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새로운 미래

북한의 현대판화展   2019_0320 ▶︎ 2019_0531 / 월요일 휴관

김영광_초석정의 저녁_ED.2-4_50×72.5cm_2011

강연회 / 2019_0330_토요일_03:00pm

북한 현대판화의 이해(김준권_한국목판문화연구소 소장, 판화가)

주최 / 진천군 주관 /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_한국목판문화연구소

관람료 / 임시 무료관람

관람시간 / 09:00am~06:00pm / 매표마감_05:00pm / 월요일 휴관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ALIVE JUNCHEON PRINT MAKING MUSEUM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504-10(장관리 732-19번지) Tel. +82.(0)43.539.3607~9 www.jincheon.go.kr

북한 현대판화의 흐름과, 『평화, 새로운 미래展』의 의미 ● 시절은 춘삼월,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다. 계절이 흐르는 거야 자연스런 우주의 섭리이지만, 사람의 노력, 즉 인위로 만든 봄은 화해가 되고, 평화가 되고, 인류에게 축복이 된다. 돌아보라.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잠시도 쉬지 않고 타국과 조국을 넘나들며 벌어졌던 숱한 고통의 역사를.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생이별을 했는지를. 고통과 간난의 시대에 살아남기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 건가. 19세기 후반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과 냉전체제의 20세기를 거치면서 마침내 다다른 21세기 지금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은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반도비핵화, 종전선언, 평화협정에 이르는 기대는 실로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적인 영역에서 남·북간 교류가 물꼬를 트고 있고, 동시에 우리는 그동안 다름의 영역에 있던 상대를 인정하기 위해 서로를 알아갈 필요의 시기에 도달해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함께 살아야 할 북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전시는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차대한 이 시기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판화를 통해서 북한의 사회와 문화를 유추하고 이해하기 위해 기획했다. 그리고 또 이 전시는 남북한 문화예술교류의 새 장을 열면서, 동시에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동시대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부분적이나마 단초가 되려는 것이다. ● 이 전시는 북한에서 유일한 전문미술대학인 '평양미술대학' 출신의 판화가들과 출판미술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평양미술대학은 1947년 '평양미술전문학교'로 설립되었고, 1949년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월북화가 김주경(1902~198)이 초대 학장으로 부임했고, 또 판화가 배운성(裵雲成 1900~1978)이 판화와 출판미술의 교수로 북한 판화의 교육적 기틀을 다졌다. 초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이념의 바탕에서 운영되었으나, 60년대 이후부터는 미술을 통한 주체사상의 확산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사실주의를 기초로 한 주체미술을 미학적 원칙으로 강조한다. 북한의 각종 기념비와 김일성을 형상화한 미술 작품들, 건물의 벽화, 「피바다」식 가극무대미술 등이 이 대학 학생·졸업생·교원들의 작품이다."1)  ● 그동안 북한의 판화는 우리에게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2008년 9월 뉴욕에서 Korean Society 주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판화전람회』가 있었는데, 판화장르만의 첫 국외전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2011년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이상향의 끝에 선 북한의 모습 North Korean Images at Utopia's Edge』 이란 전시명으로 니콜라스 본너란 수집가에 의한 24작품의 작은 전시가 있었다. 출품된 작품은 대개 북한주민의 일상생활이나 자연풍경 등을 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 북한의 판화가 대외 선전지인《朝鮮》1960년 46호에, 사진화보집인《朝鮮畵報》1966년 4호와, 1984년 8호에 『現代版畵』란 제목으로 지상전의 형태로 소개된 경우도 있었다.2) 우리나라에 직접 소개된 북한판화는 2018. 8월 '경기도 문화의 전당 소담한갤러리'에서 열린 『한·중수교 25주년 기념판화전-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展에서의 한국과 중국작가들이 중심이 된 전시에, 북한의 판화 개척자인 배운성·정현웅·김건중·손영기·함창연 외 현역작가 등 28명의 판화 70여 점이 선보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런 간헐적이고도 단편적인 소개로만 보자면 그동안 북한의 판화는 외부로는 거의 알려진 게 없었다는 뜻이 된다. 북한판화의 2, 3, 4세대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는 115점이 대거 선보이는 이번 전시가, 아마도 북한 판화가 밖으로 소개되는 가장 큰 규모일 것이다.

