盡紅 진홍 [scarlet] : 붉음을 다함

신주은展 / SHINJOOEUN / 申主恩 / painting   2019_0322 ▶︎ 2019_0409 / 일요일 휴관

신주은_盡紅(진홍)_천에 염색, 채색_137×127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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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아트레온 갤러리 초대작가展

후원 / (주)아트레온 주최 / 아트레온 문화예술부 기획 / 아트레온 갤러리 충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레온 갤러리 Artreon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129(창천동 20-25번지) 아트레온 B1 갤러리 충 Tel. +82.(0)2.364.8900 www.artreon.co.kr

나는 나의 작업들에 관계 속 경험과 감정을 담아내어 존재한다. 인생의 선악과, 욕망과 금기. 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따라오는 자괴감과 죄의식은 주홍 글씨로 내게 새겨져 있다. 비록 17세기 중엽, '헤스터 프린'이 일생 동안 가슴에 걸고 살아야 했던 그 'A'는 아닐지라도.

신주은_죄의식_천에 염색, 채색 후 손바느질_380×163cm_2018
신주은_죄의식_천에 염색, 채색 후 손바느질_380×163cm_2018_부분

욕망은 붉고 뜨겁게 타올라 삶의 빛이 된다. 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깊은 법, 불꽃에 미혹한 나방은 파멸로 향하기 마련이다. 인간에게는 규율에 의해 금지된 것에 더 크게 호기심을 느끼고 더 강렬하게 욕망하는 경향이 있다. 니체는 에로티즘의 본질을 '금기와 위반'이라고 보았는데, 금기는 '위반하기 위해 지켜지는' 역설을 담고 있다. 법이 어겨지는 것은 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기는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 금기다.

신주은_玄(현)_천에 염색 후 먹, 석채_91×71cm_2019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은 금기 때문이지만, 금기를 욕망하는 것은 질책과 자책을 낳는다. 결국 욕망과 금기, 그리고 죄의식은 팽팽한 삼각관계를 이루고, 그 긴장은 곧 괴로움이 된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에서도 불쑥불쑥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스스로의 죄를 묻는 소리는 언제나 무거웠다. 그것은 내가 겪은 가장 아득한 두려움이었고 가장 외로운 동요였다. 그 어둠 속 품어야 했던 고통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쓰라린 낙인으로 남았다.

신주은_紅(홍)_장지에 채색_91×71cm_2018

어둠이 존재하는 것은 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빛났기에 끝없는 암흑은 펼쳐진다. 강렬히 타오른 불길은 내뿜었던 열기만큼 싸늘한 화인을 남긴다. 죄책감에 짓눌린 삶은 비밀로 응어리져 더한 압박이 된다. 내가 풀어놓고자 하는 것은 욕망의 결과 - 짧은 쾌감과 해방감 뒤 드리워 오는 자괴감과 죄의식, 그리고 그로 인해 변한 모든 것 - 에 대한 이야기다. 수없이 붓질을 하고, 천을 붉게 물들이고, 그것들을 바느질하고 나서야 완성된 작품들이다. 내 속에 깊이 자리해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금기, 욕망, 그리고 죄책감의 굴레는 고뇌의 굳은살을 쓰고 둥글게 굳었다. 붉은 빛으로 번진 화면은 입을 벌린 조개의 흉 진 속살이다.

신주은_線上(선상)_장지에 염색후 채색_65×52cm_2018

어쩌면 진주가 조개의 고통 속에서 탄생하듯, 금기를 향해 품은 욕망이 남긴 상처에서 나는 내 자신을, 동시에 내가 있는 세계를 인식하는 통로를 발견한 걸지도 모른다. 하이데거는 '탈존'(脫存, Ek-sistenz=ex-istence)을 '인간이 이미 존재의 밝음 안에 들어서 있음', 즉 '존재의 밝음 안에로의 탈존'이라 설명하며 인간은 존재의 열려 있음에 들어서 있으며 인간의 본질은 존재를 이해함에 있다고 말한다. 나의 존재 속 그 붉은 표식을 인정하며 나는 나라는 주체에서 벗어나 세계, 다시 말해 존재의 열려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그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작품을 통해 내 틈새를 드러내는 것, 붉음을 다하는 것이다. ■ 신주은

Vol.20190322b | 신주은展 / SHINJOOEUN / 申主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