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종근당 예술지상

김수연_박광수_위영일展   2018_1101 ▶︎ 2018_1112

초대일시 / 2018_1101_목요일_06:00pm

주최 / (사)한국메세나협회 주관 / 아트스페이스 휴 후원 / 종근당

관람시간 / 10:30am~07:00pm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세종로 81-3번지) 1관 Tel. +82.(0)2.399.1000 www.sejongpac.or.kr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다 ● 예술가들이 펼치는 창작의 과정에서 외부로 확장하는 운동과 내부로 침잠하는 운동은 언제나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창작의 모습이 있겠으나 우리가 피상적으로 접하는 작가의 상이란 모호하거나 복합적이다. 작가는 고립된 작업실에서 전력을 다한 총체적이며 집중적인 활동을 지속한다. 한편으로는 강박적이며 자폐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지치지 않고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고 기록하는 것은 탈속적인 활동이다. 내면을 향한 운동은 동시에 인간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안과 밖을 동시에 운동하는 창작자들의 창작 행위가 품고 있는 불가사의한 동시성은 근대의 합리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근대 이전의 물질과 정신이 융합된 상태, 정신활동이 곧 물질의 변화와 운동과 연관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인 세계관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시대의 변화를 집단적이지 않은 철저히 개인적이며 독자적인 활동으로 대응하고 응답하려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세계와 세계가 조우한다.

김수연_SP10_캔버스에 유채_290.9×197cm_2018

1. 김수연 작가의 작업은 실재를 모방한 또는 차용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꼴라주해 사물의 이미지들로 재구성되어 연출된다. 거대한 기구가 공기 빠진 풍선처럼 비틀린 채 납작해지고 대리석 조각들이 구겨진 사진조각들로 변한다. 종이에 인쇄된 촛불이 패티시즘을 연상시키는 손과 신체들과 함께 풍경을 만든다. 이미지들은 오늘날 우리의 내면 깊이 자리한 속물성을 담은 대상으로 해체된 사람들과 사물들이 사라지고 남은 유령(이미지)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시간이 정지한 한 순간을 얇은 이미지의 면들, 조각들이 이리저리 결합되어 있다. 출판물에서 차용한 다양한 사진이미지들이 변형되고 본래 이미지들이 풍기던 아우라가 사라진 채 부정확하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중첩된 부조(浮彫)로 바뀐다.

김수연_SP12_캔버스에 유채_290.9×197cm_2018

이러한 연출은 일상의 삶의 밀도와 중력을 벗어난 마음 속 풍경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풍경이고 공간이다. 마치 편집디자이너의 작업을 닮은 과정을 통해 연출된 공간은 풀과 가위로 만든 드로잉이자 건축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독특한 자기만의 환경을 만든다. 모든 사물이 지닌 본래의 속성과 무게를 상실하고 중력과 상관없이 가벼운 것들로 중화된다. 페이크이며 허구의 이미지를 사는 우리의 풍경이기도 하다. 허상들로 꼴라주된 이미지들은 원본이 사라진 모방과 차용의 세계이다.

박광수_부스러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17

2. 박광수 작가의 작업이 재현하는 세계는 무채색의 세계이며 가을과 초겨울 사이에 명멸하는 시간을 포착하려는 듯하다. 세계는 결코 풍요롭거나 신뢰할 만한 곳이 아니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들 간의 끈끈한 우정과 신뢰는 사라졌다. 세상은 척박하고 메마르며 쓸쓸한 곳이다. 어떤 선명하고 명징한 일들이 있기나 했던가? 이리저리 뒤섞인 선들의 방향과 굵기와 밝고 어둠의 대비가 숲과 사람이 하나로 융합하는 풍경을 만든다. 화면을 가득채운 나무와 가지들이 원근을 이루며 화면 중앙의 희미하게 밝은 부분을 향한다. 그러나 선들의 방향은 일정하지 않다. 선이 뒤엉키고 꺾기며 방향을 틀어버린다. 중앙의 빛은 희망이나 꿈 또는 그저 어두운 숲을 빠져나가는데 필요한 목표나 출구일 수도 있다. 작가의 몸과 운동, 정신과 신체가 어울려 형식적 표현의 테크닉이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이룬 듯 보인다.

박광수_박광수 검은 숲속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18

그의 작업 '검은 숲'과 '부스러진' 시리즈는 작가의 마음에 엄습하는 불길한 전조, 불분명한 사건의 그림자를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가 제시하는 것은 정지된 구체적인 존재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대상이 오기 전 예측되는 어떤 조짐 또는 이미 지나가버린 뒤 남겨진 흔적 등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사물이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것들이다. 현대미술에서 회화의 대상은 회화 자신, 작가 자신, 대상 자체로 확장된다. 회화의 결과는 하나의 순간이다. 회화가 생성되고 구성되는 순간들, 과정이 중요하다. 시각과 효과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 어떤 심리적 또는 형이상학적 기능이 더 중요해진다. 작가의 풍경이 평이한 풍경이 아니라 마음속에 떠오른 이미지들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회화는 사건과 사물, 현실의 사건과 형이상학적 사유가 만나는 경계에 있게 된다.

