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kward 엉거주춤

서안나展 / Anna Jung Seo / 徐안나 / painting   2019_0315 ▶︎ 2019_0407 / 월요일 휴관

서안나_Monkey Business_보드, 종이에 유채_26×18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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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320_수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9_032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킵인터치서울 Keep in Touch Seoul 서울 종로구 북촌로1길 13 Tel. +82.(0)10.9133.3209 keepintouchseoul.com www.facebook.com/keepintouchseoul www.instagram.com/keep_in_touch_seoul

Anna Jung Seo: Past Participles: Looked, Shopped, Gone! ● 서안나에게 그림은 의심할 여지 없는 일상의 일이고, 문화적 활동을 통해 주변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이다. 그는, 또한, 그림을 통해 지금의 세상을 표현하며 이를 구성한 과거의 문화적 활동을 이해하기도 한다. 이같이 선적인, 혹은 순환적인 과거와 현재의 결탁은 때로 약해 보이고 그래서 놓쳐버릴 것만 같지만, 그는 이 틈을 일화(逸話)의 힘을 빌려 그림으로 그리며 세상을 이해한다. ● 서안나가 지난 19년간 작업한 런던은 그의 작업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은 전철, 시장, 길가의 벤치, 어떤 행사에서, 혹은 A에서 B로 향하던 중 마주치거나 관찰된 대상이다. 그는 이 인물들을 호기심에 가득차서 사려 깊게 관찰하고 그려가면서 알아간다.

서안나_Elephant Lady_보드, 종이에 유채_27.5×22cm_2017

서안나는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과 같은 정치적 색을 띠거나, 또는 연민 가득한 다큐멘터리의 '관찰자'로서 이런 '인물들'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행히 그는 '활발하고 역동적인 거대도시'의 현재를 신화화하려는 것 같지도 않다. ● 그는 대신 행동의 연극성에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서안나의 회화는 사회학의 강렬하면서도 역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주로 표면적인 동기에 매료되고, 우연히 일견하는 인물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이끌리게 되는 것 같다. 인물들을 그리는 작가의 태도나 견지가 모호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작가가 그린 인물들은 자신감, 겉치레, 위선, 혼란, 광기, 불운, 가난, 권태 등 특이한 상태에 빠져 있는데, 그것이 개별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서안나_Me Fox_캔버스에 유채_217×112cm_2017

세상 -특히 런던 -에 대한 서안나의 기록은 관찰에 기반한 것인 동시에 일화적인 것으로, 분명하고도 주관적인 관점이 드러나기에 사실적이라고 평할 수 있다. 이 기록적, 서사적 회화를 통해서 우리는 작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만큼이나 그 도시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호가스 (William Hogarth)의 에칭 판화에서와 같이 서안나의 그림에서 보이는 묘사를 통해 경험적 진실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사회가 공감하는 이성적인, 혹은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이해에 도달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체 없는 감각적 반응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선입견, 집착 그리고 나아가 문화적 편견을 검증해보고자 한다.

서안나_Hoodie Halo_캔버스에 유채_23×16cm_2018

서안나의 '즉각적인' 반응들은 결코 '실수'나 '오류' 혹은 '경솔한 판단'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도구로 보인다. 주관적 진실성이 존재하는 그의 회화는 이성론에서 보이는 일종의 '위험을 무릅쓰는' 양상을 갖는다. 그는 그리고자 선택한 대상들을 쉽게 이해하고 이에 따른 공감을 표현하는 자신만만한 '재능'을 보여주기보다 타인의 동기를 관찰, 식별할 수 없음을 논한다. 이는 서안나가 다양성, 예측불허한 도시의 공간성이 존재하는 런던을 이해하고 살아내는 방법과 깊이 관련된다. 런던 같은 도시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일들의 단면들을 통해서 인물의 '진짜' 캐릭터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 어쩌면 부패하고, 흥청대고, 잔인하며, 음탕한 곳으로 도시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요란 법석한 잘못들을 끝내 자랑스럽게 끌어안는 도시를 진정성 있게 묘사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의 작품이 전통적 문학의 범주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회화는 회화작가뿐만 아니라, 대니엘 디포(Daniel Defoe), 헨리 필딩 (Henry Fielding), 로렌스 스턴(Lawrence Sterne), 윌리엄 사크레이(William Thackeray),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와 같은 문학작가를 연상케 한다.

