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IT

김효숙展 / KIMHYOSOOK / 金孝淑 / mixed media   2019_0309 ▶︎ 2019_0428 / 월요일 휴관

김효숙_봄비 spring rain_프로젝터 영상설치_170×240cm, 00:08:00_2018

초대일시 / 2019_0323_토요일_02:00pm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13기 입주작가展

관람료 / 성인 3,000원 / 학생(초,중,고) 2,000원 20인 이상 단체 1,000원 할인 7세 이하,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무료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Park Soo Keun Museum in Yanggu County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 Tel. +82.(0)33.480.2662,2581 www.parksookeun.or.kr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는 그것 ● 작가 김효숙의 10분짜리 영상프로젝션 「봄비」(2018)에는 귀에 익숙한 노래가 들어 있다. 바로 1984년 '배따라기'가 부른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 하나요'이다. 잔잔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영상의 시작은 갖가지 종이들이 휘날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사이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인물이 등장하고, 어질러진 공간, 망연자실 창밖을 응시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온갖 사물들이 다양하게 변하며 교차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다 중후반부에 이르러 배따라기의 노래와 후드득 거리는 빗소리가 함께 선보인다. ● 마치 작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이 작업은 1969년에 출간한 이수복의 시 『봄비』처럼 뭔가 애잔한 느낌을 심어준다. 떨어지는 종이는 자못 심각하게 다가오고, 여러 물건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등의 장면에선 익살스러움까지 묻어난다. 작가는 이 작업의 전제로 '기억'을 꺼내놓는다. 즉,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 하나요'라는 곡과 관련된 기억을 재구성한 작업이라는 것이 작가의 변이다. ● 그렇다면 그 '기억'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작가는 "친척들이 소란스레 나가버린 공간에 어린아이 혼자 정리를 하다 빗소리를 듣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과 함께 하염없이 비를 보았던 기억이 담겼다."고 말한다. 듣고 보니 생각보다 싱겁다. 그러나 필자가 지나치게 거대한 무언가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상황은 다르지만 빌 비올라(Bill Viola, 1951~ , 미국)의 작품 중엔 김효숙의 작품 보다 훨씬 싱거우나 그렇기에 되레 '삶'을 깊게 관조하게 되는 작업도 있지 않은가. ● 사실 「봄비」는 일상을 다룬 다큐라고 판단할 수 있으나, 작가의 말을 접한 뒤 영상을 보면 왁자지껄함에서 벗어나 홀로 남겨졌을 때의 적막함, 함께 한 시간을 뒤로한 채 어질러진 방안을 정돈해야하는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비가 내리는 날 문득 스치는 음악소리에 행동을 멈추고 하염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인물의 감정을 헤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된 '정지된 시간의 체험'을 깨닫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다. ● 그런데 문득 스치는 궁금증 하나, '기억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예리한 추론은 어렵다.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기억이 그리움 이상의 그것을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기억'은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기억과 관련한 김효숙의 또 다른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기억의 공간」(2018)이다. ● 「기억의 공간」은 가상현실회화(Virtual Reality Painting)이다. 손으로 그리는 과정을 거친 것임에도 캔버스나 종이가 아닌 가상의 공간(기억저장소)인 VR(Virtual Reality)에 옮겼다는 게 특징이다. 「봄비」와 유사한 지점은 두 작품 모두 '기억의 모습'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다는 점이다. 방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봄비」에서의 인물처럼 「기억의 공간」에서 또한 기억저장소의 내부에서 창문처럼 뚫린 밖으로 이미지들을 보는 구조를 하고 있다. ● 「봄비」든 「기억의 공간」이든 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봄비」는 「기억의 공간」에 비해 리얼리티하다는 차이는 있으나, 자신의 언어로 만든 울림을 스스로에게 돌려놓으려는 시도 면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차이라면 「기억의 공간」의 경우 「봄비」와 달리 '갇혀진 가상의 공간' 내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김효숙_기억의 공간 space of memory_VR 페인팅_2019

