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

박부곤_박영경_손이숙_심수옥_이선애_이혜진展   2018_1220 ▶︎ 2019_013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8_1220 ▶︎ 2018_1226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수요일_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비컷 갤러리 B.CUT CASUAL GALLERY & HAIRDRESSER'S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라길 37-7 Tel. +82.(0)2.6431.9334 blog.naver.com/bcutgallery

관람시간 / 11:00am~06:00pm

플랫폼 팜파 Platform Pampa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마길 39 www.instagram.com/platform_pampa

2018_1231 ▶︎ 2019_0131

유령회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위례광장로 104 (창곡동 505번지) 상가 1023호

감각의 모서리에 서다 ● 12월 B.CUT비컷 갤러리 전시, 『모서리』는 작업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던 여섯 작가의 작업으로 구성된 기획전이다. 지난 9개월간 참여 작가들은 열심히 간섭을 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의 작업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교차 관계로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생성된 새로운 이미지와 텍스트를 자신의 작업으로 확장한 것이 전시로 이어졌다. 개별 작업이 나를 보는 선과 선이 만나 새로운 면을 만든다면, 다른 감각의 면과 면이 만나는 모서리에 서 보는 것은 입체가 되는 시작이다. 더불어, 비컷과 이웃하는 팜파와 신생 공간인 유령회사에서 같이 전시를 진행하여 전혀 다른 공간 (미장원, 차고, 작업실)이 작업과 만나 촉발되는 또 다른 감각도 기대해 본다. 이로써, 여섯 작가가 선 모서리에 제3의 감각(감상자)을 더해 무수히 다양한 입체를 만들어 보는 것이 『모서리』를 완벽하게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 비컷 갤러리

박부곤_찰나-충돌의 흔적_한지에 인화_43×100cm_2018

찰나-충돌의 흔적 ● 이선애의 행위와 설치 작품 "날 보러와요" 와 같이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을 순간을 고정하는 사진으로 표현 해보기로 했다. 공이 커튼에 부딪칠때 생겼다가 사라지는 주름을 촬영하는 것으로 찰나에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이 덧없는 삶을 은유하여 허무하게 사라져간 사람들을 애도하고 싶었다.

박부곤_주식회사 BKT 연구개발팀_가변크기_2018

주식회사 BKT ● 손이숙은 "부재의 방" 연작에서 방이라는 공간과 거울속에 있지만 실재는 보이지 않는 여성을 촬영 하여 공허한 여성의 삶을 표현 하였다. 나는 내가 소속한 회사의 풍경을 다시 관찰하고 촬영하여 그들의 삶도 보고싶었다. ■ 박부곤

박영경_유토피아에 대한 물음_책에 비단_20×16cm_2018

유토피아에 대한 물음 ● 안에 그려지진 작품은 동원의 소상도이다. 이 작품은 초기 강남산수로 동양화를 배우는 학생들이 기법와 구도등을 기본적으로 배우는 매우 유명한 중국의 명화이다. 사실 강가를 잘보면 여인을 인신공양하는 강강수월래 모습의 원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그림을 점점 확대하여 원형의 사람들을 계속 커지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우리는 마치 그 존재가 없는 것처럼 유토피아를 보듯 그림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소비하며.

박영경_심청뎐-동두천의 언니들_조각, 비단_길이 15cm 내외_2018

심청뎐-동두천의 언니들 ● 장례치를때 쓰는 상여의 장식품인 목인인형중 심청이 같아보이는 것을 선택해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아이디어는 상여에 끼우는 접합부이자 윤금이 사건을 연상되어 만들었으나, 한 개인이 아니라 사건을 중심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분들의 슬픔은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알수없고 하나의 소재로 전락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만든 비단인형은 심청이와 같이 사회시스템에 교육받아 본인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고 따르는 심청이이고, 그것을 옳은일이라 따르라고 교육받는 우리들이다. 그리고 포장지는 우리가 이런 일을 받아들이는 무게이자 느낌이다. 당연하게 여길만큼 가볍고, 쉽게 사먹을만큼 아무일도 아닌,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읽지 않는 영양정보에 그 음식에대한 보고서가 적혀있듯 이 인형의 포장지에도 사건의 보고서가 객관적으로 적혀있다. ■ 박영경

심수옥_래위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18 심수옥_없습니다_캔버스, 패널에 아크릴채색_32×24cm, 25×18cm_2018
심수옥_원환걷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와이어_27×45cm_2018 심수옥_시작과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9×116.8cm_2018

