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위한 서시: 언어에 불을 밝히고 A Prologue for Flowers: Lighting up a Language

김슬기_유기종_전은선_차경희展   2019_0507 ▶︎ 2019_0602 / 월요일 휴관

작가와의 대화 / 2019_0525_토요일_04:00pm

백인백색 기획 시리즈 5

기획 / 김혜원 주최 /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 후원 / 전북문화관광재단

관람시간 / 1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F 갤러리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공북1길 16(태평동 251-30번지) www.facebook.com/FgalleryKorea www.fgallery.net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유명한 김춘수의 「꽃」이다. 사물과 이름의 관계를 바탕으로 사물의 존재론적 의미를 추구하고 존재들 간의 진정한 관계를 소망하고 있는 이 시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말한 언어의 자의성(恣意性)을 말할 때 주로 회자되는 시이기도 하다. '꽃'이라는 말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은 그 소리인 기표(記表, signifiant)와 그 개념인 기의(記意 signifié)의 관계가 필연적이 아니라 우연적이고 임의적이라는 것, 언어학에서 출발한 언어의 자의성은 오랫동안 서구 지성사를 이끌며 중요한 철학적, 예술적 화두가 되어 왔다. 따라서 예술 활동의 기반을 인문학적 사유에 둔 예술가들의 전시와 그들 담론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에서는 다섯 번째 기획 시리즈로 자의성에서 비롯된 시각 언어의 개성과 다양성을 성찰하는 자리인 『꽃을 위한 서시: 언어에 불을 밝히고』展을 마련한다. 김슬기, 유기종, 전은선, 차경희의 사진을 초대하여 이들이 제각각 만개한 '꽃'을 빌려 보여주고자 한 언어의 심연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김슬기_여인의 초상 02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50×33cm_2017 김슬기_여인의 초상 04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50×33cm_2017

김슬기(Kim, Seul-gi)의 「여인의 초상(Portraits of a Lady)」 ● 「여인의 초상」은 언어의 자의성 개념을 바탕으로 은유적 특성을 부각시키며 문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초상 사진이다. 김슬기는 20대 여성들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만개한 꽃송이와 함께 촬영하여 꽃과 여성을 일체화하였다. 그것은 꽃이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생명체일 뿐만 아니라 자연의 법칙 안에서 '탄생-성장-소멸'의 순환 구조를 보여줌으로써 계절적으로는 봄을, 성적(性的)으로는 여성을, 생물학적으로는 생식기(생명이 시작되는 모체의 자궁)를 의미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슬기는 "초상 사진은 단순하게 인물의 외양, 표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물이 소유하고 있는 마음, 정신 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꽃송이의 다양한 형태와 빛깔과 향기를 통해 여성의 외면 자태뿐 아니라 내면 의식까지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는 입술, 귀, 손 등 여성 육체의 일부와 신비하고 심미적인 형태와 빛깔을 지닌 꽃을 결부하여 에로틱한 이미저리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아름다움은 젊은 여인의 무한한 생명력을 암시하면서 에로티즘을 단순히 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력의 근원이자 생동하는 힘으로 보는 시각을 환기하고 있다.

김슬기_여인의 초상 01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50×33cm_2017 김슬기_여인의 초상 05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50×33cm_2017

김슬기가 「여인의 초상」에서 꽃과 여성의 동일화를 위해 시도한 은유 기법은 문학의 중심축에 있었던 오랜 수사적 전통이었다. 특히 구조주의에서는 언어의 규칙 체계를 중시하며 은유를 중요한 수사 기법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사진에서는 은유나 상징 등의 조직화 과정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론적 관점에서 사진을 '자동 생성'의 이미지로 본 앙드레 바쟁(Andre Bazin) 이래로 어떤 본질적 실체에 대한 자국으로서의 지표(index)적 특성을 중시하며 사진을 '코드 없는 메시지'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김슬기는 '말이 없는 현존'으로서의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은유 기법을 이미지에 적극 차용하였다. 그 하나는 형태 은유이다. 수치와 질서에 근거한 기하학적 형태가 아니라 불규칙적인 자연적 형태를 빌려 꽃잎이나 줄기의 자유로운 곡선을 여인의 자세나 표정이 만들어 낸 곡선과 일치시키며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색채 은유이다. 인간 감정에 대한 상징적 언어로 심리 묘사의 중요한 수단이 되는 색채를 활용하여 꽃송이의 고유한 색상으로 여인 저마다의 분위기와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김슬기는 꽃을 여인을 장식하는 소품으로 여기지 않고 여인 자체와 동일시하며 초상 사진을 완성하였다.

