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ixed

김진호展 / KIMJINHO / 金珍鎬 / photography   2018_1107 ▶︎ 2018_1204 / 일요일 휴관

김진호_unfixed #01_젤라틴 실버 프린트, 셀레늄 톤_28×35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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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홈페이지_www.nomadicview.com

초대일시 / 2018_1108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수요일_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비컷 갤러리 B.CUT CASUAL GALLERY & HAIRDRESSER'S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라길 37-7 Tel. +82.(0)2.6431.9334 blog.naver.com/bcutgallery

"이미지는 우리를 원인 바깥에 두어 우리를 무상의 환상을 통하여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우리에게 깊이 내맡기는 것과 같다." –모리스 블랑쇼– ● 김진호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꽤 긴 시간을 만나도 지루하지 않는 몇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다고 그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건 아니다. 동향의 동배 간에 공유하는 정서와 문화적 배경에서 생성된 취향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취향은 사진적 취향이고, 우린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편이다. 이쯤 되면 내가 그의 사진을 좋아한다는 것도 눈치챘을 것이다. 초기 작업부터 보아 왔으니 십오 년 동안 그의 작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의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었다. ● 그의 작업은 컬러나 흑백의 풍경 사진으로, 간혹 인물이 사진에 등장한다 해도 풍경의 일부로 보인다. 작가 의지로 몇 개의 시리즈로 분류해 놓기도 했지만, 사실 하나의 시리즈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대부분 비슷비슷한 바깥 풍경이다. 도심에서 벗어난, 그렇다고 완벽한 시골도 아닌, 경계 어디쯤에 걸쳐진, 눈여겨볼 만한 것 하나 없는, 그래서 누군가는 왜 찍냐고 묻기도 했을 법한 그런 풍경 사진이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모든 시리즈가 종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형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작가들이 이와 유사하게 작업하기도 하지만 아주 오래전 사진 작업을 했던 나와는 상반된 작업 방식이기 때문에 감상자 입장에서는 세월만큼 그의 사진도 적당히 늙어가고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김진호_unfixed #02_젤라틴 실버 프린트, 셀레늄 톤_40×50cm_2018
김진호_unfixed #04_젤라틴 실버 프린트, 셀레늄 톤_28×35cm_2018

「unfixed」란 이름으로 묶인 이 시리즈는 위에서 말했던 바깥 풍경이라는 지점에서 봐도 그의 작업 중 가장 멀리 있는 바깥으로 보인다. 다른 때와 달리 이 작업은 꽁꽁 숨겨뒀다가 전시를 목전에 두고 보여 주었다. 읽히기를 거부하는, 아니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면 읽히기를 포기하고 넌지시 보여줬다는 게 맞겠다. 이전 작업은 애써 작가의 변이라도 늘어놓았고, 그게 통하기도 했는데 이 작업은 그가 붙인 제목, 「unfixed」처럼 분명치 않은, 모호한, 부정도 결정도 없는 부재의 시간을 찍은 짐작 불가한 바깥이었다. 하지만 그 제목을 붙인 이유는 짐작 가능했다. 작가의 글에서 '사진(술)의 발명은 이미지를 정착시키는(fixed) 기술의 발명이다'고 썼던 것은 결국 '사진은 이미지이다'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디지털 프린트로 작업 결과물을 가지는 것과 달리 이 시리즈는 암실 작업을 거친 은염 사진이다. 작가가 필름 현상에서 프린트까지 하는 과정 중 두 번의 정착액(fixer) 처리를 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촬영한 대상들을 보다 생생하게 붙들려고 무던히 애썼다는 그의 말에서 다시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암실에서 보낸 시간을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공들여 만든 건 이미지이고, 그가 조응하고 감흥 했던 기억은 정착될 수 없는(unfixed) 순간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이미지는 이미 대상과 분리된, 더 이상 존재한 것들을 베낄 수 없음을 말하는 것과 같다. ● 죽은 이의 얼굴을 밀랍으로 떠서 영정 사진과 비슷한 용도로 썼던 이마고가 어원인 이미지는 본다는 것에 대한 허상으로 종종 말해지곤 한다. 이미지는 읽는 것이 아닌 보는 것이다. 레지스 드브레가 한 장의 사진을 읽으려면 벙어리 상태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이미지는 언어에 반하고 해석을 기대하지만 의미를 덧씌우려 하면 할수록 완강하게 해석을 거절한다. 김진호가 작가의 글에서 말한 그의 각별한 순간이자 대상이 만든 사건의 기록은 감각이 가졌던 언어가 연소되면서 이미지로만 남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지는 과연 정착된(fixed) 게 맞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게 된다. 그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착된 것은 종이 위 허상일 뿐이고, 작가와 결별하고(unfixed) 새로운 영역으로 이동한 이미지는 이제 우리의 감각을 건드려 내밀하게, 모호하게 마술에 걸린 것처럼 어슬렁거리고 방황하게 하는(unfixed) 사건을 만들어 언어로 구축되지 않는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 이혜진

