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자라나는 장례식

김남훈_김익현_김흥구_이선애_이제_장서영_정덕현_흑표범展   2019_0529 ▶︎ 2019_0604

초대일시 / 2019_0529_수요일_06:30pm

후원,협찬 / Flying Tiger Copenhagen_TEMPT 주최 /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큐레이터학과 기획 / 제19회 졸업전시준비위원회

관람시간 / 01:00pm~07:00pm

탈영역 우정국 POST TERRITORY UJEONGGUK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구 창전동 우체국) Tel. +82.(0)2.336.8553 www.ujeongguk.com www.facebook.com/ujeongguk

이 전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 에 나오는 문장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에서 출발한다. 제주 4.3사건,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세운상가 활성화 종합계획, 미술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는 장례식을 미처 치루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는 유령들이 가득하다. 피해자는 유실되어 버린 그들만이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삶이 장례식으로 변해버린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상은 늘 어떤 '죽음의 파장' 아래에 있으며, 우리는 자박자박 밟히는 그들의 존재에 매일/가끔/종종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회 저변에 남은 상처는 삶속으로 스며들어 그 자체로 일상이 된다. 우리는 잃어버린 당신들과, 당신들을 잃어버렸음에도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자야하는, 계속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전시를 꾸렸다. ● 『날마다 자라나는 장례식』은 누군가의 삶을 난도질하고도 여전히 속죄도 구원도 없는 세계에서의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질문하는 전시다. 장례식은 본래 죽은 이를 저승으로 무사히 보내주기 위해 치러지는 의식이다. 하지만 우리가 치르는 장례식은 여전히 지상을 떠돌아다니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들을 끌어안고 참혹했던 재난과 참사를 상기하며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미술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를 통해 더 나은 삶과 사회를 향해 지속적으로 발언하는 일이다. ● "삭제하기 위해 그은 줄은 자신이 지워낸 것을 읽을 수 있게 내버려둔다. 한 단어를 삭제하기 위해 덧입혀진 줄로부터 두가지 상반된 의미가 형성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줄을 긋지만 동시에 나는 그것을 선 아래로 읽혀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Olivier Ducharme, "Derrida ou la rayure de l'origine." Mémoire de l'Universitée Laval, Quebec, 2008, p. 121. (윤김지영, 『지워지지 않는 페미니즘』, 은행나무, 2019, p. 64에서 재인용)) ● 이는 문장에 취소선을 긋는 행위가 본래의 목적인 그 문장을 삭제하기 위해서와 취소선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게끔 하는, 두 가지 의미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전시는 위와 같은 운동성을 통해 사라지고, 왜소해져가는 것들의 그림자를 '장례식'이라는 소재로 비춤으로써 아래의 결과에 닿고자 한다. (1) 재난과 참사에서 남겨진 사람들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2) 오래도록 그들을 지울 수 없는 흔적 만들기 우리는 사회적 폭력에 의한 죽음과, 죽음을 안고서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절박함과 황폐함에 주목한다. 더불어 부당한 죽음을 애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미술을 통해 사회 저변에 남은 상처의 치유 가능성을 제시해본다. 요컨대 『날마다 자라나는 장례식』은 세상의 온갖 허물을 끌어 모아 앓는 의식이다. 이는 본래 장례식과 같은 단발적인 의례가 아니라, 제대로 기억하고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자,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넘어서자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날마다 자라나는'은 매일 같이 해결하지도 못한 채 늘어가는 사회의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오늘날의 상황을 은유하는 것이고, '장례식'은 그들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우리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버린 일을 고개 들어 오롯이 보고, 이를 딛고 또다시 살아가려는 수행적인 움직임이다. ● 참여작가들은 수많은 죽음의 파장 아래 처참한 풍경과 시간을 붙잡고, 덧대고, 대화하고, 줍는 행위를 지속한다. 전시에서 '장례식'이라 명명한 이 미술실천들은 폭력적인 세계에서 미술이 무엇을 해야 할까, 나아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각자가 내놓은 처방전 같은 것이다. 이들은 두고 온 것을 다시 줍기도 하고, 사라져가는 감각을 붙잡고 재차 이야기하기도, 현실 옆에 왜소한 그림자를 나란히 놓아두기도 한다. 결국 이들의 실천은 어떤 윤리적 가능성을 보여주며 시스템의 비정함에 항의하면서 사회의 균열을 극복하려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 상기하게 한다.

