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 마음이 노닐다. Slowly, The Black

장예슬展 / JANGYESEUL / 張예슬 / painting   2019_0319 ▶︎ 2019_0330

장예슬_꿈 사냥꾼_112×356cm_2019

초대일시 / 2019_0319_화요일_05:00pm

후원 / 광주화루_광주은행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벽원미술관 HANBYEOKWON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삼청로 83(팔판동 35-1번지) Tel. +82.(0)2.732.3777 www.iwoljeon.org

검은 곳을 천천히 ● 검게 물들이면 「짙은, 혹은 아득한 밤」. 백으로 놓아둔다면 「유유히 둥둥」이는 것들의 대지. 반짝이며 사라질 것들과 아스라이 일렁이는 흔적과 나아가고 멀어질 것들의 자리와. 먹(묵墨)이란 아마도 흑과 백을 놓으며 그러한 것들의 자리를 찾는 일일지 모른다. 또한 그것을 바라보며 꿈을 찾고 숨을 잇고 미래를 부르기 까지. 그렇기에 길고도 긴 시간동안 인간의 과제로 남아온 영역일지 모른다. 정주도 표류도 가능한 영역, 차면 비워지고 비워지면 다시 차오르는 우주의 영역일지 모른다. 적어도 장예슬에게는 그렇다.

장예슬_Dreamer 1_32.5×29.5cm_2019

오유심어물지초(吾遊心於物之初, 장자, 「전자방」)는 장예슬 작가와의 대화에서 나온 장자의 구절이다. 문구 중 유심(遊心)은 모든 것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느끼는 마음이며, 물지초(物之初)는 만물의 처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오유심어물지초(吾遊心於物之初)는 "무언가의 처음에서 마음이 노닐고 있다"는 상태를 의미한다. 노닌다는 것은 유심의 가장 높은 단계이자 천진하며 또한 죽음조차 삶의 과정으로 느끼는 마음이다. 초월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그것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장예슬의 작업인 것이다. 흔적을 먹으로서 남기기 위해 먹의 '격'과 '곳'을 찾는 여정 중 모든 행로가 그것들의 정수에 닿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장예슬은 자연스러운 이치에 따라(依乎天理 批大卻 導大窾 因其固然, 장자, 「양생주」) 잘 살아가는 길을 알기 위해(得養生焉, 장자, 「양생주」) 자신의 길을 걸어 나아가고 있다.

장예슬_짙은, 혹은 아득한 밤_32.5×29.5cm_2019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정주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거닐었고 익숙하고 안정된 인연보다 요동치며 시작하는 인연들 사이에서 여전히 자신만의 자리를 찾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말처럼 잘되지 만은 않았다. 작가에게 무엇인가 잘되고 있는, 잘된 것은 마음에 걸릴 것이 없는 상태이다. 이와 같은 연장에서 작가에게 작업이 잘 된다는 것은 붓과 종이를 만지는 느낌이 평소와는 다르고 손이 춤을 추듯 나아가면서도 마음에 걸릴 것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한 것은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좋지 않으면 마음은 나아가거나 뻗어가지 못하고 잠시만 시야가 흐려져도 멈추어 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이동과 머무름, 번민과 해찰 속에서도 요동을 붙잡으며 자신만의 잘 된 상황 속으로 빠져들기 위해 공력을 쏟는다. 또한 장예슬의 화면은 특수한 성격의 조형을 반복적으로 그려내기 보단 자신과 붓 끝에 집중해 마음의 상태를 남기는 것에 집중되어 있기에 자신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먹을 쌓는 것이 작업의 주된 과정이 된다.

장예슬_뜨거운 숨 1_32.5×29.5cm_2019

전시의 제목이 『初(초), 마음이 노닐다』인 것은 작가가 추구하는 상태와 그것을 향한 의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미적 탐구가 매번 마음에 걸릴 것이 없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예슬은 자신의 흐름을 따르며 연거푸 「뜨거운 숨」을 뱉어내고 있다. 작가가 뱉어낸 숨이자 흑백의 형태에서 몇 가지 유형을 찾는다면 그것은 흘림과 펼침 그리고 모음일 것이다. 여기서 종이의 하얀 바탕이 세계 혹은 우주라면 그곳에 까맣게 흘려지는 것은 작가 자신이다. 먹을 흘리고 펼치며 모아가는 과정동안 작가는 자신안의 여러 인간들과 마주하고 인연을 맺으며 또한 지나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기에 화면 위 먹의 움직임은 작가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작가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과정이며 그중에서도 조금 더 「아스라이 반짝」이는 것들을 바라보고 '꿈 찾는 꿈 사냥꾼'(작가노트 중)이 되어보는 것이 삶의 순간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장예슬_뜨거운 숨 5_32.5×29.5cm_2019

놓고 흘리기에 따라 무엇으로도 맺히는 것이 먹이다. 전통의 수묵은 이와 더불어 여백의 운영으로 흑백의 조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장예슬의 화면은 여백의 운영에 있어 조금 더 진취적인 모습을 보인다. 붙잡기보단 흘리고 더욱더 떠나보냈기에 화면의 곳곳으로 스며든 흑은 가장자리에서도 깊게 빛난다. 화면의 주제부를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것과 화면의 어느 곳에서도 무엇이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보물지도」의 흐드러진 곡선 중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을 단정하긴 쉽지 않지만 지도 속에서 누군가는 길을 잃고 누군가는 늑대를 마주쳤으며 누군가는 먼 항해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흑백의 위를 유영하며 아득한 밤을 그리고 낮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 작가의 작업이다. 또한 항해 중에 만나게 될 곳곳의 대지(大智)에서 「Dreamer」가 되어보는 것 역시 장예슬의 작업이다. ■ 이주희

Vol.20190319c | 장예슬展 / JANGYESEUL / 張예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