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eyes

김정범_김선수_용환천展   2019_0509 ▶︎ 2019_0605

김선수_마음속의 고요-개망초_캔버스에 유채_37.9×45.5cm_2018

초대일시 / 2019_0509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피아모 GALLERY PIAMO 서울 강남구 언주로165길 12 Tel. +82.(0)2.2266.2230

삶을 알고자 한다면 주변의 수많은 사물을 느끼고 감상하라. 주광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본문 중- ● 이들 3인의 전시는 용환천 작가의 작품의 의미와 같이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얼핏보면 이들의 3인전은 30여년이 넘는 친분을 지니고 있는 김선수 회화 작가와 김정범 도자 작가가 했던 2015년의 2인 전의 연장선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도자와 회화를 넘나들며 작업을 하고 있는 용환천 작가를 통해 도자와 회화의 매체는 예술의 동일한 한 분야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자리일 수 있다. ● 물론 회화와 도자의 매체는 물성이 다르기에 이들 3인의 전시는 우리의 미술 현장에서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전시는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 3인의 전시는 용환천 작가를 통해 도자와 회화가 예술의 동일한 한 분야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자리에 불과한 것인가? 이들 3인의 전시는 얼핏 보면 매체와 조형이 서로 다르기에 용환천이라는 작가를 통해 전시의 주된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 하지만 그것은 전시의 의미를 현대 미술의 조형에 초점을 맞추어 파악하려고 한 것에 불과하다. 이들 3인의 전시는 매체와 조형에 초점을 맞추면 용환천 작가가 중심적인 매개체로 보일 수 있지만, 미학적인 논의를 통해 접근해보면 김정범 작가가 중심적인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김정범 작가는 두 작가와는 달리 인체의 표현을 통해 미학적 논의에 주된 논쟁이 되고 있는 '나'라는 주체에 대해 논의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김정범의 작업은 인체의 표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김정범의 도예 작업은 2015년의 2인 전의 전시에서 보여주었던 작업과는 표현 방식을 달리하여 그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선수_마음속의 고요-저녁나절_캔버스에 유채_90.9×90.9cm_2018

김정범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는 2015년의 전시에서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않았던 「기억을 매개하는 감각물, 2015」을 비롯하여 「Blue Head, 2017」의 시리즈들, 「Guardian, 2018」, 「Blue Head, 2019」의 작품들에서 보듯이 인체들을 해체하여 이집트 피라미드와 함께 놓거나, 또는 두상에 도자의 파편들을 꽂아 놓아 마치 두뇌에 도자의 기억들이 각인되는 것과 같은 상태를 드러내거나, 또는 미래를 암시하는 기계들과 함께 길게 늘여 놓은 두상의 표현에서 보듯이 '나'라는 실체를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변형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그가 표현하고 있는 '나'라는 실체는 무엇인가? 그가 표현하고 있는 '나'라는 실체는 앞서 언급한 초현실주의를 연상시키는 그로테스크한 작업 표현이나, 또는 「Goodness, 2018」의 작업에서 표현하고 있는 살아있는 인간을 해골로 된 말의 형상과 대조되는 작업에서 보거나, 또는 「Blue Head, 2017」의 작업에서 두상의 끝으로 길게 연장된 도구의 끝에서 지저귀는 새의 형상을 통해 보듯이 인간의 중심의 '나'란 실체의 개념보다는 자연으로 확장된 '나'란 실체의 개념에 접근해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언뜻 보면 어울릴 수 없는 것 같은 그림의 배치, 서로 상이한 이질적인 형태들을 조합"을 통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한가능성을 열어주는 세계"를 표현하고 싶다는 작업 이념을 통해서도 뒷받침하고 있다.

