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빛.결.(Way. Light.Grain)

김정아展 / KIMJEONGA / 金貞娥 / painting   2019_0412 ▶︎ 2019_0419

김정아_길.빛.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0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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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블루스톤갤러리

관람기간 / 11:00am~08:00pm / 4월20일_11:00am~02:00pm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서초동 700번지) 제7전시실 Tel. +82.(0)2.580.1300 www.sac.or.kr

사유의 결, 빛의 여정, 선택이라는 길 ● 이를테면 그런 거다. 작가가 작업을 하는 이유를 꼭 찾아야 하는 의무를 벗어나면서, 작업을 해야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 말이다. 굴레와 같은 작업을 이어간다는 현실로부터 작가가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흔히 창작이라는 것이 고통과 등식의 관계를 이루지만 그 극점에서 얻는 희열은 흡사 종교에 있어 해탈 혹은 열반에 비유된다. 그래서 그곳에 이르는 과정은 험난함을 극복하는 여정이다. 김정아의 작업은 바로 이 여정을 숙명처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순례자의 발걸음과 같아 보인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여러 지름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다. ● 필연적으로 작가의 작업은 시간을 담는다. 작업의 흔적은 이른바 '과정'이라는 단어로 치환되어 어떻게 해서든 그 존재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결과물로 정지된, 과정이 소멸된 그저 대상으로서 작업이 아닌, 그 자체가 시간이다. 시간은 행위의 적층이 이뤄낸 집합체로 김정아의 작업은 행위와 당시의 심적 상황이 드러난다. 김정아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3개로 분할된 작업실은 이른바 작업의 과정을 드러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분류이건, 어떤 생각이 치밀어 올랐을 때 이뤄낸 결과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언제든지 행위와 생각을 집어넣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업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이뤄지는 행위를 흔히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하는데 김정아의 작업은 매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작업을 끝내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나 단호함에 굴복하는 집착이 아니다. 매순간 작업에 자신의 극한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깊은 고민의 연속이 작가를 지배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형태가 완전히 소멸되어 드러나지 않다가도 자신의 페르소나와 같은 여인이 화사한 색채의 배경에 등장하기도 하고, 길을 걷다 만나는 풍경이 등장하기도 한다. 최고조에 이른 감흥으로 가득한 우연의 드리핑(dripping)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고 그 표면의 하층에 몇 년의 시간을 담았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레이어의 구조가 똬리를 틀고 있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좌우 횡보(橫步)를 거듭하여 제대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갸웃거리게 만들다가도 그가 종착지를 정해놓고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김정아는 선택에 매우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김정아_꽃의 여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19
김정아_꿈속의 여인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2×130.3cm_2018
김정아_만추_캔버스에 혼합재료_90.9×72.7cm_2017

그런데 그 선택의 자유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작가가 캔버스에 드러내는 격정의 감정을 다스리듯 엄격한 패턴의 질서를 구축하는데 있다. 그것은 마치 얕은 부조와 같은 형식으로 때로는 사각 혹은 삼각의 기하하적 격자형태로 드러난다. 화면의 세로선을 중심으로 마치 데깔꼬마니(decalcomanie)로 표현된 듯한 이 내면의 또 다른 질서는 흡사 혼란 속에 일정한 패턴을 드러내며 발생하는 '룰(rule)'과 같아 보인다. 그것은 '조화(harmony)' 혹은 비계량적 요소들의 집합에서 드러나는 일종의 기하학 형식처럼 화면의 뼈대를 이룬다. 색채와 형태, 비물질적 요소들은 앞서 말한 적층의 구조와 함께 넉넉한 근육을 이루고 있다. ● 글의 서두에 김정아는 그저 일상의 행위로서 작업을 이끌려는 시도를 보인다고 언급했다. 그것은 치열함이 떨어져서도, 이제 홀로서기를 준비해야하는 작가의 상황 때문도 아니다. 김정아는 이제 붓 가는대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원래 형식과 소재, 요소를 엄격하게 정하지 않았던 작가의 작업 목적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내면세계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 황석권

