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곽상원展 / KWAKSANGWON / 郭相源 / painting.drawing   2019_0314 ▶︎ 2019_0327 / 월,공휴일 휴관

곽상원_Youth_종이에 과슈_45×33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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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314_목요일_05:00pm

주관 / 청주시립미술관_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로 55 Tel. +82.(0)43.201.4057~8 cmoa.cheongju.go.kr/cjas

2018-2019년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입주기간동안 작품 성과물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선보이는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를 진행한다.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는 스튜디오 전시장에서 그간 작업했던 결과물에 대한 보고전시로 해마다 작가 자신의 기존의 성향과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과 역량을 보여주는 전시로 진행된다. ● 12기 열두 번째 릴레이 전시로 곽상원 작가의『YOUTH』展이 오는 2019년 3월 14일부터 3월 27일까지 개최된다. 또한 전시개막 행사는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오후 5시에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로비에서 진행된다.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곽상원_Heart_종이에 목탄, 파스텔_54.5×39.4cm_2019
곽상원_O_종이에 목탄, 파스텔_54.5×39.4cm_2019
곽상원_Water_종이에 목탄_54.5×39.4cm_2018

의식된 이미지에 투영된 심리의 그늘 ●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는 모든 지식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얻은 것이고, 예술 역시 세계를 탐구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예술을 통해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인지가 아니라, 보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되는가를 가리킨다고 덧붙였다. ● 작가 곽상원은 그의 작업노트에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사회 면면에 붙거나 딸려 있게 된다."며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귀속들은 나에게 어떠한 규제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냉정한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러한 현실을 살며 그 체제 안에 속할 수밖에 없는 '나'와 그러한 현실의 눈속임이 주는 안락함속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나', 그 사이의 한없이 낯선 틈을 관찰하고 표현해 보려 하는 것이 내 작업의 주안점이다."라고 적었다. ● 곽상원의 위의 글이 가리키는 지점도 결국은 '나'를 둘러싼 세계/사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내부에서 자아를 응시하고, 구조 내 존재에 대해 되물으며, 경계된 자리에서 '나'와 관계된 '상황'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은 명료하다. ● 그는 분명 실존하는 나조차 어쩌면 부재자이면서 또 어느 경우엔 '배회자'이자 이방인, 주변인이기도 한 현실을 '의식된 이미지'에 담는다. 그 이미지는 작가에 의해 연출된 것이지만 불안함과 공허함, 채워지지 않는 결핍, 채웠다고 믿는 것에 관한 파기의 불안감, 타자로써 완성되는 존재에 관한 질문 등이 폭넓게 배어 있다. 일상, 고독, 낯섦, 배회, 관조 등의 단어들이 기호처럼 새겨져있다. ● 대체로 회색으로 채운 2016년 작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는 동시대에 거처를 둔 인간에게 주어진 절망과 자발적이지 않은 소외와 고독, 인위적 배척, 고의적 배제, 존재에 대한 자각 등이 맞물려 있다. 주변화 된 인간을 지칭하는 듯한 이런 여운은 그의 또 다른 작품 「배회자」(2017)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옅은 회색과 브라운 계열의 풍경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한 사람은 마치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양 화면 중간에 우두커니 서있다. 탁 트인 배경에 시점마저 선후로 명료함에도 형상은 그저 불안전한 '나'로 멈춰있다. 그야말로 '경계된 자리에 선 존재'이다. ● 이런 흐름은 2013년 작품인 「유랑의 적」이나, 「배회」(2013), 「거기에 '낯선'이 있다」(2014)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모두 주변의 중심화, 타자의 주체화를 포함해 떨쳐내기 힘든 작가 자신 내부의 깊은 쓸쓸함, 분주함 속에 숨겨진 적막한 삶, 화려함 이면에 놓인 소외감까지 느껴지는 작업들이다. ● 이 가운데 「관망」(2013)이나 「지금 여기에 잠시 기대어 신호를 외치다」(2014) 등의 작업과 「triangular b-side」(2016) 시리즈는 현재라는 시간대에 존재하나 그것에 대한 진정성은 늘 의심스러운 현재를 보여준다. 특히 「triangular b-side」에서 발견되는 삼각형의 고의적 배치는 어떤 구석과 틈이라는 심리성을 포함해, 삶과 관계 속 획일적인 통합과 이질적 소외, 동시대를 살아가는 객체 누구라도 갖고 있을 법한 공동체 내의 잘 드러나지 않는 치우침을 보여준다. 코너와 귀퉁이는 결국 경계와 틈의 동의어인 셈이다.