김정범_Blue Head_세라믹, 볼트, 너트_30×23×7cm_2019
김정범_Guardian_세라믹, 금속_67×245×50cm_2018

김선수 작가는 김정범 작가와는 달리 인간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인간의 흔적은 이번에 출품된 작업에서는 「마음속의 고요-저녁나절, 2018」의 작업에 불과하다. 이 작업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대변되는 자동차의 불빛 또한 저 멀리서 반짝 이고 있어 마치 반딧불과 같이 보인다. 그에 반해 풀과 청정한 저녁 나절의 숲의 분위기를 감싸는 이미지들은 캔버스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 그의 작업은 김정범 작가와 같이 인간의 형상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형상을 소멸 시키거나 화면에서 사라지게 한다. 그렇다면 김선수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선수 작가는 「마음속의 고요, 2018」, 「마음속의 고요-개울, 2018」, 「마음속의 고요-바다, 2018」, 「마음속의 고요-안개, 2018」, 「마음속의 고요-호수, 2018」에서 보듯이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자연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 그의 풍경은 「마음속의 고요-안개, 2018」의 작업에서 보듯이 마치 풀잎을 손끝으로 하나하나 만지고, 숲 전체에서 피어나는 안개를 온몸으로 감싸며, 숲속의 풍경을 묵연히 바라보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럼으로써 그의 풍경의 이미지는 자연의 풍경들을 시각적으로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박영택(미술평론가)이 2015년에 가진화랑의 2인전(김정범/김선수)에서 "자연풍경의 형상을 목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그 청정한 숲에서, 울울한 산 속에서 만나는 자연/생명체의 신비스러운 기운과 장엄한 분위기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차오르는 그림이다. 그것은 다분히 비 가시적인 숲의 특질의 가시화 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생명력을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 즉 김선수의 풍경의 이미지는 마치 우리의 감각을 통해 자연의 대상들을 하나하나 터치하며 하나하나 냄새를 맡으며 전체를 그려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풍경의 이미지는 우리의 시선을 가시적인 시선 너머로 나아가게 하며, '나'라는 주체를 망각하게 하고 자연의 생명력과 하나가 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용환천_beyond the wall_캔버스에 오일바_34×53cm_2019
용환천_봄의 무게 03_캔버스에 오일바_34×28cm_2018~9

용환천의 작가는 '나'라는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게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그림은 언뜻 보면 「우연의 계측, 2018」이나, 또는 「우연의 계측-갈색기둥, 2018」의 작품에서 보듯이 선으로 그려진 면들과 자연의 대상을 비교하여 그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작품들로 깊이 탐구해 들어갈수록 그러한 의미는 어느새 사라지고 의미는 미로에 빠지게 된다. ● 그의 「우연의 계측-갈색기둥, 2018」의 작품이나 「우연의 계측」의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갈색 기둥이나 또는 사각의 프레임 안에 있는 자연의 이미지는 의도된 것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한 표현은 "무수한 선을 통해 면을 구성하고, 덧입힌 색이 평면에 입체성을 드러내는 작업과정에서 어떤 형태나 효과가 나타날지는 우연의 영역으로 남겨둔다."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연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작업해서 표현하고 있는 전체적인 형태와 색채와 질감은 의도된 것인가? 그는 그러한 의문에 대해 "우연과 필연의 조우와 엉킴에서 단순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형태, 색과 질감이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우발적 효과는 필연이 되고, 예측 가능하다고 여겼던 부분은 우연으로 흡수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도 의도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 그렇다면 선문답과도 같은 그의 작업에서 의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임대식(아터테인먼트 대표)은 용환천의 작업에 대해"선은 현실적인 공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해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의 선들은 그 자체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지 이야기가 새로 만들어지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다. 즉 작가가 작업에서 의미하는 것은 다시 풀어서 해석하면 그리는 선들과 그리는 선들의 주체의 체험들에 그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작업은 주체와 대상, 인간과 자연은 구분되어 있지 않으며, 주체가 선을 그리는 체험들에 내재되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이렇듯 이들 3인의 전시는 매체와 조형을 탈피하여 현대미술의 쟁점에 있는 주요한 미학적인 논의를 내재하고 있다. ■ 조관용

Vol.20190509f | Beyond the eye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