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 낯설음

정재철展 / JUNGJAECHUL / 鄭載哲 / painting   2019_0405 ▶︎ 2019_0423 / 일요일 휴관

정재철_Unfamiliar face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18

초대일시 / 2019_040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살롱 아터테인 SALON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32(연희동 708-2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추상의 이유 ● 우리에게 삶은 주어졌다. 어느 누구도 그 삶을 선택해 본적이 없다. 아니,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왜. 우리는 이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찾았으나 그 답을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과연 나의 삶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그 역시도 아무도 모른다. 알고 있다고 섣부르게 떠든 사람들 역시, 이미 삶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사라진 사람들이다.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것이 지극히 아름답거나 인간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도, 사라졌다는 이유로 공허하다. 과연,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을 위한 경제적 활동 조차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먼저 이 삶을 살았던, 그들도 그 이야기를 하게 되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해서 지금 우리가 겪는 삶들이 좀 더 나아지고, 인간으로서 이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나름, 의미가 있다는 근거들을 찾았을 것이고, 그것을 지금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린 다 같은 인류니까. 같은 종족이라고 해야 하나.

정재철_Unfamiliar face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18
정재철_Unfamiliar face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8

정재철 작가의 추상회화는 사람, 즉 우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수 많은 철학자들이 진단하고, 해결방법을 찾아 왔음에도 여전히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계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구상에서 가장 감정과 욕망에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왜 인간의 욕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기 중심적일까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의 해결을 위해 마찬가지로 모순된 화면을 만들어 낸다. 말하자면, 지극히 사실적인 형태를 으깨버리는 것. 너무나 불행한 순간을 가장 화려하게 그려버리는 것. 어쩌면 사회적 변화를 위한 매우 소극적인 참여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그림은 아름다움과 보는 이들의 감정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예술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충분히 그의 그리는 행위가 얼마나 인간애적인 행위일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재철_Uncomfortable naturalness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9
정재철_Unfamiliar face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8
정재철_Unfamiliar face_캔버스에 유채_100×73cm_2018

미술에 있어 재현의 기술은 미술이 시각예술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만들어줬던 엄청난 힘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었던 기술은, 이제 카메라와 같은 다양한 매체들이 발명됨으로써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미술은 외부의 대상이 아닌 인간 내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재현의 기술은 왕이나 귀족 혹은 자본과 같은 권력 친화적인 기술로 전락하게 되면서 더더군다나 미술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럼, 한 단계 더 쪼개서 인간의 정신세계 중 어디에 더 집중할 수 있을까. 미술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미술 역시, 인간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감정은 우리의 희로애락에 가장 집적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인간 삶의 희로애락에서 생겨난 다양한 상황들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여 감동을 만드는 그야말로 우리 삶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미술은 우리 감정에 집중하는 시각예술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정재철_Unfamiliar face_캔버스에 유채_53×46cm_2018
정재철_Uncomfortable naturalness_캔버스에 유채_53×46cm_2019

정재철 작가는 여전히, 무엇을 그리고 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그러나 인간 그 자체가 만들어 내고 있는 모순들. 욕망에서 비롯된 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형태적으로 그려서 이야기를 풀어내기 보다는, 우리의 감정을 더 순화 시킬 수 있는 표현방법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정재철의 작업이 추상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추상은 생각하는 방법을 구체화 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따라서 추상은 우리의 생각들을 가장 고결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가장 격정적이게 만들 수 있는 정신적 기술이다. 물론, 그것을 실현해내고 있는 작가들 역시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것 역시 추상이다. 그런 이유로, 정재철 작가는 우리 삶의 모순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도 우리 삶이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순간을 그리고 있는 작가다.

정재철_Unfamiliar face_캔버스에 유채_53×46cm_2018
정재철_Uncomfortable naturalness_캔버스에 유채_53×46cm_2019

그의 추상은 반복된 행위에서 비롯된다. 반복은 수 많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우리의 삶이 계획된 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작업 역시 계획된 결과라기 보다는 진행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렇게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간에 반복되는 행위에 의해 물감들이 쌓여지는 캔버스. 어느 순간, 물감과 캔버스가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그 순간. 그의 추상은 물질과 정신의 경계를 잇는 매개체가 된다. 어려운 말이지만, 쉽게 말해, 그림이 재현을 완전히 벗어나 온전히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되고, 또한,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이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볼 수 있는 것. 정재철의 또 다른 추상의 이유다. ■ 임대식

Vol.20190405e | 정재철展 / JUNGJAECHUL / 鄭載哲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