위영일_Nothing Contents 1_가변설치_살롱 아터테인_2016

3. 위영일 작가의 작업은 회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작가와 관객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과정을 전통적인 회화의 양식에 독특하게 결합시킨다. 작가가 명명한 자신의 「알레아토릭 페인팅프로젝트(Aleatorik Painting Project)」는 미술사를 바탕으로 미리 제작된 매뉴얼에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6개의 경우의 수열을 해석하여 다양한 회화작업으로 옮기는 행위를 통해 전통적인 작가의 고유성을 해체하고 항상 유동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을 의도한다. 작가의 「리얼 레이어 시리즈」는 환영을 유도하는 평면상의 가짜 레이어를 매체까지 확장해 실제 공간속으로 끌어내고 환경과 관계하도록 한다. 「월페인팅시리즈」는 회화의 노마딕(nomadic)속성을 해체하여 시간과 공간 속에 일회적인 상태로 존재하게 만들며, 임베드 랜드스케이프시리즈는 회화의 제작과 감상방식에 관한 고정관념을 흔드는 것을 의도했다.

위영일_RL 2_아크릴판, 알루미늄 족자봉, 알루미늄 행거_55×110×11cm_2016

작가는 이런 방식을 고안하고 실제 전시를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실연시킴으로써 조형적으로는 전통적인 회화의 재현 방식을 따르지만, 회화를 닮았으나 결코 회화가 아닌 개념의 운동 또는 개념의 유희를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전통적인 미술의 가치, 미술관 제도, 창작과 감상의 관습을 비판한다. 관객은 작가와 동일한 선상에서 함께 주사위를 굴리고 작품의 키워드 또는 소재나 이미지를 선택한다. 기이한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생산되는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마치 공장의 노동자 또는 이미지를 만드는 기계처럼 설정된다. 전통적인 화가의 정체성과 자아를 붕괴시킨다. 결코 특별하지도 않고 신비하지도 않은 특권의 지위에서 하강해 평균적 감성과 감각의 소유자로 일상을 견디는 것이다. 작가는 결코 작가가 아니라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대화파트너이자 일종의 가이드처럼 행동한다. 그의 빠르고 정확한 회화의 테크닉은 철저하게 개인의 고유성이 아니라 일정한 경지에 오른 생산기계의 기능처럼 이해된다. 앤디 워홀이 한 때 꿈꾸었던 기계가 되고 싶다던 그 경지말이다. 관객들은 작가가 제시한 여러 가지 선택지들을 받아들고 회화를 공동 창작한다. 관객들은 각자의 성장과정과 학습을 통해 형성된 취향과 판단력을 활용해 작가로 하여금 이러저런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관객은 실상 또 하나의 창작을 위한 선택지 또는 냉정하게 말하면 중요한 도구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결코 공동창작이 될 수는 없다. 공동창작이란 하나의 꿈이다. 최종 승인자가 누구이냐의 문제는 항상 존재한다. 여전히 개인으로서 작가는 작품의 최종 승인자로 남는다. 전통적인 작가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연극적 장치, 위영일 작가만의 타자와 관계맺기의 방식이다. 작가의 존재방식을 살짝 틀어놓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약간의 뒤틀림에서 작가의 작업이 지닌 특이성을 발견할 수 있다. ● 4. 현대 회화 분야의 많은 작가들이 존재와 실존의 문제,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 주체와 타자의 문제 등을 전통적인 조형의 어법을 벗어나 보다 형이상학적인 차원으로 접근한다. 이미지는 이러한 존재와 부재 사이의 긴장이 드러나는 표면이다. 우리는 김수연 작가의 작업에서 세계와 진실의 부재를, 박광수 작가의 작업에서는 실존, 희망, 꿈의 부재를, 그리고 위영일 작가의 작업에서는 작가의 신화, 현대예술의 권위와 아우라의 부재를 읽는다. ● 이미 현대 회화는 조형의 마술적 경이나 심미적 쾌락을 주는 시대를 해체한지 오래 되었다. 한 작가의 예술활동과 그 결과물은 거의 개인의 독자적 신앙, 제의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 합리적 분석과 상대적 평가란 무의미해진다. 더 이상 어느 작가의 이미지가 더 우수하다거나 더 심오하다는 식의 감상과 평가의 시대는 역사가 되어버렸다. 조형의 경험에서 실존의 경험으로 나아가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과거의 관습을 버리지 못한채 엉거주춤 서있다. 과거와 현재의 회화는 겉모습은 닮았으나 그 본질은 완전히 변화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감각과 감성은 매우 불규칙하게 앞서가거나 아니면 뒤로 물러난다. 진보와 퇴보가 복합적으로 뒤섞인 잡탕 속에서 이들이 집중하는 이미지를 만나는 것이다. 현실은 이질적인 힘과 흐름이 끝없이 충돌하고 섞이는 세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회화는 스스로 그 내부 또는 그 중심으로부터 해체되고 완전히 과거의 일체를 일소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기란 요원하다. 작가는 그 과정을 관통하며 인간의 감정, 개인의 생동하는 감정의 변화를 기록하고, 재현하고 표현한다. 현실을 재현하는 과정에 작가는 자신의 이념과 성찰과 감각과 감정이 분해되고 융합되는 과정을 무수히 겪으며 조금씩 형성된 이미지를 기록한다. 이러한 기록은 단순히 표현이라거나 일루젼이라는 관념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진실과 지혜로 도약한다. ● 지난 시기의 미술사가 우리에게 알려준 지혜는 가상(일루젼)의 차원에 존재하는 회화의 세계가 분명한 새로운 현실로 현존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과 실천으로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는 예술적 사건이란 미래의 의미와 새로운 차원을 현재로 소환해 온 것이다. 이들 3인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가상의 형식으로 미래의 실존과 만나는 사건을 향한다. 예술적 의미는 시간에 묶여 있어서 언제나 사건이 벌어진 현재가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전달된다. ■ 김노암

Vol.20181102h | 제5회 종근당 예술지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