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어디인가?: 2018 세계 한민족 미술대축제 Where is our home?: 2018 World Korean Grand Art Festival

제3회 평화·상생·공존展   2018_1108 ▶︎ 2018_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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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108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 19개국 207명

세미나 / 2018_1108_목요일_01:00pm

본 행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금으로 지원되었습니다.

주최,주관 / (사)한민족미술교류협회 후원 / 외교부_통일부_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Hangaram Design Museum,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서초동 700번지) 제1,2전시실 Tel. +82.(0)2.580.1600 www.sacticket.co.kr

폐허가 된 집을 떠났던 이들이 돌아왔다. 집도 사람도 몰라보게 변했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와 '집'을 더듬는다. 2013년부터 무수한 노력 끝에 드디어 『우리 집은 어디인가』의 이름으로 축제를 열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그림을 보면서, 다른 곳에서 산 흔적과 그럼에도 같은 집을 공유해 온 흔적을 함께 발견한다. 한민족이라는 기억과 정서 속에 자리한 견고하고 오래된 집을 문득 깨닫는 순간이다. ● 『우리 집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을 통해 특정 공간에 위치한 우리 집보다 시공을 초월한 내용적 우리 집을 상상하고 꿈꾼다는 전시 주제를 정했다.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반도에 평화와 공존이 지속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취지이며, 나아가 한민족의 축제를 넘어서 지구촌 시대의 지구인들이 진짜 『우리 집은 어디인가』를 물음으로써 모든 물리적 분쟁을 종식시키고 상생의 문을 열기를 기원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 이번 전시에서는 북한의 유화 20점을 볼 수 있다. 간간히 보아온 북한의 조선화가 아니라, 유화 20점을 들여오는 일은 여전히 험난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각종 미술 대회에서 상을 휩쓴 89년생 김송희의 풍경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북한 최고의 명예 칭호인 인민예술가 박영철과 그의 아들이자 삼지연창작사 창작가인 박단필 父子의 빛나는 작품도 나란히 걸린다. ● 한인 애니깽 3세 여성화가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전시를 해온 쿠바 국적의 알리시아 델 라 캄파 박은 그의 아들 쿠타라 델 라 캄파 가브리엘 안토니오도 화가로 이번에 母子의 작품이 함께 걸린다.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태평양미술공모전에서 외국인 최초로 최우수상을 받은 홍성익의 작품과 83세의 현역으로 아르헨티나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갖고 있는 김윤신의 작품을 볼 수 있으니 마음이 뿌듯하다. ● 좋은 나무를 찾아 떠난 조각가 김윤신부터 호주머니에 죽음을 넣고 다녔다고 하는 변종곤 작가까지 각자 다른 이유로 떠난 이들이 돌아와 '평화와 상생' 그리고 '공존'이라는 더 큰 하나를 외친다. 전 세계에서 모인 한인 작가들의 삶과 예술은 한국과 세계를 잇는 새로운 문화의 영토를 탄생시킬 것이다. 축제가 기대되는 이유다.

델 라 깜빠 박 알리시아 마리아_Migran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120cm_2018
김윤신_Alma Sonora_캔버스에 유채_90×90cm_2012

전시를 시작하는 11월 8일 오후 5시에는 오프닝 프로그램으로 여태명, 석창우 작가가 30분 동안 한민족의 비상과 번영을 주제로 150×720cm 사이즈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 퍼포먼스는 전시 참여 작가들이 손바닥 낙관을 찍음으로 완성된다. 완성본은 북측, 남측 각 한 점씩 소장할 예정이다. ● 11월 8일 오후 1시~3시까지 예술의전당 무궁화홀에서는 '우리 집은 어디인가?'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린다. 전시기획위원장 윤범모, 광주시립미술관장 전승보, 미술평론가 이선영, 경기문화재단 이경일이 전시의 기획의도와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발표한다. 해외초청작가와 국내작가 30인이 참여하는 워크숍은 임진각, 경복궁, 동대문 DDP 플라자, 홍대거리 등지를 돌아보며 현재 한국의 문화를 엿보고 간담회를 열어 소통하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 한민족교류협회

김준권_산에서-0801 (At Mountain)_수묵목판_81×165cm_2008
황재형_Business oligarc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14

