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고 춤춰줘

최수인展 / CHOISUIN / 崔壽仁 / painting   2019_0410 ▶︎ 2019_0503 / 월요일 휴관

최수인_날 보고 춤춰줘(Dance for me)_캔버스에 유채_181×202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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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41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a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 CHOSUN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4(소격동 125번지) B1 Tel. +82.(0)2.723.7133 www.gallerychosun.com

갤러리조선은 2019년 4월 10일부터 5월 03일까지 최수인 작가의 개인전 『날 보고 춤춰줘』를 진행한다. 최수인은 풍경과 낯선 형태의 인물을 통해, 인간관계와 그 사이에서 발현되는 감정을 그려낸다. 그녀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털북숭이 생명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방어심리를 표상하며, 과장되고 현실성 없이 뻗어 있는 화산과 구름은 그녀 안의 불안정한 감정상태와 맞닿아 있다. 최수인은 이번 개인전에서도 다시 한번 그녀만의 감각적 서사를 캔버스 위에 표현하며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 인간관계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시작된 그녀만의 수사법은 다양한 장소와 관객들을 마주하며 연장선을 걷고 있다. 매일매일의 삶에서 마주하는 어려움. 그것들을 관객과 나누고자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은 어쩌면 작품을 통해 표출되는 그녀만의 소통방식은 아닐까? 이번 전시 『날 보고 춤춰줘』에서 작가는 춤이라는 것이 가장 꾸밈없고 순수한 제스처를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긴장과 꾸밈 가득한 모습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춤추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최수인의 그림에서 우리는 진실함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털로 본 모습을 어색하게 가리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 자연의 한 가운데에서 자유로이 몸짓을 펼쳐가는 하나의 개인이다. 이 개인은 작가 본인일 수도, 혹은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함과 대면한 순간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물음표를 잃게 된다. 전시마다 이어져 온 인간관계에 대한 작가의 질문은 이번 전시를 통해 마침내 한 걸음 더 전진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곁들인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사할 것이다. ■ 갤러리 조선

최수인_어디 아래(Down there)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19

어떤 감정의 초상 ● 저기에 무덤이 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다가 스스로를 몇 번이고 죽여 생겨난 무덤. 나는 그제야 그를 위해 춤을 추지만 이미 높게 쌓인 무덤 아래 깔린 그는 그 춤을 보지 못한다. 어떤 감정들은 글로 전부 쓸 수 없다. 그것은 아주 희미하게 이미지로 떠올라서 시각 혹은 촉각적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 그 이미지를 그리거나 감정의 감각을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빛이 물결에 닿아 부서지는 것을 바라볼 때의 감정은 글로 쓰는 것보다 그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더 전달하기 쉬울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여전히 풍경을 그리는 작가들이 있다. 작가가 본 어떤 광경을 자신의 시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리는 그림들이다. 최수인 작가의 그림 또한 언뜻 보기엔 풍경을 그려놓은 듯하다. 하늘과 땅이 있고 구름과 산이있다. 익숙한 요소들인데 본 적 없는 장소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풍경인가?

최수인_가짜무덤(A fake tomb)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19

작가는 늘 자신은 '관계'에 해 그린다고 했다. 작가의 초기 회화는 꾸며진 연극의 무를 보는 것 같았다. 작가가 설정한 공간 안에서 등장인물이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질척하고 참담하게. 무엇이 과장되고 있고 어떤 감정이 그 사이를 오가는지에 해 날선 붓질과 희미하게 그린 공간을 바라보며 관객은 그 감정을 관조하게 했다. 최근의 작업은 풍경에 가깝다. 그리고 그 풍경은 폐허이다. 끈적한 감정이 지나간 자리는 이제 물이 범람하고 바람이 몰아치며 정체모를 구름이 떠다닌다. 때로는 비가 쏟아지고 또 때로는 화산이 폭발한다. 혼돈의 장소이다. 이것을 감정의 풍경이라고 하면 여전히 그의 마음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커다란 감정이 마음으로 쳐들어오는데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최수인 작가의 회화는 이런 순간을 그린다. 관계에서 발견하는 자신의 감정의 민낯을 그리는 초상이다.

