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김준명展 / KIMJUNMYOUNG / 金俊明 / sculpture   2018_1227 ▶︎ 2019_0130 / 토,일,공휴일 휴관

김준명_가로적인 역사를 담은 도자기들 시리즈_2012~8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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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227_목요일_06:00pm

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송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입니다.

주최 / 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30pm / 토,일,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421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0)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전복, 해체, 변환의 지점을 빚어내기 ● 최근 몇 년간 회화, 조각, 퍼포먼스 등 특정 매체를 다룬 전시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중에서도 조각에 대한 탐구는 계속해서 전시의 주제로 당당하게 등장하고 있다.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조각이란 당신이 그림을 보기 위해 뒤로 물러설 때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무안하게, 지금의 조각은 이슈의 중심에 서 있다. 모더니즘 이후 좌대를 버린 조각은 재현을 포기했으며 화이트 큐브 밖으로 이동하면서 인스톨레이션이라는 개념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광범위함 때문에 한편으로는 무엇을, 그리고 어디까지 조각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정의 내리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 이렇게 매체에의 연구가 활발해진 작금의 미술계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도자로 작업을 해 온 김준명은 자신의 작업을 어디에 위치시킬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예와 조각 중간에 놓인 도자라는 매체를 오래 다뤄왔기 때문에 그에 한정된 작가로 읽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에게 있어 여전히 도예는 작업의 시작점이며, 탐구할 대상이자 풀어야 할 숙제이다. 때문에 작업에서 도예가 가진 고정적이고 한정적인 감각들을 새로운 언어로 치환하려는 조형적인 실험이 주요하게 반복된다. ● 그러나 작가는 도자기의 형태를 왜곡하거나, 파편화시키면서 그 의미를 억지로 뒤틀지 않는다. 도리어 항아리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기호로서의 도자기를 다시 읽게 만들 시각적 장치들을 사용한다. 「은밀한 행위로 복원한 도자기」(2013)에서 작가는 깨진 도자기의 틈에 각종 포장재를 끼워 형태를 복원시킨다. 그러나 사실상 쓰레기인 포장지로 누덕누덕 기워지면서 흰 도자기가 가진 전통과 숭고의 의미는 어그러지게 되며 이로 인해 도자기라는 기호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기의 사이에 균열이 발생한다.

김준명_가로적인 역사를 담은 도자기_세라믹_45×245×33cm _2015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김준명_Top&Bottom_세라믹_45×89×33cm_2015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가로적인 역사를 담은 도자기들」(2012-2018) 시리즈에서도 「은밀한 행위로 복원한 도자기」와 비슷한 모양의 항아리가 등장하는데 이는 물레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익숙한 형태이다. 그런데 작품 제목의 '가로적'이라는 단어와 각 항아리에 찍혀 있는 선과의 연결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작가는 도자기가 가진 역사성과 시대성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그럼으로써 우리의 사고방식을 형성하거나 조작하기도 하는) 수직적 구조라고 보았고 이를 전복시키고자 가로, 즉 수평적 인식을 조성하기 위해 항아리들을 다양한 형태로 접합시킨다. 이를 통해 이들은 개별 도자기가 아닌 단일한 덩어리(mass)가 된다. 또한 도자기가 장인의 손에서 하나하나 빚어져 고고한 미학의 영역에 놓인 마스터피스(masterpiece)라면 「가로적인 역사를 담은 도자기들」 시리즈는 각 도자기에 새겨진 캐스팅 흔적들이 증명하듯 그저 하나의 틀에서 복제된 동일한 형상들일 뿐이다. 이 덩어리들은 도자에 내재된 숭고, 역사성, 전통적 의미 등의 거대 담론을 거부하고 비틀어낸 하나의 오브제로 나타나고자 한다. ● 결국 이러한 작품들은 도예가 가진 고정관념과 그 뒤에 존재하는 거시적 담론들을 미시서사로 끌어내리기 위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험은 도자에 대한 형태뿐 아니라 더 나아가 형식에까지 이어진다. 「가로적인 역사를 담은 도자기들」이 도자기의 제작 방식과 형태를 비틀어 도예의 가치를 전복했다면, 「분리된 영역」(2010)과 「탈출한 드로잉(요가 시리즈)」(2014)은 도자기에 그려졌을 이미지들을 삭제하고 분리하여 전통적인 미의 도식들을 종이의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탈출한 드로잉」은 도자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과 산수의 청색 이미지가 작가에 의해 재해석되어 드로잉으로 전이되는데, 이 유머러스한 드로잉은 공예의 범주 안에서 국한된 도예의 미적 권위를 해체한다.

김준명_Hug_세라믹_44.5×62×40cm_2015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김준명_Hug-2_세라믹_47×63×41cm_2015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김준명_Twist_세라믹, 클레이_44.5×135×42cm_2015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앞서 언급한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전통/현대, 역사/미시서사 등의 경계 사이에 놓인 도자의 의미를 변환하고 해체하고자 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도자기라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도예를 읽(히)는 방식이다. 그간 전통적인 도자기 이미지 자체의 전복을 꾀했다면 이제 작가는 일상의 사물들에서 도예의 고전적 이미지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또한 그것을 어떻게 변환할 수 있는지를 찾아 나간다. ● 「탈출한 드로잉」(2018)에는 도자로 만들어진 화분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이 화분처럼 일상에서 사용되는 도자기 그릇들은 여전히 고전적인 도자기의 수식을 따라 고풍스러운 문양 혹은 산수의 풍경을 청색 유약으로 새겨낸다. 작가는 그 이미지를 락카 스프레이로 지워버리고 그 그릇들을 한데 모아 복제된 전통의 수식을 삭제시킨다. 그리고 그 위에 형형색색의 드로잉을 입혀 도자가 아닌, 일상의 사물이 예술로 변이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 일상의 물건을 예술의 영역 안으로 불쑥 들이밀어 물음을 던지는 작업은 「Collections」(2018)로 이어진다. 작품 제목처럼 「Collections」는 수석이 보관된 진열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석은 크기, 색, 강도 등의 엄격한 기준이 동반된 까다로운 평가를 거쳐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그 미를 뽐내기 위해 섬세하게 만들어진 좌대 위에 전시되는데, 작가는 수석 수집가의 행위를 예술 행위와 겹쳐 놓으면서 「Collections」를 통해 수석 진열장을 '재현'한다. 여기서 작가에 의해 재현된 수석은 예술인가 그저 복제된 도자기인가? 혹은 작가가 만들어낸 수석은 가짜이기 때문에 가치를 보유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예술의 권위를 내포한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Collections」는 어떻게 그 의미를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하는 「Collections」는 도자를 둘러싼 관념에 대한 질문에서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의 질문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킨다.

김준명_Four sides_세라믹_61×61×45cm_2015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김준명_Collections_세라믹_가변크기_2018_부분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이 글에 모두 언급하지는 못했으나 김준명의 작품들은 하나의 키워드로 다소 묶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맥락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작품 대부분의 재료는 모두 도자이다. 김준명에게 도자는 단순히 재료적인 측면에서의 탐구 대상이 아니다. 다만 작가는 도자라는 매체가 오랜 시간 동안 역사 안에서 그리고 사회적 맥락 안에서 견고하게 다져온 기의들을 분해하고 대신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도자를 통해 여러 서사를 이어온 작가가 매체와 주제 사이에서 선택할 언어가 과연 무엇일지, 향후 그의 작업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이분법적인 경계들을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찾아낼 작가의 새로운 '빚기'는 앞으로 어디를 향할 것인가. ■ 김미정

Vol.20181227b | 김준명展 / KIMJUNMYOUNG / 金俊明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