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의 확장 InterFacial ExTension

노진아展 / ROHJINAH / 盧眞娥 / sculpture.installation   2019_0504 ▶︎ 2019_0518

노진아_나의 기계 엄마 (Mater Ex Machina)_혼합재료_인터랙티브 로보틱스 조각_180×60×5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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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아 홈페이지_jinahroh.org

초대일시 / 2019_0504_토요일_05:00pm

이 전시는 2018년도 정부(과학기술진흥기금/복권기금)의 재원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입니다.

후원 / 한국과학창의재단_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람시간 / 01:00pm~07:00pm

탈영역 우정국 POST TERRITORY UJEONGGUK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구 창전동 우체국) Tel. +82.(0)2.336.8553 www.ujeongguk.com www.facebook.com/ujeongguk

노진아의 작품들은 인간의 형상을 한 기계와 기계의 형상을 한 인간을 중첩시키면서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가 맞닥뜨리게 될 어떤 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들은 공통의 뿌리에서 진화해 온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두 이질적인 존재 계열이 겹쳐지는 접촉면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낯선 존재, 바로 인간도 비인간도 아닐 어떤 존재에 대한, 여전히 예비되지 못한 어떤 불편함을, 우리 안에서 서늘하게 환기시킨다. 인공지능과 인공감정을 가지고 인간의 말을 하는 기계들은 단지 인간이 될 기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기계가 되고 있는 인간인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으스스한 낯섦(uncanny)을 느끼게 해준다…. ●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의 말대로, "기계들에게 작용하고 기계들을 만드는 것이 인간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 작용하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기계들이다." 기계가 얼마나 인간화할 수 있느냐는 사실상 인간이 기계와 어떤 공존을 원하느냐에 달려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비인간 존재자는 결국 우리 자신이 아니겠는가. (전시 서문 중) ■ 김재희

노진아_나의 기계 엄마 (Mater Ex Machina)_혼합재료_인터랙티브 로보틱스 조각_180×60×50cm_2019

「나의 기계 엄마」는 기계학습을 통해 점점 표정을 배워나가며 감정이 무엇인지를 구현해나가는 로봇이다. 작가는 본인의 엄마를 직접 모델링하여 기계엄마를 만들고 전시장에서 관객의 표정을 학습시킨다. 로봇은 관객의 표정 및 재스처를 따라하며 표정의 데이터를 쌓고 학습한다. ●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모성이라는 것조차 학습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학습을 통해 구현되는 표정 및 감정의 표현들이 발전하여 언젠가 작가 자신에게나 관객에게 감정의 온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을 감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 표정이란 인간의 가장 효율적인 인터페이스이다. 감정이란 것은 물론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 사회적 학습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봇이 오랜 학습으로 정교하게 감정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적합한 표정과 재스처를 취할 때, 상대방은 로봇이 가진 감정을 의심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정의하고 있는 감정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표정 인터페이스는 내면 감정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일까.

노진아_나의 기계 엄마 (Mater Ex Machina)_단채널 영상, 컬러_00:03:07_2019

「나의 기계 엄마」 영상 작품은 실물 로봇 버전 「나의 기계 엄마」의 실리콘 피부 내면에 있는 기계구조가 노출된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것이다. 이 영상에서 작가는 작가의 엄마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계음으로 말하게 하고 프로그래밍하여 로봇을 움직이게 하였다. 기계임이 극명한 로봇이 인간 엄마가 말할만한 다정한 말투로 딸을 걱정하며 인터뷰하는 내용을 보며 관객은 모성을 느낄 수 있을까.

노진아_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From Dust You Came_and To Dust You Shall Return)_ 혼합재료, 인터랙티브 조각_120×110×90cm_2019

거대한 로봇이 흙더미에서 태어나고 흙으로 돌아가는 형태가 있다. 관객이 다가서면 로봇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겠다고 입을 벌려 실리콘 피부를 씰룩이며 말을 한다. 로봇은 흙에서 나오지 않는다. 왜 로봇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하고 인간의 형상을 닮을 뿐 아니라 심지어 탄생과 소멸까지도 닮고 싶어 할까. 로봇들이 원하는 것일까,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우리와 닮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그들이 우리와 너무나 같아질 만큼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면 우리가 로봇들과 공유하게 될 세상은 어떨지에 대해 질문한다.

