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대상을 찾아서' - 그리고 상실은 욕망이 된다. In the Search for Lost Things - When Loss Becomes Desire

김설아_조현택 2인展   2019_0330 ▶︎ 2019_062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0404_목요일_04:00pm

관람시간 / 09:00am~05:30pm / 월요일 휴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MUAN SEUNGWOO OH MUSEUM OF ART 전남 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7 Tel. +82.(0)61.450.5482~4 museum.muan.go.kr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사라져버린 공간, 그 속에 새겨진 기억들은 인간에게 그리움을 남긴다. 그런데 그 부재의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그 강도가 커져간다면? 예를 들면 어머니의 죽음이나 수몰되어버린 고향에 대한 기억처럼 우리의 몸과 하나가 되어버린 그리움은 결코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상실은 애도의 과정을 겪지만, 그러나 그러한 원형적 그리움은 조그만 틈만 보여도 우리는 다시금 보기를 만져보기를 냄새 맡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런데 우리의 몸이 기억하고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이 불가능한 그리움의 대상을 유일하게 예술가는 그려낸다. 이처럼 부재의 대상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이번 『잃어버린 대상을 찾아서-그리고 상실은 욕망이 된다』의 전시에 초대된 김설아 작가와 조현택 작가이다. ● 여수가 고향인 김설아 작가는 대단위 화학공장 건설로 인해 이주민이 되었고 작가는 상실해버린 자신의 터전을 먼지나 돌연변이 벌레의 미세한 촉수와 같은 현미경적 몰입의 시선을 통해 마술처럼 불러낸다. 한편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은 조현택 작가는 카메라옵스큐라의 눈을 통해 어두운 빈방에 맺힌 밝은 바깥풍경의 이중적인 시선으로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그리움의 대상과 조우하는 꿈을 꾼다. ● 이들 작가가 각기 다른 방법과 과정을 통해 불러내는 그리움의 대상은 비록 꿈이지만, 다른 무엇보다 너무도 생생하고 아름답다.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미생을 사유하다김설아 작가는 땔감으로서 생명을 다한 재(ash)나 먼지조차도 생명을 지닌 생명체로 보았으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미약한 생명체의 상실, 소멸을 기록해왔다. 따라서 작가는 먼지, 깃털, 단세포 생물에서 기억에 이르기까지 사라져버린 과거의 시간과 기억을 시각화했다.

김설아_눈물, 그 건조한 풍경 Tear drops, the arid landscape_ 종이에 아크릴채색_280×260cm_2017

수많은 세필 작업으로 완성한 「눈물, 그 건조한 풍경」은 눈물형상과 여성의 가슴이 중첩된 이미지이며, 여성이 욕망하는 가슴이 눈물의 형태로 전치되고 변이됨을 보여주고 있다. 눈물로 형상화된 여성의 가슴은 중력과 세월에 순응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생물학적으로도, 성적으로도 기능을 다 한 여성의 신체 기관을 대상화함으로써 중력과 세월을 되돌리려는 몸짓에서 여성의 욕망을 시각화했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수많은 가슴 형상은 21개의 가슴을 지닌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Ephesian Artemis) 여신을 연상시킨다. 인도에서 7년을 보낸 작가는 신화 속 인물보다는 신화가 생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보이며,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 타원형 형상은 성적 에너지로서, 욕망으로서, 생명의 근원으로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다의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김설아_숨에서 숨으로 Breath to breath_종이에 아크릴채색_155×75cm_2015
김설아_침묵의 목소리(Silent voice)_종이에 아크릴채색_210×77cm_2015

「숨에서 숨으로」는 수많은 위족을 거느리고 있는 짚신벌레 모양의 단세포 같은 곤충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위족은 미약하나마 전진하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위족들로 둘러싸인 중앙 몸체의 줄무늬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쳐진 인간의 뱃살 위에 새겨진 나이테로서 공간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이다. 「침묵의 목소리」 역시 위족의 운동 기능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여기서 작가는 고등 동물 인간의 척추와 하등 동물인 단세포 생물의 위족을 결합했다. 이 두 기관의 만남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탄생한 것이며 작가가 의도적으로 결합한 생명체인 셈이다. 척추는 고등 동물의 뼈 구조물이자 신경통로를 보호하는 주요 골격으로서 인간의 직립 보행을 가능하게 하고 신체의 평형을 유지하는 고등 기관이다. 그러나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척추의 중심축은 위족들의 끊임없는 자맥질로 인해 진동을 일으킬 것이다. 그 진동은 미약하지만 분명한 소리로 위족들의 존재감을 증명할 것이다.

