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은 풍경 Unbeautiful-scape

윤정선展 / YOONJEONGSUN / 尹禎旋 / painting   2019_0130 ▶︎ 2019_0215

윤정선_슬프지 않은 풍경展_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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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130_수요일_05:00pm

주관 / 청주시립미술관_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로 55 Tel. +82.(0)43.201.4057~8 www.cmoa.or.kr/cjas

2018-2019년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입주기간동안 작품 성과물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선보이는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를 진행한다.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는 스튜디오 전시장에서 그간 작업했던 결과물에 대한 보고전시로 해마다 작가 자신의 기존의 성향과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과 역량을 보여주는 전시로 진행된다. ● 12기 열 번째 릴레이 전시로 윤정선 작가의 『슬프지 않은 풍경 Unbeautiful-scape』展이 오는 2019년 1월 30일부터 2월 15일까지 1층 윈도우갤러리와 2층 전시실에서 개최된다. 또한 전시개막 행사는 2019년 1월 30일 수요일 오후 5시에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로비에서 진행된다.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윤정선_슬프지 않은 풍경展_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_2019

슬프지 않은 풍경 : Unbeautiful-scape ● "만약 욕망이라는 게 무언가 부족한 것을 느껴 그것을 갖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꿈을 꾸는 것처럼 저의 욕망일 테니까요. 나의 욕망을 의도적으로 감추려고 하지는 않지만, 욕망은 참고 통제해야 하는 거라고 교육받고 자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욕망을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표출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고 살았어요. 밤의 풍경에 나 자신의 내재한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것들을 다르게 보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 윤정선의 『풍경이 된 감정』(북노마드) 중에서 ● 윤정선의 개인전 『슬프지 않은 풍경 : 언뷰티플-스케이프(Unbeautiful-scape)』는 1인칭 고백형식으로 그린 '기억'의 방대한 파노라마이다. 윤정선은 청주창작스튜디오의 1층 윈도우갤러리의 30미터에 달하는 벽면 한 가운데 마치 점처럼 보이는 작은 그림 한 점만 전시해 놓았다. 그것은 캔버스 10호 변형으로 손바닥에 들어오는 크기(10×12cm)에 그린 회화작품이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마치 사진처럼 언제든 가방에서 꺼내볼 수 있는 크기의 그림"으로 불렀다. 그 손바닥 크기의 캔버스에는 작가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 윤정선의 『슬프지 않은 풍경』은 작가의 '뒷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따라 걷고 있었다. ● 필자는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 걷는다. 일명 '화이트 박스(white box)'로 불리는 2층 첫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니 10호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200점의 작품들이 벽면을 따라 일렬로 설치되어 필자를 압도한다. 따라서 필자는 어떤 작품에 눈길을 두어야할지 난감해 한다. 결국 필자는 전시장에 전시된 200점의 작품들을 하나씩 하나씩 보기로 결정한다. 2층 첫 번째 전시장의 첫 번째 그림은 「그림 같은 집」이다. 그것은 작품 제목처럼 '그림 같은 집'을 그린 그림이다. 두 번째 그림은 청주에 있는 카페 「성 토마스(Sir Thomas)」를, 세 번째 그림은 청주 「숲속갤러리」를 그린 그림이었다. 네 번째 그림은 아파트 공터에 있는 「자전거」를 그린 그림이다. 그곳은 청주창작스튜디오 인근에 있는 아파트 공터이다.

윤정선_혼자만의 주소 My own addres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10cm_2019

그런데 윤정선은 그 공터에 '그림자'를 등장시켰다. 그 '그림자'는 윤정선이 그 공터를 찍을 당시 그녀의 뒤에서 비친 햇살로 인해 생긴 그녀의 '그림자'이다. 다섯 번째 그림 「첫눈」은 청주창작스튜디오 뒤편에 위치한 놀이터에 내린 첫눈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첫눈」이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란 점에서 작가가 2층 스튜디오의 창문을 통해 본 풍경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섯 번째 그림 「벚꽃이 필 때까지」는 2층 스튜디오 베란다 공간의 담 풍경을 그린 것이다. 담에 드리워진 앙상한 나무 가지들의 그림자와 함께 작가의 '그림자'도 등장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6점의 그림은 한결같이 윤정선이 작년 겨울 청주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그린 신작들인 셈이다. ● 일곱 번째 그림은 미국 볼티모어의 항구 이너 하버(Inner harbour) 「가로등」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윤정선은 그 그림을 이미 2004년도에 그렸다. 말하자면 그녀의 「가로등」은 2004년에 그렸던 그녀의 「가로등」을 차용해 다시 그린 것이라고 말이다. 아니다! 그녀는 2004년에 그렸던 「가로등」에서 '부분'을 차용해 다시 그렸다. 여덟 번째 그림 「이너 하버」 역시 2004년에 그린 그녀의 「이너 하버」 부분을 차용해 다시 그린 그림이다. 아홉 번째 그림 「펜 스테이션으로 가는 길(On the way to Pen station)」 또한 2004년에 그린 그녀의 「펜 스테이션으로 가는 길」 부분을 차용해 다시 그린 그림이다.