김진호_unfixed #05_젤라틴 실버 프린트, 셀레늄 톤_50×40cm_2018
김진호_unfixed #10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25cm_2018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fix는 '고치다, 바로잡다, 해결하다'의 뜻과 함께 '염료나 사진 이미지 혹은 그림을 영구히 하는 행위 make (a dye, photographic image, or drawing) permanent'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흥미로운 예문도 있는데 직역하자면 '궁극적으로 사진의 운명은 이미지가 퇴색하거나 어둡게 변하지 않도록 정착시키는데 달려있었다; Ultimately, the fate of photography depended on fixing the image so it would fade or darken.' ● 엄밀히 말하면 사진(술)의 발명은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기술 혹은 프로세스의 발명이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으니 사진(술)의 발명이 공인된 1837년 이래 금속판이나 유리판 혹은 종이 위에 아주 짧은 시간에, 항구적으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기술을 찾아내는데 사활을 걸었고 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런 기술적 비약 덕분에 사진은 인간의 사회적, 영리적, 예술적 욕망을 이루는데 충실한 역할을 수행했고 기술 발전을 다시 촉발시키는 순환으로 이어졌다. 사진 이미지의 정착은 외형적으로 기술적 프로세스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노고와 예술적 영감이 함께 녹아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180여 년이 지나 사진 이미지가 은하수의 별처럼 무수히 떠다니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정착 과정이 사라졌거나 무의미해진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 방법이 변화하고 순식간에 이뤄진다는 것 말고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 애써 필름으로 찍고 현상하고, 값비싼 종이에 사진을 인화하는 번거로움 대신 거의 모든 사진 이미지는 순식간에 디지털 신호의 형식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사진을 통한 다양한 욕망도 확산되는데 고상한 예술적 가치도, 음흉한 저의도, 노골적인 상술도, 허망한 자기 과시도, 숭고한 기록도, 자랑스러운 기념도 욕망을 타고 온 세상을 파고든다. 갈수록 욕망은 강화되고 공공연해진다. 이런 세상에 고답적인 사진으로 고상한 척 예술적 가치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민망하다. 분명 내 사진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고 과거 사진의 방식에 집착하고 있다. 미련하게 필름으로 찍고 종이에 인화하면서 예술적 성취에 목매고 있다. 다만, 시대의 흐름을 타는 것이 예술의 한 방편이듯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도 다른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위안 삼을 뿐이다. ● 사진 속 장면들은 특별할 것도 없지만 무릇 예술에서 개인성의 발현이 큰 몫을 하듯 이들은 나에게 각별한 순간이자 영감의 대상이었다. 바닷가 낯선 연인들의 속삭임에서 추억을 회상하거나, 어느 절간 아름드리 조팝나무와 뒷산 언덕배기 산벚이 만개하기를 꼬박 일 년을 기다리기도 했고, 집 근처를 지나는 38 번 국도의 끝이 어디일까 궁금하여 차를 몰고 갔다 끊어진 길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어지러움을 느꼈던 순간도, 오래된 밥집에서 아내의 모호한 다짐의 순간이나 초상처럼 찍어뒀던 건물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허망함도 내겐 모두 각별했다. ● 나는 그 대상들을 곱씹으며 한 치라도 더 생생하게 붙들기 위해 어두침침한 암실에서 무던히 애썼다. 안타깝게도 그 덧없는 존재와 스러져간 순간들은 어느 예술가의 순진한 연민과 예술적 욕망의 교차점에서 붙들린 채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어쩌면 나의 사진은 애도이며 조사일지도 모르겠다. ■ 김진호

Vol.20181107g | 김진호展 / KIMJINHO / 金珍鎬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