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PARK SEO-BO: THE UNTIRING ENDEAVORER

박서보展 / PARKSEOBO / 朴栖甫 / painting   2019_0518 ▶︎ 2019_0901

박서보_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展_국립현대미술관 서울_2019 (제공_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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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홈페이지_www.parkseobo.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이상일문화재단 협찬 / 한솔제지_아시아나항공

관람료 / 4,000원(MMCA서울 통합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금,토요일_10:00am~09:00pm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발권가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1, 2전시실 Tel. +82.(0)2.3701.9500 www.mmca.go.kr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을 5월 18일부터 9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박서보(1931~ )는 '묘법(描法)'연작을 통해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으며 평론가, 행정가, 교육자로서 평생을 한국 현대미술을 일구고 국내․외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 박서보는 1956년'반국전 선언'을 발표하며 기성 화단에 도전했고, 1957년에 발표한 작품 「회화 No.1」으로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로 평가받았다. 이후 물질과 추상의 관계와 의미를 고찰하며, 이른바 '원형질', '유전질' 시기를 거쳐 1970년대부터 '묘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한국 추상미술의 발전을 주도했으며 현재까지 그 중심에서 역할하고 있다. ●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박서보의 삶과 작품세계를 한 자리에 조망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명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는 현대인의 번민과 고통을 치유하는 예술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묘법을 지속해 온 수행자와 같은 그의 70여 년 화업을 지칭한다. ● 전시는 박서보의 1950년대 초기 작품부터 2019년 신작까지 작품 및 아카이브 230여 점을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선보인다. 첫 번째는 '원형질'시기이다. 상흔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 부정적인 정서를 표출한 「회화 No.1」(1957)부터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발표한 한국 앵포르멜 회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원형질」 연작을 소개한다. 두 번째는 '유전질'시기이다. 1960년대 후반 옵아트, 팝아트를 수용하며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 전통 색감을 사용한 「유전질」 연작과 1969년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에 영감을 받은 「허상」 연작을 소개한다. 세 번째는 '초기 묘법'시기이다.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하여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수없이 선긋기를 반복한 1970년대'연필 묘법'을 소개한다. 네 번째는 '중기 묘법'시기이다.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하면서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하여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 붙이는 등 행위를 반복하여 '지그재그 묘법'이라고도 불린다. 무채색의 연필묘법에서 쑥과 담배 등을 우려낸 색을 활용하여 색을 회복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는 '후기 묘법'시기이다. '색채 묘법'이라고도 불리며 1990년대 중반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로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된 대표작을 볼 수 있다. ●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미공개 작품 일부를 비롯해 2019년 신작 2점이 최초 공개되며 1970년 전시 이후 선보인 적 없는 설치 작품 「허상」도 볼 수 있다. 또한 지난 70년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세계 무대에 한국 작가 전시를 조력한 예술행정가이자 교육자로서의 면모도 소개한다. ●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박서보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국제학술행사'(5월 31일), '작가와의 대화'(7월 5일 예정), '큐레이터 토크'(7월 19일) 등이 개최된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 신청할 수 있다. ● 전시 기간 동안 박서보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작가가 추구한 '수행'의 태도를 느껴볼 수 있도록 관객 참여 워크숍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묘법 NO. 43-78-79-81」(1981)을 따라 관객이 직접 묘법을 표현해보는 '마음쓰기', 자신만의 공기색을 찾아서 그려보는 '마음색·공기색'이 진행된다. ● 한편 CJ프레시웨이가 운영하는 미술관 교육동 1층 푸드라운지 미식에서는 박서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박서보 특별 메뉴'를 선보인다. '자연에서 온 건강한 메뉴'를 콘셉트로 한 계절국수 2종과 음료, 디저트 등을 전시 기간 동안 즐길 수 있다.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서보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적 추상을 발전시키며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 큰 족적을 남긴 박서보의 미술사적 의의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서보_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展_국립현대미술관 서울_2019 (제공_국립현대미술관)

