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정기엽_최선 2인展   2019_0308 ▶︎ 2019_0330 / 월요일 휴관

작가만남 / 2019_0308_금요일_06:00pm

봉산문화회관기획 2019 GAP展

전시연계 워크숍 최선 : 예술의 시간 / 2019_0308_금요일_04:00pm 정기엽 : 작가와의 대화 / 2019_0316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1~3전시실 Tel. +82.(0)53.661.3500 www.bongsanart.org

2019 GAP_천국보다 낯선 ● 평범한 사람들에게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낯설기만 한 이(현) 세상, 열정적이고 의지가 강할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천국을 꿈꾸지만, 다시 말해 신세계를 꿈꾸지만, 천국이라 생각했던 그곳(미국) 역시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90년대 중반, 혜화동 독립영화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그 당시 분위기가 그랬던 것인지..., 멜랑콜리했던 세월이 대변되는 듯했다. 새로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이방인처럼,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에게 이 세상 혹은 저 너머의 세상은 신기루처럼 멀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갈구한다. 영화관람 후, 영화는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영화 제목을 수차례 마음속으로 되뇌며, 알 수 없는 세상과 삶 사이에서 나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 세계를 추구하는 일이 하염없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여전히 이 세상이 낯설기에… 그때를 회상하며, 2019년 『천국보다 낯선』이란 타이틀로 전시를 소개하려 한다. ●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유리상자를 통해 소개된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간 삶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 뭔가 결여되거나 비판적인 모습들이었다. 모더니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 일탈을 추구하면서 이 세상에 대해 외침과도 같았다. 이러한 내용을 하나로 전달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 다시 역으로 주제에 가깝게 작업하는 작가들을 우선으로 주목했다. 영화 『천국보다 낯선』이 필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이러나저러나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회의적인 현실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본적 없는 천국이란 이상세계에 대한 낯선 믿음과 자신의 위치를 찾아 헤매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젊은이들의 고뇌와 열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픈 이야기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럼, 작가들이 말하는 세상 혹은 바라보는 곳은 어떤 곳일까!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곳이기에 작가들의 해석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좀 더 나은 이상을 추구하기도 하며, 현실을 미적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이 또한 낯선 풍경이지만 멋진 세계다. 제각각 다른 형태와 내용으로 펼쳐지는 작품들이 뒤섞여 새로운 풍경 속으로 관람객을 인도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사회의 풍경이면서 구조적 사회란 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은 낯설지만 부조리한 우리네 풍경이기도 하다. ● 이번 전시에 참여해 준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현실(일상)에서 사용되는 사물 혹은 대상의 특징을 탈각시킴으로써 조형미를 구현해내는 특징이 있다. 특히 뒤샹이 이루고자 했던 탈맥락화 전략과 닮아있는데 오브제 투르베(Object trouve)의 미학적 접근으로 시작하고 있으나 조형적으로는 미적 환영의 또 다른 재현을 통해 상상의 깊이를 더한다. 때론 인식의 대상인 물질에서 질료로 거슬러 올라가 접근하는 작가들의 시도는 실험적이며 기발하고 순수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정기엽과 최선은 가장 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작가의 예술을 통한 사회적 발언, 특히 표현 방법이 남다른데 각각의 특징에 대해 생각하면서 전시장별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선_동아시아의 식탁_한국과 중국, 일본의 식당에서 모은 소, 닭, 돼지의 뼈들_가변크기_2014~7 최선_자홍색 회화_천에 2011년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돼지3백32만 마리의 숫자 인쇄_280×2300cm_2019 (2013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출품작 재설치) 최선_지렁이글씨_피그먼트 출력_각 90×60cm_2018