유기종_Seed-피다 00_종이 프린팅_150×100cm_2013 유기종_Seed-피다 01_종이 프린팅_150×100cm_2013

유기종(Yoo, Gi-jong)의 「Seed-점의 기록(Seed-Record of Point)」 ● 유기종의 「Seed-점의 기록」은 언어의 자의성을 바탕으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통해 시각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치고 있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명명(命名, appellation) 행위를 통해 추상적인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유기종의 「Seed」 연작은 김춘수의 「꽃」을 시각화한 작품으로 간주될 만큼 그와 유사한 개념적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즉 김춘수의 「꽃」이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대상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꽃'이라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인식론과 존재론적 사유를 보여주듯, 유기종의 「Seed」 연작도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그의 근원적 열망과 진정한 인간 관계 형성에 대한 소망을 인식론과 존재론적 사유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Seed-피다 00」, 「Seed-피다 01」, 「Seed-마음」을 동일한 의미론적 계열체로 카테고리화하면 생명을 품고 있는 '씨앗'이 오롯이 '마음'을 지닌 존재인 '꽃'으로 개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Seed」 연작들, 이를테면 「언어」, 「이름」, 「대화」를 하나의 의미론적 계열체로 카테고리화하면 존재의 내면에 존재하는 '언어'의 '씨앗'이 '이름'으로 호명되는 순간 발아하여 '대화'라는 관계로 개화한 결과 진정한 인간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도 상상할 수 있다.

유기종_Seed-마음_한지_180×120cm, 가변설치_2012

중요한 것은 김춘수의 '꽃'이 구체적 사물로서의 '꽃'이 아니라 추상적 존재로서의 '꽃'을 의미하듯, 유기종의 '씨앗'도 구체적 사물로서의 '씨앗'이 아니라 관념을 대변하는 추상적 존재로서의 '씨앗'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결국 「Seed」 연작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해 의미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유기종이 '점-선-면'이라는 이미지의 형태론적 체계와 부제(副題)인 텍스트의 의미론적 체계를 통해 작품의 전체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점의 형태로 '씨앗'을 상징하는 작품의 부제 「피다 00」과 선의 형태로 '꽃잎'을 상징하는 작품의 부제 「피다 01」의 이미지 경계와 텍스트 행간에는 땅속에 웅크린 검은 '씨앗'이 지상의 만개한 붉은 '꽃'으로 피어나기까지의 절대 시간이 녹아 있다. 이는 유기종의 표현대로 "관계를 이루겠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점과 점들은 어느 순간 돌연 길고 단단한 선을 잇고야 만" 결과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사진 작품 '꽃씨'와 설치 작품 '꽃나무'가 연결되는 과정에는 '점-선-면'의 형태론적 상상력과 '마음'을 지닌 존재로서의 '꽃나무'라는 언어적 상상력이 응축되어 있다. 이렇듯 유기종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망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인식하고 존재의 의미를 생성하면서 진정한 관계 맺기를 추구하고 있다.

전은선_이브의 정원 #4_디지털 C 프린트_80×80cm_2008 전은선_이브의 정원 #5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80×80cm_2008 전은선_이브의 정원 #7_디지털 C 프린트_80×80cm_2008

전은선(Jeon, Eun-seon)의 「이브의 정원(Garden of Eve)」 ● 꽃(정원)을 스트레이트 기법으로 촬영하여 현대 사회의 공간에 대한 인식과 성찰을 바탕으로 사회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브의 정원」은 문명비판적 성격이 드러난 풍경 사진이다. 그러나 이는 자연 풍경이 아니라 태초의 자연을 모방한 식물원, 인공 정원, 심지어 과즙도 향기도 없어 나비도 꿀벌도 날아들지 않는 플라스틱 정원 등 도시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조 정원을 촬영한 풍경 사진이다. 소비 공간인 백화점의 인공조명 아래에서 상품과 더불어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거나 콘크리트 벽면 틈새에서 가까스로 생을 부지하고 있거나, 「이브의 정원」이 보여주는 꽃들은 대자연을 이루는 소우주로서가 아니라 도시 공간을 이루는 소도구로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풍경이 보여주는 세계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브'로 표상되는 실낙원(失樂園)의 세계이다. 즉 도시 공간 속 인간 욕망의 대용물로서 기능하는 이들 모조 정원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리와는 다르게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폐기된다. 그리고 또 다른 욕망의 대용품이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욕망의 시니피앙은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재생산된다."는 전은선의 지적과 같이 소비 사회의 시스템과 생산 라인이 조성한 근대적 풍경인 것이다.

