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OSCAPE

젠박展 / JENPAK / painting   2019_0126 ▶︎ 2019_0322 / 일,월,공휴일 휴관

젠박_lego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8

초대일시 / 2019_0126_토요일_05:00pm

아르세 갤러리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아르세 갤러리 ARCE GALLERY 서울 강남구 삼성로146길 9 2층 Tel. +82.(0)2.511.5780 www.arcegallery.com

아르세 갤러리(ARCE GALLERY)는 2019년 1월 26일부터 3월 22일까지 젠 박 작가의 전시 『LEGOSCAPE』展를 개최한다. 레고를 반복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쌓으며 자신만의 이상세계를 구축하는 젠 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지속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는 LEGOSCAPE 시리즈와 그의 근간이 되는 legoscape(-ing) 작품을 선보인다. ● 작가는 레고라는 작은 단위들을 이용해 세상을 조립, 구축하는 것을 반복하고 때로는 해체시키기도 하며 본인의 이상적 공간을 건설한다. 이를 표현한 작업 "legoscape(-ing)"는 곡선을 위주로 레고를 쌓듯 건물을 질서 있게 쌓아가지만, 완벽한 색과 공간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생각이 표출되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심리를 느낄 수 있다. ● 구체적인 시각적 탐구를 위해 매체 변화를 주어 그려진 "LEGOSCAPE"는 레고의 구조적인 형태에 근간을 두고 그 형태를 해체하고 단순화하여 궁극적으로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표현한다. 미니멀리즘적이며 직선적이고 추상적인 색면 구성이 두드러지는 시리즈 작업은 분할된 면의 색상은 조화롭지만 역설적으로 서로 충돌하는 부분을 보는 이로 하여금 양면적인 마음이 들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업은 시스템으로 지배되는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며, 불완전한 세상의 밸런스를 맞추고자 한다. ■ 아르세 갤러리

젠박_lego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18
젠박_lego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30cm_2018

나는 레고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을 캔버스에 옮긴다. 직선적인 형태와 면 분할, 그 안에 입혀지는 색상은 조직적이고 한정적이며 질서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나의 레고를 모티브로 한 초기의 작품들은 이러한 부분을 자신의 상황으로 인식하고 표현하였는데 그 안에 보여 지는 선들은 앞에 말한 것과는 다르게 자유로운 선들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나의 모순적 감정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질서적인 체계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회적 굴레안의 나의 모습을, 반면에 그 틀 안에서 벗어나 나만의 중심과 세계를 구축하려는 이면의 또 다른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새로운 빌딩들이 올라가는 것처럼, 그리고 헌 빌딩을 무너트리는 것처럼 나는 나만의 도시를 캔버스 안에서 적립한다. 캔버스는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색들이 상호작용하는 것이 우리의 세상과 같다. ● 내 작품 속에서 어느 색들은 조화롭고 어느 색들은 어우러지지 못한다. 완벽한 선이나 완벽한 색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완성되지 못한 유토피아라고도 부르고 싶다. Legoscape는 lego와 cityscape과 escape을 연결해 만든 합성어이다. 누구나 일상 속 탈출을 꿈꾼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레고를 통해서 현실도피를 하고 싶다는 시도를 해본다. 매일 보는 도시와는 또 다른 세상을 나는 기대한다. ■ 젠박

젠박_lego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61cm_2019
젠박_lego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8×38cm_2018

레고도시, 내적질서의 표상 혹은 내면의 유토피아 ● 풍경은 그저 보이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가치중립적인, 중성적인 지평이 아니다. 주체에서 풍경으로 건너가는, 풍경에서 주체 쪽으로 건너오는, 주체와 풍경과의 긴밀한 상호 간섭과 상호작용이 열어놓는 전망이다. 그렇담 그렇게 건너가고 건너오는 것은 뭔가. 해석과 욕망과 감각현상이다. 해석과 욕망과 감각현상의 질에 따라서 이런 풍경 혹은 저런 전망이 열린다. ● 곰브리치는 풍경을 표현과 재현의 상호작용이 열어놓는 전망이라고 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물질적 상상력(그러므로 물질과 상상)이 매개가 돼 열리는 전망이라고도 했다. 메를로퐁티는 주체와 세계 사이엔 우주적 살로 채워져 있어서 주와 객으로 구분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하이데거는 그렇게 주와 객이 유기적인 한 몸을 이룰 정도의 긴밀한 상호작용에 의해 비로소 세계가 열린다고 했다. 하나의 풍경, 하나의 전망, 하나의 세계는 그렇게 치열한 과정을 통해서 열린다. 지난한 진통과정을 겪은 연후에야 비로소 열린다. 그 전에는 그저 무지몽매한 암흑이며 오리무중의 혼돈이 있을 뿐. 그러므로 그렇게 열린 세계가 누구에게나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그러므로 풍경은 주체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어떤 전망을 열어 놓는지, 세계에 대해 어떤 욕망을 투사하는지에 대해서, 풍경 자체보다는 오히려 풍경을 연 주체가 어떤지(이를테면 주체의 세계관과 자연관)에 대해서 말해준다. ● 그렇담 젠박은 어떤 풍경, 어떤 전망, 어떤 세계를 열어놓는가. 그가 그림을 통해 열어놓는 전망은 작가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작가의 그림을 대면하고 있을 우리 모두에 대해 어떤 유의미한 의미를 내포하는가. 그 의미야말로 작가의 그림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며 전제가 될 것이다.

