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속 풍경

권인경_유한이_진리바展   2019_0418 ▶︎ 2019_0528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0418_목요일_05:00pm

후원 / (주)아트레온 주최 / 아트레온 문화예술부 기획 / 아트레온 갤러리 충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4월 20일, 5월 25일은 콘서트 관계로 관람 불가

아트레온 갤러리 Artreon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129(창천동 20-25번지) 아트레온 B1,2 갤러리 충 Tel. +82.(0)2.364.8900 www.artreon.co.kr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가 피고, 벗꽃이 팝콘처럼 수를 놓는 도심의 요즘은 절로 탄성이 터져나올만큼 아름답습니다. 겨울의 무채색 단조로움과 냉기를 몰아내고 노랗게, 하얗게, 진홍과 연두빛으로 물들어가는 도심의 풍경이 생명과 봄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은 같은 듯하면서도 매일이 달라져 있습니다. 배경처럼 펼쳐있는 눈이 닿는 모든 곳이 내 삶과 함께 숨쉬는 공간임을 문득 깨닫습니다. ● 하루에 시내버스 세 대가 고작인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우뚝 솟은 산이 가로막은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의 보석같은 눈부심과 물방울을 튕기며 찬란하게 튀어오르던 물고기들의 싱싱한 몸짓, 지천으로 피어나던 이름모를 꽃과 나무들이 풍겨내던 싱그러우면서도 습습하던 산 속 내음, 해가 뉘엇뉘엇 저물어가면 산기슭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어둠이 주던 두려움과 서늘함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기억 속 풍경은 그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며 나만의 풍경이 되어 각인됩니다. ● 이번 전시는 권인경, 유한이, 진리바 세 작가의 『풍경 속 풍경』입니다. 작가들의 눈에 비친 풍경은 그들의 경험과 해석이 담긴 또 하나의 풍경으로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그 풍경이 관람자의 눈을 거쳐 한 명 한 명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 궁금해집니다.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자기만의 풍경을 담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아트레온 갤러리

권인경_마침내 드러난 기억 1,2_ 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130.3×194cm×2_2018
권인경_잊혀진 기억, 상기된 시간 3_ 한지에 연필, 수성흑연, 고서콜라주, 아크릴채색_73×141cm_2018

도시, 또는 도시와 산수가 함께하는 권인경의 풍경은 그 다음 대목에서 어떻게 변주될지 모를 음악을 들을 때 같은 기대감과 역동감이 있다. 작가가 한정지은 화면이라는 공간 안에는 다채로운 것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으며, 그것들은 쉼 없이 움직인다. 큰 폭으로도 움직이지만, 제자리에서도 미동한다. 화면에 들어차 있는 다양한 구성단위들이 펼쳐지는 속도 또한 다양하다. 어느 구간에서는 천천히, 어느 구간에서는 빠르게 흐른다. 어느 부분은 조밀하고 어느 부분은 느슨하다. 한 작품에도 수많은 변곡점이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촉발되는 간극과 틈들이 산재한다. 현대식 빌딩과 깊은 자연 등이 근접해 있고 한 하늘에 해와 달이 공존하는 등, 풍경의 구성요소들은 이질적이고 복합적이다. 변화를 야기하는 것은 서로 낯선 것들 간의 공존과 상호작용이다.

권인경_증축된 기억 3_한지에 수묵, 콜라주, 아크릴채색_59×36.5cm_2018
권인경_또한 이 곳에 존재하는 그 곳_ 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73×140.9cm_2018

작가는 제각각의 연주자들을 빠짐없이 챙기고 전체를 지휘한다. 관객은 자신의 시선이 닿는 대로 풍경의 부분들을 따라가는 가운데,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 또는 자신도 모르게 보이는 세계의 면면을 접하게 된다. 풍경의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을 따라가다 보면 계속 다른 세계들이 등장한다. 한 공간에 머물러 있다면 계속 다른 세계들이 다가온다. ● 근대 건축가들에게 수직수평으로 구획된 도시는 유토피아였고, 고전적 풍류가들에게 산수화 또한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그러나 권인경의 작품에서 이러한 서로 다른 유토피아의 공존은 헤테로피아를 낳는다. '어디에도 없는 곳'인 유토피아와 달리, 헤테로피아는 현실과 보다 가깝다. 권인경의 작품은 '순수주의'—모더니즘이든 '정통 동양화'의 원리에 충실한 작품이든 간에—를 벗어나 헤테로피아적인 현실공간과 조우한다. ■ 이선영