김효숙은 「기억의 공간」에 대해 "헌옷재활용 수거함처럼 기억도 재활용이 될까?"라는 자문을 토대로 "처음 방문하는 버스종점에서 느꼈던 막막함이 기억이미지로 표현될까?"를 되묻는다. 이는 전적으로 작가의 경험을 밑동으로 하면서 우리의 기억과 정서를 자극하고 환기시킨다. 작품에 묘사된 미로 같은 공간(기하학적 공간)과 그 틈에 자라는 나무들은 뜻밖에도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사람들의 '반향의 열림' 속에서 그 메아리를 재음미하는 거리감이 거의 없다. 마치 누군가의 머릿속을 헤매는 듯한 인상까지 존재한다. 어차피 VR은 실제가 아닌 가상의 세계이기에 타인의 기억을 열람하는 것 역시 가상일 수밖에 없고, 예술매체를 통해 인지가 아닌 사유와 숙고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이 전이되는 체험이다. ● 중요한 건 김효숙의 작업을 통해 우린 그 반향의 열림 가운데 낯섦과 확연하지 않은 실체를 시각적으로 옹립시켜 세상과 관계 맺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살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법한 보편적 화두인 '삶'을 예술이라는 화법으로 들여다보고, 때로 사적인 내러티브로 출발함에도 되새김질하는 이유를 확보하는 것일 수도 있다. ● 작가는 "어떤 나의 것에 속하지도 당신의 것에 속하지도 않는 세계이다. 나의 경험에서 시작되었지만 당신의 기억과 그리움을 환기시키는 '그것'(it)은 그래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는 'it'(그것)이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작가노트에 곧바로 기술된다. "작업하는 내내 기억, 그리워하는 것, 궁금하게 하는 것과 같이 볼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부분이다. ● 그의 발언처럼 이미 지나가버린 일은 기억 속 어딘가에 해체되고 분리된 채 쌓인다. 뚜렷한 형상을 잃어가고 있는 대신 아련하고 울림을 주는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름 지을 수 없고 형상을 잃어가고 있어 머릿속으로 그려내야만 하는 것들... 이것이 그의 「봄비」와 「기억의 공간」 내에 부유하는 핵심이다. ● 「봄비」와 「기억의 공간」은 표상으로부터의 이해에 앞서 내적 '정감'에 무게가 있다. 이는 다른 각도에선 생의 이음새에서 기억을 끄집어내는 '순환'의 몸짓이다. '순환'의 외형적 의미는 삶의 기복이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는 것이지만 내세 혹은 피안의 세계를 대입하지 않는 한 물리적으론 소멸과 동반한다는 점에서 유한적인 명사다. 때문에 유한적 순환은 '오늘'에 한시적인 균형으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지고, '오늘'에 '순환'을 덧댄 '기억'은 연역적으로 종착을 예상하는 가운데 얻는 균형이다. ● 그래서 그가 말하는 '기억'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노획하는 일시적-균형 잡힌 개념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기억이란 지속되기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며, 망각은 생과 사의 구분에서 후자에 든다. 그러므로 김효숙의 '기억'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최선의 독백'이다. 물론 미학적으로 '최선의 독백'은 현존재(Dasein)로서 실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예술적 응답이다. 즉, '오늘'과 '지금'이 '기억'을 통해 과거를 불러내는 과정에서 '나'라는 실존이 구체적,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장치로써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 그렇기에 「봄비」와 「기억의 공간」은 기억과 순환의 균형이며, 다양한 매체에 의한 기억의 소환은 작가가 채택한 실존에 대한 자답이다. 또한 "작업하는 내내 기억, 그리워하는 것, 궁금하게 하는 것과 같이 볼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부분에 대한 스스로의 응답이기도 하다. ● 허면 그에게 '존재'란 어떤 의미일까. 일단 그의 지난 작업들은 가시성이 어떠하든 / 혹은 얕던 깊던 그 밑동에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 깔려 있다. 박수근미술관 레지던시 결과전에는 선보이지 않으나 자신의 생각을 시간의 흐름 속에 의탁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는 작업들이 여럿 된다. 영상프로젝션(VR 기록영상)인 「땅굴 프로젝트」(2018)를 제외하곤 다소 여성성이 강조되는 듯하거나 관계와 연결된 이미지들이 없지 않았다. ● 이들 작업의 내용은 저마다 달라도 하나의 과정으로 치환되는 시간은 존재성에 색을 입히는 무대이며 시간과 생각과 존재에 대한 탐구는 다시 실존의 문제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는 회화도 있다. 세 점의 「잠자는 사람」 시리즈와 두 점의 「Inner space」 연작이 그것이다. 한 점의 「나무」라는 제목의 회화도 이미지를 캔버스에 불러내어 '그리다'에 의미를 둔 작업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넓게 보아 'it'(그것)에 접근하기 위한 의미적인 시도이다.

김효숙_잠자는 사람2 sleeper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80cm_2019

이를 작가의 말에 의지해 다시 복기하자면, "어떤 나의 것에 속하지도 당신의 것에 속하지도 않는 세계"이며 "나의 경험에서 시작되었지만 당신의 기억과 그리움을 환기시키는 '그것'(it)은 그래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는 'it'(그것)이다." ● 한편 김효숙의 작업은 전반적으로 쓸쓸한 여운이 있다. '나'를 중심으로 펼쳐놓는 이야기인 듯싶다가도 온전히 자기고백적인 여운은 없다. 스펙터클하지도, 형상과 이미지, 스토리 역시 특별히 대단하다거나 가공스러울 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적'이라고 할 만큼 소박, 소소하다. 그럼에도 특유의 잔잔함과 애틋함이 배어있다. 어딘가 기댈 수 없는 고독한 자아와 그리움, 알 수 없는 고민들과 언어로는 재생 불가능한 생채기, 존재와 표상이라는 단어들이 떠나질 않는다. 왜 그럴까. 필자도 모르겠다. 그래서 묘하고 애매하며 낯설지만 익숙하고, 생경하나 친숙하다. 아마 이 또한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는 'it'(그것)"이 아닌가싶다. ■ 홍경한

Vol.20190309b | 김효숙展 / KIMHYOSOOK / 金孝淑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