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땅

윤영경展 / YOUNYOUNGKYOUNG / 尹英京 / painting   2018_1205 ▶︎ 2018_1210

윤영경_하늘과 바람과 땅_한지에 수묵_156×295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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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5일_10:00am~07:00pm

조선일보 미술관 CHOSUNILBO ART MUSEUM 서울 중구 세종대로21길 33 Tel. +82.(0)2.724.7816 gallery.chosun.com edu.chosun.com/art

진경산수의 살아있는 전통을 위하여-윤영경의 『하늘과 바람과 땅』에 부쳐 ● 오랜만에 전시회 서문을 쓰면서 나의 직함을 무어라 할까 잠시 망설였다. 한때는 미술평론가로 활동했었지만 지금은 미술사로 돌아앉은 지 오래되어 좀 애매했는데 이 글을 쓰는 입장은 역시 전시회 평인지라 미술평론가라고 밝혔다. 그리고 사실 내가 완전히 미술계 현장을 떠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틈나는 대로 전시장을 찾는 것은 여전히 나의 일상 중 하나로 되어 있고 간혹은 화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하곤 해 왔다. 그 경우도 비록 글로는 쓰지 않았지만 평론 행위의 하나인 셈이다. ● 지난해(2017년) 가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윤영경의 『와유진경(臥遊眞景)』에는 통영 앞바다를 그린 길이 45m의 두루마리 진경산수화가 펼쳐져 있었다. 한지 전지 30장을 이어붙인 이 작업을 어디에서 그렸을까 라는 놀라움과 함께 보는 이를 압도하는 장쾌함이 있었다. 그 작업의 엄청스러운 공력도 공력이지만 산수의 표현에서 먹에 의지하는 묵법(墨法)을 배제하고 산세의 주름살을 나타내는 준법(.法)만을 사용하고 있는 점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에 화가를 만나 "붓끝의 예리한 선묘와 목판화의 칼맛이 동시에 느껴진다."고 한마디 감상을 말하였는데 화가는 마치 자신의 조형 목표를 바로 알아주었다는 듯 기뻐하며 다음번 전시회 때 꼭 서문을 써 달라고 일방적으로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로부터 1년 뒤 마련된 이번 전시회의 서문까지 쓰게 되었다.

윤영경_하늘과 바람과 땅_한지에 수묵_208×444cm_2018

그때 내가 윤영경의 작업에 주목한 또 하나의 사항은 - 비록 그 자리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와유진경'이라는 미술사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와유(臥遊)란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동양 산수화의 조종(祖宗)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종병(宗炳, 375~443)이라는 화가가 늙어서 산수를 유람할 수 없게 되자 그가 좋아한 산수를 그림으로 그려놓고 누워서 즐겼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리고 진경(眞景)이라는 말은 18세기 영조 시대에 겸재 정선이 중국의 산수화 형식을 벗어나 우리나라의 실경을 그림으로써 조선적인 산수화를 그려낸 주체적인 시각의 산수화를 말한다. 윤영경은 스스로 말하기를 일찍이 1996년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간송특별전』에서 겸재의 기행 화첩을 보고서는 진경산수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 그렇다면 윤영경이 지향하는 산수화 내지 풍경화의 뜻은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겠다는 뜻으로 되니 미술사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진경산수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곧바로 읽히는 바가 되어 반가웠던 것이다.

윤영경_하늘과 바람과 땅_한지에 수묵_150×213cm×2_2018

윤영경이 그동안 추구해온 조형의 내용이 '와유진경'이라면 그가 사용하는 조형 형식은 '횡권산수(橫卷山水)'이다. 횡권산수는 전통적으로 산수 풍광을 일망무제로 펼쳐서 대작으로 그릴 때 쓰는 가로로 긴 두루마리 그림이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이래로 대대로 역대의 대가들마다 횡권산수를 그리며 크게 유행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 고송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등 많은 명작을 낳았다. 단원 김홍도가 정조대왕의 명을 받아 그린 금강산 그림도 -비록 지금 전하지 않지만- 문헌에 의하면 수십 미터에 이르는 횡권산수였다고 한다. ● 윤영경은 특히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에서 감동을 받아 이 전통을 계승하고자 이화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박사과정에서 『전통적 횡권산수 양식의 현대적 변용-자작(自作) 「강산무진(江山無盡)」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제출하였고 2016년 갤러리 그림손에서 열린 제8회 개인전의 주제는 『강산무진』이었다.