길은성_혼례식하는날_ED.24/50_한지에 1도_55×135cm_2018(2011판각)

북한에서의 판화는 1930년대 평양박물관에서 일본 목판화가인 오노 다다야키3)의 지도로 이북출신 작가인 최지원(崔志元, ?~1939)·월남한 최영림(崔榮林 1916~1985)·장리석(張利石 1916~2019) 등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다.4) 그러나 최지원이 1939년 목판화 '걸인의 꽃'으로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후 타계하고, 최영림과 장리석은 남쪽으로 월남하면서 북한출신 개척자들은 사라지고, 오히려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한 배운성·정현웅·손영기·북한 출신의 김건중·함창연 등의 활동으로 그 기초를 세우며 본격적으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 해방공간에 월북한 배운성은 '평양미술대학'의 출판화 강좌 상급교원, 1957년 이후 '국립미술출판사' 소속 화가, 1959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의 화가로 활동하면서 북한 현대 판화사의 작가와 교육자로 많은 제자를 배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정현웅(鄭玄雄,1910~1976)은 해방공간 남쪽에서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서기장을 맡고 '조선미술동맹'에 참가했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이후 북에서 고분벽화가·역사화가·출판미술가·판화가 등 전천후로 활동하며 북한 출판미술의 토대를 닦았다. / 손영기(孫英基1921~?)는 서울에서 정현웅과 함께 '남조선미술동맹'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1959년 이후 평안남도 미술가동맹 파견미술가 지도원, 조선미술박물관 전투화가, 평안남도 파견미술가로 판화를 주매체로 한 활동을 했다. / 이북 출신인 김건중(金建中 1917~1971)은 단색판화로부터 다색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과 다양한 형식으로 북한 판화발전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 / 위 네 사람의 역할을 물려받으며 북한 판화의 체계를 세운 이는 함창연(咸昌淵 1933~2000)이다. 함창연은 1953년 폴란드 바르샤바 미술대학에 유학해서 출판화와 판화를 배우고, 1960년에 귀국해서 평양미술대학 출판화 학부에서 교편을 잡고 35년 동안 판화교육을 했다. 그러니까 이 다섯 사람이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연결되는 북한 판화의 맥락과 이론·실기의 초석을 세웠다고 하겠다. ● 이들 다음으로 2세대 중요한 작가로 박은용(1925~)·박영주(1932~1978)·최장성(1933~)·리석산(1934~)·민응식(1934~1978)·림인환(1938~1975)·리정섭(1936~2007)·최동수(1937~)·김철강(1937~)·한태순(1937~)·최송린(1938~)·리정호(1939~)·박룡부(1939~1990)·김희원(1939~)·정용석(1940~)·양병수(1942~)·황인제(1943~)·홍춘웅(1944~)·차광수·리석상… 등이 있다. 이들 중 이번 전시에 리정섭·한태순·양병수·황인제·홍춘웅·차광수 등이 출품했다. 그리고 3세대인 김영훈(1949~)·리금숙(1949~)·김옥성·박영호·김용(1958~)·변효찬(1958~)·강상훈(1960~)·박화순(1961~), 그 이후의 70~80년대 출생한 4세대 판화가들로 오늘에 이른다. 즉 1950년대 배운성과 정현웅이 골격을 세운 '평양미술대학'이 북한 판화와 출판미술의 핵심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성철_체조시간_ED.3/8_모조지에채색_65.3×36.3cm