1. 원형질 시기 1956년 김충선, 문우식, 김영환과 함께 도전과 창조정신을 촉구하는 '반국전 선언'을 발표한 박서보는 1957년 한국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 「회화 No.1」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 획을 그었다.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작업에서 그가 대량 학살과 집단 폭력으로 인한 희생, 부조리 등 당대의 불안과 고독을 분출한 작업은 부정을 거듭하며 기존 가치관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회화No.1」이 파괴의 장이라면 이후 제작된 「원형질」 연작은 파괴로부터의 절규로 나아가 생존의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1961년 뜻하지 않은 파리에서의 체류 기간 동안 작가는 다양한 재료와 제스쳐로 분노와 절규를 표현한 서구 작가들에게 감명 받는다. 『세계청년작가파리대회』 합동전에 출품한 「원죄」 이후 작가는 검은색 바탕 위에 불을 이용하여 가죽을 태워 화면에 붙이거나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타킹 등을 화면에 붙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반을 지나 한국사회 곳곳에 배어있던 전쟁의 상처가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은 점차 다채롭고 밝아지게 된다.

여인좌상 女人座像 ● 1955년 『창립9주년 신축교사낙성기념 제2회 미전』에서 발표한 「여인좌상(女人座像)」은 입체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뷔페에 심취하였던 박서보는 날카롭고 검은 선으로 인물과 한복의 옷 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같은 해 제작된 「양지」의 표현주의적 색채와 두터운 필선과는 사뭇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해에 제작된 이 두 작품이 상당히 다른 경향을 보여주는 것은 이 시기 그가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던 모색기였기 때문이다.

박서보_회화(繪畵) No.1_캔버스에 유채_95×82cm_1957_개인 소장

이 작품은 『제3회 현대전』(1958. 5. 15. - 5. 22, 화신백화점 화랑) 출품된 「회화(繪畵) No.1」~「회화(繪畵) No.7」에 이르는 7점 중 하나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으로 당시 화단에 비정형의 회화로의 변화를 선도했다. 추상표현주의 작업방식과 비견되지만 박서보는 에나멜을 사용하며 숫돌로 갈아내고, 그 위에 다시 색을 뿌리기를 반복하여 제작했다. 당시 폭격에 의해 폐허가 된 도시의 건물 잔해에 철근이 뒤엉킨 광경을 보고 생활하면서 제작된 이 작품은 그가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내동댕이치고 발길로 차고 나가 친우 김창열과 저녁을 먹고 돌아와 보고는 새삼 작품의 매력을 발견하여 다시 완성해낸 일화가 있다.

박서보_원형질(原形質) No.1-62_캔버스에 유채_ 163×131cm_1962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당시 프랑스 일간지 '레자르(Les arts)' 표지에 실리는 등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당시 상하 반전되어 실렸다. 파리 체류 시 스페인작가들의 재료와 물성에 감흥을 받은 그는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기계 부속, 버려진 옷가지 등을 주워 꿰매어 붙인 후 페인팅하고, 버려진 스타킹을 구해 흰색을 칠하고 그 위에 토치램프로 그을려 마치 화상으로 죽은 인물처럼 즉물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제3회 파리비엔날레』에 출품되었고 삶과 죽음의 관계 속에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한 작품으로 호평 받는다.

2. 유전질 시기 분노와 파괴에서 절규로 이행하던 그의 작업은 1960년대 후반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다. 전통문화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작가는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서 오방색을 활용하고, 당시 서구에서 유행하던 옵아트나 팝아트의 영향 아래 기하학적 추상과 대중적 이미지를 담은 「유전질」을 선보이게 된다. 한편 박서보는 1969년 여름 인류의 달 착륙을 계기로 무중력에 관심을 갖고, 스프레이의 원리가 무중력 상태와 유사하다는 생각으로 스프레이 분사법을 「허상」 연작의 제작 과정에 사용하였으며, 조지 시걸의 조각에 영향을 받은 「허상」 조각을 제작하여 공중에 매다는 등 다양한 시도를 지속했다.

유전질 遺傳質 No.2-68 ● 전쟁의 상흔이 가라앉기 시작한 이 시기에 작가는 파리에서 접한 새로운 옵아트, 팝아트 등의 흐름에 주목하면서 기하학적 형태를 도입하고 동시에 당시 전통문화를 강조하던 박정희정권의 영향 아래 전통적인 요소를 도입하려는 시도로 오방색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유전질 연작은 이러한 작가의 다양한 시도 중 나타난 작업이다. 원형질에 비해 원색이 두드러지며 색의 대비가 강조되는 패턴이 반복된다. 기하학적 추상 형식으로, 단순화되고 정제된 화면 속에서 한국적인 색감을 발현하여 전통사상에 대한 시각화를 시도 하고 있다.