김설아_기억의 막 Membrane of memory_종이에 아크릴채색_85×63cm_2017

「기억의 막」은 수많은 위족들이 둘러싼 원형의 형상이며 이는 여성의 신체 기관을 형상화한 것으로 비쳐진다. 이 위족들은 단세포 생물의 한 기관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복잡하고 복합적인 감각기관인 여성의 신체 기관으로 변모했다. 내부를 메운 수많은 자수의 흔적, 바늘구멍은 여성의 노동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바느질을 통해 생성된 바늘구멍은 피부 위에 남는 흉이자 흉터이다. 그저 작가는 바늘구멍이 통과해서 남기는 흉과 그 흉의 자국만을 그렸다. 여기서 위족들은 그저 흉으로 얼룩진 한 존재의 보호막으로 기능한다.

김설아_사자(使者)의 은유 The Metaphor of the Messenger_200×440cm_2019
김설아_사자(使者)의 은유 The Metaphor of the Messenger_비단에 먹_85×85cm_2019

곰팡이는 가느다란 실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기물질과 만나 변이를 일으킨다. 이 변이는 부패와 분해 작용을 통해 생물의 본래의 모습을 파괴한다. 따라서 습윤한 지역에 서식하는 곰팡이는 유기체의 생명이 다했음을 알려주는 메신저로서, 「사자의 은유」 속 곰팡이는 사자처럼 죽음으로 인도하는 존재이다. 곰팡이는 곧 생명이 다한 한 개체의 표피에 새긴 하늘의 메시지이자 죽음을 알리러 온 메신저의 은유이다. 작가는 가장 비싸고 다루기 힘든 매체인 실크 위에 곰팡이 균사를 그림으로써 죽음을 전하러 온 사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혐오를 극대화했다. 균사를 확대해 그린 「사자의 은유」에서 독립된 곰팡이 균사의 원형 구조는 세포의 핵으로 읽히기도 하며, 눈동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작품은 눈동자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시각과 함께 외부를 둘러싼 위족들이 내는 소리로 청각을 공감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하이퍼리얼리즘보다 더 세밀한 마이크로리얼리즘의 세상과 존재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작가 김설아의 작품 세계는 죽음과 삶을 관통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마이크로한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매크로한 세상이 되었다. (이 글은 원본의 내용이 발췌, 편집된 것입니다.) ■ 이미경

전시장의 희고 넓은 벽면은 비우고, 전시장 한가운데 건축용 자재인 BT아시바로 구조물을 설치하여 사진을 디스플레이 할 계획이다. 사진액자들은 사각의 흰 벽면에 줄을 맞춰 걸린 익숙한 모습으로가 아닌 철재구조물 사이에 허공을 떠도는 듯 전시될 것이고, 벽을 비추던 스팟 조명들은 한가운데 구조물을 향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자연사박물관의 커다란 로비에 서있는 멸종된 메머드의 박제나 뼈조각을 맞추어 재현한 공룡의 모형처럼 보여지기를 구상하고 있다. ● (...) 실체가 없는 부재한 이미지로서의 사진, 그리고 사진을 증명해 줄 작은 존재로서의 소품들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전시라는 행위 앞에 거대한 구조물과 커다란 전시장은 인공과 문명을 상징하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환경을 깊이 상기시킨다. 실제로는 작은 존재가 아니었겠지만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 안에 놓여 진 낡은 메머드의 뼈 조각처럼 작은 형태가 된다. ● 메머드는 결국 한때는 살아있었던 빈방과 오브제들, 삶에서 죽음으로 향해가는 인간들의 걸음, 죽음에서 시작해 전시장에서 위태로운 삶을 영위해 가야하는 사진의 모습이다. ■ 조현택

흰나비의 방, 조현택의 카메라 옵스큐라조현택의 「빈 방」연작은 대립적인 두 세계의 상관관계 혹은 갈등관계를 사진의 본질을 따라가며 형상화한 작품이다. 어두운 방과 밝은 마당,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 옵스큐라(obscura)와 루시다(lucida), 정지와 흐름, 그리고 사라짐과 살아있음 등이 그 대립적인 두 가지 세계다. 어머니의 부재를 심각하게 앓던 작가는 작업을 재개할 수 없을 정도로 당장의 현실적 계기를 찾기가 무망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 마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을 놓아버린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La chambre claire)』(1980)를 집필하며 죽은 어머니를 초혼(招魂)하듯, 조현택은 「빈 방」연작을 통해 드디어 어머니와 조우하게 된다. 사진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게 된 것이다. 「빈 방」을 찍은 이 사진들은 떠난 사람들의 부재를 전제로 향수와 그리움을 일으키며 사진의 고유성을 각인시키는데, 볼수록 쓸쓸하고 아름답다.