월북 작가들이 북한 유일의 미술대학인 '평양미술대학'의 설립과 판화를 교육한 50년대 이후 60년대부터 진행되는 목판화·리놀륨판화·합성수지판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을 거쳐 북한의 독특한 '주체미학'과 그 궤를 같이한다. 1950년 이후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중국목판화의 정형적인 양식의 수용에서 출발해서, 1955년 『8.15해방 10주년 경축 전국미술전람회』를 통해 김일성·김정일의 교시적인 '국가예술론'에 입각한 '주체미술'로 연결되는 것이다. ●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구축된 주체미술의 핵심은 북한전체에 적용되는 '김일성주의'의 현시화였다. "그 사상·철학적 논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자주성과 주체성의 새로운 혁명을 지향하는 것으로 풀이되었으며, 결국 이 주체사상은 '위대한 김일성 수령이 창시하고 개척한 영생불멸의 지도적 지침'으로 떠받들어졌다."5) 인민대중과 당, 그리고 수령에 대한 존경을 바탕으로 혁명투쟁과 선군사상을 고양하는 내용으로 그 중심에 바로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과 투쟁을 인간의 본성에 맞게 더욱 원만히 형상할 수 있는 창작방법"6)이자 "인민대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한 새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창작방법"7)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참다운 생활은 새롭고 진보적이며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인민들의 투쟁 속에 있다. 투쟁 속에서 벌어지는 생활은 가장 고상하고 아름답다. 온갖 낡고 보수적이며 반동적인 것을 쓸어버리고 새롭고 진보적인 것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벌어지는 생활은 그 지향에 있어서 고상할 뿐 아니라 그 과정이 전투적이고 낭만적이며 아름다운 것이다"8)라는 인민의 일상으로부터의 미적 동기를 강조한다. ● 판화는 이런 주체미술론에 근거해서 조선화를 다량 복제하는 효율적인 선전선동 기능과 함께, 소통의 효과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출판미술의 주요한 창작기반이 된다. 이런 지점에서 보자면 문화교류를 통해 외국으로부터 소개된 동판화와 석판화는 그 실례가 매우 소소한 편이고, 실크스크린과 같은 판종은 거의 없다.9) 출판미술에서도 최근에는 합성수지판화가 주를 이룬다. 그런 기법으로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지속되어온 북한판화사의 주요한 흐름 몇 가지와 대략의 작가 및 작품들을 하타야마선생의 기술에 의거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리은희_회천의용사들_ED.22/50_아트지에 1도_91×46cm_2018

주체미술의 핵심인 수령의 형상 ● 수령이 등장하는 판화는 주로 공동작업이었다. 조선화나 유화에서는 많이 있었으나 판화에서는 드문 편이다. 1958년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된 배운성의 「철강전사를 방문한 수령님」·한태순과 최석린 공동작품인 「함대에 찾아오신 어버이 수령님, 1968」·황인제의 「유격구의 마을, 1987」·엄광수의 「백마, 1996」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항일혁명의 전통을 주제로 한 작품 ● 항일혁명미술은 주체미술의 시원이었다.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지도하면서 투쟁한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내용이 중심이 된다. 그중에서도 작가미상 작품인 「사령부의 불빛」은 항일혁명기의 김일성 사령부를 보위하는 혁명군 보초병을 판각한 것이다. 이후 차광수의 「매鷹, 1961」·황인제의 「혁명군이 왔다, 1971」·김옥성의 「장군님의 품을 찾아서, 1984」·박영호의 「무장을 위해서, 1984」 등이 유명하다.

한국전쟁(조국해방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 ● 함창연과 정용석의 공동작품인 「水中橋, 1971」·리석상의 「전사들, 1963」·박현주의 「승리한 고지에서, 1993」·엄광수의 「고성의 처녀」·리석남과 김익현의 공동작품 「낙동강의 화염, 2001」 등이 있다.

인민군대의 일상을 다루는 작품 ● 김영남의 「사랑의 콩나물, 1992」·정용석·리석상·김영남·박현주·엄광수·리석남「군인건설자, 1990」·김익현·홍완식·리종섭·김신억·김철관·박영주·리정호·지철혁·김호남·윤성호·황인재·민은식·리국철·홍영일·리홍철·변효찬·박성길「후방의 밀영에서, 1984」·김희운·박래정·강인재·김영철·정영진·황철호「기적소리가 들린다, 1993」 다수의 작가들이 주체미술론에 입각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회주의적 계급교육을 주제로 한 작품 ● 권광철과 박영일「승리의 워낭소리」·황인재와 김영광 김창협의 공동작품「우리나라의 탄생」·박옥순·김성칠·한태수·최동수·엄관주·한태순·김희원 등 많은 작품이 있다.

풍경판화 및 기타 풍속 및 장식용 판화 ● 김육룡의 「눈꽃 핀 전야에서, 1971」·리일복 「달밤, 1975」·김본주「꽃피는 선경」·리편림·오승관·양병수·주시은·전광윤·전광수·최평길·박은봉·강재원 등 다수가 작업을 했다. 현재 북한주민들의 거주공간에 많이 걸렸으리라 유추된다.

