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섶

이기정展 / LEEGIJEONG / 李基廷 / painting   2018_1114 ▶︎ 2018_1127

이기정_교외로 가는 길 2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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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어! 형 한 번 가봅시다. 그래." 그렇게 해서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선후배님들의 마중을 받고 낚시가방을 챙겨서 저수지로 향했다. 아스팔트를 지나 흙길에 접어들자 논과 밭이 있었다. 논에는 벼가 꽃을 피울락 말락 하고 볍씨 총이 통통해져 있었다. ● 우리는 모처럼 만난 기쁨에 농담과 악담을 주고받으며 낄낄대고 웃으면서 걸었다. 저수지 초입에 들어섰을 때 뙤약볕으로 밝았다. 모든 풍경들이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청청이 반짝거렸다. 너무 이런 날에는 낚시가 재미없는데 .... 그러게 말이야. 고기가 나오지 않겠는데?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저마다 낚싯대 드리울 곳으로 향했다. ● 나는 낚시에 취미가 없어서 혼자 숲 쪽으로 걸어갔다. 좀 걸으니 개울이 넓어지고 갈대, 억새, 이름 모를 풀들이 수풀을 이루었다. 개울물은 고요했고 속이 비쳐보였다. 그리고 버드나무가 쭈뼛쭈뼛 군락을 이루었다. 버드나무 잎은 떨림이 없었다. 하늘과 햇볕이 그 사이로 눈부셨고 수풀 사이의 개울물이 반짝거렸다. 게다가 명암을 머금은 물의 반짝거림과 비슷한 톤의 주변 색조가 어우러져 나를 어떤 심상에 빠져들게 하였고 습성처럼 회화를 떠올리게 했다.

이기정_교외로 가는 길1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6
이기정_송전저수지의 숲1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6
이기정_송전저수지의 숲2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16
이기정_송전저수지의 숲3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18

숲은 나의 마음을 혼란케 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아직 정리되지 못한 나의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 놓았다. 힘겨운 나날이었던 지난 세월이 발목에서 엉켜 스쳐지나갔다. 발목을 휘감은 풀잎은 뜨거운 열기를 아지랑이로 만들어 하늘로 보냈다. 이 수풀 저 끝 지나면 거기에는 새로운 지평이 있겠지? 거기에서는 아무도 지난 시절의 나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만을 보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지나간 일들이 생각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시작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 이 여행에서 얻은 사진은 한동안 열어보지 않았다. 최근에야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림으로 시도해 보리라고 마음먹고 그렸다.

이기정_숲길3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8
이기정_숲길따라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18
이기정_숲으로 가자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8
이기정_저수지 안의 방가로 1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7
이기정_저수지 안의 방가로 2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7

이번 전시는 '나는 화가만 하겠다' 다짐하는 의미로 삼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것은 뭘 할 자신이 없다. 세상일과 미술계를 생각하며 말을 주고받다 보면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견해를 말했을 뿐인데 내가 뭘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난 이내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과 작업을 병행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난 항상 나를 그렇게 설정해 왔던 것 같다. 그런고로 어릴 때 처음으로 돌아가 그때 꾸었던 화가의 꿈을 이루고 싶다. 이런 말을 이 나이에 하다니. 하지만 이제라도 절대와 자타에 선을 긋고 싶다. 이 말을 하고나니 기분이 홀가분하다. ■ 이기정

Vol.20181114b | 이기정展 / LEEGIJEONG / 李基廷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