최수인_춤추는 에로스(Dancing eros)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19

그 장소에는 늘 어떤 인물이 있다.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하고 얼핏 보기엔 털복숭이 괴물의 형태를 가진 이 인물에게는 뿔이 나있다. 최수인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의 제목인 『니가 마음에 뿔이 났구나』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뿔은 심리적 뿔이다. 이전 작품에서 누에에 갇힌 듯한 인물들이 그 사이로 뿔을 드러냈다. 자신이 뿔이 났음을 숨기지도 않는 관계에 마주한 것일까? 더욱이 이 뿔이 난 사람은 춤을 추고 있다. 더 이상 엉겨 붙어 있지도 않다. 여전히 쓰러져 있는 사람은 있는데 거기에 엉켜있지 않고 춤을 춘다. 작가에게 춤은 가장 순수한 움직임이라고 했다. "춤을 추게 함으로써 상의 진정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 관계에서의 거짓을 찾는다"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이 작가가 관계를 하는 태도가 변했음을 확인한다. 우리는 누구도 상가 원하는 순간에 만족시키는 춤을 출 수 없다. 마음은 한 걸음 늦게 발견되고 진심은 뒤늦게 도착한다. 너는 너로, 나는 나로, 그렇게 있자. 우리는 닿을 수 없다. 이제는 인물들이 따로 떨어져 존재한다. 사실 아무리 만나도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다. 우리는 타인의 욕구를 채워준 적이 있는가? 혹은 누군가가 나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준 적이 있던가? 아주 잠깐은 그런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이 쌓여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기는 곧이어 참혹한 실망으로 변해 돌아오곤 한다. 작가가 그리려는 순간은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냥,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크게 슬퍼할 것도 낙담할 것도 없다.

최수인_같은 뿔(The same horn)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9

관계에 한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비관적이어 보일 수 있지만 담담한 화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화면 속 요소들은 휘몰아치듯 혼란스럽게 그려져 있지만 화면 밖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 전체를 보면 정직하고 단단한 태도를 볼 수 있다. 캔버스가 사각인 형태인 것이 마치 의도라도 되는 듯, 혼돈의 장면을 정갈하게 화면으로 누른다. 낙담이나 체념,'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그냥 그런 거니까, 하고 마는 것이다.

최수인_위태롭게 누워있기 (A precarious position)_캔버스에 유채_80×117cm_2019

인물과 한데 뒤섞이던 풍경 또한 변했다. 색면으로 채워진 배경은 인물과 비되게 밝고 따뜻하다. 사랑하는 이가 죽고 마음이 폐허가 된 날들을 살다가, 어느 날 그 무덤 위에서 새로 자라난 풀과 그 풀을 비추는 따뜻한 햇살을 마주하는 듯하다. 심지어는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풍경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폐허 속에서 폭발하거나 소멸해버리는 감정들. 붕괴한 관계의 세상에서 보이는 이 색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발화하는 장면이 아닐까? 이제 나는 최수인의 회화를 한 발자국 나와서 볼 수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이쪽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휘감던 감정의 타래를 따라 들어가면 정작 방어기제에 막혀서 위로조차 할 수 없게 하지 않는다. 뿔이 나도, 스스로를 감춰도, 그렇게 개별적으로 살아있는 존재를 나 또한 한 존재로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나는 그것을 이제 그렇구나, 하고 보면 된다. ■ 장훈