1전시실을 가득 채운 최선의 회화는 회화가 아니다. 어떠한 정보도 없이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하면 누구든 쉽게 추상미술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작품캡션을 보면 붓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생명체가 남긴 흔적들로 인간 본연에 가치를 두고, 침, 입김, 숨, 똥 때론 식물 또는 동물의 분비물이나 사체, 뼈다귀 등을 이용해 만들어낸 설치미술임을 알게 된다. 그럼, 이 정도의 정보를 통해 이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면 분명, 모더니즘 회화의 본질적인 가치나 의미를 부정하고 타파하는 듯한 아방가르드적 작품세계로 비추어질 것이다. 최선은 추상회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 또는 한계를 아주 근본적으로 지적하면서 자칫 허무주의로 기울 수 있는 추상회화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모호한 듯 분명한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완성도를 가진다. 그의 작품은 가치나 의미를 부정하는 듯하나 작품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강렬하다. 그래서 그의 언변과 작품 앞에 서면 숙연해진다. 바로 그의 비판의식과 실천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극단적인 욕구의 현상이자 결과물인 추상회화의 본질을 끊임없이 실천하기 때문이다. ● 『지렁이 글씨』, 『자홍색회화』, 『흰 그림』, 『멀미』, 『소금은 말한다』, 『동아시아의 식탁』 이렇게 7개의 작품이 소개되는 1전시실에서 필자가 최초 주목한 작품은 『자홍색회화』였다. 구제역으로 생매장된 돼지 숫자 332만 마리, 돼지의 등급을 나타내는 숫자를 높이 2.8m, 가로길이 23m가 되는 천에 마젠타 잉크로 찍어 설치한 작품이다. 생매장된 돼지의 숫자에도 놀랍지만, 그 수를 채운 최선의 『자홍색회화』란 작품도 놀랍다. 인간 중심적인 이 세상의 상황에 침묵하지 않고 그 진실을 작품으로 구현해내는 최선의 시도는 아름답다. 이어, 작은 열에도 쉽게 녹거나 굳어버리는 돼지기름으로 그린 『흰 그림』은 감상을 위해 그림 앞으로 다가설수록 감상자의 체온으로 녹아서 흘러내리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많은 사람이 볼수록 눈앞에서 흘러내리는 다시 말해 사라지고, 사람이 작품으로부터 물러나면 다시 흰 고체의 회화가 된다. 인간의 존재는 어쩌면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돼지를 눈물 흘리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회화의 환영과 장식성을 넘어서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예술의 의미를 묻고 구축해내고자 하는 작가의 신념과도 같다. 특히 숨, 체온, 바람, 냄새와 같은 보이지 않는 감각적인 질료를 사회적인 현상의 부조리함으로 대변되는 대상 혹은 사건과 연결해 미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 ● 오월과 유월 사이, 작가는 청와대 앞길을 지나다가 오디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생긴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검붉은 오디가 떨어진 자리를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며 생긴 얼룩이 작가에겐 핏빛으로 얼룩진 민중의 모습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특히 4.16, 5.18, 6.25 등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총알 자국이 남기고 간 핏자국처럼 보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유월의 오디』는 청와대라는 국가의 최고 권력이 통하는 상징적인 곳에서 마주치게 됨으로써 우리의 기억 속의 아픈 역사의 풍경화로 재현된다. 이어, 『동아시아의 식탁』은 작가가 일본에 있을 때 '동아시아의 꿈'이란 주제로 작품을 출품해 주길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세계정세 속에서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를 갈구하는 꿈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작가는 삼국의 어떤 공통된 무엇을 찾아야 했고, 그 안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그것은 뼈를 우려낸 국물을 먹는 공통된 음식문화였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한식당, 중식당, 일식당을 오가며 뼈를 모아 방부 처리해 전시장에 소개하게 된다. 우리가 이 작품에서 느끼게 되는 점은 공통된 문화를 가진 어쩌면 동족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다툼이다. 특히 닭뼈, 돼지뼈, 소뼈의 나열은 상징적인 이미지로 하나로 모여있는 우리네 풍경이기도 하면서 서로 싸우고 남겨진 잔여물 같기도 하다.

