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Evenness

박경률展 / PARKKYUNGRYUL / 朴徑律 / painting   2019_0403 ▶︎ 2019_0508 / 월요일 휴관

박경률_The specter_캔버스에 유채_182×227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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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률 홈페이지_www.parkyungryul.com

초대일시 / 2019_0403_수요일_06:00pm

아티스트 토크 / 2019_0416_화요일_03:00pm 문의사항_baikartseoul2@gmail.com, 070-7739-8808

기획 / 김인선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백아트 BAIK ART 서울 종로구 팔판길 42 Tel. 070.7739.8808 www.baikart.com

균질성을 지니는 회화는 가능한가 ● 2018년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선보인 박경률 작가의 회화는 온전한 평면 회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당혹감을 주었을 것이다. 거대한 캔버스 주변으로 놓여진 것들은 과일, 각목, 액자 프레임 등의 일상의 오브제들이기도 하였고, 물감으로 채색된 비정형의 덩어리들이 놓여있는가 하면, 그림 주변 벽면에 부착된 받침대 위에 놓인 또 다른 덩어리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되 하나로 묶인 단위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이 작가의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설치로서 보이기도 하였고, 그림 속에서 빠져나온 이미지들은 작은 크기의 캔버스나 종이 위로 그려진 채, 그리고 여기 저기 놓인 덩어리의 형태로서 공간 점유를 시도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 공간 속에서 혹자는 그가 회화 작가인지 설치 작가인지 잠시 혼란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작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해보아도 점점 미궁으로 빠질 수 있다. 그는 장르적 접근보다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혹은 만들고 있는 이미지가 어떻게 예술로서 조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 털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의 연구는 모두 회화적인 것에 귀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경률_On evenness展_백아트_2019

그는 '조각적 회화'라는 용어를 꾸준히 언급해 왔다. 회화를 조각적으로 혹은 조각을 회화의 영역 안에서 교차시키는 시도는 직접 오브제를 다루지 않았던 2008년~2012년까지의 초기 작업 속에서도 드러난다. 이 기간동안 그려진 대형 회화에서는 대체로 캔버스 화면과 벽 혹은 바닥으로 나뉘어진 화면 구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림 속 캔버스와 전시 공간에 놓여진 실재 캔버스는 구분하여 지칭하는데에도 혼란을 겪는다. 그의 회화 속 이미지 또한 거대한 캔버스와 그 속에 존재하는 그려진 캔버스 위로 펼쳐진 공간으로서, 이미지 속의 회화를 그린 것인지 혹은 캔버스와 마루바닥 사이에서 부유하는 덩어리들을 그린 것인지 다시 한번 혼란스럽다. 구체적인 형상으로서 재현되어 화면 전체를 메우고 있는 이 이미지들은 회화 속에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하고 있는 듯 우리의 눈을 두서 없이 쫓도록 만든다. 작가는 캔버스 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헤집으면서 끄집어낸 기억의 파편들을 늘어놓았다. 그는 지극히 직관적으로 이들을 배치하는데, 특정한 경험의 기억 속 오브제를 시작으로 꼬리와 꼬리를 물고 오브제들 사이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알 수 없는 공간 속에 부유하며 서로의 관계를 상상하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 사이사이로 다시 채워지는 오브제들, 기억의 이미지들은 연결선이 생략된 거대한 구조물처럼 부유하는 덩어리가 된다. 다시 이 화면을 분할하고 있는 벽면과 바닥으로 눈이 머물때, 캔버스 앞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한다.

박경률_On evenness展_백아트_2019

회화 전공을 하면서 캔버스를 대하는 동안 박경률 작가는 자신이 다루는 붓의 움직임, 선, 색 등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예술로서 의미를 가지는 이유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고 했다. 직관과 본능적인 그리기에 대한 탐구는 스스로를 제삼자로 놓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무의식적 그리기에 대한 관찰을 시도할 수 있는 실험을 궁리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2013년 겨울,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의 전시를 위하여 치매 노인들과 함께 그리기 프로젝트를 실행하였다. 영상 도큐멘터리와 회화, 설치, 드로잉 등 작가가 다루는 매체는 다양했다. 치매 노인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영상 작업을 진행했다. 동시에 그들의 기억을 환기하게 하는 드로잉을 그리게 하면서 작가의 개입이 발현되는 거대한 드로잉 또한 제작되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본능적인 그리기와 논리가 없는 허구의 이미지를 기대하였던 작가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였다.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명확한 기억이었고, 나름의 논리성이 드로잉에도 반영되었다. 이 프로젝트 이후로 그는 무의식의 행위와 예술 행위가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부터 벗어났다. 공간 속 레이어들을 드러내면서 쌓였던 기억의 파편으로 존재하였던 이미지는 그 중량감과 부피감을 제거하며 점차 표면 자체로 환원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영국 유학시절, 자신의 그림이 어떠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해결 방법이기도 하였다. 이전 이미지에서 보여준 재현적 묘사로부터 발생하는 이미지의 부피와 무게에 대한 감각, 그리고 네러티브를 유도하는 기억의 파편 속에서 불러들인 이미지에서 그 내용을 삭제하였고 이미지 요소인 선, 색 등만을 남겨두는 변화를 준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감과 네러티브는 삭제되었다. 이들이 제거된 화면 위에는 선과 색 등 재료 자체와 페인터의 몸에서 발생하는 본질적 회화 요소가 강조되어 있다. 한붓에 슥슥 그려낸 형상들은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특정 캐릭터와 같은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처럼 그려진 선들은 동양의 칼리그래피의 요소를 환기시키며 기호 표기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는데에 익숙한 관람객의 의식을 교란시킨다.