리정섭_다듬이질소리_한지에 1도(연필글씨無)_53×50cm_1970

앞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에서 판화는 독자적인 현대미술 양식이기보다는 주체미술론에 입각해서 '조선화'의 미감을 다량으로 체현해내는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출판미술 매체로 자리하고 있다. 김일성의『주체미술론』에 따르자면 판화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느낌을 주는 소품형식의 미술"이며 "판화는 원화를 그리고 그것을 판에 새긴 다음에는 임의의 시간과 장소에서 많은 량의 그림을 찍어낼 수 있으므로 기동성 있게 보급할 수 있는" 출판화이다.10) ● 북한에서는 판화 중에서도 전통적인 판화매체인 목판화(리놀륨11)판화와 합성수지판화를 포함)를 중시하는데, 그중에서도 '유인(유성)목판화'보다는 북한식의 '수인(수성)목판화'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로는 수인목판화가 북한의 주체미학적 형식인 '조선화'의 특성을 토대로 한 것으로, "색이 맑고 부드럽게 느껴지며 전체화면이 정갈하고 산뜻하여"12) 인민들의 정서와 미감에 적합하다고 여겨져서다. 이와 함께 또 목판화는 '출판미술'로서 인민대중에게 광범위하고 널리 보급이 가능한 기동적인 형식이자, "선전선동의 유효한 무기"라서 그렇다. 그렇게 개념화된 목판화와 리놀륨판화, 그리고 또 근래 많이 활용되는 합성수지 판화는 주로 항일혁명기의 투쟁적 역사화·수령과 사회주의와 노동당 찬양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인간과 미술·인민들의 명료한 일상성과 전통풍속·국토풍경 등으로 전개된다. 그러니까 판화는 '주체미술'의 원형적 형식인 선전화·만화·삽화 등에 두루 활용할 수 있는 매체이자, '조선화'의 미감을 수렴할 수 있어서 그렇다는 뜻이겠다. 이는 독자적인 작품으로서의 현대미술 장르중의 하나로 자리 잡은 남한에서의 목판화와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 최근 2010년 『당 창건 65주년 기념국가미술전람회』에 참가한 북한 판화가들이 소속된 기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중앙미술창작사·평양미술대학·만수대창작사가 다수이고 평안북도미술창작사·북조선인민미술창작사 판화분과·철도성미술창작사에 소속된 작가들도 있다. 즉 조선시대 화원들처럼 국가기관에 소속되어서 부여받은 과업에 따른 집체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번 『평화, 새로운 미래-북한의 현대판화展』에 참가하는 작가들을 보면 리정섭·한태선·황인제·홍춘웅·양병수·차광수·김희운 등의 북한판화를 대표할만한 2세대 작가들로부터, 김용·변효찬·강상훈·박화순 등의 3세대 작가들을 거쳐, 강선향·강선호·길은경(1987~)·길은성·김경훈(1976~)·김도선(1975~)·김복상·김복실(1978~)·김봉주·김영호(1966~)·김용철(1971~)·김창수(1962~)·김철원(1972~)·김철준(1983~)·김철훈(1972~)·김학림·류상혁·리금희·리은희(1986~)·리정화·리창호(1978~)·리홍철·박근성(1970~)·박성철·박영호·성영수·송영남(1968~)·인성진(1973~)·장성범·정일선·지운성(1983~)·차명철·최정원·최정철·한성규·한성호·황병근(1968~)·황복신(1975~)·조주일(1991~)·황서향 등 현역 3~4세대 작가들을 아우른다. 대략 60여 명에 110여 점의 작품이다. ● 이들의 작품 내용은 앞서 북한판화의 전체적 기술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다. 다만 이번 전시에는 수령형상이 등장한 작품이나 이른바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에 관계된 내용의 작품은 없다. 항일투쟁이나 선군주의에 바탕한 병영문화장면, 인민들의 일상생활현장의 모습, 전통 명절의 풍속적 내용, 국토건설의 미담과 풍경이 결합된 풍경화, 꽃이나 설화에 기반한 장식화 등이 주를 이룬다. ● 기법은 대부분 쉬운 인출을 위한 평범한 볼록판법이 주를 이룬다. 다색판화라고 해봐야 3도 이내가 주를 이루고, 단색판화가 많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기법이나 재료에 의한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 방법보다는 담백하고 명료하게 드러나는 내용과 맛을 보여준다. 내용과 기법적으로 이 작품들을 거칠게나마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변효찬_개척자들_아트지에 2도_62×87cm

