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각 行脚

차규선展 / CHAKYUSUN / 車奎善 / painting   2019_0503 ▶︎ 2019_0526 / 월요일 휴관

차규선_行脚-갈선대_캔버스에 혼합재료_187×308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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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503_금요일_05:00pm

관람료 / 1,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com blog.naver.com/artzaha www.facebook.com/museumzaha

차규선의 '행각(行脚)' ● 차규선의 '행각(行脚)'? 무슨 행각? 당 필자, '행각'하면 무엇보다 '애정행각'이 떠오른다. 머시라? 당신은 '엽기행각'이 연상된다고요? 뭬야? '행각'은 당신에게 '범죄행각'을 불러일으킨다고요? 그렇다! 우리는 대부분 '행각'하면 '사기행각' '강도행각' '도피행각' 등 부정적인 것들을 떠올린다. '행각'은 흔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님'을 뜻한다. 그리고 '행각'은 불교용어로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수행시대의 선승은 운수(雲水)가 되어서, 행각(行脚)해야 한다고 말이다. ● 운수행각(雲水行脚)?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구름과 물(雲水)은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막힘도 없이 흘러간다. 따라서 '운수행각'은 마치 구름과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선승이 어느 곳에 머무름이나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떠돌면서 불법을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운수행각'은 한 마디로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는 삶을 말하는 불교의 사유인 셈이다. 그렇다면 차규선의 '행각'은 어떤 행각일까? 혹 그의 '행각'은 20여년간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보았던 풍경들을 모티브로 치열하게 작업했던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 이번 자하미술관의 차규선 개인전 『행각(行脚)』에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仙巖寺)에서부터 경북 안동 갈선대(葛仙臺), 청도(淸道), 강원도 설악산(雪嶽山), 제주도와 대구 그리고 서울의 '온 더 로드(on the road)'에서 만난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차규선의 '행각'은 그가 졸라 다리품을 팔아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보았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종의 '화업행각(畵業行脚)'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당신이 차규선의 작품들을 모조리 조회한다면, 그가 대한민국 전국을 다니면서 보았던 풍광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차규선_行脚-선암사_캔버스에 혼합재료_227×181cm_2019

그런데 차규선의 '행각'은 단지 풍경의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의 '행각'은 그림의 모티브가 되었던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그의 삶과 작품 자체에도 적용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은 그의 삶처럼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다고 말이다. 그는 관객으로부터 사랑받은 이전 그림에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또 다른 그림세계를 그린다. 만약 그가 전작들에 집착한다면, 그는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만든 틀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자신의 틀을 해체시킨다고 말이다. ● 혹자는 차규선의 일명 '풍경' 시리즈를 마치 수묵화로 그린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풍경화'는 '산수화'가 아닌 것을 알려준다. 그의 '풍경화'는 지필묵인 아닌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회화이다. 더욱이 그의 회화는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닌 마치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땅위에 그림을 그리듯 나무막대로 그려놓았다. 따라서 관객이 그의 회화를 보면 자유분방(自由奔放)함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화는 미려한 아취(雅趣)를 자아내어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 격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려진 차규선의 회화는 흥미롭게도 품격(品格)을 잃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회화에서 느껴지는 품격은 무엇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일까? 필자는 그의 작품을 '분청회화(粉靑繪畫)'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의 회화는 '분청사기(粉靑沙器)'의 '피부'와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분청회화'는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그만의 스타일로 만든 회화양식이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분청회화'를 시작한 것일까? 1990년대 중반 그는 '흙바탕 위에 그림을 그리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라는 호기심에서 캔버스의 바탕과 물감이라는 질료에 대한 연구의 결과로 흙바탕 위에 유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는 '바탕이 구축적으로 되면 조금만 그려도 동양화의 여백처럼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방법론도 모색했다.