우리 집은 어디인가 ● 현대사회는 물리적 우리 집보다 정신적 우리 집의 비중을 염두에 두게 한다. 특정 공간에 위치한 우리 집보다 상징적 혹은 시공 초월의 내용적 우리 집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거주지는 중앙아시아이건, 남미이건, 코리안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 집'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질문, 바로 우리 집은 어디인가. 대답은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고향이며, 또 그곳이 우리 집이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우리 집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버릴 수 없다. 특히 혈통과 무관하게 현재의 국적만 가지고 따질 때, 현재의 우리 집 주소를 확인하려고 한다. 그래서 한민족 축제는 의의가 적지 않다. 지구촌 시대의 우리 집, 과연 우리 집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이번 미술전시가 일말의 단서라도 제공하지 않을까 기대하게 한다. ■ 윤범모

주태석_자연·이미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120cm_2018
안종연_나의 집_랜티큘러_80×105cm_2013

만나서 반갑습니다! ● 다양성의 존중이란 공존을 의미한다.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가 하늘에 드리워지는 것은 7개의 색깔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양성을 부정하고 모든 색채를 통합한다면 검은 색만 존재할 것이고,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색을 부정한다면 흰색만이 존재할 것이다. 흑백논리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이번 전시회의 대주제인 '평화, 상생, 공존'의 의미가 여기에 있을 듯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다. 한민족 이산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남과 북의 달라진 문화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적 교류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현재,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한민족이라는 공통의 분모는 문화예술이라는 감성의 교류로 찾아가는 일이 보다 중요해 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 동포 예술가들과의 만남과 공감대 형성은 그래서 우리를 '하나의 동질성만이 최선'이라는 이념적 편견을 극복하게 할 것이다. ■ 전승보

박단필_뜨개질_캔버스에 유채_112×70cm_2016
박영철_청년분조농장원들_캔버스에 유채_111×181cm_2018
김송희_고향의 봄_캔버스에 유채_80×116cm_2017

잃어버린 중심을 찾는 여정 ● 현대, 세계화라는 격동은 최초의 중심을 거의 신화의 시대로 소급하게 한다. 최초의 중심은 집단적 신화일 수도 있고, 집단의 신화가 차원을 달리하여 반복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신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중심은 상실되었고, 그것을 되찾으려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여정은 원래의 중심뿐 아니라 새로운 중심으로의 이동 또한 포함된다. 이러한 여정은 유목이나 산종(散種)이라는 우리 시대 문화의 키워드와 관련된다. 현대는 늘 상 과도기로 규정되곤 하였기에 떠남은 상시적이다. 떠남은 물리적 이동 뿐 아니라 제자리에서의 상상적 떠남 또한 포함된다. 예술은 이러한 여정의 궤적이고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게 또 다른 정착이 매번 시작된다. 최초의 집은 아니지만, 새롭게 머물게 된 그곳들에 대안의 집이 구축된다. 세계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그곳의 풍토와 상호작용한 문화적 결과물에서 우리는 대안의 장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상실된 중심을 되찾으려는 이들의 여정에서 새로운 중심이 생겨났다. 그러한 중심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우리 집'은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 이선영

홍성익_Memory_캔버스에 유채_73×73cm_1986
김석출_A fossil of age_캔버스에 유채_60×72cm_2006
쿠타라 델 라 깜빠 가브리엘 안토니오_TV Man in: Inhale...Exhale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6×66cm_2018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흐름 ● 1860년대부터 시작된 해외이주는 조선의 빈곤과 일본의 수탈 및 합방에 의한 경제적 이유나 정치적 이유로 시작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중남미에서 주로 농민, 군인, 노동자들이 귀국을 염두에 두고 떠난 임시체류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배와 남북의 대립 등 혼란한 국내외의 정세 속에 차별과 핍박 등 가혹한 환경을 스스로 헤쳐 나가며, 터를 일구고 전통문화와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며 정주하였다. 20세기 중엽부터는 전과 달리 대규모의 이민이 줄었으며, 한반도 주변 국가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남미 등 다양한 국가로 진출이 이루어졌다. (중략)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세계적인 냉전체제로 중국, 러시아, 쿠바로 이민을 떠난 한인들의 접근과 교류를 막았고, 이들은 현지 사회에서 한국과는 단절된 채 삶을 살아야만 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 점차 잊혀 졌던 우리 동포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며, 국가차원에서도 한국어 보급이나 후손들의 초청 행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범주의 지원과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 이경일