곽상원_Two people_종이에 목탄, 파스텔_54.5×39.4cm_2019
곽상원_There there_종이에 목탄, 파스텔_54.5×39.4cm_2019
곽상원_forest_종이에 목탄_78.8×109cm_2019

곽상원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열람되는 '익숙한 듯 낯섦'은 그의 풍경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시선의 축적」(2013)이나 「모두가 돌아간 자리」(2014), 「이름 없는 집」(2014), 「표류된 조우」(2014), 「불이 되어버린 사람」(2017) 등에선 건조함을 넘어 황폐함까지 읽게 한다. 그건 차라리 삶에 있어 제한되거나 제약받는 상황에서 싹트는 '심리의 그늘'에 가깝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고의적 드러남과 감춰짐 사이에서 자란 조형이다. ● 실제로 그가 그린 풍경은 심리의 그늘에 근접하다. 빛은 있는 듯 없고, 적어도 겉으로는 풍요나 환희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빛이 있기에 사물은 유형하나, 오히려 가시적이지 않은 공허함과 쓸쓸함이 감각의 무게를 시각의 황홀함이 아닌 내면으로 기울게 한다. 그중 눈에 띄는 작업인 「벽은 언제나」(2014)와 「각자의 벽」(2014)은 단지 벽을 그린 것임에도 구심점 없이 위치한 주변으로의 관심은 일상의 익숙함을 낯섦으로 치환해 표류하는 인간에게 닥친 막막함, 절망을 보다 명징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선 가공할 만한 환경에 짓눌리듯 놓인 「거기에 '낯선'이 있다」 또한 하나의 거대한 벽이다. ● 물론 그의 풍경에서 나타나는 공간 혹은 장소, 묘사되는 사물자체는 특별한 게 아니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우리 지근거리에 자리한 것들이다. 하지만 특별하지는 않으나 특별한 것 마냥 존재하는 사람들과 상황은 우리 주변에 지천이다. 넓게 보면 노동의 대가에 인색한 사회구조, 인간 존재를 철저히 배척하는 자본주의, 내면에 앞서 화려한 겉에 치중하는 현상, 기타 여러 이유로 '나'를 덩그러니 놓이게 하는 상황은 곧 너와 나의 삶과 진배없고, 좁게 보면 작가에게 이런 저런 이유로 바로 다가설 수 없도록 하는 벽이나 혼란스러운 풍경과 다름 아니다. ● 흥미롭게도 그의 작품들은 우린 모두 '섬'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도록 한다. 아니, 「사이의 거리만큼」(2014)이 시사하듯, 어쩌면 우린 모두 '섬'이다. 인간의 실존에 대해 끊임없는 자문을 내뱉지만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좌절한 채 실망하는 각각의 존재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숱한 관계를 맺지만 클릭 몇 번이면 사라질 가벼운 삶, 어떻게든 그 삶을 부여잡고 버텨보지만, 그저 덧없이 소비되는 자들이다. ● 그럼에도 우린 이미 출발한 여정을 멈출 수도 없고, 존재 이해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비극적이게도 어쩌면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희망'까지 놓을 수 없다. 「줄곧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 했다」(2017)에서처럼. ● 그렇다면 곽상원 그림의 특징이랄 수 있는 고독, 외로움, 소외감, 번민, 쓸쓸함, 공허함, 허무함, 연민은 대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건 바로 예민한 감수성에 있다. 젊은 작가답지 않게 그는 도시의 팽창과 물질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그에 따른 인간 소외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전면에 등장한 기계화로 인해 사람들은 심리적 공황에 빠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 인간성의 상실에 따른 현대의 무미건조함은 더 이상 오늘의 우리를 즐겁고 경쾌하게 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곽상원은 그 심상들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실어 날랐다. ● 그는 차갑고 이기적이며 냉혹한 현실을 호들갑스러운 조형언어와 달콤하고 현혹적인 이미지로 포장하는 미적 시도들을 거부한 채 황량하고 거대한 인간심리와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나'와 '우리'를 그렸다. 처음엔 네오 라우흐(Neo Rauch)를 중심으로 한 독일의 신라이프치히화파나 신표현주의 작가들, 그리고 베이컨(Francis Bacon)이나 쩡판즈(Zeng Fanzhi), 마를린 뒤마(Marlene Dumas)식의 그림에서 자주 엿보이는 형식에서 크게 이탈하지 못했으나, 최근 들어 옛 흔적들은 점차 희석되고 있다.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방향에서 고착되었다. ● 그렇게 외면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탐구, 인간 존재성에 대한 애정과 연민은 작가의 그림을 특정 짓게 하는 원인이자 쓸쓸함, 공허함, 허무함 등 기존 여러 특징들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단지 그려진다는 게 / 표현한다는 것이 예술의 종착지는 아니다. 물질적 풍요로움과 거대해진 관계망에 의해 내몰려진 작고 힘없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함으로써 인간존재에 관한 문제를 제시하는 곽상원의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정한 가치는 공감의 순환에 있다. ● 우린 그의 그림을 보며 어딘가 모를 친숙함과 낯설지 않음을 맛본다. 익명성을 담보하지만, 화면 속 부동적인 인물들은 특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비록 아무런 말이 없으나 절망과 고통을 읊조린 채 불안과 고립, 군중 속 소외를 말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그림 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일까. 아니다. 그건 바로 우리들의 초상이기에 공감의 본질이 있다. ● 실제로 오늘날의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풍요로운 일상 속에서 외롭고 고독하며 나약하기만 하다. 점점 더 고립되고 단절돼 가고 있다. 대화는 갈수록 줄어들어 극단의 허함을 체감하곤 한다. 곽상원은 바로 이 부분, 즉 '관찰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친숙함에 감춰진 허전함을 냉정한 '목격자'가 되어 거짓 없이 솔직하게 반영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그림을 통해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우린 공감을 넘어 동시대에서 잃어가고 있는 삶의 진정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하게 된다.