장서영_상자_단채널 영상_00:02:45_2011
장서영_나를 잊지 마세요_영상 프로젝션, 마이크스탠드, 손전등_가변크기_2012

장서영은 흩어져버린 존재에 주목한다. 장서영의 입을 거쳐 명확한 형상으로 구축된 그들의 목소리는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죽음을 토로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해온 삶과 그들을 삼켜버린 사회구조에 대해 말한다.

김익현_LINK PATH LAYER_잉크젯 프린트_40×450cm(각 40×50cm)_2016
김익현_LINK PATH LAYER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6

장서영이 발견한 이들은 김익현을 통해 분명해진다. 역사적으로 배제되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구멍을 파고 들어간 그는 보이지 않던 죽음과, 무수한 죽음을 만들어낸 욕망을 더듬어가게 한다.

김흥구_트멍_교래리_피그먼트 프린트_82×55.5cm_2013
김흥구_트멍_김도실(1938), 영정_피그먼트 프린트_100×84cm_2014

상(像)으로 맺힌 죽음은 김흥구와 정덕현을 거치며 그 파장을 드리운다. 김흥구의 필름에 담긴 제주는 장례식을 마치지 못한 섬의 잔혹한 역사가 남긴 죽음과 상처를 거느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황폐한 삶을 드러낸다.

정덕현_그림자_종이에 먹, 호분_181.8×227.3cm_2012
정덕현_억압하다_종이에 연필(7H,6H,5H,4H,3H,2H,H,HB)_83.6×64.5cm_2013
정덕현_억압하다_종이에 연필(B,2B,3B,4B,5B,6B,7B)_83.6×64.5cm_2013

정덕현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회 구조와 이러한 구조가 노동자를 억압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그는 우리 주변의 사물을 그리며 그것을 감싸던 여러 이야기를 먹과 연필로 쌓아간다. 평범하던 물체들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 우리가 지나쳐온 노동을 둘러싼 족보가 된다.

흑표범_정오의 목욕_퍼포먼스 필름_00:09:38_2011
흑표범_VEGA_삼베에 먹_112×500cm_2016

기나긴 고통의 족보는 끊어지지 않고 현재로 전이된다. 흑표범은 초상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당신들을 지금 여기로 소환하는 의식을 치르고, 여전히 발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재난과 참사를 삼베 위 세월호 유가족의 울음으로 펼쳐 놓는다.

이선애_날 보러와요_단채널 영상_00:02:52_2018
이선애_날 보러와요_항아리, 한지꽃_가변설치_2019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이 행위는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여성을 기리는 이선애의 손길로 이어진다. 그는 버려진 낙검자 수용소에서 죽어간 작은 동물의 사체를 화장하고, 수십 개의 종이꽃을 반복해서 접는다. 이들은 수많은 문제들을 방치하고 묵인하는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주면서 제때 치료하지 못하고 상처로 남은 일들을 성실히 어루만진다.

이제_다섯 가슴을 가진 사람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7
이제_뒤돌아보지 마라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5

흑표범과 이선애가 치르는 성실한 제의는 이제와 김남훈을 거쳐 '극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한다. 이제는 여성의 신체와 그 상징성을 부각해서 성별로 인해 사회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존재에 주목한다. 그는 고개 들어 모순된 현실을 직시하지만 이에 무릎 꿇지 않고 해방을 향한 길을 탐색한다.

김남훈_모스_별_전등26개, 전선, 모스 컨트롤 장치_가변크기_2017
김남훈_틈의 살_3D 프린팅 PLA_가변크기_2019

끝으로 김남훈은 소외되고 잊혀진 존재를 들여다보며 부단히 대화한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과 우리의 삶이 공존하고 있음을 되내이며 함께 나아가자고 한다. 결국 장례식이라 명명한, 이들의 '미술 실천'은 무수한 재난의 역사를 딛고서도 살아가야 하는 윤리적 생존방식을 모색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 제19회 졸업전시준비위원회

Vol.20190529g | 날마다 자라나는 장례식展