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되기 Become a shadow

안경진展 / ANGYEONGJIN / 安京眞 / sculpture.installation   2019_0323 ▶︎ 2019_0630 / 6월 20일 휴관

안경진_책이 날개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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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진 홈페이지_www.angyeongjin.com

초대일시 / 2019_0525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5:00pm / 6월 20일 휴관

조명박물관 LIGHTING MUSEUM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광적로 235-48 (석우리 624-8번지) 특별전시장 Tel. 070.7780.8911 www.lighting-museum.com

아이야 // 네가 양지바른 길을 걷길 바라지만 / 세상은 너를 음지로도 안내할거야. // 빛 속에서 떠오르길 바라지만 / 어둠에 쌓여 추락하는 날들도 있을 거야. // 빛은 남이 나를 보게 하고 / 어둠은 내가 나를 보게 해서 // 어둠 속에 너를 깊이 바라보면 / 어둠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니고 // 밝은 빛이 너를 눈멀게 하면 / 빛은 더 이상 빛이 아니야. // 빛과 늘 함께하는 그림자를 잊지 않고 / 그림자가 사라지면 빛도 없음을 기억하길.

안경진_숲의 시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안경진_숲의 시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안경진_톰과제리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안경진_숨바꼭질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안경진_두 얼굴의 사나이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안경진_하나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안경진_하나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사라지다 ● 버스가 급히 멈춰 섰다. 나와 승객들은 순간 앞으로 쏠렸고, 이내 무슨 일이 있는지 창밖을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도 없는 왕복 8차선 도로 위, 파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가 유유히 지나고 있었다. 작은 채구의 할머니는 경적의 화살에도 초연한 듯 위태로운 걸음으로 출근길의 복잡한 정체를 빚어내고 있었다. 기사가 할머니에게 뭐라 큰소리로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버스를 출발시켰고, 승객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돌려 각자의 멍한 눈을 되찾았다. 나는 목을 쭉 빼고 창문 옆을 지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할머니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번 정거장은 문래동 세무서. 버스승하차장에 내려 횡단보도의 파란불을 기다리며 저 멀리 큰길을 마저 건너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작업실로 걸어오는 5분여 동안 할머니의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안경진_사라지다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평생 고된 노동에 시달렸지만 비루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 나의 삶. 오늘도 어둔 새벽 빈 수레를 끌고 나와 평소 돌던 코스로 길을 나섰고, 몇 몇 포인트에서 대박을 맞았다. 누가 채갈 새라 바삐 움직여 박스를 주워 담았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수레를 가득 채웠다. 이 길을 건너면 오늘의 노동이 재화로 환원되는, 하루의 가장 떨리는 순간. 대로를 건너다 차에 치인다 해도 거칠고 힘든 인생 죽기밖에 더하겠나. 타인의 출근길을 막아서더라도 그들을 배려해 돌아갈 힘과 여유 따윈 내게 없다. 이 길의 끝엔 이슬 맞으며 오그라든 내 손에 돈을 쥐어줄 고물상 사장이 기다리고 있고, 그 앞에서 좋은 흥정을 끌어내기 위해선 지금부터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 게다가 오늘은 두 군데에서 대박을 쳐서 굳이 박스에 물을 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당당하다. 어차피 어두워진 귀에 경적소리 따윈 들리지도 않고, 설레는 마음에 비실비실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안경진_사라지다_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공간설치_2019

한동안 작업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2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네댓 시간 작업에 몰입했고, 그제야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흙으로 사람을 빚으며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을 만드는 데, 경험에는 한계가 있기에 종종 만드는 대상이 되어본다. 물리적으로 내가 만드는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느껴보는 경험.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작업한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시를 쓸 때 산이 되어보고 강도 되어보고 꽃도 되어보는 경험. 그저 꽃을 바라본 느낌으로 시를 쓰는 것과 꽃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아침의 차가운 이슬에 흠뻑 젖고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바짝 말라가는 땅의 기운을 느끼면서 쓰는 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나는 허기가 들기까지의 시간동안 할머니가 되었고, 그녀가 되어 자소상을 만드는 동안 찰 라로 기억될 꿈같은 인생이 그려졌다. ■ 안경진

Vol.20190323a | 안경진展 / ANGYEONGJIN / 安京眞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