전은선_이브의 정원 #13_디지털 C 프린트_100×100cm_2008

그런데 사진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라 할 수 있는 스트레이트 기법이 사용된 「이브의 정원」에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사진적 표현 형식에 전은선의 세계 인식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전은선은 모조 정원을 시뮬라크르(Simulacra)의 세계로 인식하고 가상이 실제를 대신하는 시뮬라크르의 특성을 모조 정원 사진에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가짜를 더욱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실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스트레이트 기법을 이용하였다. 특히 그것은 해석의 코드를 요구하는 은유나 상징이라는 관념의 독재성이 때로는 이미지의 투명성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었다. 이는 워커 에반스(Walker Evans)가 스트레이트 기법으로 찍었던 간결하고 투명한 사진이 당시 회화주의적 사진에 길들여져 있던 사람들에게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던 일화와 동일한 결과이다. 더구나 전은선이 여러 모조 정원과 달리 대자연 속에서 피어난 야생의 꽃을 촬영하여 에필로그로 제시한 「이브의 정원 #13」은 야생의 언어를 추구하는 전은선의 언어 의식을 뒷받침해 주는 중요한 사진적 근거가 된다. 인위가 없이 스스로 그러한 순수한 자연을 추구하였기에 전은선의 사진 언어 역시 스트레이트 기법에 의한 가장 순수하고 투명한 언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차경희_흐르는 꽃_피그먼트 프린트_11×14inch_2017 차경희_흐르는 꽃_피그먼트 프린트_11×14inch_2017

차경희(Cha, Kyoung-hee)의 「흐르는 꽃(Flowing Flowers)」 ● 대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꽃을 패닝 기법으로 촬영한 「흐르는 꽃」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 원리를 통해 자연적 시간관을 환기하고 근대적 시간관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분리할 수 없는 계기적이고 선형적인 시간을 불연속적인 것으로 해체한 것이 인위적으로 분절되고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근대적 시간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을 향해 쉬지 않고 전진하는 직선적이고 진보적인 근대적 시간이 폭력성을 띠고 인간을 지배하고 억압하면서, 인간은 시간의 객체로 전락하고 자연은 생명의 불모성을 그 특징으로 하게 되었다. 따라서 차경희는 "피어남의 절정"이자 "필명의 운명"을 말하는 만개한 꽃이 지닌 "그 모순은 생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생의 역동성과 이름다움을 존재케 하는 본질이고 힘이다."라고 역설하면서 이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인간의 시간 저편, 근대 문명이 낳은 직선적이고 폭력적인 시간의 대척점에 '흐르는 꽃'을 설정하였다. 연속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끊임없이 피었다지는 꽃이라는 생명체를 통해 시간 역시 멈추지 않고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이 흘러가는 것임을 확인하며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꽃들의 시간과 유기적인 연속성으로 순환하는 시간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차경희_흐르는 꽃_피그먼트 프린트_11×14inch_2017 차경희_흐르는 꽃_피그먼트 프린트_11×14inch_2017

이러한 차경희의 시간관은 사진 매체의 미학적 특성 중의 하나인 패닝 기법으로 드러난다. 그는 시간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인 사진의 특성을 적극 활용하여, 그동안 여러 재현 예술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 온 시간에 관한 표현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자연은 우주의 리듬과 생명의 순환 체계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기 때문에, 차경희는 반복적으로 좌우로 회전하여 움직임을 시각화한 패닝 기법으로 속도감을 지니고 역동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형상화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시간을 누적시켜 통합한 차경희의 패닝 기법은 운동하는 물체를 끊임없이 증폭시키는 시각적 효과와 함께 자연 현상으로서의 시간이 결코 분절되지 않고 지속되고 순환하는 것임을 가시화하게 된다. 아울러 차경희는 '흐르는 꽃'이 이루어 낸 원형의 조형성을 전시장의 설치 기법으로도 활용하여 호흡하는 생명의 순환이라는 자연 현상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처럼 생성과 소멸 사이의 유한한 시간을 담아낸 「흐르는 꽃」은 그동안 차경희가 보여준 『生, 바다풍경』과 『터, 지속된 시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이들 작품이 동일하게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생태 환경 문제를 어떠한 사유로 성찰해야 하며 어떠한 태도로 자연과 공존해야 하는지를 밝힌 에코페미니즘의 유기론적 사유에서 출발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차경희_흐르는 꽃

『꽃을 위한 서시: 언어에 불을 밝히고』展을 여는 4인의 사진가는 뛰어난 심미성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며 예술 작품의 주요 모티프가 되어온 '꽃'을 동일하게 소재로 하면서 의미와 맥락 나아가 시각 언어의 재생 메커니즘에서는 개성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다양한 상상력의 구조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미지에 문학의 은유 기법을 활용하여 여인의 초상을 완성한 김슬기, 이미지에 텍스트의 의미론적 체계를 도입하며 진정한 인간 관계를 추구한 유기종, 스트레이트 기법으로 시뮬라크르의 근대적 공간 풍경을 보여준 전은선, 패닝 기법으로 자연적 시간 풍경을 보여준 차경희가 제시한 '꽃'의 다양한 의미 양상과 형식 실험을 보면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자아를 표현하든 세계를 해석하든 이들이 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해 고투한 흔적 속에서 창작 행위의 고통을 감지하게 된다. 김춘수가 「꽃을 위한 서시」에서 '꽃'의 참모습을 인식하기 위해 고투한 흔적을 보여준 것도 창조적 행위의 어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탑(塔)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 김혜원

Vol.20190507b | 꽃을 위한 서시: 언어에 불을 밝히고A Prologue for Flowers: Lighting up a Languag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