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공기 Ambiguous air

최병진展 / CHOIBYUNGJIN / painting   2019_0411 ▶︎ 2019_0512 / 월요일 휴관

최병진_기묘한 뒷 발에 녹아내린 요통_캔버스에 유채_145.5×97cm_2018

초대일시 / 2019_0411_목요일_04:00pm

2019 Thinkartkorea 선정작가 기획 초대展

주최 / (주)신한화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포네티브 스페이스 PONETIVE SPACE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34 Tel. +82.(0)31.949.8056 www.ponetive.co.kr

대한민국 전문가 미술재료 제조기업 (주)신한화구(대표 한봉근)에서 신진작가들을 발굴하여 전시 지원하는 'Thinkartkorea 선정작가 기획 초대전'이 지난 2014년 첫 선을 보인 이래 2019년 봄 10회를 맞이하여 4월 11일 파주 헤이리 포네티브 스페이스에서 10번째 전시를 개최했다. ● 4월 11일부터 5월 12일까지 열리는 제10회 2019 Thinkartkorea 선정작가 기획초대전에는 수많은 작가들의 경쟁을 뚫고 최병진 작가가 선정되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최병진 작가의 작품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이 있는 '강박', '콤플렉스', '불안'이라는 요소들을 근원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끄집어내어 추억 속에 있는 공간으로 확장하면서 자신의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 최병진 작가는 글로는 쓸 수 없는 느낌을 작품에 풀어내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아주 색다르거나 독특한 기법은 아니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오래된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감이 묘한 '표현주의나 입체파 그림' 같기도 하다. 작가 자신의 불안한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거칠은 캔버스에 거친 표면 재질을 그대로 사용하며 아크릴컬러를 바로 올리며 작업하였다. ● 작가가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모두 알지만 숨기고 있었던 각자의 내면 세계를 마주하는 용기를 가져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포네티브 스페이스

최병진_두번째 MT_캔버스에 유채_145.5×97cm_2018

내면 속 '팟홀'을 메우기 위한 여정#1.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비에 젖어 질척거리던 흙도 마르면서 단단하게 굳어진다는 뜻으로, 어떤 시련을 겪은 뒤에 더 강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다. 지금은 어떨까? 과거와는 달리 요즘 도시의 길은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어 비가 온 뒤에는 오히려 땅이 파인, '포트 홀(pot hole)'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포트 홀은 메워도 비가 오면 다시 파이는 경우들이 많다. 시대가 변해 이제는 속담을 이렇게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비 온 뒤 땅이 파인다"라고. 그리고 이는 불안과 공포를 품고 사는 현대인들을 지칭한다고. #2. 한 작가의 작업 세계, 작업의 흐름을 오랫동안 살펴보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작가의 작업을 보아 오면서, 작업의 변화를 목도할 수 있었다. 2007년 두 아트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서 작가는 한국 미술의 경직된 진지함을 비틀었다. 만화적 요소와 밝은 색감 등. 2012년 이화익 갤러리에서 연 두 번째 개인전에서 작업에 변화가 있었다. 선과 색, 도상이 강해짐과 동시에 화면 속에 작가의 감정이 녹아 들어 있었다. 작가의 사고도 더욱 확장되어 사회 속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해 이화익 갤러리에서 연 세 번째 개인전은 이러한 생각에 좀더 내밀함이 더해졌다. 특히 개인적인 상황과 고민에 대한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 4월 11일부터 5월 12일까지 파주 헤이리의 포네티브 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 해 전시의 또 다른 연장선이다. #3. 10여 년 전 발생한 사건 하나가 작가의 이번 작업에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불안과 공포가 작가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이는 작가가 일상생활을 유지시킬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 몰고 갔고, 결국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진단받게 되었다.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많이 나아졌지만, 이는 작가의 작업 과정에서 변화의 변곡점이 되었다. 어느 날 길에서 보았던 '포트 홀'이 작업의 키워드가 되었다. 조금 변형을 해서 작가는 이를 '팟홀(pothole)'이라고 명명했다. 이 또한 작가의 내면에 여전히 꿈틀거리는 세상을 비트는 '유희'가 작동한 것이리라. "평평한 인생에 자꾸 걸림돌이 되는 문제들... 자꾸 바닥으로 주저앉게 하고 발목을 꺾는 웅덩이들... 포장된 아스팔트 위에서의 안락한 주행을 방해하는 팟홀(pothole)들..." 작가는 작업노트에 이렇게 썼다.

