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모체

양우창展 / YANGWOOCHANG / ??? / installation   2018_1129 ▶︎ 2018_1206

양우창_어머니의 우울증_양식된 숭어를 촬영한 영상, 아크릴에 물_140×58×78cm_2018

초대일시 / 2018_1201_토요일_07:00pm

후원 / 울산문화재단_SK어드밴스드

관람시간 / 10:00am~07:00pm

울산시 남구 봉월로75번길 27 Tel. +82.(0)10.8776.3692

결국 안하느니만 못했던 성장이다. 퇴화와 회귀를 원하는 지금은 더 이상 이전의 것에 정동을 느낄 수가 없으며, 더딘 발걸음만 지속될 뿐. 거창하지만 지극히 순수했던 과거의 포부는 이제 유치하다고 느껴질 뿐이니, 결국 안하느니만 못한 성장이다. 학습이란 것이 날 이렇게 만든 건가. 혹은 다양한 경험의 침전이 이런 결과를 자아낸 것인가. 즐기지 않았던 술은 이젠 나의 유일한 대변책이 되었고, 동시에 망각을 안겨주니 결국 부질없는 것들에 의존하는 병신이 되어버렸다. 원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지향하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쾌락이지만,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이더라. 기억 또한 순간에만 존재하며 결국 망각되어버리고, 비록 기록이 있어도 종국엔 변질되어버리니, 도대체 어떤 것이 나를 오랜 시간동안 느끼게 해줄 수 있을까. ● 정말 안 하는 것만도 못한 성장이다. (2016. 05. 13 일기)

양우창_삼위일체_비닐, 가공 통조림, 단채널 영상_가변크기, 00:01:23_2018
양우창_Holocaust_디지털프린트_각 24×43cm_2018

#1 하나의 타인 또는 집단의 의식에 침식되는 개인의 사고는 본연의 힘을 상실한다. 개인의 입장에서 본연의 사고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정확해 보이는 존재'이며 그 자체는 '혼재 속에 존재하는 존재'인 것이다. 반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역시 침식을 행하는 자(하나의 타인 또는 집단)의 사고 또한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정확해 보이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본인과 타인들의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내재되었을 것이다. 모든 이가 물질적, 제도적, 사회적 의식화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는 결론을 내린다.

양우창_gentler, smarter, lighter, happier_아크릴, 부직포마스크, 젤라틴_각 40×30×10cm_2018
양우창_겨울잠_흙_가변크기_2018

#2 '미지의 대륙'을 찾아 항해하는 탐험가는 확실하지 않은 '미지의 대륙'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존재한다는 믿음 하에 희생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이러한 의식을 순수함이라고 정의한다. 많은 이들의 유년 시절 속 꿈은 대부분 자본 체계와 사회의식과는 관계없이 순수하게 자신이 원하는 어른의 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될수록 집단에 의해 형성된 통념에 물듦으로 순수함을 상실하고, 마치 민주적 합의 속에 맺은 조약 마냥 체계에서 벗어나지 않은 어른 상이 되어간다. 곧, 탐험가의 '믿음'은 지구본에 명시된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질된다.

양우창_잿빛 모체_파인애플, 레미탈, 아크릴_40×100×40cm_2018
양우창_잿빛 모체_파인애플, 레미탈, 아크릴_40×100×40cm_2018

#3 불특정한 지성체로 형성된 군락에서 발현된 광기, 그 시발점에 입혀진 색은 지독할 정도로 표독스럽기에 그 이외의 색들은 죄다 학살당한 듯 보인다. 그렇게 창궐된 잿빛 색상은 순전한 정동을 느낄 수가 없게 만든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서 아주 깊은 구덩이를 파고 가장 어둡고 깊은 한 편에 집을 지어 꽁꽁 숨어버린다. 아주 깊고, 무한에 가까운 겨울잠을 자 버리기로 했다. 비로소 나는 행복하다. ■ 양우창

Vol.20181120k | 양우창展 / YANGWOOCHANG / ???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