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위한 가방(A bag for the bag?)

강선미展 / KANGSUNMEE / 姜善美 / installation   2018_1206 ▶︎ 2019_0131 / 월요일 휴관

강선미_다른 각도_adhesive vinyl_가변크기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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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미 홈페이지_www.linekang.com

초대일시 / 2018_120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소 SPACE SO 서울 마포구 동교로17길 37(서교동) Tel. +82.(0)2.322.0064 www.spaceso.kr

충만한 여백1) : 강선미 개인전 『가방을 위한 가방』에 부쳐1 '과잉'은 이 시대에 가장 빈번히 회자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이미지와 정보, 걸러내는 것 없이 내뱉는 말들. 우리는 그만큼 빠르게 흩어지고 가볍게 떠다니는 것에 둘러싸여 있다. 이렇게 복잡하고 분주한 삶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것은 고요와 침묵의 공간이 아닐까. 철학자이자 문필가 에밀 시오랑(Emil Cioran)은 특유의 염세적 어조로 다음과 같이 썼다. "인간이 효율성 앞에 무릎을 꿇은 이래, 천박한 인간들은 '작품'이라는 것을 신성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생산하지 않는 사람을 '실패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 실패자들이 바로 현자였을 것이다. 우리 시대를 구원할 사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현자일 것이다(에밀 시오랑 지음, 『독설의 팡세』, 김정숙 옮김, 문학동네, 2004, 52쪽)." ● 강선미는 공간에 그림을 그린다. 미술관, 갤러리 등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공항, 전철역, 매장 같은 일상의 공간에 '일시적으로' 설치되는 현장 드로잉 작업을 주로 진행해 왔다.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기하학적 패턴을 배치하거나 병, 컵, 그릇 등 친근한 일상 사물 이미지를 최소한의 선(線) 형태로 구현한 벽 드로잉에는 라인 테이프, 접착 시트, 스테인리스 스틸 등 다양한 재료가 동원된다. 때로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하기도 한다. 학창 시절 오랫동안 서예를 했던 작가는 하얀 화선지에 검은 먹으로 단정하게 써내려가는 붓글씨처럼 텅 빈 공간에 정제된 선을 펼쳐 나간다. 전반적으로 여백과 간결한 조형 언어가 두드러지는 강선미의 작업을 문학에 비유하자면 몇 개의 시어로 쓰인 단시(短詩)와 같다고 할까. 그녀는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공간에서 선을 통해 감상자와 소통하며, 일상 사물에서 출발하지만 비(非)물질로 나아간다. 그녀의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닌 사유인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금번 개인전 『가방을 위한 가방(A bag for the bag?)』에서도 이어진다. ● 전시 『가방을 위한 가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벽 드로잉, 거울 회화, 문지르기 작업, 이른 바 프로타주(frottage)다. 각각은 가방, 거울, 포장 상자와 연관을 맺고 있다. 무언가를 담아낸다는 공통점을 지닌 세 개의 대상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가방은 선묘로, 거울은 실제 사물로, 상자 제작 도구인 목형(木型)은 물질의 흔적으로 제시된다. 먼저 1층 전시장의 가장 큰 벽을 채우는 것은 동일한 형태가 반복 배치된 가방 드로잉이다. 전시장의 나머지 벽면에는 텍스트를 부착한 거울 작업 4점이 걸리며 2층에는 프로타주를 통해 희미한 윤곽으로만 나타난 상자 제작 도구 이미지가 5점 전시된다. 이들은 단순 형태의 사물이면서 현대 사회를 나타내는 기호이기도 하다. 이제 작가가 창조한 공간 속으로 차례차례 들어가 보자.

강선미_다른 각도_2018_부분

2 전시장으로 들어서자마자 10미터 넘는 하얀 벽을 빼곡히 메운 드로잉 설치 작업 「다른 각도」(2018)가 눈에 들어온다. 검정 선으로 간결하게 포착된 똑같은 쇼핑백 이미지 140개가 나란히 배치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작품 제목이 암시하듯 모서리를 이어 붙인 채 빈틈없이 배열된 가방 가운데에서 '다른 각도'로 놓인 한 개의 가방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종종 전체 대열에서 이탈하는 작은 요소를 도입한다. 유사한 사례로, 병 모양 드로잉을 설치한 작업 「뚜껑이 열리다」(2013)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도 완벽하게 질서 잡힌 구조를 벗어나 어디론가 홀연히 날아가는 병뚜껑 한 개를 찾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규칙과 체계로부터의 일탈은 강선미의 작업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절제된 형식 안에서 은밀하게 표출된다.

