Vol.20181030a | 유병훈 / YOOBYOUNGHOON / 兪炳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