정기엽_제주예수(Jeju's Jesus)_삼다수, LED, 카메라, 모니터_가변설치_2019

2전시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정기엽 작가의 『제주예수 2019』로, 제주의 알파벳 표기인 Jeju를 jesus로 잘못 읽은 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보통 아름다운 자연 즉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이란 사실만 인지하고 제주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러나 제주는 4.3사건으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아픔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 제주의 모습은 이전과 또 다르다. '노른자 땅은 중국인들이 차지해 카지노가 들어서고 전망 좋은 곳은 일반인이 들어가기 힘든 고급리조트가 차지해 버렸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테마파크들이 난립해 있다.' 정기엽은 제주가 자본에 의해 겪는 희생이 4.3사건이라는 역사적 희생과 다르지 않아 더욱 처량하다고 전한다. 청정의 이미지로 판매되는 제주를 대표하는 물, 삼다수는 우리나라 시장점유율 일위의 생수로 자본의 힘을 반영한다. 작가는 제주의 희생을 위로(?)하는 제의적 장치로써 '물의 묘'를 만들었다. 평소 한국도시의 야경을 보면 쉽게 접하게 되는 수많은 붉은 십자가. 서구에서 십자가는 묘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데, 한국의 밤 풍경은 붉게 빛나는 거대한 공동묘지를 방불케 한다. 작가는 이렇게 제주의 풍경이 담긴 작품으로 제주삼다수 50팩을 모아 십자가 모양으로 설치하고 그 안에서 붉은 불빛이 새어 나오게 해 제주의 아픈 기억을 전하고 있다. 십자가로 대변되는 '희생' 체험관인 작품 『제주예수』는 테마파크처럼 십자가 위에 관객이 누우면 세워진 모니터에 자신의 모습을 통해 제주의 또 다른 모습을 경험하게 한다. ● 3전시실에서 소개되는 정기엽의 『닥쳐올 내일들이 나는 이미 그립다 2019』는 곧 허물어지고 사라질 현재 혹은 과거의 것들에 대한 애착과 아쉬움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가습기와 포그머신을 이용해 신기루처럼 형성된 안개 속에서 아른거리는 풍경을 접하게 한다. 빔프로젝트를 통해 형성된 안개 속 이미지들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자 우주의 섭리를 나타내는 정자와 난자의 이미지, 대성당의 장미창, 석굴암의 부처 등 종교의 본질들을 나타내는 문양 그리고 작가가 어릴적 살던 집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소리는 공기 중에서 340m/초로 우리에게 들리고, 빛은 진공상태에서 299,792km/초로 우리에게 보인다고 한다. 별빛은 이백만 광년 전의 빛을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거의 빛을 현재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이미지로 살짝 어지럽다. 동시에 그 빛 속으로 빨려가듯 느껴지기도 하는데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정기엽은 이렇듯 빛, 물, 공기, 소리와 같은 자연 발생적인 질료를 통해 조형의 미를 구축한다. 그래서 특정 공간에서 연출되지 않는다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신기루와도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시도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시대하고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를 제시하는데 낯선 천국의 풍경처럼 아득하다. 이 작품을 보면서 엘레나 노르베지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가 떠올랐다. 엘레나 노르베지 호지가 제시하는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 전통사회가 지향했던 공동체의 삶이야말로 미래에 있어야 할 우리의 이상적인 세상임을 소개한다. 앞서 소개한 작품『제주예수 2019』도 그런 것처럼 과거의 것을 재개발이란 명분으로 부수고 파괴해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고 있는데 개발로 인한 부작용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행해지고 있는 현 실태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빛의 속도로 시간을 이야기한다면 과거 현재 미래는 나누어진 것이 아닌 모두 동시성을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 항상 근원(뿌리)을 찾아 헤매는 정기엽은 신기루를 만들어낸다. 이는 꼭 사람들이 근원을 쫓지만, 빛의 속도로 맞이하는 본질의 의미를 찰나에 잊는 인간의 한계를 표현하듯, 이 세상은 꿈처럼 몽롱한 세상이다. ● 국내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유리라는 매체를 작업의 주요 재료로 사용했던 정기엽 작가는 최선 작가와 유사하게 형태보다는 대상의 질료에 좀 더 치중한 추상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다만 모더니즘의 환영이 아닌 재료가 가진 특징을 통해 그 재료가 가진 본연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한다. 뜨거운 상태의 유리에 대롱으로 숨을 불어 넣어 기포를 만드는 행위를 불어로 수플라쥬(soufflage)라고 하는데'불기'가 숨을 전제로 하는 입김, 숨결뿐 아니라, 기(氣), 영감이라는 뜻도 품고 있기에 생명의 원리로서의 호흡과 구약의 인간 창조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며 유리제작의 숨은 의미를 강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리는 숨이 남기고 간 공간이자 결국 사라진 숨에 대한 기억임을 역설한다. 이번 전시에 유리작품은 출품되지 않았지만, 작가가 재료를 통해 접근하고자 하는 근본원리는 같다. 공기 중에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기계가 멈추면 이내 사라지는데, 이는 공(空)을 강조하는 작가만의 조형적 특징이자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남겨줄 것은 기억의 한 자락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 천국에서의 이방인들, 어쩌면 누구에게는 천국일 수도 있는 이 세상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작가들, 그들이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용기를 존중하고 흠모한다. 나은 세상을 꿈꾸고 이야기하는 작가들의 애달픈 목소리가 담긴 이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마음으로 전달되길 바란다. ■ 강효연

