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wing Fungus

최형섭展 / CHOIHYUNGSUP / 崔亨燮 / sculpture   2018_1102 ▶︎ 2018_1120 / 일요일 휴관

최형섭_Growing Fungus_혼합재료_122×122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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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102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살롱 아터테인 SALON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32(연희동 708-2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욕망, 그들의 방 ● 우리의 현실, 혹은 현재는 과거로 기억되거나 미래로 짐작될 수 없는 찰나적인 점들의 연속이다. 말이 좀 어렵다. 다시 말해, 지금은 기억과 함께 과거로 흘러가면서 순간적으로 짐작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 중인 것이다. 결국, 지금 말하자면 현재는, 그러한 과정들을 겪고 있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의 찰나인 셈이다. 따라서 그 수없이 많은 존재들의 수평적 찰나에는 그 존재들의 숫자만큼 다양하고, 다양한 생활상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희로애락과 같은. 그리고 그 희로애락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들을 지닌 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이러한 존재들은 대부분 주어진 운명에 대해 겸허하거나 거칠게 반항하면서 생활상들을 게임 유저처럼 문제를 하나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살고 있는 듯 하다. 최형섭 작가는 공간의 해체와 복원이라는 설치 작업을 통해, 이러한 존재 자체의 운명, 즉 실존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실존의 욕망, 또 어렵다. 쉽게 말해, 나는 내가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은 것. 작가는 그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욕망에 대해 끊임없이 시각적으로 해석해 왔던 것 같다.

최형섭_Growing Fungus_혼합재료_122×122cm_2018_부분
최형섭_Growing Fungus_혼합재료_43×156cm_2018

최형섭 조각의 주재료는 가죽이다. 가죽을 활용하는 작가들이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만큼 가죽은, 우리 일상에서 사용되는 것 못지않게 창작활동에도 익숙한 재료다. 문제는 그것으로 무엇을 만드냐는 것인데. 가죽은 그 재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에 보는 사람들에게 일단, 선입견을 주게 된다. 가죽은 바로 생명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것이 가축이든, 야생동물이든 우선, 가죽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 가죽이 주는 첫 번째, 상징이다. 작가는 생명을 앗아가면서 도대체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가. 과연, 그의 메시지가 생명과 맞바꿀만한 그럴듯한 이야기인가. 첫 번째, 상징으로부터 시작되는 선입견이다. 작가는 인간의 편의와 부를 위해 생산된 가죽으로, 오히려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전시에서 작가는 가죽으로 개의 머리를 만들어 벽에 걸었다. 약간은 잔인해 보이지만, 인간의 편의와 자본의 논리에 희생당하고 있는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물론, 그 부조리의 희생으로부터 인간들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자명한 사실이다.

최형섭_Growing Fungus_혼합재료_36×123cm_2018
최형섭_Growing Fungus_혼합재료_36×123cm_2018
최형섭_Growing Fungus_혼합재료_각 27×36cm_2018

작가의 가죽은 다시, 버섯으로 이어진다. 버섯. 영어로, 머쉬(mush)의 룸(room)이다. 머쉬는 곤죽과 같은 의미로, 곤죽은 곪고 썩은 질척한 죽 같은, 불만, 불안정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말 그대로 보자면, 버섯의 영어적 의미는 무엇인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이 들어앉아 있는 방이다. 물론, 버섯이 균사체, 일종의 곰팡이와 같은 생물이고, 독을 품고 있는 종류들도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부정적인 이름이 붙여질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버섯은 우리에게 상당히 훌륭한 식자재고, 약재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친근한 소재다. 살짝, 오래 전에 봤던 공상과학영화가 떠오른다. 그 영화에서, 외계 생명체들이 지구 점령을 위해 공격해 왔을 때, 당황한 지구인들은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당해야만 했었다. 그때, 그 외계 생명체들을 막아낸 것은 바로 우리가 끔직하게도 싫어했던 곰팡이들이었다. 해서, 우리는 버섯을 포함해, 곰팡이들이 날리고 있는 균사와 함께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곧 외계 생명체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면역력을 키워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 그 버섯을 최형섭은 가죽으로 키워내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편의를 위해 고안된 부조리에 희생되는 다양한 양상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했던 가죽이 오히려 생명 에너지로 상처를 치유하고, 찰나를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공생을 위한 상징으로 전환되고 있음이다. 그의 버섯은 세가지 형태로, 공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리듬과 같은 삶의 조화와 균형, 사회적 관계 지표를 나타내는 그래프로서의 메시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위한 드로잉.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부조리한 관계를 형성하고, 그 사회적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시 또,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메시지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고 있는 지금, 그것이 건강한 균이든, 감염균이든 우리 몸에 들어왔다, 나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건강한 균은 우리 몸에 들어와 감염균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고, 감염균은 건강한 균들이 더 건강해 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진화한다. 따라서 감염균과 건강한 균은 동시 다발적으로 우리 생명 유지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는 것이다.

최형섭_Growing Fungus_혼합재료_각 32×32cm_2018
최형섭_Growing Fungus_혼합재료_각 32×32cm_2018_부분

마찬가지로, 우리는 저 첩첩 산중에서 홀로 살지 않고서는, 숨쉬는 것만큼이나 사회적 관계를 벗어나 살 수 없다. 숨을 쉬는 것은 생명 유지를 위한 일차원적인 필요조건이라면, 사회적 관계는 인간 실존을 위한 고차원적인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그 사회가 만들어내는 모순과 긍정적 관계는 독버섯과 건강한 버섯이 동시에 존재하듯이 우리를 얽어버린다. 작가는 버섯을 가지고 리듬과 같은 형상으로 조화와 균형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조화와 균형은, 감염균을 통해 면역력이 키워지듯이, 사회적 모순에 건강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정신력을 키울 수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 또한,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는 그래프를 표현한 버섯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지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으며, 버섯 드로잉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으며, 그것들을 매일 즐기며 살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할 수 있도록 작가만의 특별한 깨달음의 균사들을 펄펄 날리고 있는 것 같다. ■ 임대식

Vol.20181111j | 최형섭展 / CHOIHYUNGSUP / 崔亨燮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