서안나_A Successful Artist_캔버스에 유채_18×26cm_2017
서안나_The Crocodile (from Dostoevsky)_보드, 종이에 유채_16×23cm_2018

서안나의 작업은 문학 뿐만 아니라, 서양 회화의 한 경향과 분명 접점을 갖는다. 사실 그의 회화를 주의 깊게 본다면 이런 연관성을 놓칠 수 없다. 그의 자전적, 직접적 회화는 또한 역사적 기록을 하는 회화의 역할을 상기하기도 한다. ● 서안나의 회화는 휘슬러(James A. M. Whistler)와 드가(Edgar Degas)의 세기말 댄디즘과 연계되고, 월터 시커트(Walter Sickert)의 음울하고 시큼한, 혹은 눅눅한 빅토리안 시대와 맞닿아 있다. 또 특이하고 기묘한 장면의 묘사를 통해 루이스 엘쉬미우스(Louis Eilshemius)를 연상시키는 비합리적인 추론을 관객에게 제시하고, 에두아르 부이야르(Edouard Vuillard)의 솜씨 좋은 장식적 실내 묘사와 관련된 듯하다. 때로는 조르쥬 루오(Georges Roualt)의 무거우면서도 설명적인 종교적-원시주의, 혹은 세르게이 샤르슈느 (Serge Charchoune) 의 흐물거리는, 진지하지 않은 듯한 형식주의를 상기하기도 한다. 챠임 수틴(Chaim Soutine) 역시 때로는 무너져 내린 또는 무너져 내리고 있는 런던을 떠돌고 있는 것 같다.

서안나_Up to £3000 1_보드, 종이에 유채_26×18cm_2018
서안나_"Ah Ha Ha Ha Staying Alive~"_보드, 종이에 유채_18×26cm_2018

(다음 추론의 연결고리는 너무 약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는 우리에게 '등장인물을 통해' 서사하는 그의 회화를 설득하기 위해 어떤, 무슨 화가가 될 지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서안나의 회화에는 화가 자신을 연극무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대리인/ 배우로 이해하고 있는 태도가 분명 보인다. 이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대중 가운데 하나로서 말이다. ● 이처럼, 서안나의 그림은 결코 무심한 채로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단조롭거나 조용하지 않다. 대신 그림들은 무언가로 꽉 차 있고, 종종 재밌고, 온실 속의 강렬함 같은 것이 있다. 그의 작품은 시선을 잡아 끌고 강렬하게 기억되는데, 이는 주제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주관성에서 기인한, 지극히 주관적인 회화언어로 가득 찼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더불어 거추장스럽지만, 어쩐지 멋들어지게 몰취향적인 면 때문일 것이다. 서안나의 회화는 우리가 종종 들어왔던 ' 오랜- 모던'이나 '끝없는-바로크'의 편에 서지 않는다. (2019년 2월) ■ 샘 로빈슨

서안나_Reader_캔버스에 유채_23×16cm_2017
서안나_The Sweet Shame 3(Dalston)_캔버스에 유채_27.5×22cm_2018