최선_흰그림 : 돼지의 그림_유산지에 돼지기름_280×700cm_2019 (2012 송은미술대상전 출품작 재제작) 최선_유월의 오디, 캔버스에 청와대 앞에서 주운 오디_145×97cm_2018 최선_유월의 오디, 캔버스에 청와대 앞에서 주운 오디_196×152cm_2018
최선_멀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0×204cm_2018
최선_자홍색 회화_천에 2011년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돼지3백32만 마리의 숫자 인쇄_280×2300cm_2019 (2013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출품작 재설치)

예술가로서 나는 예술과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왔다. 서양의 현대미술을 수입하면서 생긴 미술과 예술에 대한 여러 오해들을 내 스스로 납득이 가고 이해가 가능한 맥락 속에서 다시 살펴봐야만 것도 중요했다. 그런 고민들 끝에 모순과 아이러니의 복합적인 층위의 작품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시각미술의 장식적 환영에 관하여 질문을 던지고 과연 아름다움과 추함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는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 고조되었던 막연한 전쟁의 공포감과 좌와 우로 나뉘어 서로를 분열시켰던 적대감을 극복할 수 있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스스로 인식할 수 없어 더 강력히 전해지는 공포감에서 벗어나고자 북한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오는 바닷물을 받아 제염작업을 진행해 왔다. 작업을 통해서 통념과 관념에서 벗어나고 현재적 실체와 만나고자 했다. ● 2014년부터 국경과 장애, 남녀노소 등 조건을 가리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숨을 모으는 나비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살아있는 나의 숨을 상대에게 나눔으로써 살아있음을 전한다는 우리말 '소식 消息' 의 의미를 시각화 시키고 있다. ■ 최선

