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late : 나와 다른 당신에게 건네는

장은의展 / JANGUNUI / 張銀義 / painting   2019_0510 ▶︎ 2019_0614 / 월요일 휴관

장은의_A Plate : 나와 다른 당신에게 건네는展_디스위켄드룸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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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510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예술경영지원센터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디스위켄드룸 This Weekend Room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142길 8(청담동 131-2번지) 2층 Tel. 070.8868.9120 thisweekendroom.com

이것은 토마토가 아니다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여행이 좋은 이유는 일상에 지쳤을 때 한 숨 고르게 한 뒤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거나, 중대한 고민이나 정리를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환기시켜주기도, 여행 중 맞닥뜨린 어느 한 순간이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바꿔놓는 신비한 경험의 가능성도 있는 일종의 아우라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갑자기 멈추기도 하고 때론 속절없이 흘러가버리는 시간 앞에 인간으로서의 무능이 불현듯 매우 큰 슬픔으로 느껴질 때 그 속도를 뒤섞어 주거나 유쾌한 혼란에 빠지게 하는 마술을 부려주기도 한다. 실은, 시간과 일상의 체감 속도를 좌지우지 컨트롤하는 듯 한 그 마술적 행위는 예술창작자들이 우리에게 다각적으로 근사하게 보여주었던 아우라였지 않은가.

장은의_세 개의 원 14 (두 개의 토마토와 와인잔) Three Circles 14 (Two tomatoes and a wine glass)_ 캔버스에 유채_53×73cm_2019
장은의_세 개의 원 15 (두 개의 토마토와 종지) Three Circles 15 (Two tomatoes and a bowl)_ 캔버스에 유채_53×73cm_2019
장은의_세 개의 원 12 (두 개의 토마토와 접시) Three Circles 12 (Two tomatoes and a plate)_ 캔버스에 유채_33×53cm_2019
장은의_세 개의 원 13 (두 개의 토마토와 컵)Three Circles 13 (Two tomatoes and a cup)_ 캔버스에 유채_33×53cm_2019

첫 만남 : 재현의 유희 ● 장은의 작가와의 첫 만남에서 대뜸 재현의 의미를 물었다. 시각예술에서는 생경하지 않은 클래식한 화두일지라도 사실 창작자에게 무턱대고 언어로 답을 요구하는 것은 무례한 일일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감각을 깨워주는 작품을 구현해내는 창작자들이지 재현이란 문제를 분석하는 이들은 아니기에. 설치작업으로 구성된 2013년의 첫 개인전이 마무리하는 전시였다고 말하는 작가의 의중이 사뭇 궁금하기도 했고, 이 후 작가의 잔잔한 서사적 흐름대로 부드럽지만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는 평면작업들도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았다. 유하게 보이는데 완고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필자의 또 다른 편견(프레임)일 수 있다는 것을 일단 고백한다. 부드럽게 잔잔한 것은 유연하기도 쉽다는 일종의 강박일수도. 실제 작가가 준비해 온 작품 이미지들을 빠르게 훑어보았을 때 작업들이 하나처럼 보였던 느낌이 강했던 나름의 이유가 가장 컸고, 외출시 무얼 놓고 나온듯한 찜찜함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시 이미지를 천천히 되짚어보며 건넨 필자의 첫 질문이었기도 했다. 작가는 잠시 생각한 후 '유희'라고 답했다. 한 숨 돌린 뒤 작가의 입에 담긴 유희는 그래서 오히려 단호한 어조로 다가왔다. 2014년부터 일관된 톤으로 그려진 일상적인 풍경화와 2017년부터 시작된 과일 시리즈의 작품들에서는 그려지는 대상의 모습이 작가가 의도한 전부는 아닐뿐더러 어쩌면 보여지는 시선의 일부 방식이고, 그 이면에 마련해 놓은 작가의 의도된 큰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서서히 직감되었다. 작가 자신이 지닌 감각과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신뢰가 그가 무장하고 있는, 소박하지만 강한 무기처럼 보였다. 그래서 일관된 톤으로 나열된 작품들을 가쁘게 쭉 훑고서 의아한 느낌(?)으로 다시 소급해 본 필자의 행위 연유도 해소되고 있었다. 무언가 굉장하게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기대는 필자도 어쩔 수 없이 학습되어진 예술을 마주하면 튕겨나오는 심미적 습관이고, 사실 작가입장에서도 밑질 게 없는 자신의 작업을 마주한 자들에게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감흥일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시각적 모호함 속을 무얼 찾겠다고 헤집어 들어가 보는 적극적 감상태도는 작가를 또한 즐겁게 하는 그가 명확히 계획한 의도이진 않을까. 양자 간 등가적 상황에서의 상식적 감각들의 추돌과 마찰, 그리고 공감과 발견의 그 공간이 작가가 말하는 그 유희일지도.