젠박_lego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8×38cm_2018
젠박_lego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61cm_2019

젠박은 자기 그림의 주제를 레고스케이프라고 부른다. 레고풍경이다. 주지하다시피 레고는 하나하나의 단위원소(모나드 혹은 단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단위원소와 단위원소를 연결하고 쌓는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 집이며 교회 같은 도시의 단위구조를 만드는, 그리고 이를 통해 부분과 전체, 해체와 집합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형식 실험하게 만드는, 그 과정에서 특히 유희와 놀이를 통해 형식실험을 수행하게 만드는 장난감이다. 임의적이고 가변적인 틀 안에서 하나의 도시를 세우고 허물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는(차이를 반복하는) 어린 도시설계자를 위해 고안된 장난감이다. 그렇게 레고가 열어놓는 풍경은 임의적이고 가변적이다. 이런 임의적이고 가변적인 성질로 인해 레고는 비로소 놀이와 유희의 대상이 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어쩜 이런 임의적이고 가변적인 성질이야말로 레고의 전제조건이며, 나아가 어느 정도는 모든 놀이와 유희(그리고 어쩜 창의성 그러므로 예술적 상상력)의 전제조건일 수 있다. ●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연유로 이런 레고풍경을 그리게 되었는가. 그에게 레고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바로 유년의 추억을 소환하고 호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좀 뜬금없다 싶지만 상실감 얘기를 해보자. 다만 그 종류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현대인은 이러저런 상실감을 앓는다. 고향을 상실하고, 자연을 상실하고, 신을 상실하고, 중심을 상실하고, 정체성을 상실한. 그렇게 현대인이 상실한 것 중에는 유년도 있다. 상실된 유년에 대한 기억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인 만큼 상실감도 크고 그리움도 크다. 상실된 모든 건 그리움의 대상으로 전이된다. 상실된 것들만이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레고풍경을 통해 바로 이런 그리움의 대상을, 그러므로 어쩜 원형적 그리움을 되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해주는 계기며 단서를 마들렌 과자를 깨물 때 나는 소리와 입안에 맴도는 향이라고 보았지만, 작가의 경우에는 레고가 이런 프루스트효과(주체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로, 유년으로 되돌려주는 효과)를 위한 계기며 단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작가는 레고를 소환하면서, 동시에 유년을, 유년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그리움의 대상을, 그러므로 어쩜 현실의 방벽을 되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 현실의 방벽? 작가는 말하자면 자신이 처한 현실의 주변으로 방벽을 쌓는다. 레고로 방벽을 쌓고, 유년의 추억으로 방벽을 쌓는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작가에게 현실은 불완전하다. 좀 극적으로 말해 무지몽매한 암흑이며 오리무중의 혼돈이다. 그 혼돈 가운데 작가는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하고 싶다. 내적질서로 축조된 자신만의 성을 짓고 싶다. 니체는 예술을 아폴론적 충동과 디오니소스적 충동, 질서를 추구하는 충동과 생명력(사실은 혼돈을 통한 생명력, 그러므로 어쩜 혼돈과 맞바꾼 생명력)을 추구하는 충동의 상호길항과 부침으로 설명했지만, 작가의 경우에는 질서를 향한 충동이 예술가적 자의식을 견인하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 실제로 작가는 질서 때문에 레고에 끌린다고 했다. 작가에게 레고는 말하자면 질서의 메타포이며, 질서의식의 표상형식인 것이다. 누구나 일상 속 탈출을 꿈꾼다고도 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모든 사람은 이상을 꿈꾸며, 그러므로 어느 정도 이상주의자들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레고를 통해 현실도피를 위한 시도를 해본다고도 했다. 다시, 모든 사람은 일상 속 탈출을 꿈꾸고, 이상을 꿈꾸고, 현실도피를 꿈꾼다. 그리고 이때의 도피처는 당연 자기내면일 수밖에 없다(혹 재물을 꿈꾸는 것과 같은 외면을 향하는 경우가 영 없지는 않겠지만, 대개는).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내면을 파고들고, 작가의 경우에는 레고를 매개로 자기내면에 질서로 축조된 자신만의 도피처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그림은 바로 그 꿈(일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꿈)을 그린 것이고, 그 도피처(그러므로 어쩜 내면의 유토피아)를 그린 것이다. 유독 작가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점에서 작가의 그림은 보편성을 얻고 공감을 얻는다.