정기엽_제주예수(Jeju's Jesus)_삼다수, LED, 카메라, 모니터_가변설치_2019

제주예수(2019) ●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서울을 비롯한 도시의 야경을 보며 경악하는 것이 있다. 수 많은 붉은 십자가. 서양인들에게 야외의 십자가는 묘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런 밤풍경은 붉게 빛나는 거대한 공동묘지로 비춰질 것이다. 이렇게 된 연유는 예수가 흘린 피처럼 십자가에 붉은 빛을 밝힘으로 시인성이 좋아져 신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광고효과 때문이었을 게다.  ● 제주는 용암지대로서 물이 모두 지하로 빠지기 때문에 지하수만이 유일한 수자원이었다. 대규모 저수지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기도 하지만 가뭄과 폭염이라는 비상사태에 항상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관광지 제주의 호텔을 비롯한 숙박업소에 쓰이는 물의 양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물 뿐이겠는가. 제주의 노른자 땅은 중국인들이 차지해 카지노가 들어서고 전망 좋은 곳은 일반인이 들어가기 힘든 고급리조트가 차지해 버린지 오래며, 이유를 알 수 없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테마파크들이 난립해 있는 것에 더 보태어 해군기지를 짓더니 이제는 공항을 하나 더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 천혜의 섬, 낭만적 관광지인 제주는 4.3이라는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빠듯한 일상에 여유를 찾아 떠난 아름다운 섬에서 굳이 그 흔적을 찾아 괴로워하고 싶지 않음에도, 제주가 자본에 의해 겪는 희생이 4.3이라는 역사적 희생과 다르지 않아 더욱 처량하다. 나는 제주가 자본에 당하는 일방적 희생과 이념의 차이 때문에 당한 희생에 대해 속죄의 장치로서 '물의 묘'를 만들었다. 십자가를 빙자한 '희생' 체험관같이 십자가 위에 관객이 누우면 세워진 모니터에 자신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데, 자본이라는 빨대에 꽂힌 자연은 아직도 인간에게 피를 빨리는 예수와 비슷한 처지인 듯하다. 예수는 이미 희생되었고 십자가는 오래 전 내려졌음에도 발기한 자지처럼 붉게 세워진 십자가를, 이제는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

정기엽_닥쳐올 내일들이 나는 이미 그립다_물공급장치, 가습장치, 헤이즈머신, 우산, 알루미늄, pvc, 프로젝터 영상_00:05:28, 가변설치_2019
정기엽_닥쳐올 내일들이 나는 이미 그립다_물공급장치, 가습장치, 헤이즈머신, 우산, 알루미늄, pvc, 프로젝터 영상_00:05:28, 가변설치_2019

닥쳐올 내일들이 나는 이미 그립다(2019) ● 빛은 어디에서 올까. 소리는 공기 중에 340미터/초 로 우리에게 들리고, 빛은 진공상태에서 299,792,485미터/초 로 우리에게 보인다. 별빛은, 예컨데 백만광년 전의 빛을 보는 것이다. 오래된 먼 옛날의 빛을 현재로 인식하는 거겠지. 산중턱 정릉마을의 불빛, 멀리 아파트 숲의 야경이 아름답다. 저곳에서 불을 켜면 나는 동시에 그 빛을 본다. 빛은 가장 빠르고 시간차가 없어 보이지만 저 동네의 빛이 나는 백만년 전의 별빛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 프로젝터의 광원이 스크린 벽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찰나보다 짧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의 공간에 주목한다. 부유하는 안개 속을 통과하는 빛은 허공과 스크린 벽에 동시에 이미지를 남긴다. 찰나의 이미지는 저녁노을처럼 길게 늘어져 점은 선이, 선은 면이, 면은 기둥이 된다. 안개의 움직임에 따라 차고 기울고 멀어졌다 가까워지며 흘러내리고 소용돌이친다.  ● 빛은 관찰법에 따라 입자이기도 파동이기도 하다. 우리 존재도 확실히 입자인 것 같지만 파동인 순간이 있는 듯하다. 비오는 날 우산아래 담배를 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오늘이나 어제, 내일 일들이 시공을 초월해 동시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미 내일 일들을 겪었고, 지금 그것들을 후회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정기엽