노진아_Transcoded Shell_SLA 3D 프린팅된 얼굴 및 기계부품_인터랙티브 가변 설치_2019
노진아_Transcoded Shell_SLA 3D 프린팅된 얼굴 및 기계부품_인터랙티브 가변 설치_2019

작가는 실재하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들을 3D 스캐너로 디지타이즈 하고 각각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물질을 정보화한다. 그리고 디지털화 된 3D 얼굴 정보 및 목소리를 조작하여 다른 여러 개체들을 만든다. 그리고 원본 정보와 조작된 정보들을 함께 3D 프린터로 다시 물질화 시킨다. 이 과정에서 물질들은 정보화, 코드화되었다가 다시 물질화 된다. 이 과정에서 어느 것이 원본이고 어느 것이 조작된 정보인지 알 수 없는, 정보들로 만들어진 실물 얼굴들이 관객과 상호작용을 한다. 관객이 앞에 달린 마이크를 통해 말을 걸면 관객의 육성이 0과 1의 이진수로 코드화되어 작품안의 각각의 머리들의 원본 목소리와 복제, 조작된 목소리로 다 함께 말을 한다. 어떤 얼굴이 원본이고, 어떤 얼굴이 조작된 얼굴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조작되지 않은 진짜 얼굴들조차도 실상, transcode된 복제이고 그조차도 껍데기일 뿐이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없이 접하는 정보는 원본도, 그 원본의 복제도, 그 복제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친 정보인지, 그 어떤 것이 과연 진실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다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또 다시 복제, 조작, 재생산한다.

노진아_진화하는 신 가이아(An Evolving GAIA)_레진, 나무, 인터렉티브 시스템_가변설치_2017
노진아_진화하는 신 가이아(An Evolving GAIA)_레진, 나무, 인터렉티브 시스템_가변설치_2017

인간을 닮은 거대한 로봇 가이아의 신체에서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혈관이 자라나고 있다. 가이아는 대지의 어머니이자 지배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혹은 스스로 조절하며 상호작용하는 지구를 칭하기도 한다. 자기 조절능력을 가진 지구, 즉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에너지를 서로 보충하는 유기체라는 가이아 이론은 생물과 무생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놓은 현재의 우리 관점에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계는 끊임없이 인간과 공진화(共進化)하고 있다. 기계에게 이미 허락된 습득능력과 더불어 자기 조절능력, 자기복제능력을 가지게 되는 날도 머지않았다.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도 없을 만큼 생명체가 가지는 모든 속성을 가지게 되는 날도 머지않았다. 이렇게 놀라운 속도로 스스로 학습하며 자라나고 있는 인공생명체들은 아직은 아기 같은 단계이지만 어느 순간 우리보다도 더욱 크고 놀라운 신적인 존재로 자라날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우리의 지배여왕 GAIA가 될 수도 있다.

노진아_나의 양철남편 (My Hus Tinman)_ 레진, 초음파센서, 마이크로컨트롤러보드, 모터, 혼합재료_200×120×130cm_2014

「나의 양철 남편」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나뭇꾼의 눈알이 움직이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오즈의 양철 나무꾼』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원래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나무꾼은 그가 사랑하던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열심히 나무를 하였다. 그가 마녀의 마법에 걸려 의도치 않게 도끼로 몸을 부분부분 잘라낼 때마다 그는 양철로 몸을 대체하였다. 몸을 모두 양철로 바꾸고, 스스로 머리마저도 양철로 바꾸며 그는 자신의 변화에 기뻐하였다. 그는 반짝이는 은색 양철의 편리함과 아름다움에 몸을 내주었고, 어느 순간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기억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노진아_얼굴

작가는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스스로 기계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과 동시에 이 작품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서로의 삶의 무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남편들도 아버지들도 이 책에서 풍자하는 20세기 초의 공장 노동자처럼 마음을 잃어가며 그저 반복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꽤 있지 않은가. 너무나 열심히 살고 있는 착한 우리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계처럼, 부품처럼 쓰이고 버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 노진아

Vol.20190504j | 노진아展 / ROHJINAH / 盧眞娥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