박서보_비키니 스타일의 여인_캔버스에 유채_130×89cm_1968_개인 소장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던 그는 60년대 말 인류의 달 착륙을 지켜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무중력에 관심을 갖는다. 그 후 이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내야 할 것인지 고심하던 끝에 60년대 후반부터 붓을 사용하지 않고 스프레이를 사용한다. 붓은 그 자체에 탄력이 있어서 저항이 생기지만 스프레이는 공중에 분사하는 방식으로 화면에 얹히는 거니까 저항이 전혀 없는 무중력 상태와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화학성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방독면을 쓰고 작업하는 등의 대비책을 강구하였으나, 3년여의 작업 기간 동안 독성화학성분이 함유된 물감의 미세한 입자를 흡입한 끝에 기관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결국 폐질환을 겪으면서 '유전질'시리즈는 1970년 발표를 끝으로 중단하게 되었다.

허의 공간 ● 박서보는 사람이 빠져나가고 옷만 남아있는 「허상(虛像)」 시리즈를 건축가 김수근의 제안으로 오사카 『엑스포(Expo)'70』 한국관에 선보인다. 얼굴과 손 발 등 옷 외에 노출되는 부분을 없애고 제작된 인물상은 군상을 이루어 수십 명의 군상입체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하늘을 향해 오르는 형상과, 한편에 모래로 관에 묻은 형상을 출품하였으나 반정부성향의 작품이라는 정부세력에 의해 전시 도중 철거된다.

3. 초기 묘법시기 작가로서 독자적인 언어를 찾고자 한 그의 노력은 동시대 사회와 문화 뿐 아니라 전통문화에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으며, 20대 자신을 쏟아내며 채웠던 화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모색으로 이어졌다. 전통을 담아내고 서구미술을 수용하면서도 단순히 모방하지 않는 작품을 구현하고자 고심했다.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한 그의 연필묘법은 쏟아지는 감정으로 그려낸 원형질 연작과 같이 새로운 무엇을 그려내야 한다는 의지가 아니라 체념과 포기에서 시작되는 비워내는 그림이다. 연필묘법은 캔버스에 유백색의 밑칠을 하고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수없이 반복되는 선을 그어가는 작업이다. 행위 과정에서 물성과 정신성 그리고 작가의 행위가 합일에 이르게 되는 이 작업은 작가는 수신의 도구라고 일컬었다.

묘법(描法) No.3-67 ● 초기묘법의 아이디어 실험 단계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세로 91cm 가로 64cm의 비교적 작은 화면에 흰색 물감을 바르고 오른쪽에서 왼쪽 45도 각도 방향의 사선이 촘촘히 그어져있다. 필획에서 탄력과 생명감이 느껴지지 않으나 화면의 표현을 지우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묘법(描法) No.6-67 ● 「유전질」 시리즈에서 자신의 조형언어를 찾지 못한 작가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 의 문제를 고민한다. 원형질이나 유전질에서의 방식을 벗어나 한국의 미학을 비움의 미학으로 정립하고 이를 그려내고자 고심한 과정에서 둘째 아들의 글씨 연습을 보고 '체념의 미학'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박서보는 구도를 하듯 '비움'과 '수신'의 방법으로 「묘법」을 시작한다.

묘법(描法) No.5-73 ● 새로운 작업의 명제를 고민하던 그는 방근택의 권유로 프랑스어로 '글을 쓰다'는 의미의 명사 '에크리튀르(écriture)'라고 「묘법」을 시작한다. 가변질로도 표기된 바 있는 이 작품의 제목은 명동화랑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의 명제가 된다. 당시 작가는 아직 작품의 명제를 붙이는 자신만의 규칙을 마련하기 전으로 「묘법 A」, 「묘법 B」, 「묘법 No.11-73」 등과 같은 방식의 명제를 사용하고 있다.