Anna Jung Seo: Past Participles: Looked, Shopped, Gone! ● The painting practice of Anna Jung Seo is unmistakeably a daily undertaking—a means of understanding the world around her through cultural activity. But it is also a means of understanding previous cultural activity through the world as we find it now. This connects it to a lineage or loop which can at times feel lost or broken. Seo proves the viability of the anecdotal as a means of production—and a form of understanding. ● Originally from Korea, Seo has lived and worked in London for 19 years—and this seems to inform much of what she does. Figures, observed or encountered on trains, in markets, on benches, at events, or making their way from A to B, are pondered in ways both knowing and curious. ● It is clear that Seo's responses to these 'characters' are not those of the politically engaged/sympathetic documentary 'observer', à la Dorothea Lange. Thankfully, neither does she seem remotely interested in mythologizing any kind of 'vibrant, dynamic, or cosmopolitan', contemporary moment. ● Instead, she seems drawn to the theatricality of behaviour. Her paintings occupy a heightened, histrionic corner of the sociological. Seo's primary fascination seems to be surface motive and the way individuals present themselves to her in passing. The agency of the figures she paints is rarely ambiguous. What controls them often seems significant by virtue of its peculiar, specific clarity: pride, pretension, artifice, confusion, madness, misfortune, poverty, boredom. ● Anna Jung Seo's observational, anecdotal record of the world—and of London in particular—is factual in a distinct, subjective sense. It tells us as much about the artist as it does the city. Like Hogarth etchings, her paintings undeniably represent one empirical truth about the things they depict. It seems clear that Seo is not interested in arriving at balanced or rational shared understandings—and admirably so. Instead, she responds quickly, examining her own prejudices, hang-ups, and cultural biases later. ● Seo's 'knee-jerk' reactions never feel like 'mistakes', 'errors', or 'oversights'; rather, they become important tools for the production of the work. In their subjective authenticity, the paintings contain their own, 'higher-stakes' brand of rationalism. Far from suggesting a presumptuous 'gift' for understanding or empathizing with those she chooses to paint, Seo's work suggests a deep scepticism about the possibility of discerning the motives of others at all. This is especially relevant and useful in a city as diverse and unpredictable as London, where the scraps of business we witness don't allow us to assemble anything like 'authentic' characters. ● Her paintings might seem to describe the city as an addled, bacchanalian, cruel, obscene place. But it is also ultimately proud of such flamboyant flaws. The paintings contain totally genuine descriptions of artifice. In this sense, they feel part of a romping literary tradition. They encourage thoughts of Defoe, Fielding, Sterne, Thackeray, and Dickens—as much as of any painter. ● Literary connections aside though, it is eminently possible to tie Seo's practice to a particular strain of western painting too. In fact, something in her practice makes it seem foolish or careless not to do so. As much as her work feels diaristic or first-hand, it is also clear that she is closely engaged with painting as an historical activity. ● Seo refers to the dandyism and fin de siècle suave of Whistler and Degas. She touches on Sickert's sombre, soused, mucky Victorianism. She presents us with non-sequiturs: odd, idiosyncratic scenes reminiscent of Eilshemius. She nods towards the artifice of Vuillard's decorative interiors. Viewers might at times think of Roualt's heavy, almost illustrative religio-primitivism, or Charchoune's druggy, seemingly flippant formalism. Soutine too seems to wander about in a sometimes collapsed or collapsing London. ● Some of the flourishes behind Anna Jung Seo's version of what/who the painter could be might lead us to imagine her paintings as made 'in character'—which is perhaps a bridge too far. But undoubtedly, within what Seo does, there exists an understanding of the painter him/herself as a theatrical, role-playing agent/actor—one of a multitude at work in the city. ● As such, Seo's paintings are never deadpan, cool, flat, or mute. Instead, they are full and often funny. They have a kind of hothouse intensity. They are captivating and memorable thanks to an unwieldy and somehow brilliantly distasteful kind of luxuriance in their own subjective languages—and in the unknown subjectivities of their subjects. They don't support the existence of the 'long-modern' we are often told about, so much as an 'endless-baroque'. (Feb, 2019) ■ Sam Robinson

Vol.20190315b | 서안나展 / Anna Jung Seo / 徐안나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