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미(悲劇美) : 모든 죽은 것의 표면

신승재展 / SHINSEUNGJAE / 申承宰 / painting   2018_1221 ▶︎ 2019_0106

신승재_집은 의사가 필요치 않아요 Home doesn't need a doctor_ 캔버스에 유채_160×16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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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221_금요일_05: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경기문화재단

관람시간 / 11:30am~07:00pm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www.facebook.com/INDIPRESS

지난 3부작 전시의 세번째인 이 전시는 잠과 죽음, 죽은 것들의 외피와 관련한 주제를 거쳐 비극과 비극미가 드러나는 사건의 전후를 드러내는 작업을 보여준다. 전시 속의 비극적 이야기들은 픽션과 논픽션,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역사와 개인, 현재와 과거 같은 이야기들로 혼재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영화적 또는 극적 구조를 통해 전해지는데, 이 구조 안에서 이야기들은 사건의 전과 후인 멈춤과 재생을 가능하게 한다. ● 이야기가 그림 안으로 들어갈 때 이 구조들은 시간적 연속성에서 벗어나므로, 극적 구조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신 그 안에서 이야기들은 미적 표면을 가진다. 미적 표면이란, 이야기로서의 비극이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과 이를 통해 미적 구조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비극적 표면이 비극미적 구조로 옮겨가는 형태이다. ● 때로는 이 표면이 비극적 이야기의 전부일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라거나, 그런 방향성을 내재하기 때문이기도 한 듯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든 비극이 결국 비극미로 향하는 것이거나, 비극의 수용이란 것은 비극미로 인하여만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 개별적인 이야기들 중에 몇몇은 다음과 같다.

신승재_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의 잠 (Non) Human Sleep_ 캔버스에 유채_162×130cm×3(triptych)_2017
신승재_Backlight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7
신승재_몇 가지 죽은 외피 Exterior of a few dead thing_ 캔버스에 유채_112×200cm_2017
신승재_세 남자의 느와르 Noir of three men_캔버스에 유채_70×63cm×3_2018

1. Noir of three men 세 남자의 느와르 ● 어둠 속에서 세 남자는 움직임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한다. 급작스런 암전으로 세 남자의 베너핏은 사라졌고, 누군가를 쏘기엔 너무 어둡다. 그러나 어둠이 찾아온 순간 세 남자는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운명에 맞닥뜨렸음을 부정할 수 없다. 눈이 이 암전에 적응하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눈이 밝아지는 순간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대로 상대를 발견해야 한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인지 자신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커진다. 박동은 흡사 총소리와 같아진다. 쿵. 쿵. 쿵. 누군가가 누군가를 쏜 것인가? 아직 어떤 충격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발사된 것인가? 이 압박을 견딜 수 없다. 마치 이 공간을 벗어나면 모든 치열한 긴장감에서 해방될 듯하다. 참지 못하고 바닥을 기어 문고리를 잡는 순간 문의 가느다란 빛 줄기가 새어 나온다. 탕! 탕! 탕! 세발의 총성이 빛을 향해 발사되고, 문지방 아래로 축 늘어진 손목이 드러난다. 탕! 탕! 탕! 끼이익. 미끄러진 손목 위로 문 그림자가 지나간다. 새어 나온 빛 줄기는 방안을 가로질러 얼굴에 닿는다. 귀, 이마, 관자놀이, 뺨을 지나 눈동자에 맺힌다. 탕! 탕! 탕! 세발의 총성이 빛을 향해 발사된다. 발 앞에 누군가가 쓰러진다.

신승재_포즈 앤 플레이(다이빙) Pause and Play (Diving)_ 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18

2. Excitement and Grace of Diving 다이빙의 흥분과 우미(優美) ● 한 사람이 절벽에 서 있다. 절벽 끝을 타고 오르는 바람이 가지런한 뒷머리카락을 날리게 한다. 바람은 발끝에서부터 종아리를 타고 온 몸을 휘감는다. 이미 이 모습만으로 사람의 머리는 절벽 아래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은 아래를 보는 대신 고개를 돌려 밟고 있는 지면의 끝을 응시한다. 지면을 떠나기 전 가장 안정적인 순간을 만끽한다. 흥분은 더 이상 감상적이지 않게 된다. 풍경은 더 이상 멀리 있지 않게 된다. ● 다이빙의 살아 있음과 생명력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예측 불가능한 긴장을 동반한다. 뛰어드는 행위가 자칫 영원한 불능의 영역으로 자신을 데려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그 행위를 행위 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가능을 증명한다. 이 흥분이 가지는 우아함은 사람이 가질 수 없는 한계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아무렴 이 우아함조차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미 떠난 발끝을 어찌하랴.

신승재_포즈 앤 플레이(지브랄타) Pause and Play (Rocket Gibraltar)_ 캔버스에 유채_145×120cm_2018

3. Rocket Gibraltar 로켓 지브랄타 ● 아이들은 순진무구하게도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는 상상을 했다. 불타는 배는 불타는 석양을 향한 항해로 일종의 본질로 들어가는 회귀적 본능에 다가간다. 아이들은 돌아오는 것, 끝나는 것, 없어지는 것에 연연하기보다 마지막 소원과 그 성취, 혹은 이뤄진 꿈에 행복할 마음을 상상했다. 이미 다가올 죽음이라 해도 누구라도 서두르지 않을 터, 소원하는 일은 오직 해협을 건너는 혼자만의 항해이다. 나의 손자들은 누구보다 이것을 잘 이해했다. 후대가 선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것인가? ■ 신승재

Vol.20181221c | 신승재展 / SHINSEUNGJAE / 申承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