김정아_미인도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2×130.3cm_2017
김정아_바람이 분다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18

20여년 전 Paris... 나의 제자 형준의 피앙쎄로 만난 화가 김정아. 가녀리고 청초한 용모에 깃든 뜻밖의 담담한 성품과 엄격한 내면은 오늘의 화가 김정아를 상상이나 했을까.. 새삼 대견하고 기특한 맘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남 프랑스 나의 아뜰리에 Les Arcs Draguignan 에서의 일주일여 날들 동안 두 가족이 함께했던 까마득한 옛 시간들은 지금껏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화업의 고단한 무게를 정아 자신은 무언의 수도사처럼 묵묵히 견뎌내며 마침내 캔버스 위에 따뜻한 햇살로 그의 내면을 빛추고  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무수한 상흔들 마저 화폭에 녹여 아름다운 결정체로 탄생시켜 전시회로 만나는 영혼이 아름다운 화가 김정아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 김창열

김정아_밤바다_캔버스에 혼합재료_90.9×72.7cm_2018

길.빛.결. ● 마띠에르(matière, 재질감)는 '결'이다. 결을 만들고 나면 '길'이 보인다. 길 따라 가면 '빛'을 만난다. ●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만의 고유성을 찾아 나서는 길은 비단 미술하는 사람들만의 길이 아닐 것이다. 평상시  보이지 않는 깊은 내면의 세계, 나의 꿈,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화하는 감정들...나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내면세계가 드러난 그림 앞에 서면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기쁨이 생긴다. ● 사람과 자연을 닮은 외부세계의 재현이나 보기에 아름다운 그림은 누구나 기술을 습득하고 오래 그림을 그리면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그림은 자신만의 화풍으로, 자신의 박자와 리듬과 마음의 결에 따라 표현된 그림일 것이다. 나의 내면세계 속에서 '결'과 '길', 그리고 '빛'을 찾아 작업한 작품들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한다. ●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자 하고, 외부세계나 현상보다 나의 무의식, 꿈, 행복, 고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추상적인 그 무엇들..난 이런 것들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것인가?'하는 것에 늘 관심이 많았다. 그것을 중첩을 통한 '결'작업을 바탕으로 '빛'을 찾아 내 작업의 길을 걸어갔다는 생각이 든다. ● 난 이번 전시에서 '길, 빛, 결'이라는 테마로 지각의 형상, 심상풍경을 화폭에 드러내고 싶다. 마치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새로운 빛을 발견하는 감격처럼, 본래의 자아의 모습을 발견해 화폭에 담고 싶은 것이 나의 작업 의도이다. 그 빛은 햇빛이나 달빛처럼 실질적인 빛일 수도 있고, 인향만리처럼 인품의 향기가 만리를 가는 사람의 빛일 수도 있다. ● 그 예로, 미인도의 여인들은 외면과 내면이 다 빛처럼 반짝이는 내가 만들어낸 상상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있는 어떤 특정한 여인이나 구체적인 꽃의 모사, 또는 재현이 아니다. 미인도 자체가 원상이다. ● 난 여인과 꽃이라는 아름다운 형상을 통해 밝음과 평화, 생명력, 빛, 그리고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그리려는 것이다. 형상을 지우고 추상적인 관념을 표현하니 대중과의 공감에 어떤 강이 흘러, 그 간극을 메꾸고, 좀 더 쉽고 가깝게 세상과 소통하려는 일종의 '통로'로써 여인과 꽃을 차용한 것이다. ● 이번 전시를 통해 모든 분들이 자신의 의지의 결에 따라 선택한 길에서, 꼭 밝고 따뜻한 빛을 만날 수 있길 소망한다. (2019년  꽃피는 4월에) ■ 김정아

Vol.20190412c | 김정아展 / KIMJEONGA / 金貞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