존재의 근원적 두려움 ● 살아내고 죽는 것이 이미 거기에 이루어져있고 거기에 더 보태고 뺄 것이 없다면 현재도 부질없는 것... 나는 이혜진의 시에서 냉소적이나 따뜻한 낭만이 좋다. 덕분에 그림이 따뜻하고 가볍게, 쉽게 그려졌다. 박부곤의 "공명하는 빛" - "목적 없는 걸음으로 시작된 작가의 트레킹은 직선걷기로의 열망이 좌절된 자리에서 치유를 위한 기원을 담은 원환걷기로 승화된다. 이를 통해 폐허의 대지는 원시적 생명 에너지를 회복한다." 처음과 끝이 없는 순환의 고리, 어느 순간 분별심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지며 더 강렬해진 에너지를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마르틴부버의 "사이존재" - 이는 '나'의 자리에 '너'를 옮겨놓고 너로부터 비춰지는 나를 통해 세계를 인지하는 것... 두 달 남짓 시시포스의 바위를 대신 짊어져본 시간... 그들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노역에 잠시 머물게 허락 받은 시간이었다. ■ 심수옥

손이숙_무제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70×70cm_2018

한 모서리 ● 두 덩어리의 색을 보면서 무책임한 듯 보이는 '무제'라는 제목이 얼마나 적절한가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당근이거나 그녀 혹은 나이거나 그 무엇도 될 수 있게 자기를 게워내어 다른 것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심수옥 작가의 최근 전시 제목 '흔적'은 남아있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이미 과거로서 처음의 기억을 각인처럼 갖고 있다. 사진은 빛의 흔적을 필름에 남겨 그날 그때를 영원히 기억한다. 사진 위에 그녀의 시그니처 칼라를 덧칠하면서 말을 걸어오는 수많은 그녀들을 떠올린다.

손이숙_프레임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40cm_2018

또 한 모서리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심청전』의 아름다운 효 이야기는 다른 시각에서 보면 잔혹 동화이다. 심청은 강요된 효를 견디다 못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가련한 소녀, 심봉사는 무능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 처세에 능해서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로도 비쳐진다. 관성적으로 알고 있다고 치고 넘어가는 일들의 이면에 있는 또 다른 진실은 하나의 프레임을 덧씌울 때 강요되어지는 틀 같다. 일상의 시선으로 무심코 보던 것에서 다르게 보이는 일들을 발견하는 것은 레이어로 겹쳐져 있는 세상을 발견하는 작업이 된다. ■ 손이숙

이선애_범종금_포대기에 코튼실_77.5×147cm_2018

범종금 ● 생애 첫기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한참을 망설인 그이는 울음이라고 말했다. 칠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농사짓는 부모가 논으로 밭으로 일을 나가 돌봐줄 이 하나 없어 눈뜨면 많이도 울었단다. 보살핌을 받기보다 종손집안에 줄줄이 태어난 남동생들을 업어주고 살펴야 했고, 그시절 여자는 집안 일을 돕다 시집가는 그 길을 그이도 걷는다. 광주에서 서울 달동네를 수없이 이사다닌 지 어언 52년이 흘렀다. 심수옥의 "충만-허기"를 통해 헤지고 끈 떨어진 내 어릴적 포대기위에 그이를 불러내본다. 이실이, 장성댁, 용희 엄마, 할머니가 아닌 여자, 범종금.

이선애_상패동_사진, 사운드_10×10cm_2018

상패동 ● 귀신의 곡소리를 원했던가. 아니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공상태를 고대했나. 무연고인 묘옆에 누워 바람, 풀, 벌레, 새 소리, 멀리 차 소리..곧 예상치 못한 동성교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탁탁 치는 골프 공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상패동 공동묘지는 자연발생 공동묘지로 1960-70년 기지촌 여성 다수가 묻힌, 미군이 동두천에 남긴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곳이다. 망자의 공간에서 생(生)의 소리를 들으며, 이혜진의 시 "없습니다"가 말하는 죽을 자신이 없는 나는 오늘 다시 한번 달려보고자 한다. ■ 이선애

이혜진_그리다-없습니다_종이에 텍스트_가변크기_2018
이혜진_그리다-레위기_종이에 텍스트_가변크기_2018

친밀한 타자 되기 ●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는 일에 나는 여전히 서툴다. 사랑한다면 심각한 불쾌감을 공유할지도 모른다는 무질의 불안처럼 그 대상이 가족이든, 친구든 항상 거리를 둔 채 지내려 했다. 친밀감은 덜해도 피로감이 낮은 관계가 낫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어리석은 믿음은 타자와 거리 두기가 결국 내 경계를 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같다는 걸 인정하기 전까지 한 번도 의심받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가지 않으면 타자와 나는, 둘 다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나와 친하지 않는 모르는 누군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즈음 나는 높이 쌓았던 경계를 넘어 내게 타자가 되는 연습을 해 본다. 심각한 불쾌감이 아닌 낯선 쾌감을 공유하는 친밀한 타자가 되는 매력적인 연습이다. 「그리다」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작업이다. 아직은 더듬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나를 긍정하는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손바닥만 펼치면 세상의 이미지를 너무도 쉽게 불러들일 수 있는데, 그림 밖에서 그린 이 작업을 보려면 감상자가 다시 그려야 되는 이중 구조의 불친절한 작업이다. 하지만 다른 삶으로의 느린 여행을 함께 떠나 본다면 우리는 낯선 쾌감을 공유하는 친밀한 타자가 될 수 있다. ■ 이혜진

Vol.20181220e | 모서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