곽상원_동행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9
곽상원_hangaround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6

이처럼 곽상원의 그림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심리적 공유를 불러온다는 데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과 친숙함은 그 공유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것이 공감의 부수적 실체, 즉 그의 그림에 담긴 내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 사실 시각으로 수용해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흉내 내고자 하는 본능은 인간이 지닌 숭고한 기능이며 문명과 문화는 그 생득적 행동능력에서 비롯되어 왔다. 다만 예술가는 그 본능을 글과 그림, 언어와 행위로 심화시키거나 감춰진 것을 시각화하며, 존재를 포함해 다양한 유발인(releaser)을 표상의 기의로 삼는다. ● 이 가운데 존재에 대한 자각과 질문은 삶과 죽음 못지않게 미술에 있어 오랜 역사를 지닌 주제였다. 예술이 현존재(Dasein)로서의 인간이 세계와 반응한 결과라고 할 때, 그 현존재인 예술가는 세상의 불확실한 명제를 명료하게 만드는 역할자라고 할 수 있다. 동시대에 있어 진정한 인간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지각과 경험의 파편들을 현실로 소환해 기록하는 것도 예술가의 몫이다. ● 곽상원의 작업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번쯤 생각해봐야할 '존재'의 의미를 지정한다. 분명 작가 자신의 히스토리와 일상성을 투영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순과 구조적 대립, 근대 문명이 성숙기에 들어간 이래 완성된 '자기소외적'현상들의 귀납은 존재로 이어진다. ●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들은 마치 억 겹의 나날을 드러내는 것 마냥 서서히 말라 고착된 채 집약된 삶의 궤적에서 체감했을 법한 어떤 결이 깊이 새겨져 있다. 인간과 삶, 사회와 인간, 구조와 개인이라는 키워드가 함축적으로 투사되어 있다. 작가는 이를 "감정을 환기시키거나 삶의 그 언저리를 맴돌면서 감정이입이 되는 사물들", "현실 속에서 정해진 틀 안에 속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나와 그러한 현실의 눈속임이 주는 안락함을 거부하는 나 사이의 낯선 간극"이라 말한다. ● 막연하고 막막한 현실의 삶을 배경으로 한 작가의 이러한 시선은 익숙하고 무덤덤한 풍경과 장소를 애써 거세하지 않은 채 새로운 시공을 앉히고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드러남과 감춰짐이라는 상보적 작용을 거치며 작품 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형식을 뚫고 솟아난 공감과 공명이 작동하고 있다. 다만 지금처럼 회화를 벗어나 설치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의 행보는 보다 두드러질 필요가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내가 아닌 타인들이 마음껏 자신의 주관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매체의 개방도 가속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홍경한

Vol.20190314d | 곽상원展 / KWAKSANGWON / 郭相源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