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의 아메바들 Amoebas of a bamboo forest

강상우_노현탁_신정균_이영주展   2019_0321 ▶︎ 2019_0419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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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321_목요일_06:00pm

오프닝 퍼포먼스 / 2019_0321_목요일_06:30pm

기획 / 김유빈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마도예술공간 AMADO ART SPACE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4길 8(한남동 683-31번지) Tel. +82.(0)2.790.1178 amadoart.org

통제할 수 없는 의외의 상황 앞에 설 때 의식은 자기성찰에서 나아가 타자(他者)를 향해 흘러가기도 한다. 특정 사건이나 현상을 두고 무기력이나 공포,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것을 향한 의식의 화살은 더욱 뾰족해지고 화살의 궤적은 뚜렷해진다. 『삼국유사』에는 경문왕의 귀가 자라난다는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던 복두장이가 대나무밭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친 여이설화(驢耳說話)가 있다. 대밭에서 자신의 치부가 울려 퍼지는 사실에 화가 난 경문왕은 대나무를 모두 베고 산수유를 심었다. 새로 심은 산수유나무에서도 기어코 새어 나와 퍼지던 경문왕의 비밀처럼, 때로는 외부에서 우리를 자극하는 사건과 상황들이 뿌리 깊게 사고를 지배하여 떼려야 뗄 수 없이 일상 곳곳에서 내비쳐진다. 대나무숲의 상징성은 오늘날 국내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시금 불거졌다. 온라인 속 서로 다른 집단의 대나무숲 계정에서는 주로 내부 고발이나 사회 현상의 폭로가 일고 있다. ● 이 전시는 최근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시각예술 전시의 풍경―즉각적 사유들이 중첩되어 작품에 포개지고, 전시장에서 발화된 후 이미지와 텍스트로 박제되기도 하는―에 '대나무숲'의 기능을 비추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청량한 피톤치드를 내뿜으며 비밀을 간직해주기도, 흩뜨리기도 하는 대나무숲에서는 외부 자극에 의해 변화를 겪고 있거나 이미 변형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흩날린다. 이와 함께 소환된 아메바란 좁게는 타자나 일시적인 현상, 넓게는 국가나 문화에 의한 자신의 변형을 예리하게 인지해온 네 명의 작가들을 말한다. ● 참여작가 강상우, 노현탁, 신정균, 이영주는 일련의 주제 의식으로부터 불가항력적인 변형을 겪는 인물의 감정과 상태, 나아가 정체성을 꾸준히 관찰해오는 작업을 지속한다. 이들은 자신의 탐지 체계를 곤두서게 한 특정 사건이나 현상을 대나무들 틈새로 드러낸다. 자극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공통으로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시장 곳곳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은 단세포 생물 아메바처럼 때로는 타자에 기생하고, 어떤 때는 다른 존재를 포식하고, 혹은 모양을 변형시키거나 분열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사건, 사고, 현상 안에서 생존해간다.

강상우_drawings_종이에 컬러콘테, 컬러펜_21×13cm_2013~8
강상우_무제_석분점토에 컬러콘테_30×25.5×13cm_2013

강상우는 무의식 깊은 곳에 내재한 유년기의 기억과 이를 둘러싼 상징적인 조형 요소들을 작업에 의식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그 시기 접한 미디어 속 이미지를 현재로 끌어들여 접촉할 때가 자신의 가장 '편안한' 순간이라고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강상우는 특정 대상이 자신에게 미적 쾌감을 일으키는 부분에 자신의 내적 요소가 끈끈히 결부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그의 작업 세계에서는 흑백 TV 속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과자 광고가 컬러풀한 조각으로 재현되고(「손오공, 자야」, 2017), 유소년기에 그의 마음을 빼앗은 문구점 이름이 작품 제목으로 차용되기도 한다(「몽실통통」, 2017). 환상과도 같은 유년기 기억으로 접속을 돕는 소재들이 작가 강상우의 조형적 사고 체계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이 자신에게 자각되는 순간, 작가는 이를 현실세계의 작품으로 다시금 성실하게 치환한다. ● 지금까지 1000점 넘게 제작한 강상우의 드로잉에 드러나는 채색 방식과 화면 구도는 고르지 않다. 드로잉 속 다양한 연출은 그가 간직한 어린 시절의 향수나 외로움, 공포, 슬픔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다채롭게 감상하도록 돕는다. 작은 종이 위 흐린 윤곽 안에 캡처된 이 감정들은 이후 조각이나 페인팅, 설치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번 출품작을 예로 들면, 두 가닥 쇠줄에 위태롭게 지탱한 둥근 모서리의 캔버스는 방석을 연상시킨다(「상처 2」, 2013). 여기서 방석은 늘 환상적이지만은 않았던, 언제나 책상을 지켜야 했던 학창시절 작가의 억압된 심리를 의미한다. 성인이 된 강상우가 아동심리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을 무렵, 그는 짙은 파란색이 '복종'을 의미하는 것을 기억해두고, 방석 형상 한 가운데에 이 색을 삽입해두었다. 나아가 타일 벽에 고정된 추상 조각 「무제」(2013)는 강상우가 접한 지오토Giotto di Bondone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회화 작업에서 인상 깊게 기억해둔 풍경과 조형적 테크닉을 재구성한 시리즈다. 이들 작업에 드러난 형태와 표면 처리 기법은 어린 강상우의 꿈에 등장했던 가파른 자연물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삼차원 조형으로 재탄생한다.

