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심경(無我心景)

박경민展 / PARKKYOUNGMIN / 朴敬民 / painting   2019_0315 ▶︎ 2019_0427 / 일요일 휴관

박경민_내 안에 스미다19-8_천에 혼합재료_55×55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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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마리 GALLERY MARIE 서울 종로구 경희궁 1길 35 3층 Tel. +82.(0)2.737.7600 www.gallerymarie.org www.facebook.com/gallerymarie.org www.instagram.com/gallerymarie_

장주지몽 (蔣周之夢) ● "꿈도 현실도 죽음도 삶도 구별이 없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생각으로 느끼고 하는 것은 한낱 만물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다." ● 인간의 인식을 통해 받아들이는 외부 세계는 완전하지 않다. 장자는 이런 점에서 인간의 한 계적 인식을 넘어서는 것에 관해 자기 자신을 잊는 '상아(喪我)'를 강조하고, 이를 추구하 기 위한 방편으로서 편견을 버려 마음을 깨끗 이 하는 '심재(心齎)'를 제시하다. 그는 자신 이 나비가 된 자기의 꿈 혹은 나비가 자기가 된 나비의 꿈『호접몽(호 접몽)』- 이것은 존재론 적으로 실재의 꿈과 꿈의 실재 사이에 하나의 완벽한 대상과 상동(相同)이 존재함을 가리킨 다.-을 두고 경이로워했고 이것이 곧 물아일체(物我一體)이고 무아지경(無我之境)이며 flow (몰입)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정관념과 '이미 형성된 마음' 즉 '성심(成心)에 비추 어 인식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차별 적이고 분별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박경민의 작품 속에서 무수히 피어나는 것은 꽃이었던가? 그렇다. 원근의 차등도 명암의 차 별도 없이 화면에 다 투어 차오르는 담대한 너는 꽃이고 생명이다. 칼부림과 아노미의 몸짓이 반목하고 이어지는 너는 또한 전쟁이자 죽음이다. 내 안에 스미는 것이 만개하는 꽃의 아름 다움인지 다투어 나타나는 처절한 몸짓인지 분별심 없이 너를 내 안에 담는다.

박경민_내 안에 스미다19-2._천에 혼합재료_80×117cm_2019
박경민_내 안에 스미다19-7_천에 혼합재료_55×55cm_2019
박경민_내 안에 스미다18-1_천에 혼합재료_150×194cm_2018

몰입 (Flow): 나와 너와의 거리 ●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올라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움을 체험한다.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에 따르면 몰입의 단계에서 시간 개념의 왜 곡 현상이 일어나 자신이 몰입하는 대상이 더 자세하고 뚜렷하게 보이고, 몰입 대상과 하나 가 된 일체감을 가지며 자아에 대한 의식 이 사라진다고 한다. 몰입상태에서는 행위와 인식의 융합이 일어나고, 그 활동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관찰자적 인 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 몰입(flow)은 흥미(interest)를 전제로 한다. 흥미를 뜻하는 'interest'는 '사이(inter)'와 '있다 (est)'가 결합한 단 어이다. 즉, 거리가 있는 두 사물을 관련 짓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무언가를 흥미로워하면, '나'와 '그 무엇' 사이 의 거리는 짧아진다. 이는 '너와 나의 하나 됨' 즉 완벽한 몰입의 순간이자 물아일체(物我一體) 현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박경민의 작품은 존 재에 대한 차등 없는 자유로운 몰입이며, 물아일체요, 그로 인한 산출이다. 박 경민 작품의 대 상들은 각기 분절된 레이어가 아니다. 독립된 존재와 대상들은 작가의 경험과 구성으로 그 거리를 좁히고 그들은 유기적으로 얽히고 하나가 된다. ● 나의 기억 속에 잠재된 장면들은 지나다 흔히 마주치는 풍경과 한 화면 속 에 어우러진다. 인간의 생활 속에 스며 든 풍경은 삶의 감정에 따라 서로가 유기적으로 변하면서 나의 생각을 담는다. 나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표출된 대 상 속에 스며든 풍경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박경민 작업 노트 중)

박경민_내 안에 스미다19-9_천에 혼합재료_120×160cm_2019
박경민_내 안에 스미다18-4_천에 혼합재료_120×180cm_2018

내안에 스미다 : 초월적 풍경 ● "'나'와 '너'의 만남에는 갈등이 없다. 만물은 일체이며, 무차별 평등이며, 여기서 진정한 이해가 이루어진다." 풍경화, 가경화(街景畫), 건축화(建築化) 등에 제2차적으로 첨가해서 그린 인물과 동물 등의 점경 혹은 첨경은그로 인해 장면이 활기를 띠고 그 안길이(깊이)의 거리적 관계가 확실해진 다. 그래서 산수화중에 나오는 인물 등의 점 경은 상대적으로 자연의 광대함을 강조하는 효과 가 있다. ● 박경민의 작품은 어느 것이 풍경이고 어느 것이 점경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그의 작품 속 인 물과 도시와 건물, 산 수와 꽃 사이에는 어떤 원근도 나레이션도 차등 비중 없이 화면에 열거 된다. 작가의 내면에서 존재와 존재 사이의 거리를 단축하고 일체시켜 나열된 서사는 이제 차별 없이 보는 이의 시각으로, 내면으로 스며든다.

박경민_내 안에 스미다18-5_천에 혼합재료_120×180cm_2018

실재는 무한한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해를 발생시키는데 절대적으로 고정된 절 차는 없다. 개별적 자 유의 속성은 창조적 주체의 근원이다. 박경민은 실재와 비실재 사이 그 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편견에 치 우친 관습적 특성을 버리고 '그것'이 아닌 '너'를 만나고 있다. 실재에서 자신의 상념을 제한시키지 않고 실재의 창 조적 파악으로 옮아가 특정 한 방법으로 이해된 실재를 특정한 방법으로 구성하여 현실을 구성한다. ● 저것과 이것이 똑같이 이해되고 똑같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양쪽이 모두 초월적 (transcended)이어야 한다. 상호 귀속성은 동일하게 모든 관점에 대응하고 볼 수 없다. 박경민 은 이것에나 저것에나 귀속되지 않는 특정의 관 점을 포괄할 수 있는 무한 관점으로 사물의 본질과 삶을 풀어낸다. ●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박경민의 작품 안에서 '나'와 '너'는 그렇게 서로를 초월하여 만나고 있다. ■ 차경림

Vol.20190316d | 박경민展 / PARKKYOUNGMIN / 朴敬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