박경률_Hide and seek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17

그리고 스스로 더 적극적인 이미지의 구조를 만들어서 보는 이들이 각자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재조합 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행위를 작업 방법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것은 2017년도에 영국 런던의 Madame Lillie Gallery 에서 열린 『A Meeting Place』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되었다. 이 전시의 설치는 회화, 드로잉이 전시 공간의 벽면에 독립적으로 걸리는 형식이 아닌, 모든 공간적 요소들에 반응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전시장의 바닥, 계단, 벽면, 천장 등 원래 공간의 모든 요소들은 작품의 일부가 되고 작가가 지정하고 행위하는 지점들이 작품 요소로 작동한다. 이러한 성향을 통하여 작가가 언급한 '조각적 회화'에서의 '조각'에 대한 의미를 전통적 의미보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규정해 볼 수 있다. 그는 이 용어를 작가의 작업요소를 공간에 두기 위한 움직임, 작업이 점유하는 지점들에서 작동하는 공간의 시각적인 변화, 관람객의 동선과 시선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전시 공간을 점유하는 모든 것들을 '조각'이라는 용어를 발생시키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현실의 공간과 캔버스 속 이미지의 공간을 균등하게 보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즉 캔버스 자체를 포함하여 그 표면 위로 발리거나 쌓이는 물감 자체도 공간 점유로 보고 이를 '조각적 회화'라고 명명한다.

박경률_Posing a question_캔버스에 유채_140×140cm_2017

이로써 박경률 작가가 공간을 다루는 작업 형식이 초기 작업으로부터 꾸준하고 자연스럽게 연결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조각들이나 일상 오브제들이 공간을 점유하듯 회화작업을 위한 매개체인 캔버스 역시 공간 속에서 오브제로서 취급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경률 작가가 사용하는 단어 'evenness'는 일리가 있다. 그가 초기 작업에서 대상을 다룰때와 다르지 않은 것은, 회화의 평면성을 이야기 할때조차 이미지 하나하나를 오브제로 본다는 점이다. 캔버스 속에서 점점 그려진 오브제들의 레이어가 쌓이게 되는데 이때에는 화면을 균등하게 다루지 않았고, 현실의 공간과 분리했고, 캔버스 속에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하였다. 그러다가 근래의 화화에서 작가는 한번의 붓질 혹은 아예 붓이 스치지 않은 캔버스도 용인한다. 평면 속에서 균질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즉 환영으로서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오브제는 덩어리의 형태로 캔버스 밖으로 나가게 되고, 이는 캔버스 자체가 공간을 점유한 것과 동등한 위치를 획득하게 된다.

박경률_On evenness展_백아트_2019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다른 각도에서 혼란스러운 제안을 던진다. 그것은 동시대 예술에 대한 화두로서 자신의 회화가 동시대를 반영하는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가 구현하는 방법론이 동시대적인가에 대한 자문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작업이 가질 수 있는 차별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이는 학생 시절에 자신이 그리는 선이 왜 예술로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평등한 사회를 이상으로 내세우지만 결국 불평등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회화의 동등하게 이미지 다루기의 실현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 동시대적 방법론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Baik Art Gallery에서의 2019년 개인전 『On Evenness』는 도달하지 못한 지점에 대한 이상향을 표현한 제목으로서의 자신의 고민을 응축한 단어이기도 할 것이다.

박경률_Thoughtful body_종이에 유채, 도자, 우드스틱,장난감, 테이프_가변크기_2019

그래서 전시 제목 『On Evenness』는 공간 속에서 동일한 요소로 작동하는 이미지, 오브제, 관객, 작가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을 드러낸다.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캔버스를 물질로 대면할 수 있도록 공간 전체를 하나의 물질적 구조물로 구현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전시 공간은 각자의 요소들이 상호 균질함을 유지하는 회화 작업으로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의 장이 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한 인터뷰에서 '감각'을 통하여 보는 회화에 대한 언급도 하였다. 감각만으로 회화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시각적인 훈련만으로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관객들이 회화를 '읽기'에 앞서 '감각'을 발휘하여 보는 것이 유효하지 않을까에 대한 기대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그려진 대상이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 많은 이유와 논리는 잠시 비껴두고, 순수한 취향에 의한 감정의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으로서 보여지기를 의도하는 태도이다.

박경률_On evenness展_백아트_2019

박경률 작가에게는 관객들이 자신이 그려놓은 선의 스피드를 느끼고, 곡선의 우아함을 만끽하고 색의 다양한 감성을 환기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캔버스 바깥으로 튀어나간 장치들을 통하여 관객들에게 불편감과 당혹스럼움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는 전형적인 회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색다른 시각을 권유하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주변의 이미지들이 캔버스 속 이미지와 교차할 수 있는 배치 관계를 스스로 상정해 볼 수 있는 구조적인 설치를 제시한것은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동떨어진 영역에서 존재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 또한 현실의 물질들에서 발현 가능한 감각이고 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현하는 것이 목표일터이다. 물론 관객들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이미지와 오브제들을 균질하게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작가가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인선

Vol.20190403a | 박경률展 / PARKKYUNGRYUL / 朴徑律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