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유展 / KIMJIYOO / 金池柚 / painting   2019_0116 ▶︎ 2019_0122

김지유_끈_종이에 먹_21×29.7cm_201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 (관훈동 100-5번지) 1층 Tel. +82.(0)2.736.6669 www.galleryis.com

붓의 끌림 ● 머지않은 미래에는 우주를 탐험하고 다른 행성으로 여행이 가능해질 것이다. 넓은 우주의 여행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한다 해도 수십년에서 혹은 수백년이 걸리는 여행도 있을 것이다. 긴 여행 중 이동하는 지루함 혹은 생애 내에 여행을 마칠려면 동면상태로 이동하고 도착할 즘에 깨어나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며 이런 방식은 영화와 소설에 자주 등장 한다. ● 지구에서의 삶과 인연을 정리하고 새로운 행성에서 다시 펼치기 위해 떠난다고 가정하자 최신 기술이 농축되어있는 우주선에 충분한 식량과 재능 그리고 꿈을 싣고 동면에 들어간다. 여행은 길지만 자고일어나면 그 기나긴 시간은 한나절처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문제에 의해서 여행자 중 나혼자 깨어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호텔과 같은 호화로운 우주선에는 충분한 식량이 있고 무료함을 달래줄 여러 가지 장치들이 있다. 하지만 남은 건 혼자이다. 지구에 있을 때처럼 질병과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걱정과 근심이 없는 천상의 무릉도원이 또 있을까? 처음 몇 개월은 즐겁겠지만 너무나 안정적이고 반복되는 일상은 외로움을 느낄 것이고 우울감에 지칠 것이다. 위 내용은 영화 패신저스의 일부 내용이다. 작가는 우연인 듯 운명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자기내면의 에너지를 지금까지 이어진 인연과 관계를 작은 그림들로 그려가기 시작했다.

김지유_끈_종이에 먹_21×29.7cm_2018
김지유_끈_종이에 먹_21×29.7cm_2018

화면을 유영하듯이 붓이 끈처럼 이어지면서 연결되는 작업은 인체의 형체를 주로 화면에 구성한 그림이다. 가장 근원적인 형체를 보여주는 이 그림은 동양화론적으로 본다면 무척 골법적이다. 화면을 가장 간소하게 하는 일, 그것이 화면을 골법화하는 일일 것이다. 골법이란 근원 형체를 뜻한다면 그 근원 형체는 끊임없는 관조 속에서 발전해가는 가장 간소한 형체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근원적인 감정도 뜻한다. 결국 그렇다면 골법이란 형체의 기본형 및 그 형체 안에 갖추고 있는 감정의 뜻인 셈이다. 근원이자 형체를 지탱하는 것이 기氣 아니던가? 그것이 바로 골법적인 성질이고 또한 기운의 표현이 다름 아닌 운이다. 다시 말해 화면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전개하는 내적인 힘을 말하게 한다. 작가가 보여주는 선은 붓의 이끌림, 그 흔적은 형체로 집적되지 않고 충동과 일상에 연결된다. 작은 화면이 연결되고 조립되면서 진동하고 출렁거리며 꿈틀댄다. ● 붓의 끌림은 결국 붓에 먹이 묻어서 물에 의존해 화면 속으로 그어진다. 그러니깐 먹이 지나간 자국 같은 것, 길, 통로, 흔적이 그림이 되는 것이다. 오로지 붓질과 먹만으로 화면을 채운 그림이고 그 흔적 자체가 이미지가 된 그림이다. 붓질이란 다름 아닌 작가의 신체적 행위의 기록인 셈이다. 붓을 통해 자신의 신체 굴곡과 이동, 움직임, 호흡, 떨림 같은 것들을 드러낸다. 그 흔적은 반복적으로 보인다. 화면은 그런 행위의 무수한 반복들로 가득찬다. 반복됨에 따라 그것들은 일정한 리듬을 보여준다. 일상적이면서도 동시에 발생적인 것, 여기서 선, 그 흐름과 궤적은 화면에서 완성되는 형체가 아니라 기억과 우연 속에서 완성되는 형체이다. 의미로서 완성되는 형체라는 이야기이다. ● 수천 장에 달하는 놀라울 만큼의 작업량은 하나하나의 작업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된다. 각각의 의미와 내용은 작가의 고민과 지난 세월을 극복하기 위한 치유와 성찰을 담고 있다. 종이와 먹과의 관계에서 이루이지는 끈과 같은 그림은 한 편의 영화와 같이 화면에 투사되어 비춰진다. 작가의 붓질은 전적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절실한 끈 같기도 하고 물의 흐름 같기도 하다. 화면은 생기를 얻고 아직도 생성중이며 붓의 선하나가 파문을 던지고 무수한 출렁임을 만든다. 그곳에 우주의 호흡과 이치가 넘실댄다. ■ 주도양

김지유_끈_종이에 먹_21×29.7cm_2018
김지유_끈_종이에 먹_21×29.7cm_2018
김지유_끈_종이에 먹_21×29.7cm_2018

그린다는 것, 그려서 남겨진 것에 대한 의미나 가치 이전에 나는 그린다는 것 자체가 전부였다. 그냥 무조건 습관처럼 그렸다. 타인과 소통할 수 없었던 나의 20~30대의 방황과 결핍에서의 도피적 행위였고 유일한 통로가 되어 준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그 자체인 것 이었다. ● 삶의 어느 시점에 이르러 습관과 같은 그 일은 바빠진 일상으로 인해 한동안 밀리게 되었고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연찮게 작업에서 멀어진 기간 동안 그간 그려진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왜 그리고 그리는 것에 집착했던가. 그것은 지난 나의 상처를 정면에서 맞서 다시 보고 재해석 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것이 얼마나 나를 완성해 준 일이었는가 깨닫게 된다. 완성이라는 표현은 감히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과거의 방황에 비하여 그렇다는 것. ● 그 즈음에 상처에 대하여 시를 읽고 위안과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의 지난 상처와 외로움에 숨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로 인해 그린다는 것을 동반한 내 삶은 또 얼마나 풍족해지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 일상의 크고 작은 속삭임, 흐트러짐, 로맨스, 상상 등 나와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현상이 매개가 되어 진정 소통할 수 있는 그림꾼 으로 보는 이에게 다가가고 싶다.

김지유_끈_종이에 먹_가변설치_2018
김지유_끈展_갤러리 이즈_2019

상처에 대하여 ● 오래 전 입은 누이의 /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 젊은 날 내내 속썩어쌓더니 / 누이의 눈매에선 / 꽃향기가 난다 / 요즈음 보니 / 모든 상처는 꽃을 / 꽃의 빛깔을 닮았다 / 하다못해 상처라면 /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 오래 피가 멎지 않던 /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 향기가 베어나는 가슴속엔 /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 잘 익은 상처에선 / 꽃향기가 난다. (시인_복효근) ■ 김지유

Vol.20190116b | 김지유展 / KIMJIYOO / 金池柚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