강선미_다른 각도_스페이스 소_2018

가방은 이 시대를 표상하는 이미지다. 무엇보다 가방은 여행, 이주가 보편화된 현대인의 유동적 삶을 나타낸다. 특히 「다른 각도」에 등장한 손잡이 없는 쇼핑백은 소비 자본주의의 상징이며 반복 배치된 형식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증식을 보여주는 기표다. '신상'이 쏟아져 나오고 최신 정보와 지식, 이미지가 범람하는 가운데에서 우리는 끝없는 소유를 열망하지만, 욕망은 채워지지 않으며 욕망의 크기만큼이나 결핍감도 커져간다. 가방에 가득 담고 싶어 하나 때로는 그 무게에 짓눌리는 것처럼 나의 욕심이 내 자신의 운신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가방이 비어 있어야 진짜 원하는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진실을 흔히 망각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 비워내야 하는 것은 바로 욕망 가득한 마음이다.

강선미_반응_혼합재료_각 100×90cm_2018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거울 작업 「반응」(2018)을 새롭게 선보인다. 깔끔한 금속 프레임으로 처리된 거울의 표면에 단어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SURREAL', 'DEPICT', 'SERENE', 'SCENE'이 그것인데, 거울과 유사한 재질의 특수 접착 필름으로 붙인 문자라서 명확하게 도드라져 보이진 않는다. 작가가 평소에 즐겨 보는 뉴스에서 추출한 텍스트이므로 분명 사회 현상과 연결고리를 가진다. 하지만 구체적인 문맥없이 단어만 제시되므로 의미 자체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단어의 뜻을 음미하면서 각자 하나의 사건 혹은 풍경을 떠올리든, 문자를 그저 전체 이미지의 일부로 받아들이든 선택은 결국 감상자의 몫일 것이다. ● 역사상 거울만큼 다채로운 용도와 의미로 활용된 사물은 없다. 널리 알려져 있는 문학적 상징이나 정신분석학 개념은 차치하고 미술사적 배경만 살펴보아도 그렇다. 고대에 제의적 도구로 사용되었던 거울은 서구의 중세 회화에서 허영 또는 관조나 숙고를 의미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는 창문과 함께 회화를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이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회화론」에서 "화가의 마음은 자신이 비추는 사물이 무엇이든 그 색을 취하며 앞에 무엇이 놓이든 온전히 그 형상을 담고 있는 거울과 같아야"한다고 주장하면서 화가는 거울을 지표로 삼아 자기 그림을 거울에 비춰 보아야 한다고 썼다. 또한 거울은 실질적인 회화 제작 도구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17세기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는 당시로서는 사치품이었던 대형 거울을 10여 개나 갖고 있었고 이를 회화 제작에 활용했다(데이비드 호크니, 마틴 게이퍼드 지음, 『그림의 역사』, 민윤정 옮김, 미진사, 112쪽 참조). 이러한 과거의 화가들 이외에도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와 같은 동시대 미술가 역시 회색 유리 설치 작업을 통해 회화와 거울 이미지를 동일시하고 있다.

강선미_반응_스페이스 소_2018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강선미의 거울 작업 「반응」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 그림이자 감상자가 재창조하는 회화와 같다. 작가는 공간과 감상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로 거울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울 작업은 가방 드로잉이 설치된 벽을 제외한 모든 벽면에 걸림으로써 전시장으로 들어선 관람객의 움직임을 다각적으로 담아낸다. 감상자는 텍스트를 읽고자 거울 앞에 멈춰선 순간 거울에 투영된 자기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겠지만, 이윽고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울을 확인하게 된다. 맞은 편 드로잉이 거울에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전시장 속 낯선 타인의 모습이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나아가 「반응」 연작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speculum mundi)이다. 「반응」에는 전시장 바깥의 공간도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SNS에 업로드하는 사진 대다수가 셀피(Selfie)인 나르시시즘의 사회,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교감하기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데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강선미_질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7.3×92cm_2018