노현탁_Oedipus complex_캔버스에 유채, 페인트 마커_162×130cm_2017
노현탁_도쿄 로즈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19

노현탁은 과거의 특정 사건이 현재 자신의 감정에 충돌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역사관을 정립해보려는 계기로, 본인의 감정이 강하게 반응하는 큼직한 역사적 사건들부터 차분히 조사해보기로 한다. 작가는 각 사건의 핵심 요소와 자신이 자극을 느끼는 지점이 교묘하게 어긋난 채 유착되어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회화작업을 시작했다. 예컨대 서울 올림픽의 평화 개막 기원을 위해 날려 보낸 비둘기들이 성화봉송 화염에 타들어가 떼죽음을 당한 일은 「Korean Holiday」(2016)에 드러난다. 이는 화려한 색채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상기하는 유쾌한 분위기에 가려져 천천히 들여다보아야 알아챌 수 있는 이면의 장치다. 수집해온 사건 중에는 '도쿄 로즈Tokyo Rose'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쿄 로즈는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미군에 포로로 잡혀 라디오 선전 방송을 진행한 일본 여성들을 두고 미군들이 붙인 이름이다. 노현탁의 눈길을 끈 것은 도쿄 로즈의 캐릭터가 그려진 폭격기 사진이었다. 그는 미군들이 '상상'해온 라디오 속 일본 여성 진행자를 시각화한 캐릭터, 그리고 '실제' 물리적 폭력을 발휘하는 미국의 폭격기가 상충하는 이미지에 움찔한다. ● 2016년부터 노현탁은 실제 사건과 그 변두리에 개입된 상상적 요소 사이의 긴장 관계를 가시화하기 위해 저주파 자극기를 팔에 달고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신체에 부착하면 그 부위의 근육을 자극하는 자극기의 기능은 노현탁이 좇는 사건 속 인물에게 가해진 외부의 힘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최근 그의 캔버스 속 인물들은 일그러지고 뒤틀려 보인다. 다음 단계에서 노현탁은 자극기를 뗀 손으로 붓 터치를 더해 인물을 원상태에 가깝게 복원한다. 자극기를 팔에 차는 순간 인물이 왜곡되게 그려질 것이라는 점은 그가 의도한 부분이다. 반면, 그리는 신체와 그려진 인물이 흔들리는 결과 자체는 의지를 벗어난 물리적인 힘이다. 이러한 모순은 노현탁이 인물 형상을 왜곡했다가 다시 복원하는 행위와 맞물린다. 이는 삶에 가해지는 외부 자극을 이겨내겠다는 저항, 또는 이에 순응하려는 태도 사이에서 갈등 중인 것으로 해석할 여지를 준다.

신정균_Today's motto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8
신정균_Arrangement_악보, 단채널 영상_00:05:30_2019

