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Art~: Pixel ∙ Line ∙ Touch

윤제원展 / YOONJEWON / 尹堤圓 / painting   2019_0118 ▶︎ 2019_0124 / 일요일 휴관

윤제원_Pixel ∙ Line ∙ Touch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진주가루, 젤_91×73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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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원 블로그_blog.naver.com/kakan8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서진아트스페이스 SEOJIN ARTSPACE 서울 중구 동호로27길 30 Tel. +82.(0)2.2273.9301 www.seojinartspace.com

가상과 현실은 등가equivalence 된다. 그것은 바로 왜곡된다는 점이다. 현실과 같이 가상이 왜곡되고 가상과 같이 현실은 왜곡되는 것이다. 제각기 발생한 그들의 일그러짐은 서로에게 맞물리고 연쇄반응을 일으켜 종국에는 그 무엇으로 대체된다. ● 사이버스페이스란 가상의 공간에서 바라보면 회화와 사진과 컴퓨터그래픽의 상관관계는 상당히 모호하다. 사진 같은 회화가 많고 컴퓨터그래픽 같은 회화도 많다. 회화 같은 사진도 많고 마치 컴퓨터그래픽 같은 사진도 많다. 더불어 사진 같은 컴퓨터그래픽도 많고 회화 같은 컴퓨터그래픽도 많다. 그곳은 무엇이 회화이고 사진이며 컴퓨터그래픽인지 구별하기 힘든 이미지 홍수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은 수많은 미디어들을 등가 시켜버렸고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현실이 가상을 닮아가고 가상이 현실을 닮아가는 세상을 살고 있다. 가상과 현실은 서로 일그려져, 그들 사이의 구별이 없어지는 시대라고 흔히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가상과 현실이 닮아져 있는 것일까? 사람의 얼굴을 구별해 내기는 쉬우나 사람의 얼굴을 그려내기는 어렵다. 알파고와 특이점은 유명하지만 A.I의 메커니즘은 설명하기 어렵고, 포켓몬고는 유명하지만 게임과 AR기술을 미학적으로 풀어내긴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 디지털시대와 회화라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현대인들은 매일같이 스마트폰과 모니터의 화면을 응시한다. 수많은 정보와 이미지들...현대의 전뇌(電腦) an electronic brain 라고 까지 불리며 우리들을 정보의 바다로 이끄는 이들 단말기를 통해 우리는 매일같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소통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속의 이미지나 정보들이 과연 사실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을까? ● 재미있는 점은 그 속의 이미지들은 이미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조작이라 해서 거창한 과정이나 커다란 목적성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흔히 뽀샵이라고 일컬어지는 포토샵photpshop 프로그램이나 유사기능의 앱app 등 을 통한 리터칭 그 자체만으로도 조작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그 의미가 성립되니 말이다. 또한 피사체가 이미 사진기라는 신체적 안구와는 다른 시각에 노출되고 그것이 다시 컴퓨터의 언어인 0과1로 변환되어 DPI(dot per inch) 로 환산되면서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정보적 손실을 야기한다. 이를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형상으로 '수정'하고 그것은 다시 물리적 한계가 있는 크기만큼의 화면(TV나 모니터, 스마트폰 또는 인쇄출력물 등)에 출력되면 이러한 이미지들은 현실성을 기반하고 있기는 하나 현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가상이라는 버추얼virtual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버추얼이라는 또 다른 기원으로 회기 하는 것이다.

윤제원_Pixel ∙ Line ∙ Touch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이론상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아톰atom의 세계는 비트bit(이진법의 최소단위)의 세상인 사이버스페이스와 닮아있는 부분이 많다. 현실세계는 원자로 구성된 점과 선과 면으로 모든 구조체를 형성하고 있고 빛을 통해 그 모양과 색감을 발현한다. 가상세계 역시 픽셀pixel 로 이루어진 점과 선과 면으로 모든 구조체를 형성하고 픽셀 각각이 가지고 있는 빛점들을 통해 색감을 드러낸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두 세계를 드러내는 이미지는 아주 명확한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재현이라는 측면에선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만약 컴퓨터그래픽을 명확한 폴리곤값 과 색상값 으로만 구현한다면 그 이미지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실성과는 거리가 발생한다. 명확한 비트인 폴리곤은 깔끔하고 날카로우며 심도에 의해 불가피한 렌즈적 초점과 필름의 한계적 입자성도 없다. 과도하게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비사실적이다. 따라서 해상도를 낮추고 경계를 왜곡하고 잡티를 부여하여 의도적으로 훼손시켜야 비로서 재현적인 이미지가 탄생하게 된다. 터치의 집합인 회화도 마찬가지다. 원근법을 이용해 왜곡하여 형태를 잡고 독자적인 색상들 사이에 다양한 물감을 조합해서 색상층을 첨가하고 명확한 윤곽선과 터치를 블러질 해서 뭉개는 과정을 통해 사실적 이미지를 구현한다. 결국 이들이 재현적 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값 위에 노이즈를 얹어야 하는 것이다. ● 이렇듯 역설적이게도 노이즈는 우리에게 '사실성' 또는 '사실성 같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 몸 대부분의 구성요소는 물이지만 순수한 물은 몸이 받아들일 수 없어 미네랄 같은 불순물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우리는 언제나 세상의 많은 것을 일정한 노이즈와 함께 받아들인다고 할 수 있다.