2019 GAP ● 'GAP(갭)'은 '다름'과 '차이'를 상징하는 '유리상자-아트스타' 전시의 새로운 프로젝트(GlassBox Artist Project)를 일컫는 명칭이다. '공간의 틈', '시간적 여백', '차이', '공백', '사이'의 의미를 내포한 GAP은 유리상자로부터 비롯되지만 유리상자 작가의 성장과 변화 그리고 또 다른 매력을 조명하려는 사건의 요약이며, 이는 현대미술을 대할 때 '차이'를 두고 그 '다름'에 매료되는 우리의 반응들과 닮아있다. ● '유리상자(GlassBox)'는 봉산문화회관 2층에 위치한 전시 공간 'ART SPACE'의 별칭이며, 유리로 사방이 둘러싸여있고 보석처럼 소중한 작품들의 가치를 담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유리상자'로 불려진다. 유리상자 전시는 2006년 12월21일부터 시작된 '도시 작은문화 살리기 프로젝트 - 유리상자'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되었으며, '미술창작스튜디오 만들기' 프로젝트와 연계하여 젊은 미술가의 작업을 들여다보려는 작가지원 형태의 지속적인 실천이기도 하였다. 2007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13년째인 유리상자 전시는 '스튜디오', '아트스타'라는 부제와 함께 진행되었으며, 4면이 유리라는 공간의 장소특정성을 고려하여 설계한 설치작품들은 패기 있는 신진작가의 감성과 열정을 느끼게 해준다. 이 전시의 주된 매력은 톡톡 튀는 발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젊은 예술가의 실험성을 가까이 느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 이러한 유리상자의 지향을 더 진전시켜, 유리상자와 시․공간을 달리하는 전시로써 이들 아티스트의 최근 면모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전시 프로젝트를 2012년부터 매년 1회 계획하게 되었다. 8번째를 맞는 올해 2019년 전시를 계획하면서, 젊은 미술가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외부 협력기획자 강효연(미술평론, 누스페어동시대미술연구소장)을 초청하여 전시 주제에서부터 작가 선정에 관하여 다양하게 협의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리상자-아트스타'를 통하여 소개되었던 69명의 작가 중 2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유리상자 전시 이후의 새로운 변화들을 선보이는 기획전시 GAP을 추진하게 되었다. 강효연 협력기획자가 제안한 이번 전시의 주제는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이다. 1980년대 미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제목에서 참조한 것으로, 이상적인 천국의 꿈을 쫒는 아메리칸드림의 실상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낯선 땅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고민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현실 문제를 고민하는 젊은 미술인의 태도를 설명하는 주제어로 선택한 것이다. 이는 우리들 현실의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아이러니와 결여를 새로운 예술의 설계 방식으로 읽어내려는 미술가들의 시선과 행위들이 어쩌면 당연히 천국보다도 더 낯설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이번 GAP전은 현실 경계의 '괴리'에서부터 '공감'과 '공유'의 기대를 호출하는 예술가의 낯선 태도와 행위로서, 1전시실에 최선 작가, 2~3전시실에 정기엽 작가의 '차이'와 '다름'을 소개한다. ● 미술에 관한 사회 통념적 가치들을 반전시키고, 스스로의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방식을 실험하며 우리 현실의 삶과 그 대응 태도를 되돌아보려는 최선(1973년생) 작가는 2015년 '유리상자-아트스타 Ver.1 자홍색 회화 Magenta Painting展(2.20~4.19)'을 통하여, 2010~2011년 발생한 구제역 파동에 대응하여 돼지 332만 마리를 살처분하면서 그저 돼지들의 숫자를 세기만 했던 인간 중심적인 시대현실의 기억을 150×280㎝ 크기 11폭의 '자홍색 회화'로 옮겨 지름 5.3m 높이 3m 원형 입체물로 설치했었다. 이번 GAP전시에서 작가는 1전시실 공간에 우리시대의 현실 풍경을 미술의 방식으로 해석한 7개의 설계를 소개한다. 