윤영경_하늘과 바람과 땅_한지에 수묵_60×212cm_2018

이쯤 되면 윤영경이 추구하는 회화세계가 어떤 것인지 자명하게 드러나는데 나는 그의 이력을 보면서 그동안 그가 그려온 산수가 명승지를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항시 자신이 머물고 있는 그곳의 산수를 그림의 소재로 담았다는 데서 그의 남다른 창작 자세를 읽어보게 된다. 그는 세 아이의 엄마이고 남편의 직장이 정기적으로 근무지가 바뀌는 사정이 있어 아틀리에 한 곳에 파묻혀 작업할 수 없었다고 한다. 화가로서 불리하다면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이를 우리 산천을 두루 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 강원도 고성에서는 운봉산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와 힘차게 뻗은 산맥을 그렸고, 경남 통영에서는 고요한 항구와 미륵산에서 만난 다도해를 그렸고, 과천에서는 청계산과 관악산에 둘러싸인 아늑한 도시풍경을 그렸다. 그리고 독일에 몇 년간 체류할 때는 또 그곳 이국의 풍광을 화폭에 담아 그곳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그때마다 윤영경은 이 모든 풍경을 횡권산수에 담으면서 오늘날 자신만의 개성을 획득하기에 이른 것이다. ● 윤영경이 그동안 추구해 온 '와유진경의 횡권산수'에는 전통을 계승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를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과 기법을 구사해 간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어쩌면 이것이 작가로서 그의 개성을 말해주는 핵심적인 요소로 될 것이다. 하나는 전통적인 횡권산수는 두루마리를 펼쳐가면서 계속 전개되는 시점의 이동이 있다. 대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데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예외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개된다.

윤영경_하늘과 바람과 땅_한지에 수묵_53×117cm_2018

그러나 윤영경은 어느 경우와도 달리 시점의 이동 없이 부감법으로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마치 항공사진을 촬영하는 듯한 퍼스펙티브를 보여준다. 관객은 두루마리를 따라 시점을 이동하며 보게 되지만 화가의 시점은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어 산수의 장대함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 이 점은 나귀를 타고 여행하던 옛사람과 달리 현대인이 비행기를 타고 산천을 내려다보는 시각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는 장쾌한 부감법으로 분명 새가 하늘에서 보는 듯한 birds eye view로 그려져 있다. 말 그대로 조감도이다. 윤영경이 겸재의 금강산 그림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는데 아마도 무엇보다도 이 시각 구성법에 매혹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그의 작품을 보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이 점이었다.

윤영경_하늘과 바람과 땅_한지에 수묵_51×293cm×4_2018

또 하나의 특징은 묵법이 아니라 준법의 활용이다. 전통회화에서 준법은 산자락의 모양을 잡아내는 유효한 방식인데 이를테면 부드러운 산세는 마대자락을 풀어내는 듯한 피마준(披麻皴), 깎아지른 절벽은 도끼로 찍어낸 자국 같은 부벽준(斧壁皴)을 많이 쓴다. 동양화의 역대 대가들이 개발한 이 준법들은 산수화의 범본으로 되었고 이를 잘 활용하면 그것이 곧 그 화가의 특질로 되곤 했다. 단원 김홍도는 연잎 줄기 모양의 하엽준(荷葉皴)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하여 그의 개성이 되었다. ● 윤영경의 준법은 그 어느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묘가 계속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내가 그의 그림에서 목판화의 칼맛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한 것은 이 점을 말한 것이었다. 윤영경이 이러한 준법을 사용하게 된 것은 -나의 일방적 추정이지만- 그가 본 산세를 생긴대로 따라 그리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즉 준법을 이용해 산수를 그렸다기보다 우리나라 화강암 골산들을 나타내려면 이 방식이 적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의 산수에서는 깡마른 듯 뼈골이 강한 골기(骨氣)가 느껴지는 것이다. ● 윤영경의 산수화는 채색이 들어가 있지 않고 수묵산수인데 여기서도 묵법이 아주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준법의 맛을 살리기 위한 절제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아껴가며 사용한 묵법 중에는 아주 은은한 번지기 효과를 나타낸 것이 있어 자칫 딱딱한 느낌을 줄 수도 있는 선묘를 부드럽게 보듬어준다. 이는 먹을 화면 앞면이 아니라 뒷면에서 칠하는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고려불화와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많이 사용한 이 배채법을 이처럼 산수화에 적용한 화가는 거의 없다. 이 점은 윤영경이 자기 형식을 전통에 근거하면서 현대적으로 변형해 가며 이어가겠다는 창작 자세가 가져온 결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점이 화가로서 윤영경의 개성이고 강점이다.

윤영경_하늘과 바람과 땅_한지에 수묵_212×1472cm_2018

올해로 열두 번째 개인전을 맞으면서 윤영경은 그동안 주변의 산수 풍광을 그리던 것을 벗어나 모처럼 의미 있는 산수를 찾아 떠났다. 이름하여 『하늘과 바람과 땅』을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윤영경이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압록강과 백두산이었다. 비록 한반도에서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중국 길림성으로 가서 볼 수밖에 없었지만 장대한 압록강 물줄기와 백두산 천지, 그리고 광활한 대평원과 자작나무숲을 그렸다. 그리고 이를 여전히 장대한 퍼스펙티브의 횡권산수화로 담아냈다. 듣기만 해도 장쾌한 기분이 살아난다. ● 그가 압록강과 백두산을 그린 것에는 알게 모르게 민족의 기상, 통일에의 염원, 그리고 우리 산천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희미해져 가는 수묵산수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작가적 의지와 사명이 마치 산 정상에 올라 목청껏 외쳐보는 기상이 서려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그의 「와유진경」이 마침내는 민족기상의 「국토 예찬」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제12회 개인전에 거는 기대이다. ■ 유홍준

Vol.20181205j | 윤영경展 / YOUNYOUNGKYOUNG / 尹英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