신정균은 분단국가라는 타이틀,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회 이슈를 접할 때 드러나는 민감한 감정을 미술 언어로 각색해서 다룬다. 그가 다루는 모티프와 보여지는 전시 작품 사이의 균열을 좇으며 진위를 파악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남한 사회 특유의 불안감은 세대를 막론하고 구성원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작가는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사건이 자신을 비롯한 시민들의 개인적 차원의 시간과 만났다가 바스러지기도 하는 지점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이때 신정균이 섬세하게 다루는 각기 다른 매체의 특성 또한 눈여겨볼 지점이다. 실제 상황인지 연출인지 파악하기 힘든 영상 촬영 기법과 어디에서 발견되었는지 알 수 없는 오브제들은 관객의 시선과 상상을 교란한다. 허상에 가까운 콘텐츠에 진지한 옷을 입혀서 보는 이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행위, 혹은 무게감 있는 특정 사건의 메시지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포장하여 본뜻을 알아채기 어렵게 만드는 작업 또한 같은 맥락이다. ● 2018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내에 마련된 작업실에 입주해있는 동안 신정균은 작업실이 위치한 석관동 주변을 탐색해온다. 영상 「석관투어」에서는 가이드가 일반 참가들에게 석관동 일대 몇몇 스팟을 탐방하며 장소에게 얽혀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이드는 문자 '공작단'이 두드러지는 노란 깃발을 들고 옛 안기부 터에 자리 잡은 예술학교 주위로 퍼져있는 괴담을 언급하기도, 실제 벌어진 사건을 담백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전시장 지상층 실내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석관투어 가이드의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 신정균은 예술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한 '안기부가'라는 제목의 악보를 중심으로 고민한 작업을 선보인다(「Arrangement」,2019 外). 안기부 시절에 불렸을지 모를 이 악보 속 기호는 국가정보원의 원훈(텍스트)과 만나며 동시대 밴드의 사운드로 재구성되었다. 이는 모니터 속 시각적 움직임과 더해지며 아슬아슬한 감각을 아우른다.

이영주_내 이름은 파윤입니다_디지털 애니메이션_00:33:00_2018
이영주_꿈꾸는 달걀들_단채널 영상_00:07:09_2018

이영주는 독일과 한국, 미국을 오가며 활동한다. 작가는 서로 다른 국가에서 역사적, 사회적 차이를 겪으며 인식한 자신의 변형을 짚어 온다. 「스시의 노래」(2016)에는 작가의 신체가 스시로 변해 등장한다. 독일 내 회전초밥집에서 일했던 시기에 이영주는 사장의 지시하에 짧은 치마와 기모노를 연상시키는 상의를 입어야 했다. 이로 인해 캣콜링catcalling을 겪거나 '아시아적' 외모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을 받곤 했는데, 이는 이영주가 제삼자의 시각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체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과장되게 웃으며 춤을 추는 초밥 접시 위 이영주의 모습은 문화에 따라 개인이 범주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듯 능동적으로 보인다. 한편, 「초콜릿을 먹는 방법」(2018) 속 이영주는 초콜릿을 천천히 껍질째 씹어먹는다. 초콜릿 포장지에는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고, 영상 옆에는 총 모양으로 제작된 초콜릿 조각 「구호물자」(2018)가 놓여 있다. 초콜릿의 달콤함은 무기가 지닌 폭력성과 상반되는 상징적 장치다. 꽉 찬 화면 속 달콤한 초콜릿을 우적우적 씹어 삼키는 이영주의 얼굴에서는 국가주의를 상대로 여성이 드러낼 수 있는 공격성이 엿보인다. ● 두 영상에서 이영주의 모습은 공통으로 탈영토화되는 방식을 취한다. 말하자면 이영주는 영상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에게 고정된 역할을 의도적으로 벗어나고 자신의 형태를 변형시킨다. 변화하는 이영주의 분신들은 마치 어떠한 경지에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면을 끊임없이 생산하며 본인을 탐색하려는 이영주의 의지로 볼 수 있다. ● 새롭게 공개하는 「My name is Payun」(2018)은 북한에서 남한,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한 파연 의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앞선 영상들에 본인을 직접 등장시키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다른 삶을 통해 타문화와의 접촉이 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객관화는 이어지는 「Dreaming Eggs」(2018)에서 한 번 더 두드러진다. 이 영상은 대표적인 '온라인 정자은행' 웹사이트에서 파트너를 찾아 헤매는 스크린을 레코딩한 작품이다. 모니터 속 최적의 파트너를 찾으려 바삐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는 마치 '한 인간에게 다양한 성질과 정체성이 공존한다'는 메시지를 외면하는 듯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 풀숲을 헤매듯이 전시공간의 지상, 지하층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네 작가가 각각 반응하는 자극의 강도와 속성이 다양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반응이 시각물로 구현되기까지의 속도, 자극과 반응 사이의 밀도 또한 제각각으로 드러난다. 한 달이라는 전시 기간이 끝나면 사라지고 마는 이 섬세하고 촘촘한 사유과정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발화하며 감상자를 기다리거나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약한다. ■ 김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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