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다 못한 것

김진혁展 / KIMJINHYUK / 金珍赫 / painting   2018_1205 ▶︎ 2018_1228 / 월요일 휴관

김진혁_2시간 39분간 무제_종이에 잉크_101.6×101.6cm_2017

초대일시 / 2018_1205_수요일_06:00pm

후원 / 갤러리가비_문화체육관광부_예술경영지원센터_미술공유서비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가비 GALLERY GABI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2길 37 Tel. +82.(0)2.735.1036 www.gallerygabi.com

오늘날 개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 어떤 대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행위는, 결국 대상의 (표상)이미지를 자신이 가진 틀에 가두는 것으로 끝난다. 대상은 내가 가진 언어와 개념 중 하나로 등치되고, 정의Definition의 힘을 얻는다. 사진이미지는 빛의 흔적에 불과하다가도, 다소 공격적인 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고, 때로는 강요한다. ● 오늘날 지구의 인간은 출생과 함께 근대적 헌법을 통해 이분법적 사유를 강요당한다. 인간은 '땅'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위도, 경도, 크기 등 정량화된 수치로 구분된 '국경'안에서 태어난다. 출생 위치에 따라 국적이 부여되고, 의무와 혜택을 강제 당한다.(이는 만삭의 여성이 출산 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동기를 부여한다.) '인간'은 '인구'가 된다. 사진이미지가 이미지 속 대상을 프레임에 가두고 특정 가치를 부여하는 것처럼, 권력은 인간을 포섭하고 특정 가치를 교육한다. 어떤 사진이미지처럼, 중국의 항미원조전쟁과 한국의 한국전쟁은 그렇게 탄생했다.

김진혁_2시간 35분간 무제_종이에 잉크_101.6×101.6cm_2017
김진혁_1시간 18분간 무제_종이에 잉크_101.6×101.6cm_2017
김진혁_3시간 16분간 무제_종이에 잉크_101.6×101.6cm_2017

사진의 권력을 사진을 통해 벗어날 수 있을까?,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기만을 벗어나 너를 바라보고, 담아낼 수 있을까? ● 「'무'보다 못한 것」은 Drag 아티스트 Nix, 혹은 동성애자 Tiago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나와 Nix는 반투명거울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욕망을 드러냈다. Nix는 거울 한쪽에서 자신을 분장시키며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냈고, 나는 반투명거울 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뒤에 숨어 거울 반대편 Nix를 기록했다. 반투명 거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개인에게 자신 혹은 타인이 부여한 욕망을 투사하는 주체가, 다른 한쪽에는 이를 관음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자리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일련의 사진은 '작가'가 찍은 사진이 아닌, 10초마다 눌러지는 자동셔터에 의해 기계적으로 얻어지는 '부산물'이다. 이미지들의 합은 어떤 관념으로 대체하기에는, 그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무'로서 새로운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보다도 못한 부산물, 찌꺼기.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은, 이 사진들이 욕망을 가진 두 '존재'가 충돌한 흔적이라는 것뿐이다. '무'보다 못한 것이, 그녀의 존재와 내 존재의 흔적이다.

김진혁_기억 잊은 기억 잊기_나무합판, 종이에 잉크_45.7×45cm_2018
김진혁_기억 잊은 기억 잊기_나무합판, 종이에 잉크_45.7×45cm_2018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이래로, 인도, 필리핀, 미국 등을 여행하며 보낸 나는, 나를 규정하는 '한국인', '정상인', '남자다움'과 같이 권력이 내게 부여한 정체성과 충돌하곤 했다. 그러나, 이내 나 역시 이미지를 소비하고, 또 생산하며 신화와 권력의 작동에 동조해왔다. 나는 본 작업을 통해 현대 사진이미지의 권력을 둘러싼 개인으로서, 이 시대의 권력에 동조하는 개인으로서 반성적 성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사진을 통해 누군가를 이야기 했던 – 알지 못했던 폭력성에 대해, 내 자신의 감성적인 면과 두 명의 누나가 있다는 사실에 기대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한다고 자부하던 폭력에 대해, 첫 영어 선생님이 성소수자였기에, 성소수자를 이해한다고 자부했던 폭력에 대해 반성하고자 한다. 이것은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이다. 이 시도에서 내 역할은 역할은 반성적 판단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 김진혁

Vol.20181205b | 김진혁展 / KIMJINHYUK / 金珍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