윤정선_내면의 항구 Inner Habou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10cm_2019
윤정선_2002년 5월 인천 In-chon in May 20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10cm_2019

1996년 윤정선은 이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볼티모어에서 대략 1년간 체류한다. 2004년 그녀가 그린 미국 볼티모어의 풍경들은 8년 전 과거를 회상하며 그린 그림들이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2019년 그녀는 볼티모어의 풍경들을 그린 구작들에서 부분들을 차용해 다시 그린 것이다. 2층 전시장에 전시된 200점의 작품들 중 6점만 제외한 나머지 194점은 모두 그녀의 구작들을 모델로 삼아 재구성한 그림들이다. 북경의 '자금성' 시리즈, 성북동과 북촌 그리고 삼청동 또한 종로 '골목길' 시리즈, '명동성당' 시리즈, 익선동 '한옥마을' 시리즈, 제주와 파주 헤이리 풍경 등이 그것이다.

윤정선_자금성의 봄 Spring in The Forbidden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10cm_2019
윤정선_헤이차오(黑桥)작업실 Studio in Heiqia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10cm_2019

물론 필자가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10호 크기의 캔버스에 그린 그녀의 신작들은 구작들에서 '부분'들을 차용해 다시 그린 그림들이다. 이를테면 그녀의 신작들은 구작들을 재구성한 그림들이라고 말이다. 그녀의 신작들과 구작들 사이에 또 다른 차이들도 있다. 색채와 그림자의 출현이 그것이다. 신작들은 구작들보다 색채들이 더 밝아졌다. 그리고 구작들에 없는 '그림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 그림자는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작가의 그림자'이다. '작가의 그림자'는 인물이 부재하는 풍경을 '화자(畵者)의 독백'으로 은유한다. 와이? 왜 윤정선은 자신이 그린 과거의 그림들을 차용하여 다시 그린 것일까? ● "200개의 작은 캔버스는 각기 다른 지난 십여 년간의 나의 대변인이다. 어떤 것은 과거 그대로 또 어떤 것은 이전의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확대하거나 색조를 변화하기도 하였다. 기억을 따라서... 머물렀던 옛길을 찾아서… 그 길 위에서 다시 이야기를 만든다. 어설프고 서툴러서 불완전했던 후회와 미련이 가득한 시간들의 여정. 나는 지금 또 다른 발자국을 하나둘씩 찍는다. 나의 새로운 여정을 위하여. 나의 그림자를 뒤로 한 체."(윤정선의 '작가노트' 중에서) ● 윤정선의 신작들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풍경 그림'들을 재구성한 그림들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신작들은 자신의 '기억에 대한 그림'을 재해석한 것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새로운 이미지를 그리기는커녕 오히려 과거의 이미지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그렸기 때문이다. 물론 200점의 신작들 중에는 아직 그려지지 않은 '텅 빈 그림'들도 그림들 사이에 전시되어 있다. 그 '텅 빈 캔버스'는 '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과 '망각'은 모두 현재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망각'은 화가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로도 열려져 있기 때문이다.

윤정선_슬프지 않은 풍경展_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_2019
윤정선_슬프지 않은 풍경展_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_2019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듯이, 지나온 내 삶의 여정을 바라보고 싶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집필한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 전에 느끼지 못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야를 발견할 수 있을까?"(운정선의 '작가노트' 중에서) ● 2층 첫 번째 전시장을 지나면 일명 '화이트 룸'으로 불리는 두 번째 전시장을 만난다. 그 '화이트 룸'에 1층 윈도우갤러리처럼 단 한 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10호 크기의 캔버스에 작가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그것은 1층 윈도우갤러리에 전시된 작가의 '뒷모습'과 달리 전시장에 전시된 자신의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다. 따라서 그 '뒷모습' 자화상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마지막 권이 제7권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e)』에서 마르셀이 해당 소설을 쓰듯이 다시 처음으로 회귀한다. ● 두말할 것도 없이 관객 역시 1인칭 고백형식으로 그린 윤정선의 「슬프지 않은 풍경」을 다시 거꾸로 감상하게 된다. 왜냐하면 관객은 그녀의 구작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한 방대한 '기억'의 파노라마를 새로운 시각으로 뒤집어 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그림으로 시각화'하듯이, 관객 역시 그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읽어내고자 한다. 물론 화가와 관객의 미션은 불가능(impossible)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불가능한 것들을 꿈꾸는 과정을 살고 있잖은가? ■ 류병학

Vol.20190131d | 윤정선展 / YOONJEONGSUN / 尹禎旋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