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오늘 – 매일같이 밀고 당깁니다.

정철규展 / JUNGCHOULGUE / 鄭哲奎 / installation   2018_1210 ▶︎ 2018_1230 / 월요일 휴관

정철규_그냥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다._ 변형캔버스(돌멩이 실루엣 캔버스)194개, 옛 선감학원 등지에서 발견된 돌멩이 194개, 선감학원의 이야기를 반영한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과 희생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발췌한 문장 194개, 나무프레임 액자 194개_가변크기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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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213_목요일_05:00pm

후원 / 안산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관람종료 30분전 입장마감

단원미술관 DANWON ART MUSEUM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충장로 422(성포동 737번지) 2관 Tel. +82.(0)31.481.0505 www.danwon.org

보편적인 일상에서 보편적인 불행을 말하면서, 각자가 놓인 현실에서 서로에게 묻고 답한다. 실은 자문하고 자답을 하는 것이겠지만, 동일한 실패의 운명 속에 있는 자들이 그것이 마치 인간의 숙명 이자 불행이라고 받아들이면서 감당하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한다.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패로 실패를 가린 것일 뿐인데,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실패로 실패를 가리는 것. 그것은 완벽할 수도, 지속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의 실패가 매듭을 만듦과 동시에 그 매듭을 지워 버리듯 새로운 실패의 장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 정철규

정철규_그냥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다._부분
정철규_완벽 할 수도 영원 할 수도 없는_종이에 유채 62개, 판유리 62개_가로 800cm_2018
정철규_우리여기함께있습니다._캔버스에 유채, 지점토_60×140cm_2018
정철규_죽어야 하는 말들-사랑하니깐 반대합니다?_나무판에 아크릴채색, 각목_가변크기_2018
정철규_죽어야 하는 말들-사랑하니깐 반대합니다?_나무판에 아크릴채색, 각목_가변크기_2018_부분

