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원展 / PARKKANGWON / 朴康遠 / painting   2019_0315 ▶︎ 2019_0407 / 월요일 휴관

박강원_Spring6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0303c | 박강원展으로 갑니다.

박강원 블로그_kangwpark.egloos.com

초대일시 / 2019_031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www.facebook.com/INDIPRESS

작가가 직접 심고 20여 년 바라본 벚나무가 있다. 아무래도 벚나무가 주인공인 것 같은 그림이다. 작품 「Spring 3」, 나무 주변으로 벚꽃잎도 조금 흩뿌려져 있고 오른편 중간에는 모자를 쓴 인물도 작게 보인다. 나무와 인물, 그리고 이들이 존재하는 순간은 작고 엷은 움직임들이 겹쳐져 명랑한 초록색과 함께 단단히 살아나고 있다. 그림을 보고 있는데 문득 인물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순간을 그리고 있었을지 괜히 알 것 같았다. 작가는 사람보다는 나무를 훨씬 위대하게 여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강원_2018 Spring3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18
박강원_Spring5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8

나도 항상 한 자리에서 꼼짝없이 무력해 보이는 나무가 좋다. 그 무력함이 아주 끔찍한 지겨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에게 그 무엇보다 강력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작가도 스스로의 약함이 곧 강점임을 보이며 겸손하게 살아내는 나무처럼 본인도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고 했었다. 작품 「Summer 2」, 「Autumn 1」을 보면 인물이 중앙에 위치해 눈길이 쏠리긴 하지만 주변 자연물들이 뿜어내는 힘이 너무나 강력하다. 인물을 지켜주고 있는 도깨비 같이도 느껴진다. 특히 「Summer 2」에서 보이는 나무들의 작은 움직임은 한순간 서로가 어글어지기도 하고 반복되는 붓질의 형상은 불꽃의 이글거림과도 같은 에너지를 상상하게 한다. 자연의 에너지와 함께하는 인간의 형상은 상대적으로 나약해지는 인물의 존재를 알리기도 하지만 더불어 살아내야만 하는 인간의 마땅한 자리도 보여주는 듯하다.

박강원_Summer2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8
박강원_Autumn1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8

작가는 무력해 보이지만 결국 스스로에게 더 센 존재, 그들의 가르침과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위로를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작품들을 바라보면 작가 본인에게 위로가 되었던 주변 존재들에 대한 마음이 느껴진다. 작품 「복동이」, 「쁨이」, 「Autumn 2」에서는 작업실 주변에 사는 개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로 화면의 구석에 어렴풋이 등장해있다. 단번에 형상을 알아채기에는 조금 어려운 표현이지만 그 힘은 작지 않다. 개는 다른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비교할 때 한 화면 안에서 비슷한 비중이지만 이상하게 그 형상은 주변의 자연물들과 서로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관객이 작품을 감상할 때 그러한 존재에 대한 질문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 될 것 같다. 반면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구인지, 왜 그곳에 있는지, 무얼 하는지 등의 궁금증과 작가의 개인적 관계를 들여다보는 경험, 더불어 우리 안의 긴장관계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박강원_복동이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19
박강원_쁨이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19
박강원_Autumn2_캔버스에 유채_72.2×91cm_2018

작품 「Winter 2」는 겨울이지만 차가운 초록빛을 내고 있는 나무 한그루가 크게 보이는 그림이다. 다른 살아있는 것들과 함께 존재하고 있지만 나무 외에 다른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살아있는 존재임을 무거운 침묵과 함께 표현하고 있다. 작가 본인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혼자 서 있는 나무를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의 엄마는 항상 우리 바로 곁에서 본 무언가를 그려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순간들과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존재들, 그리고 스스로를 그렸다. '나의 약함과 함께 살고 싶다'는 작가 본인의 말처럼 우리 주변을 차별 없이 그림에 담아왔던 것 같다. 모든 것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평등하게 살아내는 것을 그리는 사람이다.

박강원_Winter2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8
박강원_Winter1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8

사람들은 그림을 감상할 때 철저히 자기 스스로를 반영해 작품을 읽어낸다. 작품을 하는 많은 미술작가들 역시 작품을 할 때 본인들의 자아와 세계관 및 취향 등을 양껏 표출해 화면에 담아낸다. 작가들이 이러한 부분은 어찌 보면 조금은 일방적으로 일정한 영역의 감상을 강요하게 되기도 하고 해석에 대한 떼를 부리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소통과 관련한 미술의 이와 같은 성격은 없어서도 안 되지만 가끔은 나를 혹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본 엄마의 그림은 욕심이 없어 보였다. 혼자 잘난척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부분이 좋았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했었다. 그런데 지금 수년간의 그림을 돌아보니 남들과 모양이 조금 다른 욕망과 작업에 대한 태도, 그리고 삶이 보인다. 작가 일인의 열망보단 세상을 향한 공정한 시선, 누구에게나 평등한 계절, 사랑이 보였다. 따뜻했다. 그림은 관객들이 작품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무한하게 한다. 이 전시는 관객들이 광대한 영역 안에서 하루하루의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 가능한 시간이 될 것이다. ■ 최수인

Vol.20190315c | 박강원展 / PARKKANGWON / 朴康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