조현택_DramaSet_Camera Obscura_#5_잉크젯 프린트_130×87cm_2017
조현택_DramaSet_Camera Obscura_#8_잉크젯 프린트_130×87cm_2017

조현택의 「빈 방」 연작은 단순히 두 세 개의 레이어를 겹쳐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거대한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 형성된 이미지를 고정시킨 것이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에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광선이 외부의 풍경을 거꾸로 비추는 것으로, 핀홀(pin-hole)카메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람보다 더 큰 형태여서 사람이 카메라 옵스큐라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벽면에 비친 이미지를 그렸다고 한다. 조현택은 바로 카메라의 시원(始原)으로 돌아가 어두운 방에 맺힌 바깥풍경을 '다시' 찍었다. 즉, 카메라 옵스큐라 안의 또 다른 카메라가 놓인, 두 개의 카메라, 두 개의 세계가 만든 하나의 이미지인 것이다. 특이한 점은, 조현택의 사진에서 열렸다 닫히는 카메라의 셔터 속으로, 안과 밖, 어둠과 밝음, 죽음과 삶, 꿈과 깨어있음이 합치된다는 것이다. 셔터가 닫히자마자 곧장 과거로 화석화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시간에 잊혀진 기억과 사라진 사람들이 들어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는 마술의 시간이 다시 열리는 것이다. ... 과거 현재 미래가 통째로 춤을 추며 사진이 제 스스로 꿈꾸기 시작하는 이 아름다운 시간은 캄캄한 적막의 텅 빈 방에서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느 날 작가의 방으로 날아 온 흰나비의 날갯짓처럼 「빈 방」의 풍경은 곳곳에서 생생하다.

조현택_55번방-광주시 광산구 덕림동 699-7_잉크젯 프린트_100×150cm_2015
조현택_56번방-광주시 광산구 덕림동 699-7_잉크젯 프린트_100×150cm_2015

「빈 방」의 사진 속에는 바깥세상의 온갖 '있음'들이 드나드는데, 봄여름가을겨울 그 빛들은 제각각이다. 봄에는 환한 연둣빛이 스며들고, 여름에는 청량한 푸른빛이 돌고, 가을에는 고동빛으로 물들다가, 겨울에는 맑고 차가운 빛이 오간다. 1996년에 멈춘 달력과 로마서의 한 구절과 불경의 글귀 위에도 그 빛들이 넘실거린다. 빛들은 남겨진 가재도구와 흐린 벽지와 구겨진 장판을 타고 흐르다가 흰나비처럼 하늘하늘 날라 가기도 한다. 유채꽃이 화사한 어느 봄날의 기억에서는 오랫동안 멈춰있기도 한다. 빈 방의 벽은 흐르는 시간과 빛들을 그림처럼 담아냈다. 빛나는 어원의 조합인 사진이라는 명칭처럼, 그 빛은 의미심장할 뿐이다.

조현택_Vacant Room_Camera Obscura_3번방-나주시 중앙동 114-2_ 잉크젯 프린트_50×76cm_2015
조현택_DramaSet_Camera Obscura_#6_잉크젯 프린트_87×130cm_2017

(...)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로, 한 때 그 사람/사물이 "거기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그 사람/사물이 거기에 분명히 있었기에 사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현택의 「빈 방」 사진의 고유성이 획득되는 지점도 바로 (지금은 떠나고 없지만) 언젠가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지금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마당의 풍경을 끌어와 '함께' 보여준다는데 있다. 자기 상처와 공생하며, 거기에 이르기까지 막막한 헤맴을 통해 자신의 사진세계를 좀 더 넓은 지평 속에 확장하려는 조현택의 사진적 고투가 「빈 방」에 이르러 미적 거리를 얻어낸 것도,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상상력에 의한 열림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빈 방'을 담아낸 '어두운 방'이 결코 어둡지 않은 것은, 상실감의 내면화를 성숙시켜온 조현택 사진의 지속적 탐구가 선명한 자기표현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원본에서 발췌된 글입니다) ■ 최연하

Vol.20190330b | '잃어버린 대상을 찾아서' - 그리고 상실은 욕망이 된다.-김설아_조현택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