전시실 가운데에는 유리상자에서 일부를 소개했었던 '자홍색 회화' 15폭이 2013년 처음 소개된 형태로 설치되고, 경직된 우리사회의 모습을 중단된 여행으로 은유하며 분단의 경계지역인 강원도 고성의 바닷물을 소금 결정으로 만들어서 전시 관람객의 옷깃에 뿌려지게 하고 그 관객의 개입으로 다시 바다로 이동하도록 설계한 '소금은 말한다 : 중단된 여행', 동아시아의 불안한 정세와 관련하여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이 공통적으로 즐기는 뼈 국물 음식문화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일본에 있는 각 나라별 식당에서 수집한 뼈를 전시하며 '서로의 뼈를 먹지는 않을지?'라는 메시지와 함께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동아시아의 식탁', 온몸으로 기어 다니는 지렁이의 주검이 삶의 숭고함을 묻는 물음표 부호를 연상시켜 우리가 자주 폄하하는 대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지렁이 글씨' 등이 전시되어있다. 그리고 구제역 때문에 살처분된 돼지와 연관하여 돼지기름으로 그린 '흰 그림'은 관객의 체온에 의해 녹아내리거나 전시장에 퍼져있는 그 냄새 탓에 인간과 죽은 돼지의 거리감을 강조한다. 또 오디 열매가 떨어져 얼룩진 거리의 흔적을 보고 양민을 향하여 발포하는 학살 장면으로 연상했던 '유월의 오디', 다른 이념과 생각을 배척하는 이분법적인 우리 사회의 정치 구조를 상징하듯 빨강과 파랑색의 무늬를 서로 어긋나게 그려놓아 울렁거림을 느끼도록 한 '멀미' 등을 선보이며 우리사회의 아이러니한 현실 면모를 환기시키고 비판한다. ● 물, 안개, 빛, 소리, 유리 등을 이용해서 실험적인 설치작업을 발표하며 현실의 구조에 관심을 가져온 정기엽(1972년생) 작가는 2012년 '유리상자-아트스타 Ver.1 유리·물·안개·소리展(2.24~4.1)'을 통하여, 3.5m 높이의 소리탑 혹은 안개탑을 설치하고 소리의 진동과 동기화하여 움직이는 물안개를 연출하면서 시각화된 소리를 설계하였다. 유리와 물, 안개, 소리 등 4개의 요소로 구성한 작가의 유리상자 실험은 소리가 무엇인지,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세계의 구성 요소에 관한 현재적 서술을 시각화한 것이다. 작가는 이번 GAP전시에서도 안개와 물, 빛과 영상을 이용하여 해갈되지 않는 결핍과 자본주의의 오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2전시실에는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을 발하는 커다란 십자가 형태의 바닥 구조물과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로 이루어진 '제주 예수'가 있다. 이 작품은 2리터 용량의 삼다수 생수 300개로 구축한 십자가 위에 관람객이 편안한 자세로 누우면, 누운 관람객의 모습이 벽면 모니터의 십자가에 못 박혀 걸린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한 작업이다. 작가는 제주의 자연 지하수를 자본의 논리에 의해 희생시키고 있는 상황이 결국에는 인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이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을까를 질문하며, 우리나라 도시 야경을 묘지처럼 덮어버린 붉은 십자가에 대한 우려의 의미를 함께 상징화한 작업이다. 또 다른 영상설치 작업, '닥쳐올 내일들이 나는 이미 그립다'는 흐르는 수증기를 감싼 투명우산과 3전시실을 가득채운 물안개 스크린 사이로 관객의 눈을 향하여 정면으로 투사되는 여러 층의 영상을 통하여 관객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다. 관객에게 파편적으로 펼쳐 보이는 영상들은 달을 닮은 난자와 주위의 정자, 원형 불 고리, 방사형 소용돌이, 성북동 고향집의 풍경, 어머니의 얼굴 등이며, 그리움과 결핍의 근원에 관한 질문을 몽환적이고 찰나적으로 지각할 수 있도록 설계한, 지금 그리고 여기의 현실 구조에 관한 미술가적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지금, 이곳의 예술이 우리에게 낯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우리들 생의 사건들을 가치 있는 확장 가능태로 바라보려는 예술가의 태도 목록, 즉 GAP의 영역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균형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시대적 기원이다. 이제, 이 천국보다 낯선 '차이'와 '다름'의 태도와 행위에 힘입어 다르게, 새롭게, 멈추어 돌이켜보고, 다시 생각해보자. ■ 정종구

전시연계 워크숍 최선 : 예술의 시간 1. 일시 : 3월 8일(금) 오후 4시~5시 2. 대상 : 일반시민 3. 내용 : 최선 작가의 작업세계 소개

정기엽 : 작가와의 대화 1. 일시 : 3월 16일(토) 오후 3시~4시 2. 대상 : 대학생 및 일반시민 3. 내용 : 정기엽 작가의 작업세계 소개

Vol.20190308e |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정기엽_최선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