최수인_기다리기로 했을 때(A waiting position)_캔버스에 유채_112×112cm_2018

나의 그림 안에서 심리의 흐름은 단순히 모든 장르를 망라한 예술에 흐르는 심리인 동시에 소재의 측면에서 중요한 자리 에 있다. ● 나는 나의 주변 관계, 이외의 외부세계를 통해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과 그로 인해 순간의 혼란 및 충돌이 발생하 는 감정관계를 그림으로 그린다. 작업은 외부의 어떠한 '응시'하에 방어기제로 위장한 주체의 모습(나의 심리적 모델)과 이들을 감싸는 가혹한 환경을 가시화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 외부세계로부터 대상을 향해 오는 눈길이 있다. 심리적 대상들은 이 시선을 부드럽게 받으며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심 한 갈등으로 부딪히며 서로를 어내는 상황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보통 외부세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마을을 지키는 정승처럼 우뚝 서있는 자연물의 형상이나 괴물 혹은 귀신처럼 보이도록 그린다. 이는 저마다 사연은 있겠으나 확실한 객 관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내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이 역시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최수인_나 몰래 생기는 일들(Things that happen without me)_ 캔버스에 유채_80×117cm_2018

그림에 등장하는 심리적 대상(주인공)과 이를 응시, 조롱 하고 있는 외부의 '어떠한' 존재는 서로간의 성격을 조작하고 통 제하며 긴장감을 만들고 그들이 등장하고 있는 주변환경과 유기적으로 조응하며 순간의 상황에 집중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선택하게 되는 표현방법, 색의 선택 역시 이들 관계의 성격이 형성됨에 따라 결정하며 이 즉발적인 표현을 그 대로 남기고 작업을 진행한다. 따라서 내 작업 안에 미리 결정되어 있는 스케치, 이야기의 서사, 계획은 없다. ● 각 그림마다 보이는 주인공들의 위치, 동선, 태도, 주변과의 추측 가능한 긴장감등과 함께 그림 제목이 중요하다. 나는 내 가 경험한 관계의 성격, 이와 관련된 사건 등을 그림 제목을 통해 작은 모티브만으로 노출한다. 그리고 더욱 친절한 그림 해설은 내 그림을 보는 사람의 몫이다. 어차피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관계에 대해 모두 다른 해석을 해내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는 맞고 틀림이 있지 않다. 해석 이후 정리와 기억에 관한 부분은 더욱더 그렇다. 나는 이런 식의 사람의 태도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있고 계속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문장이 아닌 짧은 단어로 던지며 작업을 할 생각이다.

최수인_가짜 춤(A fake dance)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17

캔버스 화면은 모두가 자유로운 무대가 되고 그 안에는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자처하는 주체간의 사이코드라마가 펼쳐진 다. 이 무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특별히 자연풍경이미지에 집중을 하여 그림이 풍경화일 수 있다든지 보이는 표현이 거칠고 빠르며 형태가 애매하다고 하여 추상화에 속할 이유가 없다. 내 그림 안에는 어떠한 형태로이든 성격이 있는 대상, 주체가 확실하게 등장하며, 이를 혹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등장한다.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라면 주변 환경 구성을 통해 이 시선을 표현하기도 한다. ● 보통 주체는 털이 많이 나버린 생명체로 그린다. 이는 위장을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은 대상의 부끄러운 상태를 표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체를 둘러싼 자연 환경은 자연물을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그저 풍경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의 장소성을 대표한다. 그리고 대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감정 및 태도로서 존재는 소품 같은 것이다. 따라서 주체를 제 외한 주변 이미지들은 모두 스스로 존재하고 유동적이며 충동적인 상태 그대로 계속해서 변형 중이다. 따라서 내 그림은 풍경이 아니라 '장면'이 된다.

최수인_불똥(sparks)_캔버스에 유채_73×73cm_2017

나는 심리상태에 기반한 감정과 태도, 이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계를 극화(劇化)시켜 다양한 형태의 미장센을 캔버 스 위에 유화로 그린다. 작위적일 수 있는 가상의 무대 위에 기이한 감정적 현상과 심리 대상들의 마음 동요를 형상화 한다. ● 나는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중인 모든 것이 누군가가(혹은 스스로가) 인위적으로 인과관계 없이 재배치 중이라는 점과 그 안의 옳고 그름의 잣대역시 배치 중이라는 점, 따라서 순간적 이미지로 남을 '장면' 만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점 이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가짜' 로 해보고 싶다. 작업을 통해 가짜 이미지를 눈으로 보고, 각자가 맺고 있는 관계 와 그 안의 태도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 없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한다. ■ 최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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