첫 번째로 배운성이 구축한 구륵법(외곽선으로 대상을 재현하는 법)으로 판각하고 먹으로 찍은 뒤, 그 내부를 수성담채로 칠하는 방법이 있다. 주로 명절이나 결혼식 같은 행사에 대한 민속적·풍속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 주로 인물화가 많고, 출판미술에도 많이 쓰인다. - 황인제(널뛰기, 우물가, 소타기)·김용(생일날)·길은경(장고춤)·리금희(윷놀이, 내그림자)·김학림(물레질 소리)·리은희(사랑, 재미나는 그림책)·리정화(새교과서)·리창호(봄놀이)·리홍철·박영일(줄넘기)·박근성(윷놀이, 봄놀이)·박하순(팽이치기)·송영남(무릎싸움)·인성진(팽이치기)·양병수(윷놀이)·황보신(추석날) ● 두 번째로는 공산주의 혁명과 항일투쟁 역사화, 선군사상에 의한 군 병영문화, 노동자·농민의 현장과 휴식 등을 통한 건강한 투쟁모습 등을 표현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주체사상 등 체제 선전용 판화가 있다. 중국목판화의 영향이 일정부분 보이며 다색·단색을 아우른다. - 김희운(양어기사)·박성길(청년분조장)·강선향(초병)·강선호(행복의 웃음소리)·길은경(일요일의 하루)·길은성(혼례식 하는 날)·김경훈(조국을 위하여)·김도상(황천의 새주인들)·김영호(북부철길 건설장)·김용(이 깃발을 고지우에)·김옥선(탈곡장에서)·김철원(주체사상탑)·김철준(즐거운 야영소로, 포전선동)·김철훈(승리, 조국의 하늘을 지켜)·리정섭(다듬이질 소리, 새 각씨 맞는 날)·리은희(회천의 용사들)·리홍철(충정의 하루)·박근성(메아리 사격관에서)·박대흥(서른 네 번째)·박성철(체조시간)·변효찬(개척자들, 로장 아바이)·인성진(제대군인 분조장)·정일선(흥겨운 탈곡장)·차명철(우리가 이겼다)·최정철(개선문)·최정철(혁신자들)·한성규(전초병)·홍춘웅(일당백)·황병균(건설장의 야경)·김창수(하용강의 저녁) ● 세 번째로는 조선화식으로 국토풍경을 장엄하게 묘사함으로 혁명 정서를 함양하는 회화적인 다색판화 - 길은경(노을 비낀 호수가)·김도선(해금강의 파도)·김영광(초석정의 저녁)·김창수(하룡강의 저녁)·김철준(부전호의 달빛)·리석남(삼지연의 저녁)·리성아(석전만의 아침)·송영남(금강산 상팔담)·리은희(백련담)·박영호(대동강의 달빛)·장성범(청류관의 저녁, 강풍경)·한태순(호수가)·홍춘웅(백두의 봄)·황병균(밀림 속에서)·황서향(삼지연의 불빛)·황인제(고향의 봄, 금강산 겨울, 대홍단, 칠보산)·김혁(봄날에)·리석남(삼지연의 저녁) 등이 있다. ● 네 번째로는 중국 흑룡강성의 '북대황파'의 영향을 받은 형식이 있다. 칼맛을 살려 흑백대비로 그 스케일을 과장해서 다이나믹하게 표현하며 주로 유성잉크로 찍는데 삽화적이다. 풍경이 많고 역시 출판미술에 많이 수용된다. - 차광수(매)·김복상·김용(독도, 호수가의 아침)·김해성(장수산의 다람사)·리정섭(언덕우에서)·성영수(백두산 3단 폭포)·한성호(밀림의 외침)·홍춘웅(백두의 봄)·황병균(밀림 속에서)·황복신(일요일의 하루)·황인제(고향의 봄) 등의 풍경이 여기에 해당된다. ● 다섯 번째로 기타 화조화·풍경화·설화·삽화 등의 장식화가 있다. - 김영광(표범)·김도선(정물)·김용(게, 룡을 낚는 사람)·김창수(호수가의 여름)·김철훈(묘길상, 단군화상)·류상혁(명절날의 민속거리)·리은희(사랑의 거리, 저녁)·리창호(금지)·최금철 등이 있다.

