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g Face

윤지선展 / YOONJISEON / 尹智嫙 / mixed media   2019_0405 ▶︎ 2019_0417

윤지선_rag face #19002-1_사진, 천에 재봉질_88×6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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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4월 17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회화를 전공하였으나 지금은 사진 출력한 작가 자신의 얼굴에 수많은 바느질로 많은 구멍과 흔적을 만들고 있는 Rag face라는 주제로 윤지선 작가의 전시가 갤러리 담에서 열린다.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중인 윤지선의 『Rag face』 전시에서는 자신의 사진 위에 끊임없는 바느질로 무수한 구멍과 흔적을 남기는 작업에서 본래의 사진 이미지와는 다른 결을 가진 얼굴이 등장한다. 하지만 눈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윤지선_rag face #19001-1_사진, 천에 재봉질_77×88cm_2019

주경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윤지선의 전 작업 과정을 통해 구멍은 일관되게 반복된다. 윤지선의 작품에서 구멍은 무슨 의미인가? 구멍은 균열을 만들고 그 사이에 틈을 생성한다. 표면을 꿰뚫는 구멍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파편을 만든다. 구멍, 사이, 틈은 바라보는 대상이 가진 완성된 통일체로서의 이미지를 교란시킨다. 얼굴 사진을 관통하는 구멍들은 거울 이미지를 파열시키며 나르시시즘적 이미지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이상적 자아, 완전한 통일체로 여겨졌던 상상적 자아 이미지는 분열되고 해체된다.

윤지선_rag face #19003-2_사진, 천에 재봉질_146×119cm_2019

무의식의 차원에서 의식의 주체는 파편화된 신체를 완전한 통일체로 파악하는 나르시시즘적 거울 이미지처럼 상상적 허구일 뿐이다. 윤지선의 누더기 얼굴 이미지들은 이미지 자체를 뒤틀고 분절시키며 분열된 주체를 공격적으로 가시화한다. 이러한 넝마조각의 파편들에서 완결된 전체로서의 나르시시즘적 만족감은 찾을 수 없다. 기형적 생물체처럼 틀어진 얼굴 부위들은 통일된 만족감을 선사하는 의식적 주체가 아닌 공격적 불안을 가진 소외된 무의식적 주체를 드러낸다.

윤지선_rag face #18010-1_사진, 천에 재봉질_154×143cm_2018

또한, 작가는 의식의 이면에 있는 무의식을 양면 이미지로 시각화한다. 재봉틀 위 아래 끼운 색실의 엉킴을 조절하며 밀어내는 박음질 드로잉은 그 이면에 다른 형상의 얼룩 그림을 남긴다. 인화된 얼굴 사진의 면을 재봉틀 바늘과 실로 메우는 동안 그 다른 면에는 낯선 얼굴 형상의 흔적이 새겨진다. 속도감 있는 박음질의 장력조절로 천 위의 실들은 얼굴 피부조직처럼 결을 따라 당기고 밀리고 뒤틀린다. 무수한 구멍 틈새로 오가는 실들은 드로잉 선처럼 얼룩을 남기며 무의식을 향한 회화적 제스처를 반복한다. 윤지선의 얼굴 박음질 이면에 출몰하는 얼룩과 왜곡된 형상은 의식의 이면에 가라앉은 무의식의 표상들을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의식의 이면에는 억압되어 표상되지 못하고 가라앉는 무의식의 표상들이 있다. 무의식은 언어, 법, 질서라는 상징계에서 억압된 것들이 발현되는 욕망의 영역이다. 인간이 진정한 주체로서 그 본연적 관계를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의식 너머의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견된다.

윤지선_rag face #18010-2_사진, 천에 재봉질_154×143cm_2018

무의식으로 향하는 통로와 연관하여, 누더기 얼굴에서 눈은 중요하다. 윤지선은 누더기 얼굴을 박음질로 메우며 항상 눈을 남겨둔다. 반대 면에 나타나는 얼굴 형상에 눈을 그려 넣기도 한다. 작가는 눈마저 박아버리면 자신을 대리하는 어떤 표식도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때 남겨진 눈은 바라보는 의식의 눈이라기 보다 무의식의 주체로 향하는 통로로 여겨진다. 라캉에 있어서, 눈이라는 기관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눈은 무의식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동시에 의식의 이면에 있는 무의식으로 향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눈이라는 기관을 통해 무의식의 영역인 시관 충동이 발현되며 그 분열의 장에서 우리는 욕망의 무의식적 주체를 조우한다.

윤지선_rag face #18011-1_사진, 천에 재봉질_46×46cm_2018

윤지선의 누더기 얼굴은 틈과 구멍으로 자아 이미지를 분열시키고 그 이면에 의식의 눈으로 표상되지 않는 무의식의 얼룩과 왜곡된 형상을 출몰시킨다. 박음질된 메워진 얼굴 부위는 파편들처럼 기워져 있고 박음질 사이로 터져 나온 실밥은 머리털처럼 늘어져있다. 통일체로 여겨진 자아 이미지를 구멍으로 분절시키고 실은 그 틈을 봉합한다. 무의식의 주체는 확실하고 통일된 것이 아니라 분열되고 불확실한 것이다. 언제 그 구멍의 틈으로부터 봉합이 풀어지고 무의식의 욕망이 터져 나올지 모른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각자의 트라우마와의 만남인 욕망의 응시를 반복순환 한다.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한 얼룩진 얼굴은 욕망의 무의식을 향하여 구멍_분열_반복한다. Rag face 시리즈는 일우스페이스를 비롯하여 송은아트큐브에서 전시되었으며, 또한 뉴욕의 브릭하우스와 요시밀로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Rag face」시리즈 신작 10여점이 출품될 예정이다. ■ 갤러리 담

윤지선_rag face #18011-2_사진, 천에 재봉질_46×46cm_2018

나는 나도 모르고 있던 내 표정을 사진으로 찍은 후에 마치 바느질이 만든 표정인 것처럼 작업한다. 그리고 이 바느질은 동일한 작업 과정을 통해 앞, 뒤로 다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진다. 바느질을 할수록 뒤틀리고 비정형적인 모양으로 변해 평면과 입체의 경계에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거울을 보고 그린 자화상은 모두 자신을 직시 하고 있다.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초점 없는 자신의 표정을 거울로 확인 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은 다양한 시선의 방향과 표정의 자화상을 얻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직시 하지 않은 자화상의 표정은 보다 실재와 가까운 표정을 얻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이 실재의 얼굴 표정을 낯설어 한다. 타인(카메라의 앵글)의 눈으로 바라본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일인칭에서 삼인칭의 자아를 발견하는 일인 것이다. (2019)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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