권인경_타인의 방 3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31×22.7cm_2018
권인경_미처 드러나지 못한 기억들 1_ 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61×90cm_2019

여러 사회적 제도들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보다 편리하고, 보다 혼란스럽지 않게. 그런데 그런 제도들이, 좀 더 나아간다면 문명이란 것들이 자주 실제적 경험과 감정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를 수 없는 것들을 구분하고 분별한 바탕에서 만들어진 문명의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유한이_전殿_장지에 연필, 채색_130×130cm_2018

전殿 ● 저곳과 다른 이곳, 저기와 다른 여기를 더 가치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가치, 믿음. 신념. 절대적인 가치가 있을 것이며, 영원한 믿음이 가능할까. 절터 같기도 하고, 오래된 신전 같기도 한 폐허 같은 장소를 통해 삶의 미완결성, 불확실함을 표현해보았다.

유한이_통로_장지에 연필, 채색_129.5×161cm_2018

통로 ● 산성은 거대한 벽이다. 벽이 세워짐으로써 이곳과 저곳의 구분이 생기는데, 막상 거대한 성벽 앞에 서면 내가 있는 곳이 안인지 밖인지에 대한 인식이 모호해진다. 터널같은 성문이 가진 깊이감이 모호한 비현실성을 강화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벽이 있기 때문에 이곳과 저곳이 다른 곳이 될 뿐 사실 이곳과 저곳이 무엇이 그리 다른 것일까. 투명한 통로 같은 성문은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가로지른다.

유한이_a message_장지에 연필, 채색_50×60.5cm_2018
유한이_a message_장지에 연필, 채색_97×130cm_2018
유한이_제13의 보행자 1,2,3_장지에 채색_33×21cm×3_2018

제13의 보행자 ●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운명에 내맡겨진 사람들을 그려보고 싶었다. 문명과 제도가 아무리 치밀하게 짜여있다고 해도, 우연히 끼어드는 변수를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행위 속에서 우연에 던져진 인간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블랙박스 영상이 가진 뿌연 화면의 효과를 살려서 미결정의 경계에 놓인 인물을 그려보았다. ■ 유한이

진리바_倣 계상정거도_한지에 수묵_30×58cm_2019
진리바_倣 산수_한지에 수묵_72×41cm_2017
진리바_倣 광진_한지에 수묵_28×62cm_2017

과거를 해석한 시선 ● 오늘을 사는 작가의 입장에서 조선 진경산수에 대한 임화臨畵는 당시 선비들의 삶과 풍류에 대한 동경의 은유적 표현이다. 그리고 현재의 시선으로 각색한 자연은 과거 선비들의 유遊를 현재 우리의 유遊로 재해석해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과거는 현재와 거대하고 미묘한 작용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림 속에 공존하는 과거와 현재는 조선 선비들이 꿈꾸던 이상적 삶의 공간들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상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과거 진경산수 속에 포착된 자연과 그것을 재해석한 현재 진경산수 속 자연의 회화적 상호작용을 통해 조선 선비들의 이상적 삶의 공간인 자연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 진리바

진리바_倣 산수 좌,우_한지에 수묵_43×112.5cm×2_2017
진리바_倣 경계_한지에 수묵_67.5×33.5cm_2017
진리바_倣 강산무진도_한지에 수묵_55×142cm_2017

진리바의 산수풍경은 두 가지 지점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오늘날 도시풍경과 자연을 동시에 충돌시키는 그림, 그 두 개의 세계가 원경과 근경으로 자리하면서 묘한 기운으로 뒤덮힌 자리를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전통회화 안에 자리한 풍경이 오늘날의 풍경으로 환생하는 그림으로 나온다. 그 둘은 순환하고 교차하기를 거듭한다. 그것은 이미 사라진 자리에 다시 도래하는 공간을 만들고 오늘의 풍경이 이전의 풍경의 근거해서 여전히 살아나고 있음을 일러준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공간의 문제나 그림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삶과 죽음,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를 순환론적 사유 속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것은 직선적 시간관이 아니고 생사를 구분하는 시선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동일한 지평에서 바라보는 그런 시선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평론글 일부 발췌) ■ 박영택

Vol.20190418d | 풍경 속 풍경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