황인제_금강산겨울_ED.9/12_모조지에 다색_30×48cm_2013

북한에서 판화를 찍는 용지는 전문적인 펄프판화지는 거의 없고 가끔 한지나 화선지가 수인용으로 쓰이나, 전반적으로는 수지판에 인쇄하는 용지인 모조지나 아트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동판화나 석판화를 거의 하지 않아서 펄프판화지의 필요성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판매를 위한 고가의 미술작품이란 판화의 상업성보다는 인민들의 생활에서 기능하는 선전물이자 출판미술의 원고로 여겨져서 그런 듯하다. ● 전체적으로 북한의 판화는 기법과 표현형식이 간단하면서 담백하고, 내용을 적확하고 쉽게 드러난다. 상징이나 알레고리, 기타 비유법 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중국목판화, 그리고 주체미술론에 근거해서 그렇겠지만, 작가의 내면이나 상상 등의 내밀하고도 개인적 요소는 부르주아적 미감으로 여겨져서 오랫동안 배척된 탓일 게다. 주체문예론에 근거한 창작방법론으로 인해 패턴화된 내용전개방식도 그 한 원인일 터이고. 그러나 우리와는 다른 체제에서의 미술에 대한 인식과 시각의 차이는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상호 비교를 통한 우위나 열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문화는 한 국가나 사회의 삶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 삶의 첫 번째 조건이 정치와 경제다. 남북간 이념·체제·거기에 따른 삶의 방식이 빚은 차이와 다름을 남쪽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판화전시를 통해서 북한을·북한 주민들을·북한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들과 어디에서 상호 이해할 지점을 찾을 것인가에 일차적 관심을 두어야 하겠다. 남쪽의 판화가와 판화를 북한의 판화가들과 주민들이 또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 예술은 단절을 넘는 커뮤니케이션의 기제다. 판화 또한 마찬가지다. 복수성에 근거한 소통이라는 판화개념에 대한 남북의 공통적인 분모가 있다면, 판화의 이질적인 분자인 시장주의(예술)/교훈주의(선전선동의 도구)로 분리되는 이 '다름'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그 장벽을 넘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선전용 그림들만 있을 거란 예상을 깨고 인민들의 일상이나·전통풍속 놀이·아름다운 자연풍경 등을 그린 출판미술의 삽화적 미감은 어떤 거부감도 없이 있는 그대로 다가온다. 이런 지점에서 서로의 민낯과 속살을 확인하면서 점차적으로 심층적인 미학적 연구와 교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남·북간, 북·남간 판화교류의 첫 발걸음이자 단초인 이 전시 이후에 깊이 있는 차후의 기획이 준비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 결과로 좀 더 빨리 한반도에 '평화, 새로운 미래'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란다. 시각미술, 그리고 판화는 그렇게 만나는 선봉에 설 수 있는 장르임이 분명하다. ■ 김진하

* 각주 1) 다음백과사전 2) 하타야마(畑山康幸, 1949~, 日本, 동아시아 현대문화연구센터장),『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판화가-현대북조선판화事情』/ 필자의 이 글 전체적인 흐름은 하타야마 선생의 선행연구를 참조했다. 3) 오노 다다야키(小野忠明 1903-1994)일본 판화계의 거장이자 최영림의 유학시절 목판화 스승인 무나카타 시코(棟方志功)의 친구. 4) 하타야마(畑山康幸),『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판화가-현대북조선판화事情』  5) 이구열, 『북한미술 50년』, 돌베개, 2001 6) 김교련, 『주체미술 건설』(주체미술총서-1) 7) 김교련, 『주체미술 건설』(주체미술총서-1) 8) 김재홍, 『주체의 미론』, 평양, 문예출판사, 1993 9) 하타야마(畑山康幸),『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판화가-현대북조선판화事情』중,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문학 예술업적-9, 홍의정·김순영, 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1』부분 재인용. 10) 지덕종, 『인민들을 당정책 관철에로 선도하는 선전화를 더 많이 창작하자』, 『조선예술』 11월호, 1993 11) Llinoleum. 고무판화. 고무와 톱밥을 혼합해서 압축한 것. 목판화와 같은 개념의 판화재료로 쓰인다. 12) 라봉수, 『오랜 력사를 가진 수인목판화와 찍음수법』, 『조선예술』 10월호, 1993

* 기타 참고서적 및 재인용 출처 북한의 문화와 예술, 박태상, 깊은 샘, 2004 문화로 읽는 북한, 전영선, 유니스토리, 2009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한·중 수교 25주년 기념 판화전, 한신대학교 한중문화산업대학, 2017 북한미술 50년, 이구열, 돌베개, 2001

Vol.20190321f | 평화, 새로운 미래-북한의 현대판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