장은의_두 개의 원 19, 20 (가든 토마토와 보울) Two Circles 19, 20 (A garden tomato and a bowl)_ 캔버스에 유채_각 33×24.5cm_2018
장은의_두 개의 원 19 – 27 을 위한 방 A Room for Two Circles 19 – 27 _ A Plate : 나와 다른 당신에게 건네는展_디스위켄드룸_2019

두 번째 만남 : 일상의 유희 ● 그래서 작가는 작업에서 무심하게 흐르는 듯 보이는 일상을 낯설게 보이도록 장치를 심어놓는다. 같은 톤으로 흘러가는 일상은 오히려 굴곡 있는 우리의 실제 삶보다, 아니 매우 이질적으로 단조롭다. 작가의 고백대로 하나의 작품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 쌓여진 내공을 실타래 풀 듯 집중해야하는 것이 아닌 수평적 나열을 통해 생성․분열․분화하는 형식이다. 근래에 작가에게 선택된 일상의 모습은 과일이다. 마치 케이터링에 한 줌 예쁜 핑거푸드들이 동일한 모양이지만 빠르게 소모되면서 맛의 감각과 느낌은 각개 차이가 드러나는 과정과 흡사한 느낌이다. 에너지와 물질을 한 곳에 집중하여 그득 담은, 시각예술에서 묵직하게 여겨왔던 그 가치를 작가는 조금 우회하려는 듯 싶다. 하나의 작품이 지닌 아우라 대신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하나도 같지 않은 한결같은 작품들이 지닌 감각의 차이로서의 아우라를 우리에게 부드럽게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일상처럼 보이고 싶은데 일상적으로만 보이기 싫은 것이라고 할까. 따스한 봄 날 좋은 볕을 한가득 품고 있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하나하나 줄지어져 허공에 떠 있는-그릇에 놓여져 있는 과일작품들이 일렬로 벽에 세워져 있기에 느껴지는 착시-과일들 속에서 작가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뱉은 "그래서 이것은 과일이 아니에요"라는 말에 어렴풋 예상했던 예술가적 발언임에도 여지없이 알싸한 이미지의 배반을, 일상의 배반을 느낀다. 우리가 예술창작자들로부터 종종 받았던-그들에게는 유희라고 말해지는, 우리에게는 크게 당혹스러운-이미지 감각의 타격을. 시지각으로 감지된 형상과 빛깔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과 본능에 의해 마음과 머리를 분주하게 오가며 재구축․재조합․재구성하여 새로이 일깨워지는 감흥을 만끽하며 시각예술을 맞이한다. 작가와의 긴 시간 진한 만남을 통해 물론 토마토가 그려진 그림을 보며 그것은 토마토가 아님을 인지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즙이 터질듯 투명하게 익은, 자연의 사연을 모두 안은 채 올통볼통한 형태로 놓여진 영락없는 토마토 형상으로 투영된다. 과일 작품들에서 관객이 느끼고 해석하는 게 참 재미있다고 말하는 작가의 흐뭇한 표정에 오히려 토마토와 작가의 모습이 중첩된다. 작은 존재가 자연의 영향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 색과 형태를 만들어가는 연약하고도 강인한 모습으로 말이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같은 작업을 진행해도 한국에서는 좀 더 목소리가 커지는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은 곧 주변과 그 반응에 쉽게 영향을 받는 작가의 성향으로도 보인다. 인공적인 완벽한 형태의 그릇들 안에 놓여졌기에 자연이 빚은 다양한 빛과 형태의 과일들은 하나도 같지 않고 각자가 더욱 고유하게 보일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작가는 일상과 시간을 늘려 작가 본인 뿐 아니라 관객 역시 그 틈으로 들어와 주기를 희망하는 듯 보인다. ● 필자는 작가에게 되묻고 싶어진다. 잔잔한 일상과 소소함의 소중함을 작가의 호흡과 숨결로 느끼고 그 의도에 응답했으니, 그 다음은 무엇일지. 한 곳으로의 침잠과 깊은 몰입이 아닌 사뿐한 나열의 형식에 작가의 시각적 호흡을 맞춰 편히 쫒고 있는데, 곧 또 다른 편집되는 일상의 소소한 편린들을 과일 형상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이상하리만큼 느긋하게는 기다려지지 않는다. 이 왠지 모를 모호한 조급함은 작가에게 향한 재촉이라기 보다는 시각예술이 그간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던 스펙터클이란 것이 말초적 쾌감을 자극했든 심연의 본성을 건드렸든 여하튼 놀랍도록 충분히 만족시켜주었기에 길들어진 성향이라고 항변하고 싶다. 그리고, 물질로만 치자면 평면시각예술은 벽면에 얌전히 걸려만 있으면서도 그것이 지닌 한계를 넘어 능력이상 초월적인 힘을 늘 번듯하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제, 서두에 슬며시 띄어놓은 한 구절의 아름다운 시에 맺음을 해야 할 듯하다. 이것은 역시 대추만은 아닌 듯 싶다. 장은의 작가의 작품들에 놓여진 토마토 아닌 토마토 형상에 여전히 여러 유희적 상념은 놓여진다. ●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 『붉디 붉은 호랑이』, 「대추 한 알」) ■ 고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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