꺾인 소망의 잔해 ● "삶이 '생산 과정'에 종속되는 상황은 모든 사람을 일종의 고독과 고립에 굴복하도록 강요하며, 이러한 고립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선택한 최선의 결정으로 간주하게끔 유혹받는다." - 테오도르 아도르노, 『미니마 모랄리아』 중에서 ● 지난 3~4년간 정철규의 작업은 불안한 감정과 충동, 그리고 욕망이 한껏 도사린 몽환적인 회화가 주를 이루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으나 그의 목소리는 종종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하였으므로, 그의 작업은 모호한 암시로 가득 찬 고독한 풍경이 되고는 하였다. 전작 「도망가는 밤」, 「쌓이는 밤」, 「귀를 보고 하는 말」 시리즈가 특히 그러하였는데, 그런 그가 이번에는 설치 작업을 하겠다며 연락을 주었을 때 나는 솔직히 적잖게 놀랐다. 게다가 사랑 이야기라니. ● 정철규의 최근 전시 『매일같이 밀고 당깁니다』는, 작가의 주장대로라면,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작업이다. 사랑, 혼자 할 수는 없어서 누군가와 짝을 이루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일, 그래서일까 이번에 그가 선보이는 작업에는 유난히도 한 쌍으로 겹쳐지거나 마주 보거나 대구(對句)를 이루는 작업이 많다. 작품별로 깔끔하게 정돈된 작은 액자나 소품들이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어서 다양한 사랑의 양상이 펼쳐지려나 기대하게끔 하는데, 그러나 조금만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의 '사랑'은 온전히 표출되지 못하고 어딘지 일그러지고 가려지거나 무력적으로 강요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우선, 31개의 액자로 구성된 「완벽할 수도 영원할 수도 없는」은 그가 규정하는 사랑의 본질을 엿볼 수 있는 작업이다. 불투명한 트레싱지를 사이에 놓고 검게 칠한 도화지 두 장을 겹쳐 놓은 것으로, 도화지마다 다른 크기와 위치의 동그라미를 오려내어 오려진 부분 사이에 교집합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그 원마저도 매끈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잘라내 우둘투둘 마감되어 영 서툴러 보이는 게 아니다. 작품명처럼 '완벽할 수도', '영원할 수도' 없는 겹침이다. 그저 우연히 보인 틈새에 주관적인 의미를 투영한 것일지도 모를 임의적이고 불안정한 만남으로, 여기에서 사랑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본다거나 마음이 맞다고 하는 클리셰와는 거리를 둔다. 오히려 이 작업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차이'이다. 당신의 마음이 나의 것과 같을 수는 없다는, 매끈한 형태를 갖추지도 못할 것이고, 서로 맞대고 있으나 섞이지는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그는 무채색 종이의 중립적인 표정에 기대어 건넨다. ● 어긋나고 고립되는 상황, 불일치와 단절은 정철규의 작업에서 지속해서 반복되는 주제 의식으로, 그의 작업은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채 주위를 맴도는 소수자이자 주변인의 처지를 대변한다. 가령, 「나는 감도 아니고 배도 아닌데」에서는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세계에서 이쪽이나 저쪽,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자아를 확인하는 한편, 남의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참견을 받으며 세속의 잣대로 규율 받는 모습이 투영된다. 「이름을 지운 사람들-쌓이는 밤」에서는 온라인상에서 아홉 자리 숫자로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상상의 초상을 하나씩 부여하며 호명하여 보는 것으로, 스톡 이미지에서 빌려온 사진조차도 그 모습을 그대로 두지 못하고 일부를 핑크빛 조각으로 가려버린다. 얼핏 화사한 색상과 경쾌한 조형적 구도가 눈길을 끌지만, 당신의 어느 부분은 이 세상에 보여서도 안 되고, 화면을 가르는 이 핑크 조각으로 인하여 당신의 세계는 분할되고 있다는 함의가 불쑥 매끈한 피부를 할퀴듯 솟아오른다. 「우리여기함께있습니다」와 「죽어야 하는 말들-사랑하니깐 반대합니다?」에서는 퀴어퍼레이드에서 마주칠 수 있는 찬반 양쪽의 플래카드를 작품에 차용하여 더욱 직접 사회적 이슈를 담아내는데,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게 놔두자는 쪽과 사랑하기에 저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쪽, 양방이 주창하는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정철규가 작품 속에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분홍색은 그야말로 도색(桃色), 에로티시즘의 기호인 동시에 동성애의 상징색이자 나치의 전체주의에서 차별의 표식이기도 하였다. ● 사랑이라는 이름의 잣대로 재단되는 것이 어디 이뿐이랴. 학교, 종교, 교화시설 역시 사랑의 인도를 실현하는 곳이나 그 사랑의 방식은 매우 다르다. 그의 「그냥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다」는 현재 경기창작센터가 위치하고 있는 터에 있었던 선감학원을 배경으로 한다. 부랑아를 교화하는 목적의 이 수용소에서는 실상 잔혹한 학대도 이루어졌는데, 이 수용소에 갇히었을 소년을 상상하며 만든 작업이다. 작가는 선감도의 돌을 주워 하나하나 먹으로 칠하여 각각 어울리는 글귀와 짝을 지어주었는데, 제아무리 동색으로 칠하였더라도 저마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돌멩이의 모습이 어찌하여도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모두 다른 모양의 개체성이 도리어 부각되며 위태롭고 불안한 것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처럼 위험하고 긴박한 긴장 상태에서 좌절하고 절망하지만, 그럼에도 가까스로 살아남아진 삶이 곧 작가가 인식하는 현실의 모습이다. 정철규의 작업에서 '사랑'은 선(善)을 행한다는 이유로 포장된 규율, 폭력, 시스템과 거대 담론, 혹은 이 모든 걸 포함하여 정체가 불분명한 제약이다. 보편성과 일반성의 원리로 강제되는 총체적 통합은 사회적 메커니즘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낙오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며, 작가는 이 실패자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전체주의에서는 포섭할 수 없는 소수,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이들을 담아내기에 그의 작업에는 유난히도 작은 파편들이 모여 의미를 구현하고, 각 파편의 사연이 교차하며 다중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있다. 모두 다 '꺾인 소망의 잔해'1)들이다.

정철규_나는 감도 아니고, 배도 아닌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지름 30cm_2018
정철규_이름을 지운 사람들-쌓이는 밤_종이, 사진 출력, 시트지_25×20cm×100_2017
정철규_이름을 지운 사람들-쌓이는 밤_종이, 사진 출력, 시트지_25×20cm×100_2017_부분
정철규_선물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정원_ 기증 받은 화분 20개와 편지 20개, 액자 20개, 나무상자 20개, 헌 옷_가변크기_2018

정철규의 기존 회화 작업에서는 마이너리티의 세계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캔버스의 크기만큼 울타리 지어 은밀하고도 폐쇄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하였다. 그런데 근작에서는 이제 그 울타리 자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며, 작품 역시 캔버스를 벗어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설치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사회의 틀에 꿰어 맞춰지지 않는 자와 모두를 재단하려 드는 집단적 편집증의 사회, 누구의 실패인가. 그의 말처럼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패로 실패를 가린 것일 뿐"2)이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그의 작업에는 불만 어린 과격함이나 공격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함마저도 그는 '사랑'이라는 관계로 풀어나간다. 이는 나이브한 작가의 태도라기보다는 무엇보다도 낭만적이고 함축적인 성향이 그의 예술적 실천에서 우선시 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말은 대화가 될 터나,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는 말은 시(詩)가 된다. 정철규는 줄곧 혼잣말처럼, 일기처럼, 시처럼 작품을 만들어온 것이다. 앞으로도 그의 작업은 계속 바뀌어 가겠지만, 부디 그가 지닌 풍부한 감수성과 함축성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김소라

* 각주 1) 정철규, 「그냥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다」, 2018. 작품에 인용된 구절 중 하나. 2) 정철규 작가 노트, 2018.

Vol.20181210f | 정철규展 / JUNGCHOULGUE / 鄭哲奎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