반 베로니카_Self-identification_종이에 혼합기법_100×98cm_2018

어머니의 부모님 성함은 강대근(Kan De Gen)과 김나연(Kim Na Yen)으로 1937년 극동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로 추방되셨습니다. 어머니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셨고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964년 구 소련으로 왔는데 처음에는 카자흐스탄에 왔지만 우즈베키스탄에 머물면서 어머니와 결혼했습니다. 부모님은 타슈켄트의 국영 트랙터 공장에서 40년 이상 일을 해오셨기에 두 분 모두 일에서나 공장에서 베테랑들이셨습니다. 저는 가족들 중에서 최초로 예술가가 되었는데 제 딸도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딸은 미술 대학을 성공적으로 졸업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재외동포재단의 3개월짜리 과정인 2018년 러시아 CIS 한민족직업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사진, 촬영 그리고 편집 프로그램을 한국어로 마쳤습니다. 조부모님들이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당시의 힘든 시기에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 부모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인들은 현장과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자녀들이 똑똑하게 교육받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세계의 한국인들이 하나가 될 것을 바라며 통일된 한국인의 미래가 젊은 세대에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 반 베로니카

신 이스크라_Gava river_캔버스에 유채_95×95cm_2013

우리 가족은 예술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아버지이신 신 니콜라이 세르게예비티 (Shin Nikolai Sergeyevich)에서부터 그의 장남이자 저의 남편인 건축가 신 조지 니콜라예비치 (Shin George Nikolayevich)와 또 다른 세 명의 아들들 모두 예술가들입니다. 제 딸 신 스베틀라나(Shin Svetlana)도 예술가입니다. 우리는 봄이나 가을, 액타쉬산 (Ak-tash), 수콕산 (Su-kok), 쿰산산 (Khumsan), 양기오바드산 (Yangi-obad), 침간산 (Chimgan) 등 야외로 다니면서 스케치를 하고 또 했습니다. 자연은 우리의 영혼을 깨우쳐 더 가볍고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미래의 작품들과 시리즈 전체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전시회를 열어 결실을 맺었습니다. ■ 신 이크라

자카로프 로만_Grandma Vera_종이에 잉크, 수채, 문서_70×100cm_2017

저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예브게니 자카로프 (Evgenyi Zakharov)에게서 러시아 성을 이어 받았지만 반은 한국인입니다. 어머니 쪽에 한국인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성함은 발렌티나 남 (Valentina Nam)입니다. 구소련 국가들에서의 대부분의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은 러시아 극동 태생인데 다른 많은 소수 민족들처럼 억압을 받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 아시아로 추방되었습니다. 저의 조부모님(피터 남과 베라 니)께서는 블라디보스톡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각각 1922년과 1928년에 태어나셨습니다. 할머니 베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부모님 얘기, 강제추방 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19세기에 조상들이 어떻게 한국에서 러시아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할머니의 아버지께서는 짜르 통치 하에서 러시아 군인으로 근무했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투에 참여하셨습니다. (그 당시 마침 1917년의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가 독일과 브레스트 평화 조약을 맺으면서 전쟁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는 그 후 극동으로 돌아가 물류창고 매장에서 계산대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그의 아내 마리아 흐반(Maria Khvan)이 집안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1937년 남부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 추방당해 그 이후로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1959년 카자흐스탄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태어나셨습니다. ● 조부모님께서는 한국어를 할 줄 아셨지만 불행히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련의 한국인들은 소비에트 사회와의 통합을 위해 러시아어를 사용했습니다. 저는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이었던 1988년 태어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구소련이 붕괴했습니다. 학창시절에 누나 올가(Olga)는 한국의 문화, 즉 음악과 무용, 언어에 관심을 가져서 우리 마을의 한국문화센터에 다녔는데 저는 그렇지 못 했습니다 (저는 이 점이 너무 아쉽습니다). 올해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몇 가지 표현 외에는 한국어를 할 줄 모릅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작품에 반영할 수 있게끔 우리 가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스스로 연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자카로프 로만

Vol.20181108d | 우리 집은 어디인가?: 2018 세계 한민족 미술대축제-제3회 평화·상생·공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