윤제원_Pixel ∙ Line ∙ Touch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진주가루, 젤_72.7×60.6cm_2018

이쯤에서 키워드가 도출된다면 그것은 정보, 이미지, 명확함, 왜곡, 픽셀, 터치, 노이즈가 아닐까. 이번 전시와 전시를 구성하는 모든 작품의 제목은 「Pixel·Line·Touch」인데, 픽셀은 사이버스페이스 이미지의 최소단위 이고 터치는 회화 이미지의 최소단위 이며 픽셀이나 터치가 연결되면 라인이 된다. 나는 정면과 측면, 캔버스의 5면에 물감의 순색을 배치하여 경계를 블러질해 그라데이션을 만들었다. 그 위에 펄과 자개를 섞은 겔의 레이어를 수십 회씩 중첩해 나간 후 인터넷에서 무작위적으로 수집된(때론 인터넷이 나에게 강요한) 이미지를 포토샵에서 적당히 조작하여 프로젝터로 화면에 투영한다. 그리고 이미지의 빈 곳을 수만 번의 오일터치의 중첩으로 쌓아 올린다. 생각보다 두터운 겔의 층위에 의해 오일터치들은 배경 레이어와 물리적 거리를 가지며 공간을 만들게 되는데, 그 속에 수많은 펄과 자개가 부유하고 있어 이들은 빛을 받지 못하면 검은 입자로 보였다가도 빛을 받으면 현란하게 산란하기도 하지만 이미지가 디지털화 되면 그 정보는 상실된다. 마찬가지로 수만 번의 터치란 노동의 정보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소거되고 명확하게 비워 놓은 그 공간에서 오히려 형상이 드러난다. 엄밀히 말해서 수집된 이미지의 빈 곳을 인덱스index적으로 그렸다는 명확한 사실이 디지털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보가 왜곡되고 경계가 뭉개지고 노이즈가 얹어져서 단 하나의 터치라는 재현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다.

윤제원_Pixel ∙ Line ∙ Touch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진주가루, 젤_91×73cm_2018
윤제원_Pixel ∙ Line ∙ Touch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진주가루, 젤_91×73cm_2018_부분

기존의 미디어를 모방하던 디지털 이미지가 독자적인 모습을 모색하고 있고 기존의 미디어가 디지털적 요소를 닮아가면서 바야흐로 디지털미디어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미디어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허나 디지털시대의 현재 좌표는 우리가 지금껏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메커니즘과 비슷하게 정보손실과 노이즈, 즉 왜곡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Pixel·Line·Touch」를 실제로가 아닌 어떠한 매체를 통해 관람하거나 원근에서 심도를 지닌 체 관람하게 된다면 그들이 눈 앞에서 현시 되었을 때 몇몇 작품들에게서 낯선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낯설음은 그러한 괴리에서 발생한다. 현실은 가상에 의해 왜곡되고 가상은 또 다시 현실에 의해 왜곡됨이다. 이러한 인지를 위시하여 우리의 판단은 극도로 불안정하고 상대적 관점을 가지게 된다.

윤제원_Pixel ∙ Line ∙ Touch_캔버스에 유채, 안료, 진주가루, 자개, 젤_100×80.3cm_2018
윤제원_Pixel ∙ Line ∙ Touch_캔버스에 안료, 진주가루, 자개, 젤_14×14cm_2018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는 그의 저서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컴퓨터 사용자들은 뉴미디어 디자이너의 정신적 궤도를 따르도록 요구받고 있다고 한다. 산업사회의 문화적 기술들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육체적 이미지와 동일시하게 만들었다면, 상호작용적 미디어는 다른 사람의 정신적 구조와 동일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관객들이 영화배우의 육체를 갈망하고 모방하려고 했던 반면, 뉴미디어 사용자들은 뉴미디어 디자이너가 구축한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지도록 강요받고 있다. 마노비치는 또한 "인터페이스는 컴퓨터 사용자가 컴퓨터를 생각하는 방식을 고정시킨다 또한 사용자가 컴퓨터를 통해 접근하는 모든 미디어 객체를 생각하는 방식도 결정한다."고 말한다. 인터페이스를 잘 다루면 힙하고 못다루면 올드하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기술의 발전은 수 많은 정보들이 내 손 안에서 검색이 되게 만들었고 우리의 사회망은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넓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더 잘 잊어버리고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도 대화는 하지 않고 SNS를 들여다 본다. 사이버스페이스의 트래픽 75% 이상이 동영상을 보는데 사용된다며 이미지의 시대라고 하면서 정작 그 스트리밍 동영상들의 화질은 제한적이다. 디지털파일은 완전한 자기복제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이미지 파일은 돌고 돌면서 점점 이미지의 품질은 낮아지고 픽셀은 뭉개져, 흔히 이야기하는 '해상도가 떨어지는' 상태에 놓여지게 된다.

윤제원_Pixel ∙ Line ∙ Touch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진주가루, 자개, 젤_91×65cm_2018

최근 화재가 된 오비어스(Obvious)의 A.I의 그림 에드먼드 데 벨라미(Edmond de Belamy, 2018) 역시 회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잉크로 프린트 된 작품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현시 된 회화 이미지는 손실되지 않은 아날로그적 정보를 간직한다. 그리고 모든 이미지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어버리는 디지털 이미지와 달리 회화의 시각정보는 촉각성을 수반한다. 회화 이미지는 아무리 다듬어도 디지털 이미지 보다 촉각적이다. 회화는 기존의 평면이라는 속성 대신 천과 나무와 질료, 터치, 먼지, 반사율, 측면 등 공간적이자 촉각적인 오브젝트로서 존재하는 시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미디어는 물론 뉴미디어가 범람하는 디지털시대에 회화가 가지는 회화성은 가상성을 가진 이미지와 차이를 보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획득이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과거에 주창되었던 역사적 사건과는 또 다른 의미이다. 디지털 시대, 디지털화의 특성으로 인해 회화의 의미망이 변화하고 있다. ■ 윤제원

Vol.20190118b | 윤제원展 / YOONJEWON / 尹堤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