한편 거울 작업 「반응」과 마찬가지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제시하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전시장 1층에서 2층으로 이동하는 공간에 놓인 「질문」(2018)이다. 굴곡이 있는 유리 아래로 보이는 검정 곡선은 일견 유려한 이미지로 보이나, 그것은 작가가 'answers'라는 단어를 좌우로 길게 늘여 쓴 것이다. 문자의 형태 자체가 왜곡된 데다가 유리의 굴절로 인해 그 앞에서 눈의 초점을 제대로 맞추려 아무리 노력해도 명확하게 문자를 읽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생은 모호함 투성이라서 명쾌한 답을 찾으려 애써도 결국 정답은 없다는 뜻일까. 온전히 읽을 수 없는 '답'을 제시하는 작품의 제목이 '질문'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 전시의 마지막에 위치한 「찍다」(2018)는 프로타주 연작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흔히 '도무송'이라 불리기도 하는 상자 제작 도구가 사용되었다. 포장 상자를 만드는 칼날 같은 것인데 규격화된 상자를 만드는 일종의 틀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작가는 삼각, 사각, 타원형 등 다양한 형태의 틀에 판화지를 얹고 문질러서 윤곽선이 드러나도록 했다. 선이 주는 느낌은 제작 과정에서 취한 힘의 강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선명함의 정도에 미세한 차이가 있어 어떤 선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무(無)의 상태에 가깝다. 주의 깊은 경청의 자세를 요하는 나지막한 목소리처럼, 보일 듯 말듯한 선의 궤적은 감상자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긴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게 만든다.

강선미_찍다 1_종이에 각인_76.2×112.8cm_2018
강선미_찍다 4_종이에 각인_76.2×112.8cm_2018

「찍다」는 3차원과 2차원 사이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3차원 오브제로부터 출발하여 2차원 평면에 그 흔적을 옮겨냈다면, 감상자는 평면을 보고 자연스럽게 3차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장 상자를 펴놓은 일종의 전개도와 같은 「찍다」의 이미지를 보는 순간 어느새 머릿속에서 완성된 상자의 모양을 구성해보게 된다. 물론 선이 너무나 희미해서 전체적으로 조합된 3차원적 형태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목형이라는 도구와 작가의 반복적인 행위에 의해 생겨난 틀 형태는 표준 체계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이 만연한 몰개성적인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이 제시하는 이미지는 그 틀이 결국 해체된 모습이며 때로는 소멸에 이르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는 조직화된 구조에서 벗어난 요소를 포함한 공간 드로잉의 특징과도 상통하는 지점이다.

3 존 버거(John Berger)가 말했듯, 모든 바라봄에는 의미에 대한 기대가 있기 마련이고 의미는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의미를 탐색하는 감상자 앞에 강선미는 최소한의 형태와 여백을 제시하며, 이 비어있음의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충만함의 세계를 열고 있다. 그것은 바라보는 이의 상상력과 사유를 작동시키는 바탕이다. 강선미의 작업 앞에서 우리는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과연 이 시대에 생산만이 미덕일까, 미술 작품이 반드시 물질로 남아있어야 하는가, 예술은 영원한 것일까, 가시적인 가치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건 아닌가,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진 않나, 하나의 잣대에 맞춰 누군가를 쉽게 재단한 적 없는가……. 비어있음은 아무 것도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 강선미의 2006년 작가노트에는 "결국에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그 시점의 모든 것은 공(空)이다."라고 쓰여 있다. "우주의 본질은 허(虛)"라는 동양 고전의 가르침을 연상시키는 이 문장은 '비어있음'이 그녀의 오랜 화두임을 말해준다. 다채로운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비움과 덜어냄을 기꺼이 택한 강선미의 작품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 있다. 거울 작업 「반응」의 텍스트, 문지르기 기법이 동원된 「찍다」의 윤곽선, 작품 「질문」 속 문자 이미지가 그러하다. 요컨대 절제미가 강선미의 조형 세계 전반에 나타난 형식적 특징이라면, 획일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내용적인 측면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다. 항상 그렇듯, 전시가 끝나면 그녀의 드로잉은 공간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작가가 창조한 공간 속으로 들어가 찬찬히 거닐었던 체험의 시간은 감상자의 기억 속 어딘가에 남을 것이다. 이와 같이 강선미의 공간 드로잉과 거울 회화는 비움과 확장의 실천을 보여줌으로써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재를 반추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김보라

* 각주 1) 1943년에 출간된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시집 Pleine Marge에서 가져온 제목임.

Vol.20181209c | 강선미展 / KANGSUNMEE / 姜善美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