박서보_묘법(描法) No.01-77_르몽드지에 연필과 유채_33.5×50cm_1977_작가 소장

이 작품은 작가가 파리여행 시 제작된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제대로 도구를 갖추지 못한 여행객으로 파리 한 호텔에서 머물던 그는 앞방 투숙객이 버린 신문지를 주워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연필로 묘법을 시도하였다. 가장자리와 필선 사이로 신문기사가 눈에 보인다.

4. 중기 묘법 시기 1980년대는 중기 묘법 시기로, 무채색의 연필묘법에서 다시 색을 회복한 시기이다. 1982년 작가가 닥종이를 재발견하면서 그의 작업은 변화를 겪는다. 1982년 작품을 살펴보면 마포에 유채와 연필을 사용하거나, 닥종지에 수성물감과 연필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하며 한지를 발라 채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붙이는 등 무수히 반복되는 행위가 강조된 작업은 손의 움직임에 따라 자유로운 방향성이 두드러져 '지그재그 묘법'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수한 필선에서 다시 회화성을 회복하고자 한지 위에 쑥과 담배를 우려내는 등 자연의 색을 최대한 담아내기도 하였고 원색 밑칠하고 그 위에 검정색이 덧입혀져 바탕색이 우러나도록 하였다. 한지가 채 마르기 전에 완성해야하는 이 시기 작업은 고된 방식으로 인해 점차 작가는 화면을 분할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후기묘법으로 이행하게 된다.

묘법(描法) No.352-86 ● 중기묘법은 손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다양한 사선패턴의 골을 만들어가는 독특한 작업 방식에 따라 '지그재그 묘법'이라고도 불린다. 이 시기 작가는 캔버스, 그 위에 세, 네 겹의 한지를 배접하고, 수성 페인트로 채색한 후, 그린다는 행위의 흔적이 화면 전체를 덮는다. 지그재그묘법은 1982년 한지의 수용과 함께 시도되어 1994년까지 지속된 작업방식으로 박서보의 묘법 연작 중에서도 한지의 질감과 작가의 개성이 가장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작업방식이다.

묘법(描法) No.870907 ● 한지의 물성과 작가의 자유로운 손놀림이 어우러진 지그재그 묘법 대표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24시간을 연속하여 작업에 매달렸다고 한다. 지그재그 묘법은 한지가 마르기전에 작업해야하는 작업특성상 작업을 멈출 수 없는 고된 작업이라 이후 작가는 제작방식에 변화를 시도한다.

박서보_묘법(描法) No.931215_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_53.2×46cm_1993_박지환 소장

연필 묘법에서 지그재그 묘법으로 변화하던 시점을 회고하면서 작가는 당시 회화성을 얻고자하였다고 밝힌바 있다. 특히 색감에 대한 관심이 그러했는데 바탕에 진한 원색을 밑칠하고 검은색물감을 발라 밀어내는 이 작업은 언뜻 언뜻 보이는 바탕의 붉은 색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며, 재료의 물성과 손의 방향성이 강조되는 수작이다. 이 작품은 미국의 재료와 기법에 관한 미술교과서 『ART FUNDAMENTAL』의 표지화로 실리기도 하였다.

박서보_묘법(描法) No.080618_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_195×130cm_2008
박서보_묘법(描法) No.190227_캔버스에 연필, 유채_130×170cm_2019
박서보_묘법(描法) No.190411_캔버스에 연필, 유채_130×170cm_2019

5. 후기 묘법 시기 1990년대 중반 그는 손의 흔적을 제거함으로써 묘법에 변화를 시도한다. '색채묘법'이라고도 불리는 묘법의 후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작가는 한지를 손가락으로 직접 긁고 문지르는 대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밀어냄으로써 화면에 길고 도드라진 선과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낸다. 작업방식이 변화하면서 흑백의 화면으로 되돌아갔던 그는 2000년대 초반 단풍 절정기의 풍경을 경험한 후 예술에 대한 그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다. 자연이 그러하듯 예술이 흡인지처럼 현대인의 번민과 고통을 치유하는 도구가 되어야한다는 작가의 신념은 점차 중첩된 색면의 오묘함을 내포하며 더욱 다채로워진다. 작업에 대한 그의 끝없는 열의는 색채묘법과 연필묘법이 결합된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으로 이어진다. ■ 국립현대미술관

Vol.20190518f | 박서보展 / PARKSEOBO / 朴栖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