차규선_行脚-갈선대_캔버스에 혼합재료_227×181cm_2019

물론 당시 차규선이 사용한 흙은 도자기 흙이었다. 경주 태생인 그는 초딩 때 도굴하는 장면도 직접 보았단다. 밤도 아닌 대낮에 도굴꾼들이 기다란 쇠꼬챙이를 무덤 속에 쑤셔 넣고 도자기를 찾는단다. 왜냐하면 도자기는 돌과 달리 쇠꼬챙이가 닿으면 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시절 주변에 널려있는 것들이 도자기 파편들이었단다. 그만큼 도자기는 그에게 친근했다. 그리고 그는 중딩과 고딩 때 자주 경주박물관을 찾아 도자기 유물을 보았단다. 그런 결과 도자기를 보는 나름의 안목도 차츰 생기기 시작했단다. ● 당 필자, 구체적인 사례로 1999년에 도자기 흙바탕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차규선의 「풍경」을 들어보겠다. 그것은 어린시절 자신의 고향인 경주 송림에서 본 소나무들을 화면 전면에 유화물감으로 표현한 일명 '흙-그림'이다. 그런데 20년이 흐른 그의 「풍경」은 기름기가 쏙 빠진 마치 농부의 거친 손 같은 질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흙바탕 위에 그려진 유화물감의 기름이 오랜 시간 흐르면서 바탕의 흙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향토적 서정성은 세월이 그린 것이 아닌가? ● 그렇다면 차규선의 '흙-그림'이 '분청회화'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2001년 호암미술관에서 개최했던 『분청사기 명품전 II』에서 분청사기를 보고 그는 '분청회화'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전시된 분청사기들 중에서 특히 '분청사기조화수조문편병(粉靑沙器彫花樹鳥文扁甁)'(15세기)을 보고 홀딱 반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편병의 표면에 무심하게 칠해진 분과 조각칼로 새겨진 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 호암미술관의 홍라희 관장이다.

차규선_行脚-백천동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91cm_2019

홍 관장은 『분청사기 명품전 II』 도록의 서문에 "처음으로 분청사기와 현대화화, 현대도예를 함께 전시하는 실험적인 전시"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 미술의 다양한 특질들을 한 몸에 담고 있어 한국미의 원형으로 까지 평가받고 있는 분청사기의 전통이 20세기에 와서 한국 회화에 되살아난 듯한 모습을 현대작가들의 작품에서 종종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600여년의 시간을 두고 교감하는 한국미술의 정체성 탐색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곁들여 보았습니다." ● 2001년 예술의 전당미술관에서 열린 『화랑미술제』에 갤러리 소헌은 부스를 차규선 개인전으로 열었다. 당시 그는 초기 '분청회화'를 선보였다. 이후 그는 매년마다 개인전을 개최하여 점차적으로 업그레이드한 '분청회화'를 전시했다. 마치 수묵화로 그린 '산수화' 같다는 그의 '분청회화'는 2003년 계명대학교 극재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분청회화'가 미술계로부터 주목받은 시기는 2007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에서였다. 이후 그는 리안갤러리(2008년), 포스코미술관(2009), 이화익갤러리(2011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일명 '라이징 아티스트(Rising Artist)'로 부상했다.

차규선_行脚-미시령_캔버스에 혼합재료_240×180cm_2019

2011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한국 분청사기 특별전시회(Poetry in Clay: Korean Buncheong Ceramics)』를 열었다. 당시 전시에는 79점의 분청사기가 선보였는데 그 가운데 67점이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이었다. 리움미술관 홍 관장은 리셉션 인사말에서 "분청사기는 한국 도자기 역사의 정수(精髓)"라면서 "현대 아티스트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홍 관장이 말한 현대 아티스트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차규선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를테면 그의 회화는 홍 관장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분청사기가 차규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말이다. ● 자, 이제 차규선의 '분청회화'를 보도록 하자. 그의 '분청회화'는 분청사기의 제작과정을 유사하다. 그는 일단 분청사기 제작에 쓰이는 도자기 흙인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胎土)를 작품의 보존성을 고려해 고착 안료를 섞어 캔버스 표면에 바른다. 그리고 그는 분청사기의 표면을 분장하는 백토니(白土泥) 대신에 주로 백색의 아크릴 물감을 큰 붓으로 '피부' 전체를 '화장(덧칠)'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크릴 물감이 굳기 전에 분청사기의 귀얄문이나 인화문 그리고 덤벙 기법 등을 차용해 나무주걱이나 나뭇가지 또는 부러진 붓 등을 이용하여 '풍경'의 형상을 그리거나 긁어내서 완성한다.