최병진_2인 3각_캔버스에 유채_145.5×97cm_2019

#4. 이번 전시에는 '회색 초상화' 시리즈와 '군상' 시리즈가 전시된다. 과거 만화적인 유머러스한 작업이나 2015년 선보인 '인물' 시리즈와 '몬스터' 시리즈와는 사뭇 다르다. 화면의 도상과 색과 붓터치에 변화가 읽힌다. 이러한 작업은 최근의 작가의 심리 상태, 즉 '평평한 인생의 걸림돌들'-우울과 공포-에 대한 진단이자 내밀한 접근이다. ● '회색 초상화' 시리즈를 보면, 흡사 콘크리트로 군데군데 뒤덮여 있는 느낌의, 혹은 어떤 가림막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익명성 그대로 세상에 자리잡고 있다. 밝혀지지 않으면 두려움이 생긴다. 이들은 얼굴의 형상조차 보이지 않는 조형물의 형태로 진화한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불안이나 공포로 뒤덮인 회색 공간 속의 인물이다. 그로테스크한 초상화의 이면에는 불안과 공포의 징후가 읽힌다. 과거 원색과 밝은 색을 즐겨 사용했던 작가는 이 시리즈의 화면에 회색 톤의 색감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작가가 살고 있는 동네의 짙은 안개를 표상한다. 자신의 생활터전을 덮고 있는 회색 톤의 안개는 "모든 형태를 삼켜버리는 회색의 분자 그리고 무게가 느껴질 만큼 공포가 되살아"나게 하는 매개체다. ● 회색 톤의 화면과 함께 '001'이라는 번호로 시작하는 「회색 초상화」 시리즈는 제목으로 인해 더욱 불안감이 극대화된다. '제목이 없다'는 의미의 「무제」도 아니고 단순히 '00'을 붙인 숫자로 시작하는 이 시리즈는 대상은 있지만 그 대상을 구체화하지 않는다. 익명성이 주는 모호함 속의 불안하고 어두운 심리가 제목에서 느껴진다. 이는 지난 2012년 연 전시에서 '1번', '2번' 등의 제목을 단 것과 연결된다. ● 가장 근래 그려진 「025」의 경우, 콘크리트의 물성, 혹은 중량을 느끼게 되는 물질이 어린 아이(라고 생각되는)를 휘감고 있는데, 이 물질은 무거우면서 가벼운 듯, 두꺼우면서 얇은 듯, 그리고 겉과 속을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태로 등장한다. 잔혹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이러한 '회색 초상화'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더욱 구체화시킨다.

최병진_001_캔버스에 유채_92×65cm_2015

#5. 과거의 유희적(fun)인 요소는 어두우면서도 유머러스한, 양가적 모습을 띤 '블랙코미디'적 요소로 작업에 남았다. 신작인 「노를 잡은 사람들」, 「2인 3각」, 「모습을 드러낸 타이거마스크」, 「지하 1층의 심해오징어」, 「기묘한 뒷발에 녹아내린 요통」 등 '군상'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군상' 시리즈는 작업 제목을 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명기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좀더 색다른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쇠라, 데 키리코, 보테로 등 20세기 초중반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들 작업은 화면 속에서 블랙코미디나 부조리극, 혹은 초현실적 세계를 드러낸다. 화면 속 인물들은 무표정하거나 약간의 미소를 띠며 이른바 '병맛'의 행동들을 스스럼 없이 행하고 있다. "심리적인 나약함이 반영된 인물들, 이들은 살짝 어색하고 빗나가거나 혹은 과도한 포즈와 행동을 통해 다소 기이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인물들의 표정과 행위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로테스크한 욕망의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둥글둥글하고 풍만한 표현은 이러한 인물들의 그로테스크함과 섬뜩함으로 인해 오히려 부정적인 결핍이 강조된다.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최병진_카페에서 기다릴께_캔버스에 유채_168×140cm_2015

#6. 근래의 이 두 시리즈 작업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한동안 강박에 의해 시달리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무슨 문제일까? 병원도 다니고 검색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자연스럽게 작품도 그 답을 찾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다. 답을 찾는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추적해 보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어울릴 듯싶다. 머리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거부하는 상황이 닥칠 때마다 느껴지는 균열... 마치 메울 수 있으면 메워보라는 듯이 항상 그 자리에서 발목을 잡아채는 구멍... 발목이 삐끗할 정도의 구멍은 간단히 덮거나 조심이 지나가며 감수하겠지만 오싹할 정도의 구덩이가 생기니 한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스팔트를 모두 걷어낼 엄두는 나지 않고 그냥 달리던 차에서 내려서 팟홀을 관찰하며 만져보기로 했다. 내 구멍에 대한 탐사기가 시작되었다." ● 필자에게 작가의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탐사의 시작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과거 '유희(fun)'라는 요소를 통해 엄숙한 한국 미술계를 은근히 비틀었듯이, 이번에 선보이는 두 개의 시리즈 작업은 작가에게 일종의 처방전이라고 할 게다. 끊임없이 회색 빛 초상화에 붓질을 하고, 블랙코미디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는 불안과 공포에 대한 치유, 역설적인 극복을 꿈꾸기 때문이다. 비 온 뒤 땅이 파이고, 포트 홀이 생긴다. 이제는 비 온 뒤 땅이 굳어지지는 않지만, 우리는 (더욱 의지를 가지고) 이 구멍을 끊임없이 메울 수 있다. 그리고 최병진의 작업은 이를 증거하고 있다. ■ 류동현

Vol.20190411h | 최병진展 / CHOIBYUNGJIN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