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IMATE FOREST II

정은주展 / JUNGEUNJU / 鄭恩朱 / painting   2019_0227 ▶︎ 2019_0626 / 일요일 휴관

정은주_INTIMATE FOREST II展_다인 아트 갤러리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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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DAIN Art Gallery 기획초대展

기획 / 최정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0:00am~02:00pm / 일요일 휴관

다인 아트 갤러리 DAIN ART GALLERY 충남 아산시 용화고길79번길 31 2층 (용화동 1583번지) Tel. +82.(0)41.548.7528 blog.naver.com/dainartgallery

플라뇌르(flâneur)란 느리게 걷는 산책자를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플라뇌르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계획을 계속 수정해가며 새로운 장소와 대상이 이끄는 대로 발을 내딛는다.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현대적 삶의 화가』라는 글에서 플라뇌르를 현대적 예술가의 표상으로 설명했다.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성(modernity)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어떤 것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 공존하는 것이다. 즉, 현대적 화가는 영원성과 우연성을 동시에 표현해내야 하는데, 이 능력은 플라뇌르가 지닌 관찰력과 흡사하다. 플라뇌르는 도시를 거닐며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이미지들에서 영원한 어떤 것을 순간적으로 잡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작가 정은주는 19세기 플라뇌르들처럼 자유롭게 소요(逍遙)하지만 오늘날 LTE 속도가 붙은 대도시 풍경이 아닌, 시간이 멈춘 듯한 고즈넉한 숲 속을 선택하여 산책을 시작한다.

정은주_INTIMATE FOREST II展_다인 아트 갤러리_2019
정은주_INTIMATE FOREST II展_다인 아트 갤러리_2019
정은주_INTIMATE FOREST II展_다인 아트 갤러리_2019
정은주_INTIMATE FOREST II展_다인 아트 갤러리_2019

이 숲은 이 곳에 들어선 자의 시각에 따라, 드리워진 계절의 흔적에 따라, 바라보는 자의 심정에 따라, 색과 자취를 변주한다. 우리를 압도하는 「Blue Forest」의 숲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이는 사실주의의 외관 속에 비밀의 정원을 숨기고 있는 듯 하다. 「Forest 12-17」은 숲이라기에는 다소 쓸쓸한 느낌을 주지만, 연작으로 반복되면서 어느덧 무성한 숲을 이루는 생성의 과정으로 읽힌다. 특히 이 숲은 가상과 실재 사이 어느 지점에 멈추어 있는 듯한데, 이는 작가가 손가락의(digital) 힘과 손적인(manuel) 힘을 서로 종속시킬 줄 알기 때문이다. 중첩된 이미지들 너머 더 깊은 숲에는 환상과 기억이 플라뇌르의 발길을 유혹한다. 「DayDream」, 「Season of Life 1,2」의 머리는 아직 몸을 만나지 못했거나 제 몸을 잃어버린 상태인데도, 가녀린 꽃줄기 위에 살포시 앉아 미소짓고 있다. 머리 없는 신체도 몸 속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식물들과 함께 그들만의 소요를 다시 시작한다. 그들의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더이상 이성의 눈이 아니다. 눈이 없어도, 눈을 감아도 산책은 계속된다. 오히려 소리 없이 날개짓하는 나비가 우리를 인도한다. 나뭇잎 하나만으로도 나무 한 그루가 되는 대유의 세계(「Life Sound」, 「Forest 10」)로, 좌우로 뻗어나가는 뿌리가 위계 없는 생성을 만들어내는 리좀(rhizome)의 세계(「Season of Life 5」)로 우리를 데려간다.

정은주_INTIMATE FOREST II展_다인 아트 갤러리_2019
정은주_INTIMATE FOREST II展_다인 아트 갤러리_2019
정은주_INTIMATE FOREST II展_다인 아트 갤러리_2019

플라뇌르는 숲의 지면을 밟고 소요하며 나비들은 허공에서 자유로운 탈주선을 그린다. 그들이 그리는 탈주선을 따라가보면 「나무 창문」에서처럼 나무 속에 창문이 나타나고, 창문 너머 또다른 집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렇게 나비와 함께 노닐다보면, 장자가 경험했던 것처럼 내가 플라뇌르인지 나비인지 분간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사실 정은주의 세계는 모든 것의 구별이 불가능한 지대에 놓여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탈, 가상과 실재, 인간과 자연을 가르는 경계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 경계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이미지 위에 붓을 놓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길이 아닌 곳을 주저하지 않고 드나들 수 있는 나비 또는 플라뇌르의 힘일지도 모른다. 숲 속에 아직 나지 않은 길을 따라 시나브로 걷고 있는 작가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보들레르의 시대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예술가가 잡으려 했던 영원성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경계가 나뉘어지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일탈과 변이를 용납하는 세계. 바로 이 곳에 예술이 거주하고 있다. ■ 한의정

Vol.20190226b | 정은주展 / JUNGEUNJU / 鄭恩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