차규선_行脚-가창_캔버스에 혼합재료_194×140cm_2019

물론 차규선은 자신이 어렵게 구축한 '분청회화'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분청사기에서 표현 불가능한 방식도 채택했다. 이를테면 그는 태토 위에 백색 아크릴물감을 흩뿌리기도 하고, 태토 위에 덧칠한 아크릴물감에 물을 뿌려 번짐 효과도 만들어내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분청회화'는 작가 자신도 예상치 못한 그림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부터 작품이 완성되는 동안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면서 "심지어 작품이 완성된 후 건조 과정에서도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마친 상황에서도 긴장감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 차규선은 자신의 작품을 '풍경'으로 작명했다. 그가 그린 '풍경'은 그의 고향인 경주 남산 부근의 소나무 풍경으로 시작해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며 마음이 닿은 '풍경'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2015년 그는 갤러리 래(Gallery rae)에서 개최한 개인전 『화양연화(花樣年華)』에 무채색의 '풍경화'와 달리 컬러풀한 '매화' 시리즈를 전시했다. 그의 '매화'는 언 듯 보기에 전형적인 '꽃그림'으로 보이지만, 관객이 그림으로 한 걸음 들어가면 역시 남다르게 절제된 이미지로 표현되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규선_行脚-도화_캔버스에 혼합재료_53×45cm_2019

차규선의 '매화' 시리즈는 '꽃그림'이라고 단정지기에는 너무도 아련하고 섹시한 이미지로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매화' 시리즈는 흰색과 녹색 사이로 피어난 분홍빛 매화, 정열적인 붉은 바탕에 만개한 백색 매화, 흰색 바탕에 마치 검정 스트라이프처럼 보이는 가지에 활짝 핀 핑크빛 매화 등 각양각색의 매화들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는 매화나무의 미끈한 가지를 마치 여인의 목선과 어깨 그리고 허리를 따라 히프로 가볍게 흘러내리듯 아름다운 곡선으로 그려놓아 매화의 섹시한 향기를 담았다. ● 왜 차규선이 '매화' 시리즈를 선보였던 개인전 타이틀로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2000)를 차용했는지 감 잡으셨지요? 물론 그는 '인생의 꽃 같은 시절'에 머물지 않는다. 이번 자하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인 개인전 『행각』에 그는 또 다시 변신한 신작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신작 선암사 '매화'와 청도 '매화'는 이전의 '매화' 시리즈와 달리 몽환적이다. 그리고 그의 갈선대 '풍경'은 맑은 스카이블루로 표현되어져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수(憂愁)에 찬 분위기이다. 또한 그의 설악산 '풍경'은 화려한 핑크로 그려져 있지만 시름에 잠겨있는 느낌이다.

차규선_行脚-가송협_캔버스에 혼합재료_194×140cm_2019

차규선은 자신이 어렵게 획득한 '틀(style)'이지만 그 스타일을 유지하기위해 틀에 박힌 태도나 방식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화려하지만 우수에 찬 그의 신작들은 마치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꽃피운 풍경으로 보인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신작 '풍경'은 사실적 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풍경과 만난 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관객은 그의 그림을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차규선에게 이번 개인전 타이틀을 '행각'으로 작명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었다. 그의 답변이다. ● "어느 술집에서 술 먹고 나오는데 할매가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힘들게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대오각성(大悟覺醒)하게 되었습니다." ■ 류병학

Vol.20190503g | 차규선展 / CHAKYUSUN / 車奎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