젠박_lego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3cm_2018
젠박_lego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3cm_2018
젠박_legoscape(-ing)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7

처음에 작가는 레고로 축조된 집이며 교회 그리고 가게가 어우러진 마을과 도시를 종이에 수채화로 그렸다. 보이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린 탓에 한눈에도 레고의 원형을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렸다. 사실적으로 그렸다고는 하지만, 레고의 원형 자체가 기하학적 형태를 띠고 있어서 어느 정도 추상적인 형태를 잠재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기하학적인 형태의 추상도시를 잠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재된 형태 자체가 다음 작품을 예고하고 있다고나 할까. 실제로도 작가는 다음 작업에서 캔버스에 아크릴화로 넘어가는데, 재료가 바뀐 만큼 형식도 변한다. 이번에는 레고풍경보다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색면 구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보기에 따라선 뉴욕색면화파의 변주 내지 재해석을 보는 것도 같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레고풍경에 착상된 것이지만, 눈에 띠게 단순화되고 양식화된 나머지 이게 원래 레고풍경에서 온 것임을 선뜻 알아보기가 어렵다. 여기에 전작에서와 같은 레고풍경 전체를 보여주는 대신 부분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그리고 그렇게 모티브 자체가 화면 전체를 채우는 식의 풀사이즈로 보여주는 탓에 그림은 더 추상화돼 보인다. 그림은 그렇게 다만 레고풍경에 착상된 것일 뿐, 레고와는 무관한, 그 자체 독자적인 회화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최초 레고풍경이라는 모티브를 추상화하고 양식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만의 회화적 양식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면 되겠다. ● 흥미로운 것은 두 가지 다른 이름으로 그렇게 변화된 화면을 명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각 Legoscape와 Legoscape(-ing)가 그것이다.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심플한 화면구성 쪽을 Legoscape로,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복잡하고 디테일한 색면 구성이 강조된 경우를 Legoscape(-ing)로 차별화한 것이다. 어쩜 최초의 레고풍경을 클로즈업해 그린 경우와, 이보다 더 부분을 파고든 경우로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다시, 어쩜 하나의 사물대상(레고풍경)을 놓고 가까이 볼 때 틀리고 멀리서 볼 때 다른, 일종의 시점차이를 적용해 그린 경우로 볼 수 있겠고, 전통적인 원근법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그린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 여기서 그 자체 자기 완결적인 의미의 Legoscape는 그렇다 치고, 미완의,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 Legoscape(-ing)는 또 뭔가. 결론적으로 말해 이 시리즈 그림은 그 자체 독자적인 그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그림과 결합되면서 무한정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될 때마다 전혀 다른 그림이 가능해진다. 앞서 레고도 그렇지만 놀이와 유희의 전제조건이 임의성이며 가변성이라고 했다. 작가는 말하자면 이 시리즈 그림을 통해 임의적인 개입과 매개에 대해 열려있는 상태, 비결정적인 상태, 가변적인 상태의 그림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스스로 확장해가는 자기 증식적인 구조, 트랜스포머처럼 스스로 모양을 바꾸는 자가 변신적인 구조가 가능한 그림을 작가가 발명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Legoscape에 꼬리처럼 붙어있는 (-ing)은 좀 유보적인 느낌이다. 이로써 작가는 유보적인 그림, 이행중인 그림, 가능태로서의 그림을 또 다른 플랜으로서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초 레고를 통해 자기내면의 질서를 구축하고 싶어 했던 작가가 당도한 지점, 혹은 열어놓는 또 다른 전망으로 볼 수도 있겠다. ■ 고충환

Vol.20190126a | 젠박展 / JENPAK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